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6)
26화 6. 인생 10회 차는 탐험을 한다 (3)
“더럽혀졌어…….”
“누가 들으면 진짜 오해한다.”
“하지만 사실인걸!”
르윈은 차게 식은 눈으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마력의 폭풍을 피해 이곳저곳을 뒹굴었던 탓일까.
온몸이 흙먼지로 더럽혀져 있기는 했다.
“그냥 갈아 줄까?”
“흙 묻은 건 씻으면 되지!”
살벌한 말 한마디에 언제 훌쩍였냐는 듯 엘리는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흙먼지 좀 묻으면 어떤가.
살아만 있으면 되는 것을.
“그런데, 진짜 용사님 맞아?”
그렇게 눈물을 닦은 엘리는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용사.
땅속 깊은 곳에 박혀 있던 맨드레이크도 용사는 알고 있다.
뿌리로는 열심히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잎사귀로는 열심히 마력을 빨아들이던 시절.
자아가 생겼을 뿐 아직 움직이지 못하던 그녀의 곁에는 늘 정령들이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이라고 안 했는데!’
정령들이 말하던 용사는 늘 온화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엘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정령들은 용사를 표현할 때, 단 하나의 표현만을 사용했다.
‘호구였어!’
여신의 호구.
정령들은 용사를 그렇게 표현했다.
‘정령이 말하는 호구가 이런 사람이라고?’
정령이 어떤 존재인가?
태생이 자연의 마력이 모인 자연 그 자체인 존재였다.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정령을 볼 수 없었다.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이들 중에서도 아주 소수.
흔히 정령 친화력이 있다는 사람만이 정령을 볼 수 있었고, 그중에서도 아주 소수만이 정령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태생이 관종인 정령들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볼 수 있는 이들은 소수였다.
그렇기에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을 위해 그 누구보다 헌신하는 이들이 정령이라는 존재였다.
한마디로, 호구 중의 호구.
그리고 그런 호구조차 인정하는 존재가 바로 용사였다.
“이젠 아닌데?”
하지만 르윈은 당당했다.
호구였던 시절?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엘리가 맨드레이크로 땅속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있는 사이에 용사는 용사라는 직업을 버렸다.
“왜, 왜?”
“나도 내 인생 좀 살아야지.”
세상을 아홉 번이나 구했다.
즉, 르윈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아홉 번의 기회를 인류에게 준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대비를 안 했으면 그냥 자연사가 아닐까?”
“어.”
제법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눈앞의 이 인간이 정말로 용사라면, 아홉 번의 인생을 세상을 위해 죽은 이가, 자기 인생 좀 살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너한테도 그게 좋을 텐데.”
“나한테도?”
“내가 여기에 널 심어 둔 이유가 뭐였는데.”
르윈의 말에 엘리는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맨드레이크를 동굴에 키우는 이유.’
“관상용?”
“이런 지하에?”
“그럼 문지기?”
“골렘을 놔두고 굳이?”
“어, 그럼.”
엘리는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지하에 뭐가 있을까.
‘저기에 마력석이었던 돌들이 있고, 금이나 보석이 있고, 또 무기도 있고.’
엘리의 머릿속에 정령들의 말 한마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곳은 용사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그렇기에 자격이 있는 이가 찾아올 때까지, 자신들이 지켜야 한다고.
“설마.”
엘리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모든 것을 조합한 결과 도달한 진실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잡아먹으려고?”
“정답!”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르윈의 모습은 엘리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왜, 왜?”
“예로부터 맨드레이크는 복용자의 마력을 증진해 주는 영초로 유명하잖아. 그런 영초를 일부러 가져와서 심은 이유가 뭐겠어?”
“…….”
다 강해지기 위해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용사는 강해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엘리는 빠르게 자신의 살길을 도모했다.
“여신도 양심이 있으면, 용사를 열 번이나 시키겠어!”
“그렇지.”
엘리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긴 시간을 땅속에 살았던 맨드레이크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과연 여신이 모를까.
‘모를 수 있을지도.’
아니면 신이라서 양심이 없다든가.
“…….”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려면, 손에 들고 있는 패가 많아야 했다.
“왜, 왜 그렇게 보는 건데?”
“음.”
“뭔지 모르겠지만, 고민하지 마!”
캬아악!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기를 느낀 엘리가 고양이처럼 울부짖었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
인생, 아니 식생 천 년 이상을 땅속에 처박혀 영양분만 흡수하며 살았다.
정령들의 도움과 주변의 풍부한 마력 덕분에 영물의 반열에 든 지 몇 년이 되지 않았는데.
‘살고 싶어!’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
세상이고 뭐고, 일단 나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는 눈을 부릅뜨고 르윈을 바라보았다.
“왜.”
“살려 주세요…….”
“…….”
“살고 싶어요!”
용사든 아니든, 일단 상대는 자신보다 강했다.
‘분명 마력량이나 움직임을 보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손쉽게 제압당했다.
주변 마력을 이용했다고 하지만, 마력에 민감한 맨드레이크이기에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상대는 그냥 강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애원했다.
“이제 용사 아니라니까?”
그 애원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던 것일까.
“그러니까 굳이 널 잡아먹을 이유는 없어.”
르윈은 울먹이며 매달리는 엘리를 치우며 살려 주겠다고 말하였다.
“뭐, 맨드레이크가 없다고 해도 남겨 둔 마력석이 있으니까.”
“어…….”
엘리의 시선이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푸른빛의 돌멩이, 한때 마력석이었던 것이 존재했다.
‘그가 내가 다 빨아 먹었는데.’
영초인 맨드레이크라고 하더라도 영물이 되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다.
맨드레이크 개체 자체가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 하고, 좋은 환경 조건을 타고나야 한다.
그뿐인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며, 그 긴 시간 동안 인간들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운까지 필요했다.
재능, 환경, 시간, 운.
모든 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력이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사람과 말을 주고받는 것도,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다 마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
그리고 그 마력을, 엘리는 르윈이 숨겨 두었던 마력석에서 얻었다.
“마탑에서 뜯어낸 최상급 마력석들이니까. 그것만 잘 이용해도 빠르게 마력을 모을 수 있어.”
그러니 네가 갈릴 일은 없을 거라는 르윈의 말에 엘리의 눈동자는 더욱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도망칠까?’
마력석이 있기에 갈릴 일이 없다면, 그 마력석이 없다면 갈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여긴 좀 오래된 곳 같은데. 요즘도 이런 거 써먹을 수 있으려나.”
멋들어진 장검 하나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리는 르윈을 보며, 엘리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응?”
그보다 먼저 르윈의 시야에 마력석이 들어왔다.
더 정확하게는 마력석이었던 돌멩이가.
“이거 왜 이래?”
“히익!”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력석에 르윈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엘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지만.
“어딜 가?”
다리가 아닌 마력으로 움직이는 맨드레이크였기에 마력에 민감한 르윈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사, 살려 주세요!”
붙잡히자마자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 내는 엘리의 모습에 르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개수작을.’
겉모습은 요정과 비슷하지만, 그 본질은 맨드레이크다.
슬프다고 식물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일은 없는 법.
즉, 저것은 모두 마력을 이용한 환상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안 죽여.”
“지, 진짜요?”
저것 또한 살고자 노력하는 것임을 알기에, 르윈은 그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진짜로.”
애초에 이곳을 발견한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저 우연.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 눈이 돌아갔으면 모를까, 굳이 마력을 얻기 위해 살고자 하는 생물의 생명을 뺏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
“가져간 만큼, 일해서 갚아.”
“일이요?”
공짜로 줄 생각 또한 없었다.
“응. 여기 있는 던전을 찾아낼 생각이었거든.”
“던전? 여기 말고?”
살 수 있다고 확신한 탓일까.
바로 반말을 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앞으로 써먹을 일이 많을 것 같았기에 그냥 넘어가는 르윈이었다.
“여긴 아닐걸?”
르윈은 자신의 보물 창고를 남이 들어올 만큼 쉽게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제법 가까운 곳에, 인위적인 마법이 느껴지기도 하고.”
“진짜?”
마력이 주식이나 마찬가지인 맨드레이크도 특별한 마력 반응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그걸 인간이 느끼다니.
‘솔직히 못 믿겠는데.’
문제는 그 말을 내뱉으면 그대로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엘리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야지, 뭐!”
그 이후의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쌓여 있는 보물을 뒤적거리던 르윈은 무기 몇 개만을 챙기고는 엘리를 어깨에 두고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길을 다 알고 있는 거야?”
막힘없는 발걸음에 엘리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애초에 기억하지도 못했던 곳이라는 설명에 엘리의 인상은 더욱 찌푸려졌다.
“그런데 어떻게 길을 알아?”
“감?”
“그게 가능해?”
“100번 중 99번은 맞는 편이야.”
거기에 이번처럼 자신이 만든 공간이라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들과 본능이 합쳐져 더욱 완벽한 답을 찾아낸다.
“아마도?”
“…….”
“100번 중 99번은 맞지만, 1번 틀리는 게 지금일 수 있으니까.”
참으로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는 르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네?”
전생의 르윈이 만든 보물 창고의 흔적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더 낡았다고 해야 하나?”
엘리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괜히 땅의 정령들한테 창고 관리를 맡겨 둔 게 아니거든.”
용사 생활 9회.
다음 생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인생 1회 차를 제외하고, 르윈이 보물 창고를 만들기 시작한 횟수가 여덟 번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보물이 다음 인생의 르윈에게 온전하게 남겨진 것은 아니었다.
르윈이 까먹은 것도 있었고.
용사가 세계의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숨겨 둔 보물들을 훔쳐 가는 미친 인간들 또한 존재했으며.
또한 아주 재수 없게.
“왜?”
“자연재해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곳들이 은근히 많으니까.”
“자연재해?”
르윈의 말에 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 그대로지. 산사태로 지반이 무너지거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하여 바닷속으로 가라앉든가.”
르윈이 부활하는 시기는 일정하지가 않았다.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천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날 때도 있었다.
그뿐인가?
“아무리 잘 만든 시설이나 무기도 관리를 안 하면 끝이니까.”
마법으로 보호받는 시설에도 한계가 존재했다.
수백 년을 버틸 수 있는 마력석?
그런 것이 있으면 미래를 위해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마왕을 쳐 죽이는 일에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유적이나 던전은, 사라지기 전에 털어야 하는 거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든 던전은 그 수명이 존재했다.
“오오.”
새로운 사실에 엘리는 감탄했다.
“대화의 흐름대로라면, 이 던전은 수명이 다해 가는 던전이구나!”
“아닌데?”
“잉?”
르윈의 대답에 엘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수명이 다해 간다는 것은 언제 던전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인데. 그런 곳을 왜 가?”
“그럼 여태까지의 대화는 뭔데?”
“여기가 비교적 싱싱한 던전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지.”
“왜?”
던전이 살아 있는 생물도 아니고.
싱싱한 것과 다 죽어 가는 것의 차이가 뭐가 있을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던전이라는 곳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지기가 있거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든 던전이라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존재가 있었다.
“그게 뭔데?”
“골렘.”
자연에 존재하는 마력석에 무언가의 의지가 깃들어 된 골렘.
그리고 그런 골렘들을 분석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만든 인위적인 골렘.
그리고 그 골렘의 특징은.
“싱싱할수록 강하다는 거지.”
저 멀리 자신의 10배는 되어 보이는 석상을 발견한 르윈은 망설임 없이 엘리를 붙잡고.
“잉?”
“가라, 맨드레이크!”
그대로 던졌다.
“나쁜 새끼야!”
엘리의 욕설과 비명, 그리고 이어지는 거대한 폭발음.
그것을 들으며, 르윈은 미소와 함께 검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