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45. 쟤들 뭐 하냐 (5)
“이, 이걸로 진짜 될까요?”
“돼.”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리의 모습에도 르윈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용사님이잖아. 못 믿어?”
“여태까지 아니라고 그랬으면서, 이럴 때만 용사님이래!”
아이리가 귀를 파닥거리며 거칠게 항의했지만, 조용히 올라가는 손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포, 폭력 반대!”
그간 귀를 잡아당겨진 경험이 몇 번인가!
반사적으로 움츠러진 귀를 두 손으로 붙잡으며 아이리는 세 발짝 뒤로 물러났으나.
“끄앙!”
그보다 더 빠르게 네 발자국 움직인 르윈의 손에 결국 귀를 붙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용사님, 용사님 해서 용사님다운 행동을 해 줬잖아.”
“인질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적에게 도발용으로 보내는 것이 용사가 할 일인가요?”
“응!”
“옛날 용사님은 안 그랬는데!”
“그랬는데?”
다 그 옛날 용사의 경험을 토대로 행한 행동이었다.
심지어 그때와 비교하면 오히려 더 온전한 편이었다.
“잘 생각해 봐. 창조의 여신의 문장이 안 좋은 거야?”
“아, 아니요! 당연히 신성한 것이죠!”
“그렇지. 그럼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 나빠?”
“열심히 외워서 평소에도 따라야 할 격언들이죠!”
“그럼 창조의 교단의 사제들이 입는 사제복은?”
“신실함의 상징!”
“그래. 그걸 몸에 새겨 주고, 입혀 주었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행동이야? 고문이라고 할 정도야?”
“어, 음.”
아이리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벨르가 당한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으나, 막상 르윈이 하는 말만 들으면 그다지 잘못한 느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잘한 느낌이었다!
“그, 그래도 그건 좀 심하지 않았나.”
“성경에서 창조의 여신이 마족에 대해 뭐라고 말했지?”
“보이면 죽여라?”
“그렇지. 그리고 과거 용사들이 마족을 보고 뭐라고 말했지?”
“지긋지긋한 놈들. 어디선가 계속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
“그렇지. 성경이 죽이라고 말하고, 용사님들도 보일 때마다 없애야 한다고 말했잖아.”
“그건 그런데…….”
삶의 의지를 포기한 듯한 벨르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망설이는 아이리였으나, 이럴 때 가장 좋은 말이 무엇인지 르윈은 알고 있었다.
“너 이단임?”
“아, 아닌데요?”
“그런데 왜 자꾸 마족한테 신경을 쓰는 건데.”
“누가 신경을 썼다고 그러세요! 그냥 용사님의 명성에 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걱정했을 뿐인데!”
“괜찮아. 떨어질 명성 자체가 없으니까!”
“자랑이세요?”
명성이 없다.
베르샤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심지어 드라이르프 공작가라는 뒷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없기 힘든 일이었으나, 놀랍게도 르윈은 그것을 이루어 내고 말았다.
심지어 자기 시종들은 제국을 넘어 서서히 대륙에 이름을 알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음, 자랑이지.”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르윈이 흘린 피땀 눈물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르윈이었으나.
“…….”
아이리로서는 참으로 할 말이 많았으나, 귀를 잡힌 상태로 그 말을 내뱉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그간의 경험이 알려 주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 뿐이었다.
“배송 사고는 없겠지?”
“수인족 중에서도 강하고 빠른 분들로 부탁드렸어요. 국경을 넘어 마족의 진형으로 넘어가는 임무라면 모를까. 인류의 영역 안에서는 들키지 않고 옮길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수인을 믿을 만하지.”
무려 용사의 뒤도 밟던 수인이다.
그런 수인 중에서도 최정예가 파견된 일이니, 일이 잘못된다면 누구를 보냈어도 잘못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그럼 슬슬 너네도 준비를 해라.”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건가요?”
“그럴걸?”
마족들이 단체로 개종하고, 현 마왕이나 총군사란 놈처럼 바뀌지 않았다면 무조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현 마왕의 세력이라는 변수가 존재했으나.
‘현 마왕은 소수파라고 했으니까.’
벨르의 입을 벌려 토해 내게 만든 정보에 따르면 마왕을 따르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마족은 르윈이 알던 마족들이 맞으며, 마왕을 따르는 이유도 유구한 전통인 강자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억울하면 이겨서 증명하라를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 벨르의 말에 따르면 현 마왕은 아펠리오스와 같은 강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천왕을 모두 휘어잡지 못했고, 사천왕 하나를 상대로는 압도적인 우위를 취할 수 있으나 둘부터는 버겁고, 셋부터는 오히려 밀리며, 사천왕 넷 모두와 싸울 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벨르는 평가했다.
“우리로 따지면, 신성국의 교황 앞으로 추기경이 온몸에 마신교의 상징과 율법이 새겨진 상태로 돌아온 거야.”
“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거기에 머리에는 가짜 뿔이 달려 있고, 복장은 마족들이 입을 법한 옷에 몸에는 마기를 풀풀 내뿜는 피어싱과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거지.”
그 모습을 보고도 성전을 선포하지 않으면 교황이 날아갈 것이다.
왜?
교단의 신자를 그 꼴로 만들어 보냈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의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안 오면 오히려 좋아.”
그동안 들었던 마왕과 총군사라는 놈은 최대한 전쟁을 막기 위해서 버틸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마족들은 마족의 최강자라는 이유만으로 마왕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마족이 강자를 따르는 이유는 그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마신이 만들어 낸 율법과 여러 번의 대전쟁을 통해 인류와 싸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것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려면 매우 긴 설명이 필요하겠으나, 짧게 요약하자면 매우 간단했다.
“결국 싸워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강자존 시스템이야.”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강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싸우지 않으면 필요 없었다.
심지어 상대방이 먼저 싸움을 걸었는데 피한다면.
“아무리 마왕이라도 혁명이지.”
공사 중인 성벽을 무너트리는 듯한 소소한 반항이 아닌, 마족 전체가 들끓고 일어나는 반란이 시작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마족끼리 서로를 죽이는 내전이 일어날 테니 인류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현 마왕 세력은 그렇게까지 평화를 사랑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테이즈위더가 무너졌습니다!”
다음 날, 아카데미에 널리 퍼진 소식이 그것을 증명했으니까.
***
인류의 첫 방어선이 무너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대전쟁이 우리 시기에 일어나는구나.”
신성국 교황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주변에 있는 모든 사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류와 마족의 전쟁, 대전쟁.
창조의 여신과 마신의 대결이자 대륙과 대륙 간의 전쟁이다.
역사적으로 수차례 일어났으나 매번 자신들이 승자라고 기록한, 사실상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
그것이 또 일어났다.
물론 역대 전쟁 중에서 이번에 제일 피해가 적기는 했다.
“그래도 테이즈위더에 남아 있는 병력이 상당히 많습니다. 오히려 적군에 역대 최대치의 피해를 주었지요.”
“지금까지와 달리 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기습적으로 몰아치던 여태까지와 달리, 마족은 테이즈위더 맞은편에 갑자기 성을 짓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인류는 마족을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고, 테이즈위더에 추가 병력을 파견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만약의 사태에 그들을 대피시킬 준비까지 해 두었으니 피해가 적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인류의 최전선을 수호하던 최정예 병력을 일부나마 살려 올 수 있었다.
심지어.
“마족들이 예상보다도 더 난폭한 종족이어서,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록된 역사에서도 싸움에 미친 종족이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직접 본 마족들은 역사에 기록된 이상으로 미쳐 날뛰었다고 한다.
마치 인류의 역사에서 몇 번 있었던, 금지된 약물이나 마법을 사용하여 광전사를 만들어 낸 것처럼.
마족들은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들이닥쳤고.
오직 눈앞의 적을 없애기 위해 돌진하는 마족들을 테이즈위더의 전사들은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성과는 좋습니다만, 전장에 파견 나간 성기사들은 오히려 불안해하기도 했습니다.”
“왜지?”
“실전으로 단련된 최정예 병력조차 두려움에 떨 정도의 광기였다고 합니다. 일반 병사들은 그 모습만으로 두려움에 떨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칠 우려가 있을 정도로요.”
“그런가…….”
이어지는 보고에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사가 말한 불안이란, 평범한 병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사들이 걱정이겠지.’
여신의 뜻에 따라 수많은 용사가 탄생했다고 하나, 그로 인하여 용사의 평균적인 질이 떨어졌다는 것은 교황조차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옛 용사 같은 초인이 여럿 존재할 수 없는 일이고.
어쩌면 현시대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의 여신이 그러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교황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용사들이 계신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먼저 꺼낼 수 있는 것은 조금은 믿는 구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록 드림 월드라는 가상의 공간에서라고 하나, 그 아펠리오스를 보고 도망치지 않은 용사님들이.”
교황의 발언에 수군거리던 사제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마왕 아펠리오스.
역대 최강, 최악의 마왕이자, 인류에 큰 공포를 남긴 존재.
그것을 가상의 형태로 구현했다는 것에 수많은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베르샤 아카데미로 향하였고.
불과 꿈을 이용한 가상의 존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강대한 공포감에 몇몇 성기사들이 검을 꺾을 정도였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용사들이 사퇴 의사를 밝혔고.
그로 인하여 내부에서 아펠리오스가 나오는 드림 월드를 중지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으나.
베르샤 아카데미의 이사장을 비롯한 몇몇 인원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고.
교황은 여신의 뜻에 선택받은 베르샤 아카데미를 신뢰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 선택이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마족들이 미쳐 날뛴다고 하더라도, 아펠리오스보다 두렵다고 평한 성기사가 있었는가.”
“없었습니다.”
최전방에 나간 성기사 중 몇몇은 아펠리오스가 나오는 드림 월드를 체험했으나, 그와 마족을 비교하는 자들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펠리오스라는 존재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을 절대적인 존재였으니까!
“그 아펠리오스를, 용사 데르덴 님께서는 쓰러트리셨다. 그분의 후예를 자처하는 우리가 마족들을 이기지 못할 리가 있는가?”
르윈이 들었다면 ‘내가 언제 후손을 남겼었나?’라고 한 소리를 하겠으나, 원래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는 온갖 헛소리가 나오는 법이었다.
“데르덴 님의 숭고한 희생 이후, 인류는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전에 했던 일을 우리가 못하지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인류의 문명은 현재 가장 번성한 상태였고, 바벨리안을 중심으로 한 대국들의 국력은 인류의 역사에서도 최고점을 향한 상태였다.
그뿐인가? 옛날에는 한 명이었던 용사가 이제는 수백에 달하니.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인류와 마족의 기나긴 전쟁을 끝낼 기회인 것이다!
“나 교황 바오르 2세는 창조주인 라헬 님의 뜻에 따라, 이곳에서 인류와 마족의 대전쟁을 선포한다!”
교황의 말과 동시에 신성한 빛이 터져 나온다.
기회만 엿보던 라헬이 타이밍에 맞게 기적을 행한 것이다.
“여신님께서 함께하신다!”
“성전이다!”
인류 최고신 타이틀을 그냥 얻어 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적정한 타이밍에 펼쳐진 여신의 쇼에 사제들은 감격했고.
그렇게 인류와 마족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