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38. 쾌락 없는 책임 (5)
슬슬 무더위가 약해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계절.
푸르던 나뭇잎들이 서서히 붉게 변하기 시작하고, 아카데미 뒷산에 단풍잎이 보이기 시작했다.
짧고도 강렬했던 여름이 끝을 고하는 시기.
“이제 곧 개학이네.”
즉, 개학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개학이라고 하더라도 평소랑 똑같지 않습니까.”
“다르지. 수업 듣잖아.”
기초 교육 과정이란, 말 그대로 기초를 배우는 과정.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큰 변화가 없는 한 기초는 거기서 거기다.
인생 10회 차에게 있어서 정말로 무의미한 시간.
그렇기에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남들이 수업 듣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카데미에 다니는 겁니다.”
“그렇긴 하지.”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시간일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가 없을 뿐이지만.”
그저 지겨울 뿐.
“하.”
그 당당한 선언에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동시에 르윈답다고 생각했다.
“이번 방학 기간에 새로 오신 교수님들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참으세요.”
마녀에 이어 수인과 엘프 교수가 초빙되었다.
그 소식은 아카데미는 물론 제국 사교회에서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마녀와 비교하면 희소성이 낮을 뿐, 두 종족 또한 쉽게 보기 어려운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중등 교육을 가야 들을 수 있잖아.”
“앞으로 2년 반만 더 참으시면 중등 교육 과정입니다.”
“2년 반이나 남은 거겠지.”
“그렇게 시간이 남으시면 라일라 아가씨랑 경쟁해서 학생회장이라도 하시든가요.”
“그건 좀.”
라일라가 들었다면 귀를 쫑긋 세우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겠으나, 안타깝게도 인생 10회 차의 경험 안에는 아카데미 학생회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아는 르윈은 아카데미 학생회장이 될 생각이 없다.
아니, 애초에 그거 안 하려고 라일라를 내세워 학생회장으로 당선시키지 않았는가!
“베르샤 아카데미의 차기 종신 학생회장은 라일라니까.”
데일드가 4살만 젊었으면 모를까, 아무리 르윈이라고 하더라도 올해 졸업하는 사람을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물론 어떤 선배처럼 유급해서 남을 수도 있겠으나, 정규 교과 과정이 정해져 있는 아카데미 시스템 안에서 유급은 은근 어려운 일.
차기 공무원 자리가 확정된 데일드는 출석 일수가 부족하지 않는 한 졸업은 시켜 줄 것이 분명했다.
‘후작 가문 중에서 누가 나와 준다면 모를까.’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쭉 라일라가 학생회장을 맡을 것이다.
원래 사람들의 심리라는 것이 다 그런 거니까.
크나큰 문제를 저지르지 않는 한, 기존에 잘하던 사람에게 계속 일을 맡길 것이 분명했고.
안타깝게도 라일라는 책임감이 강한 성격에 능력도 뛰어나기에 일을 못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라일라가 횡령이라도 하지 않는 한 계속 회장일걸?”
“…횡령해도 학생회장 자리는 유지할 것 같은데.”
“그렇네?”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든든하다, 우리 회장!”
지금도 책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라일라가 들었다면 르윈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겠으나.
안타깝게도 라일라는 개학을 앞두고 영혼이 빠져나갈 만큼 갈려 나가고 있는 상태다.
“그나저나 예리엘하고 하인스는 잘하고 있어?”
“얼마 전 도련님의 엄포도 있었기에, 훈련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 사건이 있었으나, 건국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아카데미에서 공표를 한 게 지난주였다.
비록 외부 인원을 제한하고, 미리 신청한 학생 가족들 정도만 입장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하나.
어찌 되었든 건국제가 정상적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고.
르윈은 예리엘과 하인스에게 지난 대회보다 더 높은 성적을 요구했다.
“그동안 노력했으면 잘하겠지.”
“지난 대회보다 더 높은 성적이면 최소 8강이잖아요.”
“과거의 자신은 이겨야 하잖아?”
말로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인생 10회 차를 살아가면서 르윈은 늘 과거의 자신을 이겼다.
‘이기지 않으면 못 살아남으니까.’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다.
이쯤 되면 살겠지. 아니, 설마 이 실력으로 죽겠어? 하고 성장을 하였으나.
마왕을 비롯한 적들은 늘 르윈의 예상보다 몇 수 위의 성장력을 보여 주었고.
그렇기에 아슬아슬하게 같이 죽는 그림만 나왔다.
결과만 놓고 보면 가장 큰 목적인 생존은 실패하였으나.
만약 과거의 실력에 안주하였다면 이 세상도 옛적에 망했을 것이다.
“사람은 발전이 있어야 해.”
“…….”
진심을 담아 하는 말이었으나, 인생 10회 차의 빌드업을 모르는 데이지로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런 말은 침대 위에서 내려오고 하시죠.”
“안 돼. 이불 밖은 위험해.”
“그런 사람이, 자기 모형 골렘을 가져다 놓고 가출을 합니까?”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자기 시종을 속이겠다고 최신 기술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대타 골렘을 세워 두고 가는가!
“르윈 1호기의 일은 참으로 안타까웠지.”
“1호기? 1호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2호기, 3호기도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추억을 회상하며 중얼거린 말이었으나, 눈치가 나날이 상승하는 데이지는 그 발언에서도 2호기의 존재를 눈치채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이 2호기인 건 아니시죠?”
“아파.”
진짜가 맞느냐는 듯 자신의 볼을 쿡쿡 찌르는 데이지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린 르윈이었으나, 그 정도 반응은 그냥 흘려 넘길 수 있는 담대함이 데이지에게는 존재했다.
아니, 르윈이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 정확하리라!
“이거 하극상이야!”
“진짜가 맞으시다면요.”
손가락을 피하며 하극상을 주장하는 주인과 그 전에 자신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시종.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오후.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
평소와 같은 지옥 같은 오후.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일어나. 아직 한참 멀었어.”
“…네.”
싸늘한 목소리에 빌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선배를 올려다보았다.
비록 1학년 차이라고 하지만, 자신보다 머리가 두 개 정도 커 보이는 선배.
‘실제로도 나이가 더 많다고 했었지.’
나이를 속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재수했다 등의 말이 후배들 사이에서 종종 들리기는 했으나, 그 누구도 그의 앞에서 그런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철검 하인스.
기사의 명가로 이름 높은 드라이르프 가문의 삼남, 르윈 디 드라이르프의 전속 시종.
기사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인 기사 동아리 내에서 드라이르프의 이름을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거기에 하인스 본인의 실력 또한 마찬가지.
비록 평범한 신입생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나, 처음 출전한 건국제 대회에서 16강에 오른 하인스의 실력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
“바로 간다.”
“넵!”
그에게 철검이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가 무엇인가.
그의 검이 투박하기 때문이었다.
기교가 없고 단순하다.
너무 뻔한 것이 약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부딪쳐 보면 체감되는 것은 단단함이다.
더욱 날카로운 검을 벼리기 위해 철을 계속 두들기는 것처럼.
투박하고, 단순하다.
그 말을 다르게 바꾸면 기본기가 잘되어 있다는 말이다.
어린 나이에는 조금 더 빠르게 성과를 보이는 것을, 더 눈에 띄는 것을 배우고 싶어 하지만.
하인스는 그 기본의 중요함을 알고 있다는 듯, 꿋꿋이 기본을 단련해 나가고 있었다.
“흡!”
그리고 그 상대가 된 빌은 하인스가 하는 훈련에 동참하게 되었다.
검을 휘두르고.
체력을 단련하고.
서로 검을 부딪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검을 휘두른다.
끊임없이 규칙적인 사이클을 돌리는 훈련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조금만 쉬자.
이 정도 했으면 많이 한 거다.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자신을 유혹하지만, 똑같은 훈련에도 여유롭게 서 있는 하인스를 보면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괴롭힘인 줄 알았는데.’
르윈 디 드라이르프.
지금 생각해도 최악의 귀족으로 보였던 그 사람의 시종이다.
그 싸늘한 눈빛과 기계적인 목소리는 아직도 잊히지 않을 정도.
물론 남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갑작스럽게 그의 시종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짜 요령이 없어.”
그렇게 얼마나 검을 휘둘렀을까.
그들 사이로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리엘.”
“지금부터는 내 차례야.”
“그래.”
예리엘.
하인스와 마찬가지로 르윈 디 드라이르프의 시종이자, 신입생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있는 선배였다.
“저, 지쳤는데.”
“누가 그러더라. 사람은 밑바닥일 때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고.”
씩 웃으며 목검을 휘젓는 모습에 빌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인스가 규칙적인 훈련을 반복하는 타입이라면, 예리엘은 즉흥적으로 훈련을 지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 훈련이란 대부분.
“힘들 때 적이 덤벼 오면 잠시 쉬었다가 싸우자고 할 거야?”
실전 훈련, 즉 대련이었다.
“윽!”
흔히 여검사의 검은 파워가 부족하다고들 말하지만, 그것도 성인일 경우의 이야기다.
이제 막 아카데미를 들어온 학생들 사이에서는 남자, 여자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예리엘은 하인스처럼 나이가 많은 상태로 입학한 상태.
오히려 힘으로 예리엘이 빌을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저 굼벵이랑만 연습하니까, 느리잖아.”
그렇다고 예리엘의 검격이 느리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녀가 검의 기초를 배운 곳은 드라이르프 가문이고.
또한 르윈의 강력한 요청으로 우락부락한 근육이 생기지 않는 훈련법을 강요받은 탓에, 그녀의 기본적인 검술은 속도에 중점을 둔 쾌검이다.
“조, 조금만 천천히!”
즉 힘에서도 밀리고, 속도에서는 압도당한다.
“더 빠르게?”
그에 조금만 봐달라고 소리쳤으나, 예리엘은 웃으며 속도를 더 높이기 시작했다.
‘진짜 괴롭히는 거 아니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갈 정도로 예리엘의 훈련은 강렬했다.
“윽! 악! 윽!”
간신히 받아친 검격의 충격이 손아귀에 전달되고.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하면 몸으로 받아 내야 했다.
비록 목검이라고 하나, 진검처럼 베이지 않을 뿐이다.
충격은 고스란히 몸에 전달된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보인다.’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예리엘의 공격이 보이지도 않았으나, 지금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세 번에 한 번은 막아 낼 수 있게 되었다.
“악! 악! 아악!”
다르게 말하면, 세 번 중 두 번은 처맞는다는 말이지만.
‘조금만 더 하면.’
세 번 중 두 번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올해의 목표이기도 했다.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는 예리엘 아래 대자로 뻗은 빌은 원망 반, 감사 반을 담아 예리엘에게 인사했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
아프다. 힘들다. 그렇지만 보람차다.
비록 오늘도 일방적으로 당했고.
또 훈련장 문을 열고 나가면 자신을 노려볼 쿠셀렌이 귀찮게 굴 테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도 발전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훈련장을 빠져나왔지만.
“아무도 없네?”
늘 자신을 노려보던 후작 가문 녀석도, 훈련장을 사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도 없다.
그뿐인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카데미 최대 동아리 중 하나인 기사 동아리인 만큼 방학에도 기사 동아리는 늘 시끄러웠으나, 마치 모두가 사라진 듯 기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어?”
그때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를 들은 빌은 그곳을 향해 무작정 뛰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빠르게 달리고 있는 한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빌은 목소리를 쥐어짜 내 소리쳤다.
“선배님! 다들 어디 가셨나요?”
“중앙 광장! 못 들었냐?”
“무, 뭔데요?”
그 선배는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앞으로 뛰며 소리쳤다.
“신탁 내려왔다!”
아카데미에 신탁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어?”
그러나 막상 중앙 광장에 도착한 빌은 눈앞에 보이는 하나의 글귀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베르샤 아카데미에 미래의 용사가 나타나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