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46. 평화를 위해서 (4)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오랜 친구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동아리 예산 더 줘!”
“…….”
분명 어제 쓰러트렸는데 부활한 서류의 산과 사투를 벌이던 라일라는 옛 선조들도 틀린 말을 하는구나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돈 없어.”
진짜다.
진짜로 돈이 없다.
황금 공이 세운 베르샤 아카데미였고, 그렇기에 다른 아카데미와 달리 운영비가 부족한 적이 없었으나 최근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이사장님 쪽에서 전쟁 지원을 많이 한 것 같고. 또 아카데미 차원에서 선발된 용사와 졸업생들을 위해 투자를 많이 한 것 같으니까.”
지금이야 평화 무드지만, 언제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른다.
마족이 기습을 한 적이 있어도 뒤통수를 친 적은 없다고 하나, 인류의 역사에는 수많은 기만술이 존재했고.
그것에 당해 크게 낭패를 본 경험이 존재하기에 창조의 여신의 신탁이 떨어졌음에도 인류는 마족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고 있었고.
그렇기에 마족과의 최전선에서 싸워야 할 용사 양성 기관, 베르샤 아카데미의 이사장으로서 용사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용사가 될 학생들을 위해 최신식 단련 시설을 준비하고.
드림 월드를 위해 전쟁 특수로 인하여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는 상급 이상의 마력석을 긁어모으고.
마족과의 전쟁을 위해 도움을 준다는 드워프들이지만, 무구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은 또 알아서 구해 와야 했다.
철을 비롯한 각종 금속 또한 전쟁 특수로 인하여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울 지경이었고.
그동안 쌓은 인맥과 미래의 용사들을 위해 쓸 것이라는 대의명분이 있기에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말하면, 제값은 지급해야 했기에 이사장의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곳간이 마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카데미의 예산을 줄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라일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재정을 더 요청한다면 이사장은 가문의 물건들을 팔아서라도 지원을 해 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재정 지원을 위해서는 이사장은 큰 손해를 봐야 한다는 소리다.
정말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예산을 아끼고 아껴야 한다.
“안 돼?”
“안 돼!”
아무리 소꿉친구의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서 동아리 예산을 올려 달라니.
“우리 동아리, 무링신 연구 동아리인데?”
“그게 왜.”
“최근에 마족 개종시킨 곳이잖아. 창조의 교단에서 지원 많이 하라고 신탁도 내려왔는데.”
“…진짜?”
“오늘 아침 제국 신문 첫 표지였는데, 못 봤어?”
“…봐야 할 종이들이 이렇게 쌓여 있는데, 신문을 보겠어?”
한때 라일라 역시 아침마다 신문을 챙겨 보기는 했다.
하지만 고등부에 올라온 이후에는 신문을 볼 시간에 서류 하나를 더 처리해야 했기에 신문을 안 본 지 제법 오래되었다.
덕분에 세상 소식을 모른다… 라고 하기에는 요즘 화제로 떠오르는 소식들은 다 서류 안에 들어 있기에 그다지 상관없었으나.
역시나 최신 정보들까지는 알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네.”
“교단에서 지원 많이 하라고 신탁이 내려오면 기부금 같은 것도 많이 들어오지 않겠어?”
“그건 교단으로 들어오는 거잖아. 동아리 활동비는 다르지.”
“동아리 예산은 이미 다 집행이 되었어. 못 줘.”
2학기 예산 집행은 이미 여름방학 전에 끝났다.
내년 1학기 예산 또한 대부분이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소꿉친구의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예산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냥 창조 동아리 예산 좀 빼서 주면 안 돼?”
“제정신이야?”
다른 동아리의 예산을 빼돌리는 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물며 그 동아리가 국교라고 할 수 있는 창조의 교단의 베르샤 아카데미 지부나 마찬가지인 곳이라면 더욱더 문제가 되었다.
“여신이 지원하라고 하는데, 창조 동아리가 뭘 할 수 있는데.”
“…어?”
그러나 르윈의 말에 라일라는 순간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왜 맞는 말이지?’
신탁이 내려왔다.
그것만으로 세상은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었다.
자신이 입학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제국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 중 명문 끝자락에 자리했던 베르샤 아카데미가 고작 몇 년 만에 황실 아카데미를 위협하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황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기에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서 이렇게 말할 뿐, 이미 대다수의 사람은 베르샤 아카데미를 황실 아카데미의 위로 취급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용사.
오직 베르샤 아카데미에서만 용사가 나올 것이라는 신탁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이 대륙에서 창조의 여신의 영향력은 강력했고, 용사의 이름은 모든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신앙심이 없는 이들마저 신탁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물며 창조의 교단이라면 여신의 신탁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교단의 아카데미 지부라고 할 수 있는 창조 동아리는…….
“그냥 내놔야지.”
무링신 연구 동아리에서 요청한다면 동아리 비용을 뜯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여신의 뜻이었으니까!
“하아, 명분은 뭔데?”
“교세 확장.”
“지금도 충분하지 않아?”
비록 새벽 신문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하나, 라일라가 세상 물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용사 양성 기관이라고도 불리는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으로서 이번 대전쟁과 관련된 정보는 각국 수뇌부에 못지않을 정도로 들어온다.
지금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들이 그 증거.
그렇다.
이제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 업무는 개인을 넘어, 학생을 넘어, 아카데미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 되었고.
그로 인하여 라일라의 총학생회장 은퇴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부족하다고?”
라일라는 머릿속에서 정보들을 꺼낸 뒤 정리를 해 보았다.
“너, 동아리실 안 가지?”
“…최근에는 바빴으니까?”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라일라의 시선에 르윈은 잠시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라일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무링신 연구 동아리만 하더라도 얼마나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반 학생들 관심은 물론, 아카데미에 거주하고 있는 여러 교단의 사제들이 매일 드나들고 있어서 동아리 활동 자체가 잘 안 될 정도라고.”
그로 인하여 동아리 활동이 어렵다는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항의가 여러 차례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물론 최근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활동이라고 하면 어떤 망나니 같은 공작가 아들내미가 ‘할당량’을 채워 오라고 시킨 것이기에 라일라는 그 항의를 가볍게 무시했다.
“빌어먹을 신자 놈들. 여기서도 우리의 대업을 망치려고 하는구나!”
“종교 활동을 하는 이상, 너도 신자 놈들 중 하나거든?”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기어코 라일라의 손바닥이 르윈의 등짝을 강타했다.
신탁 이후 베르샤 아카데미에는 학생이 반, 교직원들이 반의반.
그리고 남은 반의반은 성직자라는 말이 있는 베르샤 아카데미였고, 실제로 아카데미 내부에 지나다니는 여러 교단의 사제들은 학생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총학생회장실에서 신자 놈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으니, 라일라로서는 폭력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교단 사람들이 총학생회장실에서 교단을 욕하는 소리를 들어 봐. 용사 양성 기관이라고까지 불리는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이 종교를 우습게 본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렇게 된다면…….”
아프다고 울상을 짓는 르윈을 내려다보며 라일라는 으르렁거리며 소리쳤으나.
말을 내뱉다 보니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많은 교단의 인원들이 상주하고 있고, 학생들은 그곳의 용사로 선발되는 인재들인데. 그런 곳의 총학생회장이 불신자라고 소문이 나게 된다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은 수많은 사제가 아카데미의 이사장에게 항의하는 모습이었다.
베르샤 아카데미는 이미 하나의 성지였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제들은 일반 사제뿐만 아니라 교구를 담당하는 주교급 사제도 다수 있다.
그뿐인가? 상주만 안 할 뿐 추기경 같은 종교적 거물과 성자와 성녀 같은 각 교단을 대표하는 얼굴마담들도 자주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다.
일반 사제를 넘어 그런 거물들까지 항의하면 아무리 베르샤 아카데미의 이사장이자 제국 최고의 부자 중 한 사람으로서 막대한 전쟁 지원금을 내는 황금 공이라고 하더라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노력해도 불가능했던, 아카데미 총학생회장 자리를 탈출하는 일이!
“……!”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그동안 실천하지 않았다니.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다면 총학생회장 선거 이전에 저질러서 당선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랬다면 아카데미 내부의 혼란도 줄고, 자신이 했던 업무들도 줄었을 것으로 생각하여 아쉬워하는 라일라였으나, 이미 지나간 과거를 아쉬워해 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맞아. 아무리 신을 믿는 자들로서 궁금한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을 방해하는 것은 좋지 않지. 하물며 ‘전도’(할당량)를 (채우기)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방해하다니!”
그렇다. 이건 총학생회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비록 그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무링신 연구 동아리 학생들이 자꾸 다른 동아리실에 찾아와 동아리 인원들을 빼 가려 한다고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일같이 무링신 연구 동아리에서 무슨 사고를 쳤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그 동아리의 실질적인 동아리장이자 자신의 소꿉친구인 르윈이 바빠 죽겠는데 찾아와서 매번 귀찮은 일거리만 던지고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무시하면 안 되었다.
그들 또한 베르샤 아카데미의 학생이었고.
학생의 편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바로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인 자신의 역할이었다!
그렇다.
이건 아카데미 총학생회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절대, 절대로 총학생회장에서 잘리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도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을 수 있는데!”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었다.
아니, 부족한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은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한 부탁을 들어주려고 하는 것뿐이었다.
“예산도 잘 말해 볼게!”
그렇게 팔을 걷어붙인 라일라는 총학생회 인원을 데리고 말 그대로 위풍당당하게 총학생회장실을 떠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것 같은데.”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르윈은 부들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라일라가 저렇게까지 나설 정도로 업무가 많다는 것에 조금의 안타까움이 있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돌아왔을 때의 라일라의 표정이 자꾸만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자기 위치를 너무 몰라.”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
그 직위가 괜히 공무원 프리패스권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유명 아카데미가 아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이라고 하더라도 공무원 시험에서 우대를 얻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력직.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은 웬만한 공무원들보다 더 실전 경험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매우 높으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그뿐인가? 총학생회장이 된다는 것 자체가 수많은 학생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만큼 재능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으며, 수많은 학생의 대표로서 그 학생들을 책임졌다는 증거도 된다.
하물며 작은 아카데미도 그러한데 제국에서 최고 명문의, 그것도 이제는 성지이자 하나의 성역화가 되어 가고 있는 베르샤 아카데미에서 장기 집권을 하는 라일라다.
이름 없는 하급 가문, 아니 평민이었다고 하더라도 쉽게 대할 수 없는 거물인데 그녀의 뒤에는 라인하르트라는 성까지 붙어 있다.
거기에 라일라에 대한 학생들의 지지는 이미 강철을 넘어 전설의 금속들과 마찬가지인 수준이다.
안 그래도 원칙적으로 아카데미에서는 안 되는 사제들이 눈치를 보면 보았지, 라일라에게 항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탄핵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닐 라일라를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는 르윈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왜, 왜?”
‘선 넘지 마세요! 학생들을 위해 성직자들에게 항의하는 라일라 라인하르트.’
‘바텐데르크 추기경은 그 모습을 보고 사제들의 오만함을 깨우쳐 주었다며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라일라 라인하르트, 아카데미 총학생회장 최초 지지율 144퍼센트 달성.’
“왜 지지율이 오르는데?”
지지율이 100퍼센트가 넘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기력도 없이, 라일라는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