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39. 원만한 합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고객님 (1)
베르샤 아카데미에 미래의 용사가 존재할 것이다.
아카데미는 물론 제국, 더 나아가 세계를 놀라게 만든 신탁이 내려진 지 그로부터 4년 반.
세상은 놀랍게도…….
“그만하고 좀 일어나세요! 아카데미는 가셔야죠!”
“졸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인간은 더 퇴화한 듯한 느낌이었다.
“…왜 이 인간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나태해질까.”
“발전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잖아. 아, 레이카. 오늘 물은 뭐야?”
“네, 엘리 님. 물의 정령왕이 만들었다는 대수림의 세 번째 샘물을 공수해 왔습니다.”
“좋네.”
자연스럽게 어항의 물을 가는 엘프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하다.
그 기묘한 감각에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데미가 미쳐 돌아가고 있어.’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신성국과 창조의 교단 제국 지부에서의 공식 인정이 있고 난 이후.
베르샤 아카데미는 창조의 용사가 탄생할 성지가 되었다.
보통 이렇게 갑작스러운 사건이 벌어진다면 아카데미 측에서 소화를 못하는 것이 보통이나, 베르샤 아카데미가 어떤 곳인가.
준비는 아주 오래전부터 다 되었으나, 역사와 전통이 부족할 뿐이었다.
그 역사와 전통을, 용사라는 인류의 근본 역사가 해결해 준 결과.
현재 베르샤 아카데미는 다른 제국 4대 아카데미를 압도한 것은 물론,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황실 아카데미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뿐인가?
황실 아카데미를 제외하고, 황족이 다니는 아카데미.
르윈의 형제들이 황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황실 아카데미조차 보유하지 못한 두 명의 공작가 자제들을 모두 보유한 유일한 아카데미.
그 밖에도 후작 가문까지 고루 배치되어 있으며, 엘프와 드워프, 마녀와 수인이라는 다양한 종족의 교수진을 포함한,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자랑하는 아카데미가 된 것이다!
“그럼 오전 수업 준비가 있어서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응. 저녁에 봐.”
그 아카데미의 명성을 올려 준 당사자이자, 고등 교육 검술 과정 최고 인기 강사인 레이카가 맨드레이크에게 경의를 표하며 물러난다.
‘이게 맞나.’
제국에서 이름 높은 검사들조차 먼저 굽히고 들어와 대련을 청한다는 엘프의 기사.
그런 존재가 매일 아침 찾아와서 제 주인의 애완식물의 물갈이나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고 있을까.
하물며 기사의 가문이라 불리는 곳의 직계가.
그러한 검사를 무시한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나 자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아.”
순간, 르윈이 아직도 이불 속에 처박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데이지가 두 손에 마력을 모았다.
마치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것처럼 미세한 마력 운용.
세밀한 마력 운용 하나만 놓고 보자면, 이제는 아카데미에서 적수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는 원인은 어찌 보면 다 르윈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일어나세요!”
파직!
번갯불이 지나가며 오직 이불만을 불태웠다.
“내 이불!”
올해 27번째 사망한 이불을 보며 르윈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으나, 데이지는 그저 손을 털고 르윈을 일으켜 세울 뿐이었다.
“입학식부터 늦을 생각입니까?”
“…마음에 들었던 이불인데.”
불만이 가득한 르윈의 표정에도, 데이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장롱에 똑같은 것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걸 봤습니다.”
애초에 이 인간, 자신이 불태울 것을 각오하고 똑같은 제품을 대량으로 갖춰 두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기 초부터 지각하면 곤란합니다. 저번에도 지각 누적이랑 출석 일수 부족으로 유급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데이지도 비슷했잖아?”
“…그게 누구 때문인데요!”
으득!
데이지는 이를 갈며 다짐했다.
올해는 작년과 같은 불상사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아카데미 내에서 유명한 사람들인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탄생하는 용사에게 유급하는 선배나 후배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
“모든 것이 잠시 멈춘,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었습니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지만, 새로운 만남은 늘…….”
누군가가 게으름만을 성장시켜 왔다면, 그림으로 그려 낸 듯 아카데미에서 성장한 이도 있었다.
라일라 라인하르트.
봄바람에 찰랑거리는 금발을 쓸어내리며, 단상에서 재학생 대표로 연설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수많은 학생이 감탄하고 있었다.
“…도련님이 라일라 아가씨의 반만 닮았어도.”
어린 시절, 눈앞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았던 존재감은 사라진 지 오래.
이제는 누구나가 경외하고 동경하는 멋진 선배이자, 믿을 수 있는 후배가 된 라일라였다.
그 증거가 최연소 학생회장 타이틀.
기초 교육 4학년, 2학기 선거.
총학생회장에 유력한 후보들이 자진 사퇴를 하고, 중등 교육 학생회장 후보(반강제)로 추천을 받고 있던 라일라를 총학생회장으로 추대한 것은 아직도 재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누구는 벌써 총학생회장을 3년 연임하고 있는데.”
같은 공작가이자 소꿉친구는 뭘 하고 있냐.
부담감을 팍팍 주는 시선으로 르윈을 바라보는 데이지였으나.
“앞으로 3년도 든든하네.”
르윈은 남은 3번의 선거에서도 라일라가 해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은 선거에 도전할 생각은 없으세요?”
“내가 미쳤냐.”
쓱 고개를 돌린 르윈을 따라 데이지의 시선도 같은 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아직도 연설을 하는 라일라의 모습이 있었다.
“후배들 사이에서 총학생회장님은 병약한 미소녀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고 있겠냐.”
“…….”
확실히 안색이 창백하고,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긴 하다.
하지만 라일라를 잘 아는 입장에서는 그녀가 병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냥 피곤한 거지.’
데이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기초 교육 3학년 시절.
기초 교육 학생회장 연임을 성공한 라일라가, 중등 교육으로 올라가는 임원들을 울면서 붙잡던 모습을.
너희 가면 나 혼자 일해야 한다고 울고불고 떼쓰던 모습을.
라일라가 그 나이에 맞게 아이처럼 떼쓰는 모습을 데이지는 그때 처음 보았었다.
‘결국 실패했지만.’
기초 교육 학생회는 당연히 기초 교육의 학생들로 꾸려져야 한다.
아니면 애초에 총학생회에서 모두 처리를 했겠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더 많은 자리를 만들기 위함도 있고.
또 너무 권한과 업무를 총학생회에 맡기게 될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라일라는 그때의 일을 잊지 않았고.
반강제로 총학생회장이 되자마자 그녀가 한 일은 그들을 다시 자신의 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문제는 내후년이면 그 사람들도 다 졸업할 텐데.’
과연 남은 2년을 라일라가 잘 버텨 낼 수 있을까.
소문에 의하면, 자신의 은신 능력을 활용하여 학생회에서 도망치는 일이 종종 있다던데.
“괜찮을까요?”
그때가 되면 정말로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괜찮아. 라일라는 책임감이 무거울수록 도망 못 치는 스타일이거든.”
본의 아니게 점점 높아져 가는 아카데미의 위상은 라일라를 옥죄는 족쇄가 될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는 르윈을 보며 데이지는 작게 중얼거렸다.
“…라일라 아가씨가 도련님을 찌르면 아마 합법일 겁니다.”
“죽지 않게 조심해야겠네.”
작은 목소리였으나, 르윈이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르윈 역시 라일라라면 두 번 정도는 암살 시도를 해도 봐줄 용의가 있었다.
“앞으로 3년은 더 해 줘야 하니까.”
“…이상입니다.”
연설을 끝내며 박수갈채를 받는 라일라를 보며, 르윈도 함께 손뼉을 쳐 주었다.
***
“또 나다.”
한마디로 자신을 소개한 바르바 델릭은 칠판에 자신의 이름과 앞으로의 일정을 적었다.
“자기소개는 어차피 다 작년에 본 얼굴이니까, 넘어가고.”
중등 교육부터는 크게 3가지의 학과로 나뉘고.
그렇기에 반 학생들은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다 거기서 거기였다.
특히나 바르바의 반은 아카데미에서도 손에 꼽히는 주의할 인물들이 가득한 반.
변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변화가 아예 없는 쪽에 속하는 곳이기도 했다.
‘제발 좀 바뀌었으면 했는데.’
바르바는 자신의 학생부를 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레일라 디 바벨리안, 르윈 디 드라이르프, 라일라 라인하르트.
한 명만으로 목숨이 여러 개 있어도 부족한 인원들이 모두 자신의 반에 있었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네.’
백번 양보해서 레일라와 라일라는 이해할 수 있었다.
둘 다 학술과에 들어갈 수도 있겠으나, 마법과에 들어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르윈은 달랐다.
기사의 가문, 드라이르프.
그 명성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기사과에 들어가야 정상이었고.
이사장하고도 그렇게 합의가 된 상태였으나.
어째서인지 이 르윈은 마법과를 선택하였고.
이사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에게 폭탄 세 개를 보내 버렸다.
‘빌어먹을!’
신탁 이후, 더욱더 기고만장해진 이사장을 떠올리며 바르바는 이를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사직서를 던지고 싶었으나, 씀씀이까지 더욱 좋아졌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3년만 더 참자.’
아직 하는 연구가 많았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자금은 더 많았다.
그뿐인가?
커피나 위장약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마녀가 있는 아카데미는 흔치 않다.
아니, 이곳이 유일했다.
그러니 이 시한폭탄과 같은 놈들이 다 졸업을 할 때까지만 참자.
어차피 다음 신탁이 내려와 누군가가 용사로 선택되면 수업도 개판이 될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자!
“그럼 수업 들어간다.”
“우우우우!”
그렇기에 첫날부터 수업한다는 말에 야유를 퍼붓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바르바는 꿋꿋하게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
4년 반, 거의 5년에 가까운 시간은 르윈이 입학할 때와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되었다.
“엄마!”
“그래, 우리 딸!”
하나는 새싹만 자라났던 세계수의 씨앗이, 이제는 엘리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돌아다닐 정도로 성장을 했다는 것이며.
“선배, 진짜 못하겠어요!”
“괜찮아, 리아야. 우리 동아리에 회장으로 너만 한 애가 없어.”
“…이건 사기야! 언니!”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회장이 레피스 원드에서 베르리아 디 레이세르로 바뀌었으며.
“라일라 회장님이 도망치셨다!”
“수색대 파견해! 늘 그렇듯 음습하고, 사람의 출입이 없는 곳을 위주로 찾으면 된다!”
총학생회에 수색대라는 전문 추격자들이 생기기도 했으며.
“아버지에게서 온 전언이네요. 창조의 교단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으니, 종교 활동을 하면서 잘 찾아보라는데요?”
“…하.”
아직도 탈퇴를 못한 동아리 때문에, 황실의 정보원으로 써먹히는 황족이 있는가 하면.
“슬슬 공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싸우자고?”
“어차피 할 거면서!”
“안 한다니까!”
새벽, 대다수 인원이 잠들어 있는 시간.
신탁 이후, 신입생으로 파견된 창조의 교단의 성녀의 몸에 강림한 라헬과 르윈이 격렬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이때쯤이면 마족 놈들이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인데!”
“준비가 덜 되었나 보지.”
“저번 전쟁을 겪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사람이 9번 갈려서 막았으면, 이제 좀 알아서 할 때가 되지 않았냐?”
신탁이 내려진 지 4년 반.
아직도 용사가 선택이 안 된 이유.
그것이 당사들끼리 아직 합의가 안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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