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39. 원만한 합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고객님 (3)
“아윽!”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예리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마나 기절한 거지?”
온몸이 욱신거린다.
하지만 불평조차 하지 못했다.
그 높이에서 추락했는데,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었으니까.
마침 떨어지는 절벽 중간에 동굴이 있었고.
또 그 동굴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를 간신히 붙잡을 수 있어서 살았던 것뿐이었으니까.
기적에 기적이 겹친 결과였다.
아무리 단련을 한 신체라고 하더라도, 그 높이는 무리였으니까.
“…근데 왜 기절을 했지?”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분명 정신을 차리고 있었고, 그렇기에 동굴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를 붙잡고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자신은 왜 기절을 한 것일까.
“낙법도 완벽했고.”
떨어지던 힘을 못 이겨 머리로 착지한 것도 아니었는데.
낙법하다 동굴 벽에 머리라도 박은 것인가.
아직도 욱신거리는 뒤통수를 붙잡던 그녀는 문득 자신 혼자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빛이여.”
짧은 시동으로 빛의 구를 만들어 낸 예리엘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주변에 기절해 있는 여섯 명의 남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누구 하나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그 여섯이 다 자신에게 고백했다 차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다른 의미로 지옥으로 느껴졌다.
“…잘난 것도 죄지.”
얼핏 보면 공주병 말기로도 보일 수 있는 중얼거림이었으나, 객관적으로 사실인 말이기도 했다.
르윈 왈, 얼굴 보고 뽑았다는 소리를 들은 세 시종이었고.
그에 걸맞게 예리엘의 외모는 물이 오른 상태였다.
그뿐인가?
한창 전성기를 달리는 외모에, 더불어 작년 건국제에서는 황실에서 진행하는 본선에도 진출하기도 했다.
비록 32강에서 떨어졌다고 하나, 다르게 말하면 제국의 수많은 여학생 중에서 32명 안에 들었다는 것.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눈이 더럽게 높은 어떤 도련님 말고 없을 터였다.
그나마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평민 노예 출신이라는 신분인데.
그것 또한 드라이르프 가문이라는 대가문에 거두어져 여차하면 정식 작위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르윈의 허락만 있다면 지금도 고위 귀족의 처첩은 기본이요.
어중간한 가문은 정실부인 자리를 노릴 만했고.
예리엘의 노력 여하에 따라 고위 귀족의 정실도 노려 볼 만했다.
‘필요 없어서 그렇지.’
그야말로 신분 역전의 신화와도 같은 스토리였으나, 막상 예리엘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결혼으로 남은 인생을 편안히 사는 것보다 더욱 노력하여 더 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높았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을 향한 고백들을 모두 거절했다.
그중에는 북장을 다스리는 후작 가문이자 동아리 후배인 녀석도 있었고.
평범한 마법사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한 마탑의 후계자 후보였던 동급생도 있었으며.
제국에서 손에 꼽는 거대 상단의 후계자도 있었다.
아, 내 얼굴이 이 정도로 잘났구나!
도련님이 얼굴이 최고라는 이유가 다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라인업이었고, 거절할 때마타 엄청난 후폭풍이 생긴 원인이기도 했다.
“…그래도 깨워야겠지.”
아직도 미련이 넘치는 눈을 한 녀석들도 있고, 아예 대놓고 포기하지 않았다고 선전포고한 녀석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기절한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 명의 도움이라도 더 필요할 터.
“좋게 생각해야지.”
다행히도 모두가 아카데미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인재들이니, 힘을 합치면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각오를 다진 예리엘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후배를 깨우며,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아니, 탐험물을 계획하고 만든 던전인데, 왜 애들은 연애물을 찍고 있냐?”
어처구니가 없다는 엘리의 말에 르윈은 ‘쯧쯧!’ 혀를 차며 대답했다.
“구도 보면 몰라? 정형적인 여주인공 장르잖아. 다 예리엘한테 고백한 전적이 있는 놈들로 엄선했다고.”
“네가 꾸민 일이었구나!”
고백한 놈들 여섯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예리엘과, 그런 예리엘을 보며 얼굴을 붉히는 여섯 남자를 보며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저러다 애들이 나쁜 생각 해서 예리엘 덮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뒤지는 거지.”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얼핏 보면 위급한 상황이지만, 이건 다 철저한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애초에 저 던전조차 르윈이 주말마다 파 놓은 동굴 중 하나였으니까.
“기껏 성장하라고 영약까지 뿌려 두었는데, 욕망으로 눈이 뒤집힌다?”
나름대로 재능도 있고, 인성도 괜찮은 놈들로 모았는데.
위기 상황에서 안 좋은 본성이 튀어나온다면 빨리 제거하는 게 좋은 선택일 수 있었다.
“그래도 돼?”
“그냥 절벽에 떨어졌을 때 죽은 것으로 처리되겠지.”
물론 말 그대로 최악의 경우의 이야기였다.
저곳에 있는 이들은 아카데미의 주요 인물들이었고, 또한 괜찮은 재능을 가진 이들이었으니까.
마지막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몇 단계 더 발전하는 기회를 준비해 놓았다.
“그럼 저긴?”
“…….”
“우리 마녀 친구는 마른침을 꿀떡꿀떡 삼키고 있고, 엘프 친구는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
“옆에 저 친구는 혼자 있었으면 이미 잡아먹었다는 것에 내 손모가지를 걸 수 있어.”
“약을 너무 많이 썼나?”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 하인스와 그 주변을 둘러싼 여자들을 보며 르윈은 식은땀을 흘렸다.
예리엘과 비교하면 이쪽은 최악의 경우에도 단죄하기 어려운 이들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인스야… 빨리 안 일어나면 진짜 큰일 난다.”
사용 설명서대로 남자 쪽에 더 많은 수면제를 사용했는데, 아무래도 수면제 효과가 예상보다 강력했던 것 같다.
한둘이라면 그저 개인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으나.
예리엘 구역과 하인스 구역의 모든 남자가 쓰러진 상태라면 자신의 실수가 맞기 때문이었다.
“아, 일어났다.”
“다행이네.”
다행히 정신을 차린 하인스와 그를 둘러싼 여자들을 보며, 르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했으면 하인스의 정조가 위험할 뻔했다.
“괜찮을까?”
“다 믿을 만한 친구들이라니까. 여차하면 수면 가스 뿌려야지.”
“그렇지만 벌써 달라붙으면서 여우 짓 하는데?”
“그러라고 저 조합으로 넣은 거니까. 선만 넘지 않으면 돼.”
“이제 공개 맞선 못한다고, 비밀 맞선 진행하는 거 보소.”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다.
“맞긴 하지.”
“학창 시절에 연애도 하고 좀 그래야지.”
예전부터 예리엘과 하인스의 꿈이 기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집착 수준이 될 것이라고는 르윈조차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 성장 이벤트를 진행하며 겸사겸사 연애 이벤트도 진행하는 것이다.
이게 다 애들을 위해서다!
“근데 데이지는 왜 혼자야?”
인기만 놓고 보면 예리엘과 하인스 이상인 데이지였다.
그런데 데이지는 빌을 비롯한 용사 후보들처럼 개인실을 배정받은 상태.
“나 따라다닌다고 성장할 기회를 많이 놓쳤잖아.”
“알고는 있구나?”
그간 쌓은 업보가 있고.
그것이 늘어날 때마다 더욱더 르윈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된 데이지였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보상을 해 주는 게 맞는 일이다.
물론 본인하고 상의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
“…짜증 나.”
정신을 차린 데이지가 처음 한 일은 동굴 입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위로는 끝없는 절벽과 하늘이 보였고, 아래로는 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괜히 위로 올라가다 마력이 떨어지면 그대로 추락이다.
그렇다고 마력으로 강화를 시켜야 간신히 땅 끝이 보이는 바다로 몸을 내던지는 것도 위험하다.
일단 구조대를 기다릴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마법으로 만든 불빛에 의지하여 내부를 확인한 데이지는 뭔가 기묘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이잖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르윈의 얼굴이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절벽에 동굴을 파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으시겠지.”
아무리 르윈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한심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데이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있었던 마신교의 인원들이 숨어 지내던 곳? 아니면 옛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은거 기인의 무덤?’
빛의 구체는 물론 언제든지 전투에 돌입할 수 있도록 여러 속성의 마법들을 띄운 데이지는 경계를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
그리고 동굴 구석에서 매우 수상한 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상자 자체는 오래된 것이 맞는 것 같은데.”
족히 수백 년은 될 법한 낡은 상자.
이것을 여는 것이 맞는 선택일까.
‘보물 상자인 척 사람들을 낚는 함정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면 보상을 얻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데이지는 주변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신체 강화 마법까지 부여한 끝에 염동력을 사용하여 먼 곳에서 상자를 열었다.
“…….”
그러자 안에 서책 한 권과 단약 같은 것이 담긴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보물인가?”
절벽에 떨어진 주인공이 우연히 기연을 얻는다.
참으로 전통적인 클리셰였으나, 그걸 직접 경험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진짜 이런 곳에 숨겨 둔다고?”
무슨 심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데이지였다.
이렇게 뿌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지식이 전수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듯한 모습인데.
그걸 누가 찾지도 못하게 절벽 중간에 공간을 만들어 숨겨 놓다니.
“제대로 된 건 맞나?”
마력을 이용하여 물건들을 허공에 띄워 가져온 데이지는 그 물건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서책은 마법서로, 내용이 맞는다면 최상급 마법이 기록된 마법서라고 한다.
“지금 수준으로는 이해하는 것도 어렵겠는데.”
다수의 중급 마법은 물론 상급 마법 몇 개도 익힌 데이지조차 시간을 들여 이해하는 것이 고작인 마법.
그리고 그 마법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마력량을 늘려 주는 단약까지.
“…먹어도 되나?”
어떠한 마법이 부여된 것일까. 수백 년은 지나 보이는 상자와 잘못 만지면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서책과 달리 엊그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한 단약의 상태를 보며, 데이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응?”
서책 끝자락에서 스르륵 흘러나온 단 한 장의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이 편지를 찾은 자는 보아라.”
보기만 해도 힘 있는 필체는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보이는 유산이었으나.
그 내용의 끝에 적힌 하나의 이름은 편지의 아름다운 필체보다도.
그리고 그 편지가 들어 있던 서책과 수상한 단약들보다도 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데르덴 델 블레이드?”
가장 최근에 세상을 구했던 용사이자, 최초의 용사와 함께 역대 최강의 용사를 다투는 존재.
그 이름이 담긴 편지를 보는 순간, 서책과 단약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했고.
이러한 일은 데이지뿐만 아니라, ‘아주 우연히’ 절벽에 떨어진 여러 사람 사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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