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40. 누가 용사인가? (4)
“하아.”
빌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이 끝나 가지만, 겨울이 찾아오지 않은 계절.
그것을 증명하듯 아직 해가 하늘에 걸려 있었다.
“아름다웠지.”
천천히 해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이 보았던 검의 궤적을 하늘에 그려 보았다.
아름답다.
이미 여러 번 보았고, 또 경험해 보았지만 그가 본 검은 한 단계 더 발전한 상태였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졌다.
그것도 진짜 한 끗 차이로 졌다.
아예 이길 수 없었다면 이렇게 아쉽지도 않았을 텐데.
“스승님도 오셨는데.”
상대가 너무 강했다.
대진운이 조금만 좋았다면 결승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위로해 준 스승님이었으나, 빌은 알고 있었다.
그냥 실력으로 졌다.
운이 조금 좋았다고 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었으리라.
“하아.”
운이 없다? 용사의 유적이라는 기연을 얻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다.
용사의 유적이라는 것은 천운에 천운이 겹쳐도 찾기 힘든 것.
절벽이 붕괴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 천운을 손에 쥐었다.
그러면 뭔가 극적인 변화가 있어야 했는데.
결과는 이것이었다.
“괜찮아?”
“마를렌…….”
패배하고, 혼자서 궁상을 떨다가 친구가 걱정하게나 만들고.
참으로 못났다.
그런 생각에 한숨을 내쉬는 동안, 마를렌은 빌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까웠어.”
“그렇긴 했지.”
한 끗 차이였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비장의 수를 숨겨 두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사용하여 승리하려 했으나, 상대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비장의 수를 숨겨 두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괜찮았으려나?”
“그건 아니지 않을까?”
“나 위로해 주려던 거 아니었어?”
“그렇지만 아깝긴 해도, 실력 차이가 난 건 분명하잖아.”
아프다. 너무 아프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팩트라서 더 아프다!
“후훗.”
빌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끙끙거리는 것을 보며, 마를렌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 달리 빌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어. 상대가 안 좋았다. 운이 안 좋았다. 이 정도면 나름 성과를 내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패배한 것이 분해 울면서도, 상대의 강함을 인정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동시에 미래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하인스 선배니까.”
따스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를렌의 모습에 빌은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인간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어. 그런데도 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한 것도 알고 있고.”
늘 먼저 기사 동아리에 나와서 검을 휘두르고 있고, 가장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예리엘과 하인스였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로는 누군가가 뒤에서 칼 들고 쫓아오기라도 하는 걸까 의심이 들 정도니까.”
그것이 정답이었으나, 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천성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는 져도 억울하지 않아.”
“진짜?”
“…억울하기는 한데? 그래도 인정할 수 있달까?”
정말 그렇냐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마를렌의 모습에 빌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하듯 소리쳤다.
“그래, 그래.”
“진짜…….”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마를렌을 보며 빌은 기운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진짜 못 이기겠어.’
용사의 동료로 이름 높은 마를렌 가문의 후예다.
심지어 타국이라고 하나 제국조차 무시할 수 없는 아리타 왕국의 후작 가문이었다.
뭔가 더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은데, 자신 같은 하급 귀족은 물론 평민에게도 똑같이 대하는 사람이 마를렌이었다.
‘애초에 먼 타국까지 온 이유가 장학금을 잘 줘서라니.’
얘 사실 귀족 아닌 거 아닐까.
후작 가문의 영애님이 장학금을 많이 준다고 머나먼 타국에서 생활하는 게 말이 되는가.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했으나, 마를렌이라는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마를렌다운 것이었으니까.
마를렌 렐 아렐리드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걱정하지 마! 하인스 선배님은 선배님이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데?”
“적어도 1년 정도는 우승을 노려 볼 수 있어!”
“그 사람 졸업 전까지 우승은 꿈도 꾸지 말라고?”
가끔 이렇게 웃으면서 하는 말들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오지만, 신기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응?”
어느새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가져다 대는 마를렌의 행동에 빌이 당황한다.
“저, 저기, 마를렌?”
건국제 행사 때문에 조금 피곤했던 것일까.
어느새 작게 숨을 내쉬며 잠든 마를렌의 모습을 보고, 빌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따끔.
“……?”
그리고 빌 또한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
후.
입바람 한 번으로 사람을 잠재운 르윈을 보며, 엘리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정확하네.”
고작 숨결로 발사하는 바람총에 아카데미의 학생 하나가 그대로 쓰러졌다.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 건국제 16강에 오른 인재가 말이다.
“용사를 하려면 이 정도 스킬은 가지고 있어야지.”
“…용사가 바람총도 불어?”
르윈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더 이상 용사의 이미지가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닥 밑에 바닥이 존재하다니!’
후후! 독침을 발사해서 마족을 쓰러트리는 용사라니.
“효과가 좋잖아.”
“…효과가 좋으면 다 되는구나.”
“생각해 봐. 마족이 점령한 지역이나 마대륙 같은 곳에 잠입을 했는데, 뭘 들고 싸울 거야.”
활은 크기가 크고, 화살 또한 필요하기에 잠입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법을 쓸 수도 없는 것이, 아무리 은밀하게 마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들키는 것이 정상이다.
기껏해야 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암기류 정도인데.
단검과 같은 종류는 역시 수량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바늘 같은 것에 독 발라 놓고 사용하는 게 최선이었다고.”
잠입 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식량이다.
괜히 쓸데없는 무기에 공간을 할애할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공간 마법이 걸린 마법 주머니가 개발되고, 용량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바람총이 잘 사용되었다는 게 르윈의 설명이었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엘리는 그러한 것을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는 것!
“애들한테는 절대 알려 주지 마.”
엘리 본인조차 어이가 없을 정도인데, 용사의 이야기를 보고 꿈을 꾸고 있는 예리엘이나 하인스가 들었다면 얼마나 충격이 클 텐가!
“알려 줄 수도 없어.”
“그것참, 다행이네!”
억제력이니, 인과율이니 뭐라고 말을 하는데.
사실 다 세계 평화를 위한 세상의 노력이 아닐까.
“시끄럽고, 애들 옮기는 것이나 좀 도와줘.”
“에휴! 나 같은 고급 인력을 이런 일에 쓰다니.”
딱!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빌과 마를렌의 몸이 허공에 뜬다.
맨드레이크였기에 마력량 하나만큼은 타고난 엘리였으나.
세계수의 비공식 부인(예정)이 된 이후, 엘프의 숲에서 보내 주는 물품들로 그 마력량이 더욱더 상승한 상태였다.
이제는 고급 마법을 펑펑 사용해도 마력이 남아돌 정도.
“평소라면 혼자 했겠는데, 건국제라서 더 조심을 해야 해서.”
“그럼 조용히 있어야지. 이런 날에 납치를 저지르다니.”
“내가 애들 데려가서 돈 뜯어내냐. 다~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
“자기 대신 용사 시키려고 하는 거면서.”
“베르샤 아카데미 학생들 1지망이 용사다. 다 용사 하고 싶어서 들어오는 애들인데.”
그런 용사가 만든 용사의 유적에 보내 준다면 오히려 감사의 인사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인스턴트 던전이면서.”
“그래도 용사의 유적이죠? 챙길 것도 많죠?”
심지어 이번에는 전생에 아끼던 검도 하나 박아 놨다.
“무려 드워프 최고 장인이 만들었던 물건이라고.”
“잘났다.”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이나, 엘리는 그 검을 들면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개고생하겠지.”
“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야.”
라떼는 이렇게 풋풋한 연애질이 아니라, 세상 구하겠다고 개고생을 했다.
그렇게 말하는 르윈을 보며, 엘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도 연애하다가 뒤통수 맞았으면서.”
“…….”
“심지어 옆에 애는 그 후손이잖아.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
“…당연하지. 내가 그때의 일을 아직 못 잊었을 것 같아? 그저 손발이 덜덜 떨리고, 가끔 화가 나고, 자다가 눈물이 울컥 새어 나올 때가 있을 뿐이지만.”
“…저기요? 내가 미안하니까 그만하지 않을래? 좀 많이 부담스러운데요?”
그렇게 두 사람을 납치한 후, 무사히 자신이 만든 뒷산 던전에 던져 놓은 르윈은 미리 준비한 물건을 꺼내 바닥에 뿌리기 시작했다.
“사악한 흑마법사의 잔재까지 뿌리면 완벽한 사건 완성!”
“베아트리체가 알면 오열할 소리 하고 있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비록 사기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멸종 취급을 받는 흑마법사다.
창조의 교단을 비롯한 여러 교단의 이단 심문관들조차 그 차이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터.
그러니 대충 흑마법사의 흔적이 있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마신을 떠올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마족을 끌어들일 미끼도 좀 뿌리면 되겠지.”
빌이 데르덴 블레이드를 비롯한 용사의 유산을 얻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괜히 마족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언젠가는 경험할 일이었으나, 아카데미 대회조차 우승하지 못하는 실력으로는 마족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할 터.
그러니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미래를 위해 성장해야 할 학생들을 대신하여 마족들의 시선을 끌어 줄 미끼가.
“그게 누군데?”
“당연히 창조의 교단이지.”
원래 창조의 교단은 그러라고 존재하는 곳이니까!
“내가 옛 성자나 성녀들하고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거든. 덕분에 성자나 성녀들이 쓰던 물건도 잘 챙겨 두었지.”
“잘 챙겨 둔 거 맞지? 빼앗은 거 아니지?”
용사의 강요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애장품을 용사에게 헌납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기에, 엘리는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
“합의하러 왔습니다!”
“너는 합의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하는 거냐?”
으르렁거리는 성녀를 보며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의.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을 말하는 거지.”
“나는 의견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만!”
“괜찮아요. 창조의 여신님하고 다 기도로 합의 봤어요.”
“여신님께서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성녀의 모습에 르윈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번 성녀님은 성격이 참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번 성녀님은 성격이 참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생각을 그대로 입으로 내뱉지 마라, 망할 놈아!”
“세상에, 성녀라는 사람이 저렇게 험한 말을.”
“다 누구 때문인데?”
아무래도 라헬이 강림을 많이 한 신체라서 그런가. 성격이 옮은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르윈은 안타까움을 담아 성녀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런데, 교단 인원 좀 배치해 주세요.”
“여신님, 저 불경한 놈을 심판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르윈의 말을 무시한 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성녀였지만, 안타깝게도 여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 들어주면 탄핵당할 텐데. 무려 용사의 유적과 옛 성녀의 유적을 발견했는데.”
“왜, 왜, 왜? 교단에서 사람을 구해 파견해도 못 구하는 걸 왜 너만 찾아내는 거냐?”
“신앙심 차이?”
“나를 우롱하는 거냐!”
“아니면 믿는 신 차이?”
“여신님을 모욕하지 마라!”
“어허! 그 여신이 인정한 우리 무링교를 무시하는 건가요?”
“…으앙!”
결국 오늘도 눈물을 쏟아 내는 성녀를 보며 르윈은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무링교/성녀 자리/공개 모집 중.”
“…….”
“오실래요?”
“인원… 보내 줄 테니까… 제발 꺼져 줘…….”
그렇게 성녀와 합의를 본 르윈은 교단의 인원과 함께 용사의 유적 몇 개를 추가로 발굴했고.
바벨리안 제국의 건국제 당일, 제국에 몇 명의 마족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