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45. 쟤들 뭐 하냐 (12)
“죽기 딱 좋은 날씨구나.”
대륙에 봄이 찾아온 지 제법 되었으나, 마왕 헬리아스의 눈앞에는 눈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봄에 눈이라니.
인류와 마족이 안 하던 짓을 하니, 날씨조차 지랄 맞은 느낌이다.
“안 죽습니다.”
마수가 이끄는 마차 안에서 창밖에 떨어져 내리는 눈을 보며 분위기를 잡는 헬리아스를 보며 데르마치가 말했으나.
“멀쩡한 성 하나 제물로 바쳐서 메테오 떨구는 놈들인데? 사절단 미끼로 삼아서 우리를 죽일 수도 있지.”
돌아오는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럴 리가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 어쩌면 사절단이라는 놈들 자체가 자폭을 각오했을 수도 있지. 만나자마자 갑자기 ‘죽어라, 더러운 마신의 개들아!’라면서 품 안에 숨긴 자폭 마법들을 사용할지도 몰라.”
“…마왕님, 잠깐 어디 좀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어림도 없지. 나만 내버려 두고 도망치려고?”
“마왕님 말을 듣고 있으면, 그게 현명한 판단으로 생각됩니다만.”
“도망을 가도 내가 가야지, 왜 네가 도망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헬리아스의 모습에 데르마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전 오래 살고 싶습니다.”
“빨리 죽고 싶어 하는 마족이 어디 있는데.”
“하는 짓들을 생각하면 대다수의 마족은 빨리 죽지 못해 안달이 난 놈들입니다만.”
“…그건 또 그렇네.”
오히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헬리아스와 데르마치가 같은 마족 세계에서는 이단일 뿐이었다.
“다 살자고 평화 사절단도 꾸리고, 인류와 협상도 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우리야 그렇지. 인류 놈들이 과연 우리랑 협상을 할까?”
“옛날에는 먼저 협상하자고 했던 놈들 아닙니까.”
“그렇지. 그때 받아들였으면 적당히 잘 살았을 것을. 전대 마왕들이 다 거절해서 망했잖아.”
“…멍청한 짓이었죠.”
그때의 기억들이 가끔 꿈에 나올 정도로 데르마치에게는 아쉬운 기억들이었다.
그때 협상이나 항복을 받아들였다면, 이럴 때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다못해 약간의 합의점만이라도 정했으면 이 고생은 안 했을 텐데!
“하아.”
멍청하게도 과거의 데르마치는 자신의 힘만 믿고 인류의 권유를 모두 무시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렇게 후회를 하지만, 후회를 해 봤자 되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뿐인가?
막상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이럴 줄 몰랐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인생 7회 차 정도까지는 마족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마족의 승리가 정배였고, 굳이 인류의 요청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뿐인가?
8회 차도 압도적이지만 않았을 뿐, 그래도 마족이 할 만했다.
위기감을 느끼고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마신의 제단까지 탈탈 털었고.
거기에 마왕군 수준도 역대 마왕군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전력을 완성시켰다.
이건 질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길고 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때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데르덴이라는 미친놈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과거의 마왕은 과거의 마왕. 지금은 신시대의 마왕. 마족 최연소 마왕이자 최초의 여마왕. 그 밖에 다수의 최초 기록을 가지신 헬라이스 님이 있지 않습니까.”
“응. 최초로 사천왕이 인정하지 않고, 부족장들도 반신반의하고 있으며, 밑에 놈들도 더럽게 말도 안 듣고. 마족 최초로 총군사라는 낙하산 직위까지 만든 마왕이지.”
“마왕님, 원래 앞서 나가는 자들은 뒤처져 있는 이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시대가 지나면 다 재평가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문제는 그 재평가가 마족 혁명으로 내가 처형당한 뒤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어허! 이번 평화 사절단은 사천왕을 비롯한 부족장들의 합의하에 낸 사절단입니다.”
“그렇지. 어떤 놈이 다시 공세를 취하려면 부상자를 후방으로 보내 치료하고, 남은 전력들을 재편성하여야 하는데 그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열심히 입을 털어 대었으니까!”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새끼가 진짜로 평화 협상을 하면 내가 처맞는 말이라서 문제지만!”
“그때는 그냥 인류 편에 붙어 버리시죠?”
“인류 놈들이 우리랑 손을 잡겠냐?”
“손잡은 척하고 마족을 함께 쓸어버린 뒤, 배신자는 어차피 나중에 또 배신하는 법이라고 우리도 처형할 확률이 높겠죠?”
“어차피 뒤지는 건 똑같은데, 그럴 거면 마족에게 죽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냐?”
“에이, 어차피 뒤지면 다 끝인데 모양새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냥 하루라도 더 오래 사는 게 낫지. 그리고 누가 압니까. 마족 정벌하고 기분이 좋아진 창조의 여신이 멸종 위기 생물로 지정해서 보호해 줄지.”
“동물원 동물 신세겠네.”
“공짜로 밥 나오고, 죽을 때까지 관리도 해 주고. 이 정도면 마왕성보다 복지가 좋은 거 아닙니까?”
“좋긴 하네.”
그렇게 시답지 않은 소리들을 내뱉으며, 헬리아스와 데르마치는 어느덧 인류가 지정한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길 또 오게 되네. 남은 메테오 있지 않지?”
“저야 모르죠.”
폐허가 된 성이 보였다.
그 성은 헬리아스와 데르마치에게도 매우 익숙한 성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얼마 전 마왕군은 저곳까지 진군했고, 그곳에서 메테오를 처맞았으니까.
“누가 보면 지난 대전쟁에서 파괴된 성이라고 해도 믿겠어.”
“그렇긴 하네요.”
마왕과 사천왕들을 위협하고, 수많은 마족에게 사상자를 냈던 메테오의 흔적은 아켄성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드문드문 성벽의 흔적만이 남아 있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 수많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습에 헬리아스와 데르마치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게 우리 운명이 될 수도 있는 거다.”
“하,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살려면 발버둥 쳐야 하는데.”
“하나만 주의해라. 너는 꼭 한 대 치고 싶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 나니까 봐주는 거지, 인류에 그딴 짓 하다가는 바로 칼 맞는다.”
“언제는 안 때린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마왕님.”
“그런 거, 그런 거!”
“악!”
데르마치의 주둥이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던 헬리아스는 문득 손을 멈추고 각오를 다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왔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느낌과 함께 근처에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느낄 수조차 없는 감각이었으나, 헬리아스는 마왕이었다.
비록 역대 마왕과 비교하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무력 하나로 마왕을 차지하는 종족에서 마왕이 된다는 것은 현 마족 중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그렇기에 이 정도 거리에서 공간 마법을 사용하여 이동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전력을 확인하는 것조차 쉽게 이룰 수 있었다.
“……!”
그렇기에 헬리아스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마왕님?”
안색이 점점 새하얗게 변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그에 데르마치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마왕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확인하려 노력할 뿐이었다.
“크, 큰일이다.”
그렇게 끙끙거리던 헬리아스를 보며, 데르마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감각에는 아무런 위험 신호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헬리아스가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감각 능력은 나보다 더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나?’
순간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심각한 모습이었다.
설마 자신조차 느끼지 못한 숨겨진 강자의 존재를 헬리아스가 느끼고 당황한 것인가!
“너, 너는 적들의 전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냐?”
그것이 맞는다는 듯한 헬리아스의 외침에 데르마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적들의 전력을 확인했다.
“…….”
일정한 경지에 이른 강자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의 전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하물며 인생 9회 차, 마왕 경력 다수의 데르마치라면 데르덴급 용사가 아닌 이상에야 몇 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의 인류의 전력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 데르마치조차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헬리아스가 해내다니!
“느껴지지 않는다고? 이 약함이?”
“네?”
그렇게 생각하고 감탄하려는 순간, 헬리아스의 입에서 들려온 말에 데르마치는 다시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약함?”
“그래! 저들의 약함이 느껴지지도 않냐?”
“……?”
약함이 느껴지지 않냐… 라고 묻는다면, 느껴진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약하면 저희야 좋은 것 아닙니까?”
“좋긴 뭐가 좋아? 우리가 저것들이랑 싸우려고 왔냐?”
“아니죠.”
마왕과 마왕군 총군사가 왔다고 하나, 이건 마족 중에서 평화를 논할 수 있는 인력이 거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래 사절단이라는 것은 왕이 아닌 그 아랫것들이 가는 것이 맞으니까.
그러니 약한 건 당연하다.
아니, 원래 사절단은 비전투 인원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다.
“마왕님이 인류의 문화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원래 사절단이란…….”
그것을 친절히 설명하려는데, 헬리아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뭔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야, 아무리 그래도 마족하고 하는 사절단인데. 진짜 비전투 인원만 보내냐?”
“네?”
헬리아스는 인류의 문화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로는 인류와 몇 번을 부딪친 데르마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마족하고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려는 거잖아. 그동안 이딴 짓을 한 적이 없잖아.”
“그렇죠.”
“그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호위 병력을 안 보낸다고?”
“평화 사절단이니 굳이…….”
“우리가 미쳐서 칼질하면, 저것들 다 죽는데?”
“그럼 저들은 명분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창조의 교단 놈들은 오히려 그것을 노릴 놈이고요.”
“그래! 반대로 말하면, 저것들은 언제 버려도 되는 버림 패일 수 있다는 말이잖아!”
“……!”
“애초에 마족하고 협상하는데, 기선 제압 당하지 않으려면 인상 더러운 소드마스터 정도 몇 붙여 주어야지. 저런 약골들만 보낸다고?”
‘멀쩡한 성 하나 제물로 바쳐서 메테오 떨구는 놈들인데? 사절단 미끼로 삼아서 우리를 죽일 수도 있지.’
순간 농담 삼아 내던졌던 헬리아스의 말이 떠오르는 데르마치였다.
‘어쩌면 사절단이라는 놈들 자체가 자폭을 각오했을 수도 있지. 만나자마자 갑자기 ‘죽어라, 더러운 마신의 개들아!’라면서 품 안에 숨긴 자폭 마법들을 사용할지도 몰라.’
아무리 데르마치가 인생 10회 차라고 하더라도, 고도로 발전한 마법 기술을 이용한 습격은 눈치채기가 어려웠다.
눈앞에 있는 아켄성에서 메테오가 발동되기 직전까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진짜로 저 녀석들 제물로 바쳐, 우리 암살하면 어떻게 하냐.”
“설마 마왕과 마왕군 총군사가 있는데, 인류가 그런 짓을…….”
“우리가 사절단 보낸다고 했지, 마왕이 직접 간다고 말했냐?”
“…….”
“그리고 내가 온다고 말했으면, 진짜로 메테오 떨어트렸을걸?”
“…….”
하나하나가 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상상 이상으로 약한 전력에 긴장하는 헬리아스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튈까요.”
“그럴까?”
헬리아스와 데르마치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순간.
“도착했습니다, 마왕님.”
갑자기 마차가 멈추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
이미 도열하고 있는 자신들의 부하들을 보며 헬리아스와 데르마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튀라고?’
‘늦었네요.’
안 그래도 몇 없는 수족들 눈앞에서 인간이 무섭다고 도망치면 진짜로 혁명당한다.
그렇게 억지로 발걸음을 옮긴 마왕은 볼 수 있었다.
‘이건 함정이다!’
정상적으로 가장 앞에 있는 이가 사절단의 대표다.
그런데 그 대표가 마치 사형장에 끌려온 듯한 표정으로 울먹이고 있다.
안 그래도 유약해 보이는 인상인데, 붉은 눈망울에서는 언제든지 눈물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뿐인가?
‘저것이 용사의 상징이랬지.’
그 옆에 용사의 상징을 달고 있는 자도… 더럽게 약하다!
아무리 용사가 백 명이 넘는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마왕은커녕 장군급 선까지 갈 필요가 없을 정도다.
‘무조건 함정이다!’
사형장으로 온 것 같은 사절단 대표.
그 옆에 너무 약한 용사.
이게 함정의 증거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이라도 도망을 쳐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는 헬리아스의 귓가에.
“걱정하지 마세요, 마왕님. 이건 진짜입니다.”
쓸데없이 자신감 넘치는 데르마치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이 새끼 저렇게 말하고 혼자 튀려는 건가?’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았기에, 헬리아스는 진지하게 도주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