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38. 쾌락 없는 책임 (4)
세계수의 인정이 있고 난 뒤, 언제 반목했냐는 듯 르윈과 세계수의 협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애 엄마가 뭘 좋아하지?
“엄청 속물적이라서 비싼 건 다 좋아해. 특히 마력석 관련으로.”
-장로 회의 열어서 창고 좀 털어 와야겠구만.
“아, 그리고 일단…….”
‘그냥 다 망했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엘리는 간절히 세상의 멸망을 기도했다.
지금이라면 마족들이 쳐들어와도 환영할 자신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맨드레이크이지 않는가.
마족이 이 대륙을 침공해 와도 인류를 멸망시키지, 자연 환경까지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가혹한 환경이라는 마대륙에도 자연은 있고, 식물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확인을 못했을 뿐이지, 마대륙산 맨드레이크가 자라고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제발!’
마왕아, 쳐들어와라!
와서 저 빌어먹을 용사(아님) 호소인을 쓰러트리고, 세계수를 불태워라!
-내 아내와 자식을 호위할 인원도 필요하겠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엘리였으나, 세계수는 아내와 자식을 보호할 인력까지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제 봤다고 아내야?”
아직 대면도 못한 식물이 자꾸 아내, 아내 한다.
그에 발끈한 엘리였으나, 르윈은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데려온 엘프 있잖아. 실력도 괜찮던데.”
-그 녀석은 엘프 기사라서, 애들하고 상의 좀 해야 하는데.
“딴 것도 아니고, 아내님을 위해서인데. 힘을 좀 써 봐.”
-으음, 노력해 보지.
“진짜 다 죽었으면 좋겠다.”
소문으로만 듣던 정략결혼이 이런 것일까.
인간, 그중에서도 부자나 귀족이나 할 법한 일을 맨드레이크인 자신이 하게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엘리다.
‘어느 날, 세계수의 아내가 되어 버렸습니다.’
갑작스럽게 그런 제목의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 기분이 드는 엘리였다.
‘따지고 보면 내용도 비슷하고.’
마력의 쾌락에 취해 헤벨레! 하고 자빠져 있던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그곳에서 수액만 빨리지 않았어도, 세계수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영양제 따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아니, 보통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비정상이잖아!’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 저 미친놈과 미친 식물의 잘못이 더 크다고 엘리는 확신했다.
“애 엄마라니! 나한테 딸이 생기다니!”
“또 발작하네.”
-아이들에게 출산 직후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비슷한 증상인 것 같다.
“캬아아악!”
“하긴 예민할 수밖에 없지.”
-음, 수생 재배 중이라 잠을 어항에서 잔다고 했나? 장인들에게 부탁해, 아티팩트 어항을 하나 주문 제작해야겠어.
자신의 의사는 1도 상관없이 진행되는 둘만의 대화였으나, 엘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갑작스러운 엘프의 취업 희망에 아카데미는 혼란에 빠졌다.
난데없이 침입하여 감찰관으로 와 있는 감찰부장을 때려눕히고.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머무는 로열 클래스 기숙사에 들이닥치더니, 순순히 항복하여 묵비권을 행사하다 간신히 입을 열더니 취업을 희망한다고 말한다.
“미친놈이지?”
“그런 것 같은데요?”
그렇기에 황금 공과 아카데미의 직원들은 빠르게 엘프 왕국에 수거를 요청했다.
소중한 아카데미에 쳐들어온 침입자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이것을 빌미로 엘프에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은 교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엘프 교수 오는 겁니까?”
“엘프는 시간 개념이 인간과 달라서, 한 번 머무르면 최소 수백 년은 머물러 준다는데!”
모든 종족 중 수명이 가장 짧은 종족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엘프와 비교하면 대부분의 종족이 단명종이 된다.
엘프와 버금가는 수명을 지닌 이들은 요정족을 제외하면 소수의 수인족과 경지에 다다른 마녀 정도.
물론 그것도 평범한 엘프의 기준이고, 하이 엘프 수준으로 올라가면 비교할 대상이 없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엘프의 시간 개념은 인간의 시간 개념과 전혀 달랐고.
엘프 관점에서 잠시만 아카데미에 머무를 생각이나, 그 시간이 최소 백 년.
괜히 이종족 중에서 숫자가 많은 편이 아닌 엘프가, 아카데미에서 제일 쉽게 볼 수 있는 이종족이 된 것이 아니었다.
일단 들어오면 안 나간다.
학생으로 들어오기라고 하면 관련 학과 교수들이 대학원생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암투를 벌일 정도였다.
이사장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담당 교수!
자기가 죽어도 남아 있을 대학원생!
엘프는 그야말로 아카데미 최적화 종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녀와 수인족에 이어 엘프까지 모을 수만 있으면, 10년 안에 황실 아카데미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는 아카데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조금 더 과감한 투자를 하여 드워프까지 데려온다면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선조들이시여…….”
지켜보고 계십니까!
당신들이 맡긴 꿈, 제가 이루게 만들겠습니다!
“…이사장님.”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며칠 전이었으나, 엘프 왕국과의 교섭을 담당했던 직원의 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반품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카데미에 쳐들어온 문제 많은 엘프가 반품 처리 안 된단다.
“…뭐라고요?”
“오히려 하이 엘프가 인정하는 자라고, 잘 부탁한다고…….”
오히려 취업 희망을 들어달라는 청탁이 들어왔을 정도란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이 바뀐 것일까.
남의 아카데미에 쳐들어와 깽판을 친 엘프가 장로회도 아니고 하이 엘프가 인정하는 자라니.
“사실 엘프는 엄청 호전적인 종족이 아닐까요?”
자연을 사랑하는 종족이라고 했지, 싸움을 싫어하는 종족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직원을 보며, 황금 공은 순간 ‘그런가?’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
황족은 방학 기간이 되면 황성으로 복귀해야 한다.
아카데미 잔류 금지.
그것은 황실의 암묵적인 룰이었고, 많은 이들은 그러한 이유로 황족이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자리를 맡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학생회장이란 방학에도 학교에 남아 일하는 노예, 아니 일꾼이었으니까!
‘차라리 일에 파묻혀 죽고 싶다.’
그러나 황실로 복귀한 루테스는 점심 식사를 하며 차라리 학생회장으로서 복역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들었다면 데일드가 환호성을 지르고, 라일라가 차기 학생회장을 맡아 레드 카펫을 준비했겠으나.
안타깝게도 말 그대로 루테스의 소망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 좋네.”
“그러게. 얼굴 좀 보고 살지.”
“마탑 이용하면 쉽게 복귀할 수 있잖아. 자주 좀 이용해라.”
“아카데미에서도 만날 수 있는 애들이 있는데, 잘도 그러겠다.”
요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루테스는 식은땀을 뻘뻘 흘릴 뿐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황제가 될 기회가 일찌감치 사라진 순간, 루테스는 빠르게 자신의 미래를 확정지었다.
‘쥐 죽은 듯이 살아야겠다.’
쥐 죽은 듯이 살겠다는 것치고는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망나니가 된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나, 그 또한 다 계획의 일부였다.
나는 망나니다.
이렇게 깽판을 치고 있다.
그러니 접근하지 마라. 끈 떨어진 연을 고쳐서 다시 날려 볼 생각을 하지 마라.
나는 망나니다. 내가 황제 되는 순간 제국은 망한다!
그렇게 온몸으로 주장하며, 자신이 황제가 될 생각이 없음을 온몸으로 어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 바로 베르샤 아카데미였다.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암살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니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좋은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자신이 원치 않아도 인맥이라는 것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나름 최신형에 돈을 많이 투자하여 시설이 좋고.
그러면서 어중간한 위치에 권력의 핵심에 다다른 귀족들이 없으며.
거기에 제국 수도에 포함이 되어 있으나, 말 그대로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황실 권력과 떨어져 있는 느낌의 베르샤 아카데미는 루테스에게 있어 최고의 아카데미였다.
그렇게 입학하고 나서 루테스는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다 자신의 계획대로였으니까.
베르샤 아카데미는 자신이 지내는 데 최고의 아카데미였으니까!
“소문 들었다. 아카데미에 마녀가 상주한다지?”
“이번에 재미있는 이벤트에, 마녀의 기술력을 볼 수 있었다고 하더구나. 루테스 너도 보았느냐?”
‘…진짜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러나 아카데미 1년 차부터 뭔가 조짐이 이상해졌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 국가에 둘밖에 없는 공작 가문의 자제들이 베르샤 아카데미로 입학했다.
심지어 황실 아카데미에 입학이 확정되었음에도 들어온 이도 있단다.
‘그래, 그때부터였어.’
그때부터 루테스의 완벽한 계획이 꼬이기 시작했다.
공작가가 입학하고, 미친 동생이 황실 아카데미에서 베르샤 아카데미로 전학을 오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마녀가 교수를 하겠다고 하더니, 올해는 후작가 몇이 입학을 했다.
그뿐인가?
“나는 수인족의 역사 수업이 더 궁금하던데.”
“수인족이 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은 게 없는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 타고난 전사이기에 전투 관련 수업을 맡기는 했지.”
“외교부 쪽에서도 관심을 보이더라. 수인족 지식인은 정말 만나기 어렵다나?”
그저 본인이 허약하기에 역사 수업을 하게 된 아이리였으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르윈과 아이리 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외부의 시선으로 보자면 수인족 지식인이 아카데미 교수로 초빙된 것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첩보에 의하면 엘프까지 초빙한다는 소식이 있던데.”
“무려 하이 엘프가 인정한 엘프 전사라고 하니 엄청나겠네~”
“…….”
거기에 자신은 들어 보지도 못한 엘프 교수까지 추가된단다.
‘도대체 왜?’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황실 아카데미도 이 정도로 호화로운 이종족 교수진을 보유하지는 않았다.
무려 마족과의 전쟁에서 두 차례 선봉을 섰기에 이종족들의 호의를 받는다고 알려진 아리타 왕국.
그리고 그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유서 깊은 아리타 왕실 아카데미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레일라가 베르샤 아카데미로 전학을 간다고 했을 때는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 보니 노렸던 거 아니야?”
누이가 웃으며 하는 말에는 걱정이 1도 서려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날카롭게 간 칼날을 바로 목 끝에 찔러 넣을 기세였다.
“노렸다뇨. 그냥 사랑하는 오빠가 혼자 있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저라도 같이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인걸요.”
그러나 레일라는 그 칼끝을 아주 가볍게 피했다.
문제는 피한 칼날이 루테스를 향해 날아들었다는 것이지만.
“그렇구나?”
“역시 가족을 위하면 다 보답을 받게 되는구나.”
둘이 짰냐?
다 포기했다고 하더니, 여동생한테 붙기로 한 거냐?
필터링 없이 와 닿는 형제들의 시선에 루테스는 대륙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아카데미 매점에서 파는 위장제보다도 못하게 느껴졌다.
‘…돌아가고 싶다!’
르윈이 들어온 이후 거지 같았던 아카데미였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마굴과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천국도 실시간으로 개조가 되고 있었지만, 루테스는 알 수 없었고.
아니, 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알고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