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45. 쟤들 뭐 하냐 (13)
마왕을 보는 순간, 르윈은 알 수 있었다.
‘저 새끼 아니야.’
마찬가지로 데이지를 보는 순간, 데르마치는 알 수 있었다.
‘역시 가짜다.’
수많은 용사가 존재한다고 하나, 그들이 모두 예전에 보았던 용사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은 했었으나, 막상 본 용사는 데르마치의 상상 이하로 나약한 존재였다.
순간적으로 ‘이 정도면 전쟁을 할 만할지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속지 마라. 이건 용사의 함정이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미혹에 마왕 복귀를 잠시 고민했지만, 데르마치는 빠르게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단 마왕이 된다는 것은 열심히 마왕으로 키운 헬리아스를 끌어내리는 것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용사의 함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게 용사라고? 어림도 없지.’
그동안 용사의 잔꾀에 속아 넘어간 적이 몇 번이던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선 인류 측 여신이 미치지 않는 한 저런 수준을 용사라고 내세울 리가 없을 것이요.
만에 하나 그런 게 가능했더라면 마신도 안 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이건 함정이다.
저런 용사들을 앞장세워 마족들을 방심하게 만들고.
그에 방심하여 깊숙이 쳐들어온 마족들을 몰살시키려는 속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럴 거라면 이곳에 메테오를 떨구지 않고 성만 포기하고, 마왕군을 조금 더 끌어들이는 것이 맞는 판단이겠으나.
그것조차 방심을 없애기 위한 함정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상대는 인류요, 인간이요, 용사다.’
그렇게 생각하던 데르마치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인류 측 인원 하나와 마주쳤다.
“…….”
“…….”
시선이 마주친 르윈과 데르마치는 서로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새끼다.’
‘이 꺼림칙한 느낌. 저놈이다!’
저 새끼가 마왕이다.
저놈이 진짜 용사다.
서로가 서로를 확인한 순간, 르윈과 데르마치는 확신할 수 있었다.
***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으나, 르윈과 데르마치는 서로 시선을 피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너냐?”
“너구나?”
긴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답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서로의 질문을 통해 원하는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열 번의 삶이었다.”
말없이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던 르윈과 데르마치였으나, 먼저 백기를 들고 입을 연 것은 데르마치였다.
“처음에는 위대한 마신의 뜻에 따라 마왕이 되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지. 몇 번의 실패가 있었고, 시행착오가 있어 반란도 당했으나, 그래도 인류를 정벌하려 노력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며, 데르마치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마족과 인류의 전쟁.
그 시작은 무엇인가? 대전쟁이라고 불리기 이전부터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 관심을 가졌고, 몇 번의 전투가 있기는 하였으나, 대륙과 대륙 간의 전쟁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인류가 그렇듯, 마족이 그렇듯.
그냥 순수하게 서로가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미 인류와 마족의 대전쟁은 이해득실을 초월한 싸움이 되고 말았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이곳, 아켄성이었다.
막대한 재화를 쏟아부어 함정을 설치하고, 그것을 통하여 적들의 손실을 만든다.
전쟁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으나, 이번에 투입된 비용은 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심지어 인간끼리의 전쟁은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할 수라도 있지, 마족에게 이겨 봤자 나오는 것은 얻어도 손해인 땅뿐이었다.
그럼에도 인류는 막대한 재화를 써 가며 마족들을 밀어내었다.
그 재화를 지원한 이들 중에는 마족이 지나간 자리에는 생명체가 없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큰 손해를 감수한 이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
대다수의 사람은 마족을 없애기 위해 그 정도 금액을 사용하는 것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이 여신의 뜻이었으니까.
“마족과 인류의 전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종교 전쟁이다. 창조의 여신과 파괴의 여신을 따르는 신들과 신자들의 전쟁.”
그것이 점차 규모를 키워 대륙과 대륙의 전쟁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루는 이유가 신의 뜻이 되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자들이 왜 신의 의지를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가.”
처음에는 그만 용사 새끼랑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었으나.
하나의 불만이 불신이 되고.
그 불신으로 인하여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데르마치였으나, 혼자만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족에게 마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 존재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고, 마신을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존재 또한 자신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평화를 원한다. 나와 같이 불멸을 살아가는 용사여.”
이건 도박수였다.
르윈이 인생 10회 차라는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은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르윈이 ‘그게 무슨 개소리야?’라고 말한다면 데르마치는 죽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쪽팔려서 죽을 것이다.
‘제발 내 예상이 맞아라.’
그리고 쪽팔린 것을 제외하더라도, 이 예상이 맞아야 했다.
저쪽이 진짜 용사는 맞으나 자신처럼 여러 번의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쪽의 정보만을 넘긴 꼴이 되는 것이다.
마왕이란 여러 번의 삶을 윤회한 존재다.
그것이 인류에게 퍼질 경우, 매우 안 좋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같은 마족에게 이 비밀을 이야기할 경우, 그 존재는 저주를 받아 비참한 꼴을 당하는 것을 보았으나, 인류에게는 해당이 안 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후.”
다행히도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더 나아가서 공감해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성공인가?’
그렇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 상대방의 입에서 자신처럼 진솔한 이야기가 나올 차례였으니까.
“그런 당신에게 좋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
그러나 막상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마왕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요사한 목소리였다.
‘이게 그건가?’
마족에게는 없으나, 인간에게는 존재하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한 직업은, 인간이 같은 인간을 속여 돈이나 이권 같은 것을 빼앗는다고 했던가.
마족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약자가 그랬다가는 강자에게 맞아 죽었을 테고.
강자는 그런 짓을 할 필요 없이 그냥 뺏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사기꾼.’
보고에 따르면, 사기꾼이라는 자들의 특징이 이러한 목소리와 말투라고 했던가.
“모두를 평화로 이끌, 평화의 신이 있는데.”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데르마치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런 존재 또한 부하들의 보고에 있었으니까.
‘사이비 종교.’
이 새끼, 진짜 용사 맞나.
이 또한 진짜 용사의 함정이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하는 데르마치였다.
***
‘예상은 했는데.’
인류 측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헬리아스는 생각했다.
‘그냥 싸우자는 거구나?’
평화 사절단으로 찾아왔으나, 될 턱이 없다는 것은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마족의 수장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뿌리 깊게 내려앉은, 평범한 마족들이 인류에게 갖는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 세상에 공존할 수 없는, 아니 공존해서는 안 될 적.’
마족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인류 또한 마족에게 그러한 생각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대부분의 전쟁에서 먼저 공세를 취한 것은 마족이었으니, 일방적으로 공격당한 인류의 입장에서는 마족보다도 더한 원한을 가져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우선 마족은 마신을 버려야 합니다. 파괴란 아무런 소용도 없는 개념입니다.”
해석:너희 마신 못 버리지? 그냥 싸우자니까.
“그리고 그간 마족들이 인류를 침범하여 끼친 피해에 대한 보상과 사과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해석:너희 거지잖아. 무슨 수로 복구 비용 줄 건데. 거기에 자존심도 없이 사과도 해야 하는데, 할 거야?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평화 협상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모든 내용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 대한 피해 보상 같은 경우는 인류 측에서도 흔히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했고.
또 마족이 먼저 때린 것도 맞으니, 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맞는 일이긴 하다.
그런 일을 했다가는 자신이 혁명을 당한다?
인류에게 있어서 알 바인가?
‘그럴 수 있어. 충분히 그럴 만해.’
그러니 이해했다.
그러나 단 하나만큼은 이해를 한다 해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우리 측의 조건입니다.”
덜덜 떨던 대표자가 붉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본다.
그에 코웃음을 한 번 쳐 주자 기가 푹 죽는 모습이, 헬리아스조차 안쓰러울 정도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인류의 대표라고 보기에는 기가 너무 약하다.
심지어 소개를 들었을 때, 살면서 처음 들어 본 신을 모시는 자라고 말하였다.
‘평화의 신, 무링신이라니.’
인류와 마족의 첫 평화 사절단에 어울리는 책임자였으나.
동시에 수많은 마족의 역사에서도 단 한 번도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신이기도 했다.
아마 그 이름의 뜻이 무쓸모 잉여신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헬리아스는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건데.’
그런 그녀가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이러나저러나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데르마치를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녀석이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동안 쌓아 온 믿음과 신뢰가 있었으니까!
‘…이 새끼, 도망쳤나?’
그리고 원래 믿음과 신뢰라는 것은 쉽게 깨지는 법이었다.
자리를 비운 지 30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데르마치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헬리아스는 초 단위로 데르마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마족 측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만…….”
그렇게 말없이 데르마치를 기다리는 헬리아스의 귓가에 레피스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협상을 끝내고,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는 레피스의 간절함이 두려움을 이겨 내고 마왕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후우.”
그 애절한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내쉰 헬리아스는 표독한 표정으로 레피스를 바라보았다.
과연 마왕이라고 할까,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압박된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류 측 사절단 전원이 긴장하게 된다.
그것이 마왕이란 존재다.
그리고 그 마왕이 자신의 의견을 인류에게 고했다.
“첫 번째부터.”
“가능합니다.”
“그래, 가능… 응?”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협상을 진행하려 한다니.
그렇게 말을 내뱉으려던 헬리아스는 자신의 말을 끊고 대답한 이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했냐?”
도망친 것이 아니라는 안도는 짧았고, 데르마치가 말한 내용에 대한 경악은 길었다.
지금 이 새끼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인류가 몰라서 그렇지, 마족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입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마신을 기본적으로 믿고, 그 아래 신들을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느낌일 뿐이지.
“그러니 인류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
“…….”
“…….”
자신 있게 말하는 데르마치의 모습에 인류도 마족도 모두 입을 다물었으나, 데르마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저부터 대표님의 종교로 개종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개새끼야야아아아아아아!
주변에 있는 모든 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마신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