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45. 쟤들 뭐 하냐 (3)
예리엘과 눈이 마주친 것을 확인한 마족은 순간 고민했다.
‘들켰어?’
이런 몬스터 대군 사이에 있는데 들킬 줄이야.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도망가야 하나?’
들킨 이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도망치거나, 그냥 들이박거나.
“하.”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자신의 직속상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족이 성벽을 짓는다고 하더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마왕군 사천왕, 지옥의 불꽃 발텐데르는 그리 말하며, 위대한 마족의 역사가 뒤흔들리고 있다고 열변을 토하였다.
“언제부터 마족이 눈앞의 적을 두고 간만 보게 되었을까? 이게 맞냐? 맞아?”
그는 현 마왕과 그녀를 중심으로 한 세력에 반감을 품었고, 그것을 전혀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는 편이었다.
아니, 발텐데르만이 아니었다.
현 마왕군 사천왕은 모두 마왕과 마왕의 측근들에게 감정이 좋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사천왕이라는 칭호는 아주 먼 옛날부터 마족에게 전해지는 명예로운 칭호였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마족이 일생을 노력하는데.
현 마왕과 총군사를 필두로 한 마왕의 세력은 마왕군에서 일정 이상의 직위를 가진 마족들에게 사천왕을 둘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말로는 마왕군의 전력 향상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나, 기존의 사천왕으로서는 갑자기 사천왕이라는 타이틀을 단 마족이 수백이 생긴 것이다.
물론 뿌리 깊게 내려진 사천왕에 대한 인식 덕분에 마족들 사이에서 기존 사천왕과 이후 사천왕이 같은 취급을 받는 일은 없겠으나.
그래도 사천왕이라는 유일한 칭호가 어중이떠중이에게 뿌려진 것은 사실이었고.
그로 인하여 사천왕이라는 칭호에 대한 무게감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눈앞에 인간이 있는데! 위대한 마신의 적이 있는데! 그 새끼들이 신기하다는 듯 우릴 구경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으란다.”
분명 눈앞에 있는 인간의 성은 견고하고, 역사적으로도 마족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나.
마족은 늘 눈앞의 성벽을 넘어 성을 정복했고, 그것을 인류를 향한 선전포고로 삼아 진군했다.
그리고.
“생각을 해 봐. 우리 마족이 용사한테 패배했지, 인간 놈들에게 패배했냐? 이번 마왕은 너무 겁이 많아. 싸우다가 죽는 게 마족인데, 왜 우리가 입을 피해를 생각해야 해?”
생각이 없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마족의 평균적인 생각이었다.
싸우다 죽으면 자연사다.
그것이 마족의 삶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기회를 만들어라. 아군 피해를 고려해서 군을 움직일 수 없다는 명분을 없앨 기회를.”
“제가요?”
“그럼 내가 할까?”
“잘하실 것 같은데…….”
“어허! 네놈도 사천왕 비슷한 거잖아. 그 정도는 해야지.”
사천왕에게도 사천왕이 존재한다.
마왕군의 규정상 그러했고, 그것이 억울하면 마왕보다 강해야 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사천왕들은 자신의 수하를 사천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사천왕의 사천왕이라니,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으니까!
“내 네 심복 중 최강의 전사 벨르여, 제국을 흔들어라! 방법은 알아서 하고!”
네 명의 심복들.
사천왕이 자신의 사천왕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조금은 우스운 표현이었으나, 마족 중 최강의 전력을 지닌 사천왕이 뽑은 네 명의 전사였기에 그들의 전투력은 마족에게 있어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고급 인력을 이렇게 쓰다니.
심지어 방법은 알아서 찾으라니!
“알겠습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마족의 사회인 것을.
사천왕들조차 마왕의 명을 무시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는데.
벨르 또한 거절하려면 발텐데르보다 강해야 했다.
그렇게 마왕군이 성을 짓는다고 온갖 쇼를 하고 있을 때.
벨르는 혼자 인류에 잠입하여 인류를 뒤흔들 방법을 찾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벨르가 마족 중 최상위의 강자라고 하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인류에 퍼져 있는 마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노력도 해 보았으나, 마신회를 비롯한 인류의 배신자들은 이미 옛날 옛적에 대부분 토벌을 당해 찾을 수가 없었다.
흑마법사? 이미 옛날 옛적에 멸종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방법이 없다. 벨르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가 유일하게 찾아낸 희망이 바로 몬스터 웨이브였다.
마대륙과 달리 마기에 쉽게 굴복하는 인대륙의 몬스터들은 마족에게 있어서 쉽게 조종 가능한 패인데.
그런 몬스터들이 대규모로 인류를 치는 행사라니.
그 위협이 상당한지 요새까지 건설하여 몬스터를 요격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벨르는 그 요새만 무너트린다면 인류에 큰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바로 실행에 들어갔고, 지금에 이르렀으나.
“하아.”
결국 들키고 말았다.
정말 생각지 못한 변수다.
거대한 오우거 같은 것에 신경을 쓸 것이지, 이런 자그마한 몬스터들 사이에 껴 있는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그냥 이상하게 생긴 몬스터라고 생각… 하지 않군.’
경악하는 표정을 보니 대충 눈치를 챈 것 같다.
하긴 수인족과 비슷한 유형의 마족들이라면 모를까.
벨르는 인류가 생각하는 마족의 정석이었다.
검붉은 색의 피부에, 머리에 두 쌍의 뿔을 지닌 존재.
“…….”
예리엘과 벨르의 시선이 마주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그 이후에 이어진 행동보다는 느린 시간이었다.
쿵!
벨르가 땅을 박차고 그대로 대장벽의 성문을 두들긴 것과.
‘날 찾은 대가로 선물을 주어야지.’
반파된 성문을 뒤로하고 성벽을 박차고 올라 예리엘의 앞까지 도착한 다음.
“응?”
그대로 다시 바닥으로 처박히는 데 10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
“저건 뭐냐.”
몬스터들 사이에 익숙한 마기가 느껴진다.
그에 르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족 놈들이 몬스터를 굴복시킬 때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즉, 이번 몬스터 웨이브의 뒤에는 마족이 있다는 말이었다.
“요즘 마족들은 참.”
옛날에도 마족이 몬스터를 이용하는 일이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몬스터 웨이브 자체를 끌고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마족이란 제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었고.
몬스터들을 이용하는 것은 그냥 노동력 확보의 느낌이 강했으니까.
“얼씨구?”
심지어 갑자기 급발진하여 마기를 폭발시키더니 그대로 성문을 걷어차 버렸다.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는 듯하다가 갑자기 저렇게 난동을 부리다니.
그러나 그다음 행동은 르윈으로서도 그저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응?”
“이게 어딜.”
예리엘에게 달려드는 마족을 그대로 걷어차서 성벽에 떨군 르윈은 인상을 찌푸리며 예리엘을 바라보았다.
“정신 안 차려?”
“아, 네? 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위 마족은 무리지.’
상위 마족이면 소드마스터도 한 수 접어 줘야 하는 괴물들이다.
발차기 한 방에 대성벽의 두꺼운 성문을 파괴할 정도의 괴물이었으니까.
오히려 상대의 움직임을 끝까지 눈으로 지켜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할 가치가 있었다.
“성문을 지켜라!”
그리고 동시에 다급한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나,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들에게 공격을 받는다면 성문이 파괴될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빠른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눈치챈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기는 한데.”
그만큼 상대의 움직임이 빨랐고.
동시에 상황이 다급해졌기에 주변에 신경을 쓰기 어려워서이기도 할 테지만.
‘그래도 눈치챈 놈들이 몇 놈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힐끔힐끔 이쪽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는 르윈이었으나, 곧바로 느껴지는 강렬한 마기에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지.”
“네? 네?”
허둥거리는 예리엘을 뒤로한 채 르윈은 기척을 죽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일단 넌 좀 맞자.”
사람들의 시선을 완전히 따돌린 직후, 곧바로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그대로 마족에게 헥토파스칼 킥을 날렸다.
***
“죽여라.”
“와…….”
벨르의 말에 르윈은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큰 충격을 받은 대장벽의 성벽과 그에 더욱 날뛰는 몬스터들로 인하여 대혼돈이 펼쳐진 북방군이었으나.
그러한 상황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르윈은 감동하고 있었다!
“나의 패배다.”
검붉은 피를 울컥 토해 내면서도, 그 기세를 잃지 않는다.
패배했으니 죽음은 당연하다.
초연한 표정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모습이 르윈에게 익숙하면서도 또 익숙하지 않았다.
‘누구랑 참 다르네.’
살려만 준다면 자신이 아는 정보 다 토해 낼 수 있다고 자신하던 어떤 마족을 떠올리니, 더욱 대비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마족이지!’
그래, 이게 르윈이 알던 마족이었다.
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눈앞의 적이 누구든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아는 전투 종족.
“이러한 곳에서 마신의 품으로 돌아갈 줄은 몰랐으나…….”
“시끄럽고.”
“컥!”
그러나 감동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르윈이 알던 마족이라는 뜻은 인생 9회 차 동안 만났던 마족들과 다르지 않다는 소리였고.
동시에 그들의 레퍼토리는 이미 질릴 정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이네.”
인생 9회 차를 살면서 쌓아 온 마족에 대한 정보가 리제와 그 상관이라는 총군사라는 놈 때문에 바뀌었다.
그것은 르윈에게 있어서는 큰 골칫거리였다.
인생 9회 차 동안 쌓아 온 마족에 대한 모든 지식이 쓸모가 없어졌다는 소리가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벨르의 등장은 르윈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놈들이 미친놈들이었지, 정상적인 마족은 존재했으니까.
자신이 아는 지식이 쓸모가 없어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무슨…….”
혼자서 얼굴을 찌푸리다 풀고, 곧 미소를 띠는 르윈의 기괴한 모습에 벨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혼란스러웠어. 마족이라는 놈들이 단체로 겁쟁이가 되었나 하고.”
“우리를 우롱하는 것이냐!”
“이전에 총군사란 놈의 사천왕 리제라는 애를 만났거든.”
“…….”
“너도 아는구나?”
겁쟁이라는 말에 분노하던 벨르가 입을 꾹 다물자, 르윈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역시 그놈들이 이상한 게 맞았구나.
문제는 그 이상한 놈들이 지금 마왕군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말이야. 내가 마왕군에 대해서 좀 알아야 해. 그런 놈들이 얼마나 있는지. 너 같은 정상 마족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내가 그것을 말할 것 같으냐!”
아무리 마왕과 그 핵심 세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나, 그들이 같은 마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을 내뱉을 수도 있으나, 마족에게 있어서 적은 위대한 마신의 적인 창조의 여신이며, 동시에 그 여신의 개인 인류였다.
그렇기에 벨르는 절대 마왕과 그 수하들에 대한 정보를 내뱉지 않을 것이다!
“캬.”
라는 생각을 르윈이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르윈이 아는 마족이란 그런 이들이었으니까!
“진짜 옛날 생각 나네.”
“그게 무슨…….”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르윈이 알던 마족들은 다 벨르와 같은 이들이었던 것이고.
“요즘 친구들은 얼마나 버틸지 기대되네.”
그런 마족들의 입을 여는 것은 르윈이 이단 심문관들보다 더 잘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