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43. 용사는 강해야 한다 (7)
아펠리오스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게 된 이후, 용사 후보를 자처하던 이들 중 다수가 입을 다물었고.
이미 용사가 된 이들 중에서도 사퇴를 밝힌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림 월드를 체험한 이들 중 누구도 그들을 욕하지 않았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하면 아펠리오스라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오랜 시간 심신을 단련한 각 교단의 성기사들조차 그렇게 느꼈는데, 용사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하나 아직 학생인 이들은 어떻겠는가.
정신이 무너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무너지지 않고 맞서 싸우려는 이들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용사를 사퇴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의 숫자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르윈과 이사장이 예상했던 바이다.
떨어져 나갈 사람은 어차피 초반에 다 떨어져 나가고, 남을 사람은 결국 남을 것이다.
용사란 강해야 한다.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뭐라고요?”
그러나 모든 것이 르윈의 예상대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그… 소속 용사인 빌이 끝까지 용사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했는데요.』
그렇다.
나약한 것들은 다 떨어져 나갈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그 나약한 것에 자신이 점찍어 놨던 이들이 포함될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사퇴한대요?”
『직접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힌 건 아닌데, 제법 고민을 하고 있던 것 같은데…….』
“…….”
머뭇거리며 대답하는 레피스의 말에 르윈은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먹인 게 얼만데!’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인생 1회 차 시절의 이름을 가지고, 그에 버금가는 호구력까지 가졌기에 르윈은 빌을 높게 샀다.
심지어 함께 다니는 여자는 자신의 여러 인생에서 가장 큰 뒤통수를 친 배신자들의 혈통이었다.
그렇기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지금의 르윈이 과거의 자신에게 후회하는 점들만 모은 것 같은 빌이었기에, 오히려 그 누구보다 용사에 적합한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이 착하고, 자기 일이 아님에도 오지랖을 부리고.
자신의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며, 정의감까지 넘쳤으니까!
그런 호구스러움을, 아니 용사스러움을 높이 사서 데이지 등을 제외하고 최우선으로 영약과 비전서를 제공했고.
용사 양산이 선언된 직후, 바로 레피스를 시켜 무링교의 용사로 선택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대우는 대규모 교단과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르윈이 몰래몰래 사건을 만들어 기연인 양 먹인 것까지 합치면 창조의 교단조차 해 주지 못하는 초호화 대우를 해 준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니!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사람은 누구나 성장하고, 그러다 보면 벽을 마주하고 만다.
누군가는 눈앞의 벽을 보고 좌절하고, 누군가는 그 벽을 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르윈은 빌을 후자로 생각했다.
아무리 높은 벽이 존재하더라도 절대 굴하지 않고 벽을 넘기 위해 노력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데이지나 예리엘, 하인스는 아펠리오스를 마주하고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괴물을 쓰러트린 과거의 자신을 따라잡기 위해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며 수련을 하고 있었다.
빌은 그들과 다른가.
르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에 포기하려는 것인가.
‘아닐 수도 있지.’
그냥 자신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냥 겁을 먹고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다.
솔직히 지금 당장 아펠리오스가 부활한다면.
‘같이 죽을 수나 있을까?’
열 번을 도전한다면 열 번을 실패할 것 같다.
아마 백 번을 도전한다면 한 번쯤은 성공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 백 번의 한 번조차 확신할 수 없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말한 것이다.
인생 10회 차조차 그렇게 생각하는데, 인생 1회 차에 아펠리오스를 만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이해한다. 이해는 한다.
하나.
“아직 확실하게 그만둔다고 말한 건 아니죠?”
이해는 해 줘도 놓아줄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먹어 버린 후였으니까!
『그, 그건 그런데.』
“그럼 제가 알아서 할게요. 교주님은 포교에 신경이나 써 주세요.”
『…응.』
최대한 빨리 무링교를 널리 이롭게 퍼트려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지원을 해 주겠다는 확답을 받은 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그다지 큰 성과를 얻어 내지는 못했다.
창조의 교단을 시작으로 수많은 종교가 뿌리를 내린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고.
그 속에서 신흥 종교가 교세를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그만두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레피스였다.
그러니 무링교가 망하기 전까지는 레피스 또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
“하아.”
내가 용사가 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빌은 아무도 찾지 않는 빈 교실 구석에 주저앉아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처음, 대마왕 아펠리오스를 보았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고작 숨결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만으로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그저 손을 내젓는 것만으로도 형체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베르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여러 종류의 드림 월드를 체험해 봤으나,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드림 월드에서 빠져나왔을 때, 빌은 하나의 사실을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공격하지도 않았어.’
드림 월드 속 아펠리오스는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을 떠나 애초에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직접 싸우는 것은커녕 누군가를 공격하는 모습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었고.
그저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굴복했다.
빌은 그 사실이 부끄러웠고,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시 도전했다.
이곳은 꿈속이다.
그저 마법으로 만든 가상의 공간이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진짜 내가 죽는 것도 아니었고.
저 아펠리오스란 존재 또한 용사 데르덴 님께서 남긴 파편일 뿐이다.
가짜의 공간에 가짜의 적이다.
진짜인 내가 이기지 못하더라도 한 방 날려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간 드림 월드 속에서 빌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선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네 번.
누군가는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절망한 아펠리오스를 빌은 끊임없이 마주 보았다.
장치를 담당하는 교단의 관계자들과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경악할 정도의 정신력이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었다.
“나는 자격이 없어.”
누군가는 그 꺾이지 않는 정신력을 높이 살 수도 있겠으나, 빌이 느낀 것은 몇 번을 도전해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마왕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못한 자신이 용사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 것이다.
“하아.”
“뭘 또 한숨을 쉬어?”
“윽!”
그렇게 용사를 그만두는 것이 세상을 위한 일이 아닐까.
오늘만 하더라도 수십 번을 고민한 빌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 마를렌?”
“선배님들이 너 찾아. 오늘도 안 나오면 진짜 죽여 버리겠다던데?”
짐짓 인상을 찌푸리며 선배들이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전하려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빌이 보기에는 전혀 무서운 표정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봐?”
“예리엘 선배님이랑 하인스 선배님이 말씀하신 거지?”
“응. 똑같았어?”
“아니, 선배님을 따라 하기에는 못생겼… 으악!”
마를렌도 미형의 외모였으나, 아카데미에서 손에 꼽히는 미남 미녀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 점을 지적하니, 이번에는 진짜로 무서운 표정을 지은 마를렌의 손바닥이 빌의 등짝을 강타했다.
“진짜 죽으려고.”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노려보는 마를렌이었으나, 그녀의 혈통은 무려 용사의 동료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 결합하여 탄생한 가문!
그 핏줄이 어디 가지는 않는지, 가녀린 손목에서 나왔다고 믿어지지 않는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진짜 죽을 것 같은데…….”
그 사실을 등짝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다시 한번 깨닫게 된 빌은, 차라리 마를렌이 더 용사에 적합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또 그 표정이다.”
“무슨 표정인데.”
“세상 걱정 다 짊어진 표정.”
마를렌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빌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에 거리를 벌리려는 빌을 손바닥 하나로 굴복시킨 마를렌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소문 들었어. 대마왕이 나오는 드림 월드를 몇 번이나 도전했다며?”
“…소문났어?”
“응. 한 번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울면서 용사를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가득하다는데. 그걸 몇 번이나 하는 미친놈이 우리 학년에 있다고 소문 다 났어.”
“그런가…….”
누군가에게는 경이로운 소문이었으나, 빌에게는 그저 부끄러운 소문일 뿐이었다.
“악!”
그렇게 다시 한숨이 나오려는 찰나, 이번에는 마를렌의 손가락 하나가 빌의 옆구리를 쑤셨다.
“용사님께서 엄살은.”
“창에 맞은 느낌이었는데요?”
자신의 옆구리를 푹 찌르는 일격에 빌은 퍼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으나, 마를렌은 손날로 빌의 종아리를 쳐 그대로 다시 앉게 했다.
“너무 폭력적인 거 아니세요?”
“거울 봐. 지금의 넌 좀 맞아야 하는 얼굴을 하고 있어.”
“…누가 얘를 아카데미의 성녀 취급하는 거야.”
누구에게나 친절히 대하는, 아카데미의 성녀라는 별명을 가진 마를렌이었으나, 본성은 이러했다.
가련한 모습과 달리 강력했고, 심지어 본인이 자신의 힘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친한 사람들에게는 그 힘을 언제든지 보여 주니, 가장 많은 샌드백이 되는 빌로서는 아카데미의 성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내가 성녀라고 했나.”
그런 빌의 중얼거림에 마를렌은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난 누구처럼 성녀가 될 것이라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거든?”
“윽!”
신탁이 내려온 이후, 평소에도 자신이 용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빌이었다.
그렇기에 무링교라는 신흥 종교의 용사가 되었을 때도, 그리고 그 종교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되었을 때도 자신이 있었다.
“포기하고 싶어?”
“아니.”
마를렌의 말에 빌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빌은 용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용사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그 누구보다 용사들을 존경했기에 용사가 되고 싶었고.
그 누구보다 용사들의 업적을 잘 알고 있기에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역대 용사가 쌓아 온 역사를, 업적을, 승리를.
수많은 용사 중 하나라고 하나, 자신이 무너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
그런 빌의 고민을 들은 마를렌은 헛웃음을 흘렸다.
“고작 그런 걸로 고민했어?”
“고작이라니!”
“고작이 맞지. 야, 우리 집이 어떤 집안인데!”
무려 용사님의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했던 집안이다!
그 오른팔과 왼팔이 동시에 용사의 뒤통수를 쳤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마를렌은 당당히 선언했다.
“용사님들이 얼마나 찬란한 업적을 세우셨는데, 네가 뭐라고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 같은 것이 묻어 봤자 티도 안 난다.
용사님들이 쌓아 온 업적은 그 정도로 빛나고 있다.
그런 마를렌의 말에 빌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악!”
그런 빌의 얼굴을 착 소리가 나게 붙잡은 마를렌은 환한 웃음과 함께 빌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고민하지 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그, 그래도 될까?”
“당연하지!”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대답에 빌은 생각했다.
마를렌의 말을 믿어 보자고.
이런 나라도 용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선배님들 손에 살아남을 수 있다면.”
“아.”
“늦으면 1분당 목숨 하나라고 하셨는데. 벌써 10분은 지났을걸?”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건데?”
다급히 몸을 일으킨 빌은 마를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전력을 다해 훈련장으로 뛰었고.
분노한 선배들에 의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네?”
다음 날 오후.
마를렌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