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40. 누가 용사인가? (7)
“승자, 베르텐 빌텐버르!”
승자가 호명되는 순간, 수많은 군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본래 강자들의 싸움이란 일격에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결승전이라는 무대는 생각보다 격차가 큰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여야 함에도 맥이 빠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수백 합이 넘어가는 싸움.
거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승자가 누군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치열했다.
서로의 마력이 바닥나고 순수한 육체의 대결이 되는 순간이라니.
검술전은 마법전에 비해 화려함이 떨어지는데, 왜 건국제에서 검술전이 더 인기가 있는지 물어본다면 모두가 이 경기를 보라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대결이었다.
“후.”
승자인 베르텐은 간신히 일어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 경기는 많은 것들이 달린 경기였다.
하나는 건국제 대회 우승이라는 명예가 걸린 대회였고.
또 다른 하나는 신탁 이후 급격하게 성장하는 베르샤 아카데미와 황실 아카데미 사이의 경쟁이었으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벌써 지면 쪽팔릴 뻔했는데.’
지는 순간 몇 년은 지인들에게 놀림을 받았을 것이라고 베르텐은 확신하고 있었다.
“괜찮냐, 하인스?”
건국제 우승자, 베르텐 빌텐버르.
그와 하인스는 아는 사이였다.
아니, 제법 친한 사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은 황실 아카데미와 베르샤 아카데미로 나누어진 상태지만, 원래는 드라이르프 기사단에서 함께 수련을 받았던 선후배였기 때문이었다.
“많이 성장했네.”
웃으며 손을 내미는 베르텐이었으나,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회에서 몇몇 동기들이 하인스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결승전에서 자신과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년이면 질 수도.’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자신은 올해 졸업하니까.
졸업한 이후 싸우지 않으면 베르텐은 영원히 하인스를 이길 수 있었다.
‘선배로서 체면을 지켜야지.’
솔직히 말해 베르텐은 하인스가 무서웠다.
하인스보다 나이도 많고, 또 하인스가 드라이르프 가문에 들어왔을 때 이미 수련을 받고 있던 사람이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치열한 접전 끝에 아쉽게 졌다.
‘나였으면 만족했을 텐데.’
올해면 졸업하는 자신과 달리 하인스는 몇 년 더 아카데미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었다면 내년부터는 내가 다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패배를 받아들였을 텐데.
“그만 울어라.”
하인스는 울고 있었다.
패배한 것이 분하다는 듯 서럽게 울고 있었다.
솔직히 무섭다.
패배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를 붙일 수 있는데, 저렇게 서럽게 울고 있다는 것이.
분하다는 것이다.
남들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분한 것이다.
‘저런 것들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데.’
지금도 턱 끝까지 쫓아왔으면서 더 성장할 징조를 보이다니.
독하다, 독해.
데이지도 그렇고, 예리엘도 그렇고.
드라이르프의 직계에 직속으로 붙은 이들이 다 한가락 하지만, 독기만큼은 삼남에게 붙은 이들이 가장 독했다.
‘르윈 님은 안 그러는 것 같은데.’
좋게 말하면 가문 내에서 가장 느긋한 분이시고. 나쁘게 말하면 가장 나태한 사람으로 소문이 난 르윈이다.
실제로 베르샤 아카데미에 신탁이 내려진 이후에 재학생 가문에서 ‘혹시 우리 애가?’라는 생각을 하며 기대하고.
동시에 재학생들도 ‘혹시 내가?’라는 생각을 하며 자극을 받아 훈련한다고 들었으나.
우리 삼남께서는 중등 교육이 끝나 가는 이 시점에도 건국제에 참여하지도 않으셨을 정도니까.
‘그런 도련님 밑에서 이렇게 독한 애들이 모일 줄이야.’
오히려 정반대이기에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인가.
베르텐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하인스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
서럽다. 세상이 밉다.
“괜찮아. 2등도 잘한 거야. 괜찮아. 2등도 잘한 거야.”
옆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이를 하인스는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아쉽게 우승을 놓친 자신을 위로해 주는 모습으로 보이는 상황.
그러나 하인스는 알고 있었다.
‘명치 한 대만 치고 싶다.’
저것, 놀리는 것이다.
상대도 그걸 숨기지 않는다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다.
당연할 것이다.
2등도 괜찮다고 말하는 장본인, 예리엘의 목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메달이 걸려 있었으니까.
“…….”
하인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무려 제국의 황자가 걸어 준 ‘은빛’으로 빛나는 목걸이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
1등의 상징을 지닌 이가 2등의 상징을 지닌 이에게 2등도 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도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 과거와 그리 변하지 않은 가슴을 있는 힘껏 내밀면서 말이다.
‘지는 살았다, 이거지?’
하인스가 우는 모습을 보며, 베르텐은 그것이 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었다.
정말 한 끗 차이로 졌으니까.
정말 분했으니까.
그러나 베르텐의 예상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순수하게 승리를 하지 못했다는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자기 실력이 부족했다고 느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뒷일이 무서워서 그랬을 뿐이다!
가문에서는 가장 느긋하고 나태하다고 알려졌으나, 그 안에 숨겨진 본성을 알고 있기에 우승하지 못했을 경우 알아서 하라는 협박이 떠올라 서러운 눈물이 나왔던 것이다!
“그래도 건국제 준우승인데, 설마 도련님이 화를 내겠어?”
“안 내겠냐?”
“내겠지?”
킥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참으로 열받는다.
왜 이런 녀석이 동아리 내에서 인기가 넘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얼굴인가? 역시 얼굴 때문인가?’
무려 그 도련님이 얼굴 보고 뽑았다고 공인한 외모다.
하인스 본인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자신은 저렇게 얄밉지는 않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해낼 줄 알았어, 언니!”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베르샤 아카데미에서 이곳까지 응원을 해 주러 온 후배들이 환호성을 내뱉으며 예리엘을 감싸기 시작했다.
“선배, 아쉬웠어요.”
“저, 정말 감동했어요!”
“그래도 내년에는 우승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내년에는 지지 않을 겁니다.”
하인스 또한 마찬가지.
아쉽게 패배한 그를 위로하는 이도 있고, 이전에 하인스에게 패배했던 이들 중에는 복수를 다짐하는 이도 있었으나.
‘뒤통수 뚫어지겠다.’
그중 진심으로 복수를 하겠다는 듯 노려보는 이도 있었기에 뒤통수가 뚫릴 지경이었다.
베르샤 아카데미 대표로 참가한 본선에서 32강에 만나게 된 상대이자, 북방의 늑대라고 불리는 데르칸 가문의 쿠셀렌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진짜 부담스럽네…….’
차라리 그냥 패배하였기에 북방 특유의 승부욕이 발휘된 것이라면 억울하지도 않다.
그러나 순수한 승부욕만으로 저런 원한을 보이는 것이 아닌 걸 알기에 하인스는 그 시선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선배를 이기면, 예리엘 선배에게 고백하겠습니다.’
32강전 시작 전, 대기실에서 쿠셀렌이 한 말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신개념 정신 공격인가 싶을 정도였다.
왜 나한테 그걸 말하는데?
아니, 그 이전에 결승전도 아니고 32강에서, 나 하나 이겼다고 고백하겠다고 선언하는 건데?
‘그냥 고백하면 되잖아!’
그냥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후작가가 저러면 하인스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져 줄 수도 없는 일.
그건 기사로서 불명예스러운 일이기도 했고.
고작 32강에서 후배에게 패배했다가는 그 도련님이 무슨 일을 벌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인스는 이겼다.
북방의 검은 역시나 매서웠으나, 그 근본은 기마 상태를 고려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두 발을 땅에 디딘 상태로는 제 실력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 제법 크게 작용하기도 했고.
후배에게 패배할 정도로 하인스는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승리 후, 하인스는 쿠셀렌의 원망스러운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본의 아니게 쿠셀렌의 사랑을 가로막는 벽이 된 기분이다.
예리엘의 연애 따위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왜 저것을 좋아하는 놈들은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이쯤 되면 예리엘이 자신 몰래 고백하려면 하인스부터 꺾고 오라고 말한 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하인스뿐만이 아니었다.
‘이것들은 왜 축하한다면서 날 견제하고 있지?’
예리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하인스가 가장 큰 벽이라면, 반대로 하인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예리엘이 가장 큰 벽이었다.
두 사람이 들었다면 어처구니가 없는 말일 터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제삼자들이 보기에는 아주 옛날부터 가족같이 지내는 선남선녀가 매일같이 붙어 다니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축하와 위로를 빙자한 견제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
심지어 견제를 날리는 대상들의 신분이 상상 이상이었고.
또 귀족답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축하와 위로를 통해 전달하고 있기에 두 사람은 웃으면서 서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네요.”
그때 사람들을 가르며 한 사람이 다가왔다.
여기 있는 이들의 신분을 고려하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중 결승전이 끝난 이후 자신들을 찾으려는 사람은 몇 없었다.
“누구세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르윈이었으나, 상대의 목소리는 여자였다.
그렇기에 예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온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 얼굴이 제법 익숙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피스 선배님?”
“아직 선배라고 불러 주네요.”
방긋 웃으며 대답한 이는 레피스였다.
유약했던 아카데미 시절과 다르게 후작가 자제가 있는 곳에서도 당당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퍽이나 어색했으나, 그녀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제는 당연한 일이었다.
후작가 자제가 아닌 후작 본인이 오더라도 기가 죽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나의 종교의 수장으로서 그녀 또한 제법 강한 권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이 레피스 원드?”
“그 신흥 종교 수장?”
“우리 아카데미 선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말년에 제법 화려한 아카데미 생활을 보냈으나, 일반 학생들은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기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그 전설의 학생회장 데일드와 마찬가지로 아카데미에 전설로 남아 있는 존재!
물론 그렇게 말하기에는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현재진행형으로 이상한 전설이 만들어지는 곳이 베르샤 아카데미였기에 학생들은 다들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었다.
“선배님이 이곳에는 왜……?”
“그야 우승을 축하드리기 위해서 왔죠.”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직도 무링교 동아리 소속인 르윈과 데이지였고, 그들과 제법 오랜 시간 동아리 활동을 해 온 사람이 레피스였으니까.
당연히 예리엘과 하인스도 그녀와 자주 만난 편이었고.
아주 친한 사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사를 축하할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그러나 아카데미의 선배이자, 작은 시골 남작가의 레피스라면 모를까.
우연히 만난 것도 아니고, 한 종교의 수장이 된 레피스가 직접 이렇게 찾아올 이유까지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전해 드릴 말도 있고요.”
그런 예리엘의 예상이 맞았다는 듯, 레피스는 방긋 웃으며 그녀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그 간격에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예리엘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뒷걸음질을 쳤으나.
레피스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발자국을 더 가까이 다가오며 예리엘과 거리를 좁혔다.
“이렇게 훌륭한 실력을 보여 준 후배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아,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빠르게 거절 의사를 말하는 예리엘의 입을 레피스의 손이 덮쳤다.
그대로 예리엘의 입을 틀어막은 레피스는 웃으며 말했다.
“무링교 용사 자리가 생겼는데, 좀 많이 뽑거든요.”
“읍읍!”
“해 주실 거죠?”
두 눈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레피스를 보며, 예리엘은 이것이 누구의 사주인지 알 수 있었다.
‘도련님!’
우승 못하면 각오하라고 했지, 우승해도 각오하라고는 안 했으면서!
이미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하인스를 보며 깊은 절망에 빠진 예리엘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