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3)
23화 5.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 생활을 한다 (5)
이름 없는 신.
신을 믿는 신도들을 잃고, 그 이름마저 잃어버린 신.
“그러니까, 시작부터 잘못되었던 거죠.”
이름을 잃어버린 신을 찾기 전, 우선 그 이름부터 지어 주어야 한다고 르윈은 주장했다.
“그건 불경한 짓이 아닌가?”
그러나 반대 의견 역시 존재했다.
비록 이름을 잃었다곤 하지만 과거 신으로 군림했던 존재.
그런 존재의 이름을 인간이 멋대로 짓는다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도련님.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루테스와 데이지의 반대 의견에 르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머지 한 명에게로 향했다.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음.”
‘아무 생각 없는데!’
레피스는 그냥 울고 싶었다.
꼬박꼬박 회장님이라고 존칭하는 공작가의 아들내미도 거북하고, 의견을 말해 보라는 듯 시선을 주는 황자 놈도 거북했다.
그뿐인가?
그나마 괜찮으리라 생각했던 데이지마저 거북했다.
분명 신분은 자신이 위인데, 황자와 공작가의 도련님 사이에서도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모습을 보면 꼭 윗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방침이 정해지는 중요한 일입니다, 회장님.”
앞으로의 방침이라니.
우리 동아리는 그런 거 없는 동아리였는데.
동아리 탄생 이후부터 이어진 유구한 역사가 깨지려고 한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 나쁘지 않은데.”
“역시 회장님!”
하지만 그녀는 소귀족이었다.
약하고, 소심하고, 남의 의견에 묻혀 따라가는 인생.
그런 인생을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서 르윈은 천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중요한 게 아니죠.”
“그,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잘 생각해 봐, 데이지. 이름 없는 신들은 식물인간 상태나 마찬가지야.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일이 잘 풀리고, 신이 깨어날 정도가 되었는데, 자기 이름 좀 바뀌었다고 살려 준 은인들에게 화내겠어?”
“그건 그렇군요.”
왜 이런 거로 진지하게 회의를 하는 걸까.
그것도 황족이랑 공작가 인물들이.
‘아니, 그런 건 다 상관없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레피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동아리방에 있는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름을 정했어요.”
화려한 필체로 공작가 도련님이 정한 신의 이름이 적힌다.
‘진짜, 진심이잖아?’
즉흥적으로 지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다는 느낌이 풀풀 풍기고 있었다.
좋지 않다.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든, 르윈은 거침없이 자신이 생각해 두었던 이름을 칠판에 적었다.
“이게, 바로 그 이름입니다.”
“무링?”
“네.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은, 신의 이름입니다.”
무링. 이름만 듣기에는 나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의 의미겠지.
“무슨 뜻인데요?”
그렇게 생각한 데이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르윈에게 물었고, 르윈은 당당한 표정으로 가슴을 내밀며 이름의 뜻을 설명했다.
“무. 무쓸모.”
“응?”
“링. 잉여신.”
“…….”
“…….”
“…….”
순간 동아리방에 적막이 흘렀다.
신의 뜻이 무쓸모 잉여신이라니.
“도련님.”
그 사실에 데이지는 이를 갈았지만, 나머지 둘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잉여신인데, 왜 잉이 아니라 링이 되는 거지?”
“어감이 무잉보다는 무링이 더 좋더라고요.”
“그러냐.”
우선 루테스는 의지가 없었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르윈의 협박 때문이었을 뿐.
그렇기에 계약대로 동아리 활동에 대충 참여를 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 나쁘지 않네요!”
진심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무링이라는 이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그녀는 안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의 이름이 무쓸모 잉여신의 줄임말이라니.
진심이 아니라는 말이지 않은가!
“…….”
하지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데이지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진심이세요?”
“응.”
“진심으로 무쓸모 잉여신이라는 뜻을 가진 신을 찾겠다고요?”
“다시 부활할 수 있다면, 무링신도 참 좋아할 거야.”
“…….”
데이지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활동하는 듯한 르윈의 행동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었는데.
‘역시, 진지한 도련님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걸까.’
그렇게 실망한 데이지였지만, 놀랍게도 르윈은 진심이었다.
르윈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름 없는 신의 이름을 고민했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무링으로 정한 것이었다.
‘신은 쓸모없을 때가 제일 좋지.’
신이 기도를 들어주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에 비해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애초에 신이 전지전능하다면서, 마왕이 나올 때마다 인간한테 막아 달라고 하는 게 말이 돼?’
그것 또한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럼 신은 전지전능하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되었다.
제약이 있는 전지전능이라니.
‘말이 안 되지.’
중요한 순간마다 쓸모없는 힘이라면 차라리 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그 대신, 신 또한 인간에게 뭘 요구하지 말고.
“무링은 내 이상적인 신이야.”
“도련님…….”
데이지는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진심인가? 진심으로 신의 이름을 저렇게 지은 걸까?
‘도련님이라면 가능할지도.’
“내 목표는 무링을 부활시키는 거야. 평화의 신 무링! 앞으로 평화의 상징은 비둘기가 아니라 무링이 되는 거지!”
심지어 취급은 비둘기와 동급이다.
평화의 신. 의미만 보면 정말로 좋아 보이는데, 그 비교 대상이 비둘기라고 하니 되게 하찮아 보였다.
“나쁘지 않네.”
“좋아요!”
하지만 이상하게 나머지 인원들의 반응이 괜찮았다.
루테스는 그냥 빨리 끝내고 가고 싶어서였고, 레피스는 이 도련님의 변덕이 얼마 안 가 끝나겠다고 생각해서였지만, 그 사실을 데이지가 알 수는 없었다.
‘내가 비정상인가?’
그렇기에 혼자만이 반대하는 이 상황이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이렇게 계속되었다가는 자신 또한 미쳐 버릴 것 같다.
그렇기에 데이지는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럼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 1차 회의, 우리가 찾을 신의 이름은 무엇인가는 ‘무링’으로 만장일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억제기가 무너진 회의는 빠르게 끝이 났고, 훗날 르윈을 제외한 세 사람은 이 일을 대충 넘긴 것을 후회하게 되지만, 그건 조금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
르윈의 첫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일주일 후.
그 기간 동안 아카데미는.
“너무 조용한데.”
놀랍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게 좋은 겁니다, 도련님.”
“아니, 그래도 아카데미 생활 초반부면 애들이 기 싸움 좀 하다가 싸움도 일어나고, 그러면서 파벌도 형성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점심시간.
아카데미 식당에서 빵을 뜯으며 르윈은 투덜거렸다.
“르윈은 소설을 너무 많이 봤어.”
“아니, 진짜로 이게 정상인데.”
라일라의 말에 르윈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그가 경험했던 몇 번의 아카데미 생활에서는 비슷한 패턴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르윈이 알지 못하던 것이 있었으니.
비슷한 또래,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모이는 아카데미였기에 초반에 충돌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저기 봐, 저기.’
‘드라이르프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드라이르프, 그리고 이상하게 존재감이 없지만, 라인하르트가 베르샤 아카데미에 들어온 것이다.
‘옆에 앉아 볼까?’
‘야, 그러다가 괜히 찍히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평소라면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던 존재들조차 최상위 포식자의 앞에서는 숨을 죽이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어중간한 고위 귀족들이 싸움을 일으키고, 파벌을 조성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동아리도 벌써 일주일째 활동을 못하고 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도망 중인 레피스였다.
르윈의 앞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소귀족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제법 변명을 잘하고 있었다.
“신의 이름을 정했으니, 신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대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본다고 했었지?”
대도서관.
그 이름을 떠올린 르윈은 입학 전 베리엘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재미있는 곳이라고 했었지?”
“데이지,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나는 되게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라일라 아가씨. 잘못된 건 저희 도련님일 뿐이니까요.”
“맞습니다. 오히려 도련님과 생각이 일치하는 게 더 위험합니다.”
“음, 음.”
“진짜 이것들은 누구 시종일까.”
늘 한결같은 시종들의 모습을 보며 르윈은 어이가 없었지만.
“뭐, 오늘은 내가 참는다.”
르윈은 관대하게 그것을 넘어가 주기로 했다.
“…….”
그 말에 데이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참는다니.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이름과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도련님?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아직 수업도 남았는데…….”
그리고 그것을 느낀 것은 데이지만이 아니었다.
하인스와 예리엘 역시 뭔가 불길한 징조를 느끼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수업은 안 빠지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수업 빠진 적 있어?”
“없죠.”
“자주 딴짓을 하시지만.”
“몰래 주무시기도 하시지만.”
빈말로도 수업 태도가 좋다고 할 순 없는 모습이었지만, 르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오늘 동아리 활동 없지?”
르윈의 말에 예리엘과 하인스의 시선이 순간 마주쳤다.
“있는데요?”
“기사 동아리는 매일 훈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곳이라.”
그 짧은 시선 교환만으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내뱉었다.
물론 전부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기사 동아리에 속한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이 없더라도 자주 동아리실에 들러 훈련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르윈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직 강함만을 추구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시절에 애용하던 곳 중 하나가 동아리에 속한 훈련장이었던 것이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르윈은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굳이 이 둘을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동아리 활동을 하며 인맥을 넓히는 것이 자신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탓이다.
“열심히 해.”
이제 입학하고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몇 주만 지나면 바로 중간 평가 기간이 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라일라를 포함한 네 사람은 학생들에게 강렬하게 기억될 것이었다.
‘그 전에 미리미리 동아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줘도 좋겠지.’
기초부터 고등까지. 전교생이 모이는 곳이 동아리였다.
그중에서도 기사 동아리는 마법 동아리와 더불어 아카데미 최대 규모인 동아리.
그곳에서 실력을 보여 준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진행하는 데 조금은 더 편할 것이다.
“라일라는?”
“나? 우리 동아리는 아직 활동을 안 한다고 들었어.”
라일라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노동 동아리는 아무런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학생회 임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같이 갈래?”
“대도서관?”
“응. 저번에 베리엘이 그랬잖아?”
던전도 존재하는 도서관.
어린아이로서, 남자로서, 인생 10회 차로서 이것을 참을 수 있는 이가 존재할까!
“갈래!”
라일라 역시 어린아이로서, 여자로서, 인생 1회 차로서 참을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사실 이쯤 되면 모든 이들이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휴.”
식사를 끝낸 데이지는 열의를 불태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아가씨, 두 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너무 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공작가의 자제들을 그런 위험한 곳에 그냥 보낼 리가 없잖습니까.”
그녀의 꾸짖는 듯한 어조에 르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라고 하던 사람 어딨을까?”
“죄송합니다.”
“데이지, 위험하면 도서관이 열려 있지 않아.”
“죄송합니다, 아가씨.”
르윈과 라일라의 말에 데이지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던전이라는 말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것을 신경 쓰지 못했던 탓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렇게 놀리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빨개진 데이지는 쉽게 볼 수 없는걸.”
베리엘의 중재에 르윈과 라일라는 투덜거리면서도 데이지를 놀리는 것을 멈추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데이지 양이 착각하신 것에는 제 탓도 있는걸요.”
간신히 살아난 데이지가 붉게 물든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히고 있을 때였다.
“공식적으로는 그냥 도서관이니까요. 던전은 학원 전설 중 하나죠.”
“…저번에는 던전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거기까지는 비공식의 영역. 전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이 더 멋진 일이지 않나요?”
아니요. 전혀 안 멋진데요.
진짜 던전이 존재하면 공식적으로 학생들에게 공지하는 게 맞지 않나요.
그런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베리엘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르윈과 라일라의 모습에 데이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도련님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동아리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세상에 나온 이후, 르윈에게 동조하는 의견이 많아지는 것에 데이지는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럼 가실까요?”
하지만 데이지의 혼란이 풀리기도 전, 베리엘을 선두로 르윈과 라일라가 대도서관으로 들어갔고.
“…….”
잠시 멈칫했지만, 데이지 역시 조용히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