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45. 쟤들 뭐 하냐 (9)
테이즈위더를 무너트린 이후, 마족들은 위풍당당하게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실상은 모두가 긴장을 하는 상태였다.
테이즈위더에서 입은 피해가 제법 컸고, 또 다음 성으로 나아갈 때까지 겪은 수많은 마법 함정들은 마족들조차 질릴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인류의 두 번째 성, 아켄성.
비록 아켄성이 테이즈위더와 달리 천혜의 요새라고 불리는 곳은 아니었으나, 그동안 경험했던 인류의 함정을 고려하면 저 성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성에 걸려 있는 저 커다란 백기. 인류의 기준으로 항복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맞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항복? 인간 놈들은 자존심도 없는 것이냐!”
막상 도착한 아켄성에 휘날리는 거대한 백기를 보며, 마족들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곳까지 오면서 인간 놈들의 수많은 수작질에 고생했으나, 자신들은 위대한 마신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나약한 여신을 믿는 인류 따위에게 마족이 밀리는 것이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마족들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마족이다.
인간들이 겁을 먹고 항복하는 것은 이전의 역사에도 있었던 당연한 일이었다.
“잠깐! 이건 인간 놈들의 함정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왕군 총군사, 데르마치의 외침에도 마족들은 코웃음을 치며 전진했다.
“함정이 있으면 이겨 내면 된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함정이 없었던 적이 있었나?”
“위대한 마신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한다. 인간 놈들의 함정 따위에 겁을 먹을 이유는 없다!”
“총군사는 너무 겁이 많아.”
그렇게 한 소리를 내뱉으며 선두에 선 사천왕을 시작으로 마왕군은 위풍당당하게 아켄성으로 진입했다.
“하아.”
대다수의 인원이 그러고 있으니, 마왕과 데르마치 또한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저들을 잃는 순간, 마족의 패배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켄성의 사천왕들이 날린 일격에 닫혀 있던 아켄성의 성문이 부서지고, 마족들은 아켄성 내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백기를 내걸었던 것이 거짓이 아닌 듯, 아켄성은 어떠한 저항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잖아?”
쥐 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성을 버리고 도망친 건가?”
“저항조차 하지 않다니, 한심하군.”
“그게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마족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 오히려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자화자찬하는 사천왕을 보며 데르마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 놈들이 멀쩡한 성을 그냥 버렸다고?’
그럴 수 있다.
아무리 성이란 것이 몇 배의 병력도 막아 낼 수 있다고 하나, 압도적인 전력 차를 무조건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나오는 기적적인 수성전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고.
대다수의 전투는 분전하였으나 패배했다는 결말이 많았으니까.
거기에 아켄성은 테이즈위더와 비교하면 무난한 성이었으니, 이전의 수많은 함정은 아켄성 같은 곳의 병력과 민간인들을 후퇴시키기 위해 시간을 벌 용도로 설치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뭐지, 이 느낌은?’
인생 10회 차의 인생을 살아오며 발달한 감각이 울부짖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그게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나, 이 자리는 위험하다.
흔히 육감이라고 부르는 감각이 계속해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마왕님, 이상합니다.”
“나도 그런 것 같은데.”
마왕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갑자기 주변에서 인간 놈들이 튀어나와 마족을 공격한다?
그런 느낌은 아니다.
헬리아스의 감지 능력으로도 생명체의 느낌은 감지되지 않았으니까.
“끄응! 일단 주변을 수색한다!”
그러나 느낌만으로 후퇴를 하면 마왕으로서의 권위가 무너진다.
안 그래도 대놓고 사천왕이 반기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병사들에게까지 마왕이 겁쟁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말 그대로 탄핵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데르마치도 그것을 알기에 아켄성의 위험 요소를 직접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식량을 제외하고는 물자 대부분을 놓고 간 것 같습니다.”
“무기고에 병장기와 화살 등이 그대로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만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막상 주변을 수색할수록 위험 요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족의 물자를 보충할 좋은 기회였다.
심지어.
“창조의 여신의 동상이다!”
“크아아악! 내 눈!”
얼마나 급했는지 여신의 조각상이 곳곳에 존재하기도 했으니.
창조의 여신의 조각상에 분노한 마족들이 여신상을 하나둘 파괴하기 시작했다.
“창조의 교단의 성당이 있다!”
“더러운 이교도의 흔적을 남기지 말고 불태워라!”
인간들이 마족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고 한다면, 창조의 여신과 관련된 것을 버리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데르마치야 이미 마음이 떠났다고 하지만 파괴의 신은 마족들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그녀가 내리는 신탁 하나에 마족들은 목숨을 바칠 정도였다.
‘진짜 기분 탓이었나?’
마족에게 파괴의 신이 그러하듯, 인류에게는 창조의 여신이 그러한 존재였다.
그런 여신의 흔적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가다니.
마족들에게 이런 꼴을 당한다는 사실을 인류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버리고 갔다는 것은 정말로 급히 도망을 쳤다는 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설마.”
아무리 인간 놈들이 미친놈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최고신조차 미끼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기려면 뭘 못하겠냐?’
라고 생각하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온갖 방법으로 자신과 마왕군을 농락하며 자신을 비웃던 용사의 웃음이.
“자, 잠깐!”
그에 데르마치는 다급하게 마왕군을 말렸으나, 이미 신나게 여신상을 파괴하던 마족들을 말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총군사도 자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미친년을 파괴하려고?”
“그게 아니다! 그게 인류의 함정일 수도 있다!”
“아무리 인류가 나약하다고 하지만, 쓰레기는 아니겠지.”
“맞다. 우리로 따지면 마신상을 파괴하면 함정이 발동된다는 말인데, 죽으면 죽었지 그딴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
“총군사는 생각이 너무 많아. 그게 문제다.”
여신상을 파괴하며 기분이 좋아진 듯한 사천왕과 부족장들이 웃으며 별걱정을 다 한다고 말하였고.
실제로 수많은 여신상을 파괴했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데르마치의 만류에도 수많은 교단과 여신의 조각상이 파괴되었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마족들은 더욱 신이 나서 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파괴.
마족의 최고신이 관장하는 개념을 마족들은 열심히 행했고.
그렇게 99번째 여신상을 파괴하였을 때.
“이런 미친.”
하늘에 그림자가 지고, 천상의 위성이 아켄성에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도망치라고? 어디로?”
“전력을 다해서 저것을 파괴한다!”
“저걸 파괴하라고요? 됩니까?”
“못하면 어차피 죽는다!”
그에 곳곳에서 엇갈린 명령이 나오고, 마족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메테오.
인류의 역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최상급 마법을 뛰어넘은 천상계 마법.
기록에 따르면 성 하나를 그대로 사라지게 했다는 마법이 아켄성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
“진짜 미친 새끼들.”
수많은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자, 최소 수십 년을 공들여 만들었을 성 하나를 그대로 버린 것이다.
그 사실에 데르마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마족들의 무덤으로 이용하기 위해 성 하나를 버리다니!’
설마설마했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데르마치로서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
‘아켄성에서 마왕군에게 큰 피해를 입혀.’
‘아켄성 자체를 제물로 바친 인류의 공습에 마왕군은 혼비백산하여 도망…….’
‘과감한 결단을 한 마켄 왕국에게 전 세계가 찬사와 복구 지원을 약속.’
“진짜 나 없어도 되겠는데?”
다음 날 아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소식을 보며 르윈은 감탄했다.
인류가 거둔 큰 승리도 승리지만, 그 내용 또한 감탄스러웠다.
“얘만 미친 줄 알았는데,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어허! 효과적인 싸움.”
“어떤 미친놈들이 성 하나를 제물로 바치는 걸 효과적인 싸움이라고 말해?”
“성이 무엇이냐. 적은 숫자로 적을 효율적으로 막아 내기 위해 만들어진 거잖아.”
그걸 이루어 내었으니 아켄성은 성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을 보며 엘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특히 함정이 발동되는 타이밍을 일정 숫자 이상의 여신상이 파괴된다는 조건을 걸었다는 건 마족의 심리를 확실히 파악한 전략이야.”
인류에게 있어 마신의 흔적이 발작 버튼이라면, 반대로 마족에게 창조의 여신이 발작 버튼이라는 것을 잘 이용한 전략이었다.
이런 훌륭한 이들이 과거에도 살았다면 자신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마족들은 어떻게 되었는데?”
“극비 정보라서 신문에는 안 나왔지만, 알아보니까 테이즈위더 근처까지 후퇴했다고 하더라.”
“당연한 판단이네.”
“보통은 그렇지.”
하나 마족이라는 종족은 보통인 종족이 아니다.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리려 하고.
그러다가 더 맞아도 물러서지 않고 때리려고 달려드는 광견들이다.
그런 놈들이 후퇴를 결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휘부가 제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동시에 마족들의 피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크다는 말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대로 마대륙에 처박히면 오히려 안 좋을 수 있는데.”
마족 하나를 마개조해서 마족들을 끌어낸 것은 좋았으나, 르윈조차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마족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대로 마족의 땅으로 들어가면 인류의 평화는 유지되나, 기나긴 마족과의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뿐인가?
‘최악의 경우, 인생 11회 차가 존재할지도.’
자신의 인생이 10회 차까지 이어진 이유가 여신과 마신의 수작질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는 르윈이었다.
둘 중 하나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것이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최악의 경우.
‘그 새끼도 10회 차라면.’
라헬이 자신을 인생 10회 차로 만들었다면, 마신이 마왕을 인생 10회 차로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럴 경우 마왕이 정신을 못 차리고 마신의 충실한 개로서 움직이고 있다면 매우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지금 분위기로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다.
마왕이라는 존재는 그 정도의 힘이 있는 존재니까.
인생 10회 차가 아니라 3회 차 정도만 되었어도 인류가 막아 내기에는 버거운 존재다.
‘아니, 3회 차가 아니라 1회 차라도 힘들긴 하지.’
그 정도로 마왕이라는 존재는 르윈으로서도 걱정해야 할 존재였다.
그런 괴물이 자신처럼 수많은 인생을 살았다면.
‘…나처럼 마신을 찌르고 싶지 않을까?’
르윈이 그런 생각을 한 지 며칠 후.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마족이 평화 사절단을 보내다.’
짧고 강렬한 정보 하나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