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5)
25화 6. 인생 10회 차는 탐험을 한다 (2)
“하.”
무너져 내린 벽을 바라보며 르윈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되네?”
익숙한 흔적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시동어를 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여기에도 있었구나?”
르윈은 이곳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내 보물 창고.”
르윈 디 드라이르프 이전, 그를 가리켰던 9개의 이름,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하나로 엮는 단 하나의 명칭.
용사.
이곳은 그 용사가 후대의 용사를 위해 준비해 둔 안배였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 중 지금의 자신보다는 미래의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될 물건들.
즉시 전력감은 마왕과의 싸움에서 써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무구나 아티팩트도 제법 많았다.
또한 지금 사용하는 것보다는 미래의 자신이 성장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물건들도 제법 있었다.
용사로 활동하던 시절, 그런 것들을 모으고 모아 대륙 여러 곳에 숨겨 두었고, 이곳 또한 그중 하나였다.
“상상도 못했는데.”
시간이 제법 많이 지나기는 했다.
작은 소국이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이 되었고, 그 여파로 나라의 경계와 지형이 조금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은 보물 창고를 여기서 찾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뭐, 할 일이 줄어들었으니 좋다고 봐야 하나?”
인근에 창고가 있는 것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가 베르샤 아카데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창고의 존재였으니까.
방학 기간 동안 여행이라면서 싸돌아다닐 계획을 세웠는데, 이런 식으로 할 일을 줄여 준다면 르윈으로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음, 이다음은.”
하지만 용사의 보물 창고는 쉽게 열리는 곳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의 도굴을 대비해 전생의 르윈이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며 만든 곳이었다.
“여긴가?”
툭. 툭. 툭.
벽을 치며 걷던 르윈은 빈 소리가 들리는 벽돌을 꾹 눌러 보았다.
그러자 벽이 흔들리고, 그곳에 새로운 석판 하나가 튀어나왔다.
[여신, 라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하시오.>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이 또한 르윈이 만든 질문 중 하나였다.
“음.”
수많은 질문 중에서도 난도가 있는 문제였다.
‘언제쯤 만들었던 거지?’
답이 정확하지 않았다.
여신에 대한 생각은 르윈의 인생 횟수에 따라 변하였기 때문이다.
처음 용사가 되었을 때, 르윈은 여신을 찬양했다.
당시 고아였고, 고아였던 그를 키워 준 사람은 성당의 수녀였었다.
신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던 시절.
모든 신이 모신다는 최고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에 르윈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계속되는 죽음으로 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는,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는 푸념을 자주 했었다.
그리고.
“최근에 만들어진 거면 대충 이런 대답일 텐데.”
비석에 손바닥을 댄 르윈은 마력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그만 좀 부려 먹어라, 망할 여신아. 양심은 있냐?”
대놓고 신성 모독을 외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틀렸네.”
적어도 인생 8~9회 차에 만들었던 곳은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르윈은 바로 다음 대답을 말했다.
“참 좋은데, 이제 다른 용사 좀 뽑았으면 좋겠다.”
[확인되었습니다.>석판이 빛나며 그런 글자가 새겨지더니 곧 석판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6회 차나 7회 차쯤 되었던 시기였나 보네.”
그때의 내가 뭘 남겼더라.
잠깐 아주 먼 옛날 생각을 떠올렸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물건은 없었다.
금은보화와 그 시절에 조금 이름을 날렸던 무기와 아티팩트, 그리고 대량의 마력석과 영약을 만들기 위한 재료.
그리고.
“이곳은 먼 옛날, 용사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장소! 자격이 없는 자는 이곳에서 썩 나가거라!”
수문장으로 둔, 정령 하나.
“이런 건 둔 기억이 없는데?”
다 맞는데, 마지막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르윈은 차게 식은 눈으로 자신에게 말을 건 대상을 노려보았다.
“뭐, 뭐냐. 싸우려고? 내가 몇천 년을 살았는데, 너 같은 꼬맹이 하나 못 이길 것 같아?”
주먹을 꽉 움켜쥐고 내뻗는 듯한 정령의 모습은 퍽 귀여웠으나.
“…….”
그 모습에서 르윈은 이질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뭐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여자아이.
땅의 기운이 짙게 느껴지는 마력.
정령과 계약도 여러 차례 해 보았던 르윈에게 익숙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너, 뭐냐?”
정령이 아니다.
르윈의 감각이 도출한 결과였다.
정령과 비슷하지만, 정령이 아닌 존재.
“나?”
르윈의 물음에 작은 소녀는 숨길 것이 없다는 듯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엘리. 수많은 세월을 넘어, 영물이 된 맨드레이크다!”
***
맨드레이크.
평범한 식물처럼 보이지만 땅 밑의 뿌리 부분은 사람의 형상을 한 식물로, 수많은 마법사와 연금술사가 탐내는 희귀한 영초였다.
그리고 르윈의 기억 속에는.
‘내가 심어 둔 맨드레이크가 몇 개 있기는 했었지?’
맨드레이크를 심어 둔 것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영약 대용이었지.’
시작은 기껏 숨겨 둔 영약들이 썩어 버린 것을 발견했던 일이었다.
분명 옛 소설이나 신화에서는 수천 년 전 숨겨진 던전에서 전설의 영약이 튀어나왔었는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아무리 전설의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결국은 영약 또한 입으로 먹어야 하는 음식일 뿐이었다.
오래되면 상하고, 망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
그렇기에 르윈은 영약 대신 영약의 재료인 맨드레이크와 마력석 등을 창고에 심어 두었다.
‘그게 이렇게 되었다고?’
특정 조건을 달성한 동물이나 식물이 영물이 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맨드레이크는 식물 중에서도 전설로 취급되는 종류인 만큼 영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맞았다.
“처음 있는 일인데?”
하지만 말 그대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일 뿐이었다.
인생 10회 차를 산 르윈조차도 처음 보았을 정도로, 희미한 가능성.
“하, 누가 보면 인생 몇 번 살았던 것처럼 말하네.”
르윈의 말에 맨드레이크, 아니 엘리는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뭐,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나가라.”
가볍게 손을 휘젓는 엘리였지만, 르윈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왜?”
“하, 아까도 말했지만, 여긴 먼 옛날 용사님이 만든 곳이라니까? 미래의 용사님을 위한 곳,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든 보물 창고!”
“그건 어떻게 아는데.”
“뭐, 대충 애들이 말해 줬으니까. 그리고 영물이 되기 이전의 기억도 조금은 남아 있고.”
“어떤 기억인데?”
“미래를 위해, 소중하게 땅속에 나를 심는 용사님의 손길이랄까. 솔직히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애들이라고 말한 것은?”
“땅의 정령.”
“그래?”
약속은 지켜졌구나.
매번 뜯어 가는 마력석에 비해 결과물이 안 보여서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정령들의 모습에 르윈은 정령왕들에게 지불한 마력석이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뭔데?”
또 질문이 있다는 것이 귀찮았던 것일까.
인상을 찌푸린 엘리의 모습에도 르윈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여기 만든 게 나다.”
“뭐?”
“내가 용사라고.”
“…….”
조용히 입을 다문 엘리를 보며, 르윈은 긴장했다.
‘알아들으려나?’
세상이 창조된 이후, 인류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9명의 용사.
그 9명의 자아가 한 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창조의 여신과 그녀의 휘하에 있는 신들, 세계를 지탱한다고 알려진 8개의 정령왕, 그리고 현세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최강의 존재, 드래곤만이 기억을 할 수 있을 뿐.
그렇기에 르윈은 영물 또한 그 카테고리에 속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여길 네가 만들었다고?”
르윈의 기대에 부응하듯, 엘리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미친놈 보듯 르윈을 바라보았다.
“잊지 않네?”
“아니, 몇 초 전에 말한 걸 잊어버릴 정도로 내가 멍청해 보여? 식물이라고 차별하는 거냐!”
날카롭게 소리치는 목소리엔 많은 양의 마력이 담겨 있었다.
‘맨드레이크의 뿌리는 사람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울음소리를 내뱉는다고 했던가?’
영물이기에 그 힘을 조절할 수 있는 것 같았으나, 그 영향력은 남아 있는 듯했다.
“어떡하지?”
“뭐가.”
“아까 말했잖아. 여기 내가 만들었다고.”
“미친 소리 그만하고.”
“내가 너 잡아먹으려고 여기 묻어 놨었고.”
“진짜 미쳤구나!”
대놓고 잡아먹겠다는 소리에 엘리는 자신의 몸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맨드레이크 살려! 여기 변태 꼬마가 잡아먹는대!”
“야,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왜 사람을 변태로 몰아가. 그냥 연금술사 레시피대로 강판에 갈아서 즙으로 만든 다음 마시려고 했을 뿐인데.”
“그게 더 잔인해!”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하냐고 말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르윈이 들은 맨드레이크 섭취 방법인 것을!
“저, 저 눈은 진심이야.”
르윈의 눈을 바라보며 엘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의 정조를, 아니 목숨을 노리는 것이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자아를 가진 이후부터 자신에게 여러 지식을 알려 주었던 정령의 말이었다.
어떤 의미로 자신의 부모와 같았던 이였기에 엘리는 그녀의 말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일단, 나도 살아야지.’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고 했지, 자신이 갈아 만든 맨드레이크가 되더라도 가만히 있으라고는 안 했다.
이건 자신의 생명이 달린 문제였다.
그저 나를 지킬 뿐이다.
‘그냥 흠씬 두들겨 패서 내쫓으면 되겠지.’
마음을 다잡자, 자연스럽게 마력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곳은 기묘할 정도로 마력이 가득한 공간.
평범한 맨드레이크였던 엘리가 영물이 될 수 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썩 꺼져, 변태야!”
그녀가 바라면, 마력은 그것을 이루어 줬다.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엘리의 부모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이번에도 마력이 그녀의 뜻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
대기에 있는 마력도, 땅속에 있는 마력도, 심지어 곳곳에 숨겨져 있는 마력석에 깃든 마력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왜 이러지?”
“왜 그러긴.”
당황한 엘리의 시야에 사악한 웃음이 들어왔다.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을 한 꼬마.
그 꼬마가 매우 사악한 표정으로 웃으며 손을 휘젓자.
“어, 어?”
늘 그녀에게 친절했던 주변 공간의 마력이 그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이야? 왜, 여기 마력이!”
당황한 듯 소리치는 엘리였지만, 르윈의 손에 휘감기는 마력의 양은 점점 더 늘어날 뿐이었다.
“왜긴. 내가 아까 말했잖아.”
르윈의 마력량은 아직 적다.
하지만 숨쉬기 운동을 통해 만들어 둔 육체는 그 누구보다 마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이 된다.
그리고.
“여기 내가 만들었다고.”
이 공간에 있는 마력은 숨쉬기 운동을 통해 한 번 가공된 적이 있는 마력들이었다.
그것을 마력석에 담거나, 공간에 새김으로써 르윈은 자신의 보물 창고를 지키고 있었다.
“거, 거짓말?”
비록 육체의 주인은 다르지만, 그것을 다루는 영혼은 같았다.
그것을 알기에 이곳의 마력들은 자연스럽게 본래 주인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다.
“그래서, 아까 뭐라고 했지? 변태? 변태?”
주인의 분노에 답하듯 마력이 거칠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을 진짜로 갈아 버릴 듯한 마력의 폭풍에 엘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사, 살려 주세요.”
“안 죽여.”
그 애절한 한마디가 르윈의 양심에 닿았던 것일까.
르윈의 말에 엘리는 감동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말?”
“그냥 좀만 갈아서 즙으로 만들 뿐이야.”
“그럼 죽는다고!”
이어지는 르윈의 말에 울상을 지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