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47.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고… (1)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것을 기억하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그건 전능하다고 여겨지는 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신들이 인간보다도 더 불리한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냥 세상이 탄생한 순간, 불쑥 탄생하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탄생한 신은 자신이 탄생한 이유를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는 이들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열심히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쳐 봐도, 지상의 생명체들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
태초에 세상이 만들어지고 생명체가 탄생하였으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겠다 싶을 무렵, 우연히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에 벼락 하나가 떨어져 내렸고, 그곳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사람들은 그것에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꼈고.
-이거다.
신들은 신앙을 얻을 방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해 봤자 살기 바쁜 지상의 생명체들이 거들떠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상의 존재들에게 자신들의 필요성을 보여야 했다.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경외와 두려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겨 불을 내렸노라.
그렇게 태초에는 자연의 개념을 담당하는 신들이 치고 올라왔다.
힘을 쥐어짜 불씨 하나를 내려 주기만 하여도 인간들은 신을 찬양했고, 그 불을 잘못 다루어 재앙이 일어났을 때 비가 내리면 신의 자비에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문명이 발전하고, 하나의 땅에 정착하며 살아가기 시작한 이후에는 대지의 신이나 풍요의 신들이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정착한 이들이 주변 부족들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서로 싸우기 시작할 무렵에는 전쟁의 신을 비롯한 전투와 관련된 신들이 주가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고 하나의 대륙에는 인간을 비롯한 여러 종족이 자신의 구역을 만들었고, 다른 하나의 대륙에는 마족이라는 종족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고, 고대와 달리 살 만해진 인류와 마족은 생존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러다 단순한 자연보다는 뭔가 고차원적인 개념이 더 위대한 것으로 생각하며 추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맞추어 발 빠르게 자신의 신명을 사기 친 라헬은 창조의 여신으로서 인류의 최고신이 되었고.
마족에서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그냥 다 때려 부수는 미치광이를 최고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신들은 그러한 현상을 보고도 그러려니 했다.
최고신의 자리는 이전부터 계속 바뀌었던 것이고, 시간이 흐르고 여러 변수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바뀔 테니까.
여태까지 그러했고, 이후로도 그러하리라 생각했기에 가만히 있던 신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창조? 창조오오오? 사기도 작작 쳐야지. 탄생이 언제부터 창조냐. 그걸로 따지면 지상의 생명체들은 번식 활동이 아니라 창조 활동을 하고 있었던 거냐?”
“이년은 왜 또 시비야?”
창조, 아니 탄생의 여신과 파괴의 여신.
둘의 궁합은 최악이었다.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을 지닌 존재들이 서로에게 본능적인 불쾌감을 가지는 경우는 다수 있었으나 서로 그것을 숨기고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두 여신은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놓고 드러내며 상대방을 깎아내렸다.
“‘뿌셔, 뿌셔’밖에 못하는 저능한 년이…….”
“남들 생식 활동하는 것 구경하는 것밖에 못하는 변태 같은 년이…….”
“뭐?”
“뭐.”
신들끼리 전쟁이라도 가능했으면 투기장이라도 열어 줬겠으나, 아쉽게도 신들은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또 지랄이구나… 하며 고개를 젓던 신들이었으나.
-파괴의 신은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멍청한 년이다.
-창조의 여신은 창조한 게 하나도 없는 사기꾼이다.
“응?”
“어라?”
그냥 싸우는 것을 넘어 자신들을 믿는 신도들에게 서로를 비방하는 내용을 퍼트리기 시작하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미친 건가?”
신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천상의 존재가 지상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했다.
흔히 신력이라 불리는 영구적이지 않은 힘이.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것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신앙을 받아야지만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힘이었다.
그런 귀중한 힘을, 저 미친 것들은 상대를 욕하기 위해 쓰고 있었다.
아무리 최고신 자리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저건 낭비다.
저런 것에 신력을 쓸 거면 그냥 최고신 자리를 바꿔 주든가.
그렇게 혀를 차던 신들이었으나, 세상은 늘 신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갔다.
-마족의 신은 세상을 파괴하려고만 하는 악신이다.
-인간 놈들이 믿는 신은 아무것도 못하는 허수아비이자 인간 같은 사기꾼이다!
최고신이라는 작자가 다른 대륙의 신을 깎아내린다.
아니, 깎아내린 것을 넘어 불구대천의 원수로 삼았다.
지상의 존재는 그 신의 말에 따라 상대 신을 믿는 존재를 비난했고, 비난은 곧 전쟁이 되었다.
“…어라?”
그리고 명확한 적의 존재 인류가, 마족이 뭉쳐야 할 명분이 되었다.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 아군끼리는 더욱 단결하게 되었고, 적에게는 더욱 악의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것이 두 신에게는 더욱 굳건한 신앙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어? 어?”
신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저 미친 것들은 쌓이고 쌓인 신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자신들의 대리인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내가 선택한 아이가 네년을 끌어내릴 거야.”
“그래, ‘선택’이지. 내 목을 칠 칼조차 스스로 못 만드는 온갖 쓸데없는 일아.”
“그래, 열심히 떠들어라. 지상으로 떨어져서 파충류 취급받아도 그렇게 입만 살아 있나 보자.”
그렇게 용사와 마왕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대리전을 하게 된 두 여신을 인류와 마족은 더욱 굳건하게 믿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인류와 마족을 말리려던 신들도, 나중에는 기세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합류해야 할 정도였다.
“X년들아!”
그 과정에 피해를 입은 신들 또한 다수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던 신은 고대 시절부터 어렵게 살던 평화의 신이었다.
“빌어먹을 것들. 개 같은 것들.”
최고신이라는 것들이 판을 벌인 전쟁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나설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평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모두 뒤졌기 때문이었다.
“저주하겠어. 네년들을 저주할 테다!”
그렇게 평화의 신은 저주를 내뱉으며 신격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저 빌어먹을 전쟁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때 인류든 마족이든 다시 평화를 찾을 것이다.
“…….”
그렇게 희망을 품기도 했으나, 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질 뿐이었다.
“다시 생각해 봐라. 언젠가 평화의 시대가 올 수도 있잖아.”
“오겠냐?”
그렇게 같이 지상을 뒹굴던 다른 신이었던 이들의 만류에도 평화의 신은 자살을 선택했다.
다음 생에는 저런 미친것들이 최고신이 아닌, 멀쩡한 놈들이 최고신인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며.
그리고.
***
‘…뭐지?’
평화의 신은 생각했다.
그리고 의문을 느꼈다.
‘신도 다음 생이 있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평화의 신은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과 같은 존재인가.
답을 말하자면 ‘아니요.’였다.
평화의 신은 죽었다.
신격을 잃고, 지상으로 추락한 끝에 자신의 생명을 끊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은 무엇인가.
‘그렇구나.’
아직 자신은 완벽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인간으로 따지면 태아인 상태였고, 식물로 따지면 새싹이었다.
‘진짜 평화의 시대가 찾아온 건가?’
칠흑 같은 어둠 속, 두 귀를 집중하여 작은 소리를 듣는다.
아주 작지만 자신을 섬기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평화의 신은 생각했다.
‘아.’
-평화의 신께서 말씀하시길, 자신은 쓰레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세상을 나아가는 법을 배우라 하셨습니다.
-평화의 신께서 말씀하시길, 평화는 힘에서 나오는 법이다.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는 늘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자신을 단련하여, 이 험난한 세상에서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세상은 더 미쳤구나.’
저딴 게 평화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은 저런 말을 했던 적이 없었다!
‘단체로 미친 건가?’
순간 욕설이 튀어나왔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만했다.
생각해 보면 최고신이라는 것들이 그 미친것들이었으니까.
그것들이 계속 군림한 세상은 안타깝게도 미쳐 버린 것이다.
-힘을 숨겼냐고? 그럴 리가. 내가 강해지게 된 것은 다 평화의 신을 믿고 난 이후이다!
-무슨 소리냐고? 멍청한 놈들. 네놈들은 인류를 정복해야 한다고 했지. 왜 그랬냐. 위대한 파괴의 신을 따르기 위해서? 그래. 그렇다고 치자. 네놈들 말이 다 맞는다고 하고. 우리 마족이 인류를 정복했다. 그럼 그게 뭐냐. 그래. 평화다. 적을 쓰러트리고 찾아오는 것은 곧 평화다. 반대로 말하면 진정한 평화는 곧 힘이지. 그것이 평화의 신을 믿으면 강해질 수 있는 이유다.
‘돌았나?’
심지어 미쳐 버린 것은 인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마족 하나가 다른 마족들을 패며, 자신은 전도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 않나.
처맞은 마족들에게 평화의 신을 믿으면 강해질 수 있다고 하질 않나.
‘전쟁의 신이 최고신이었을 때도, 저런 미친 논리는 없었는데!’
진짜 평화의 신으로서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욱 최악인 것은 따로 있었으니.
‘아, 안 돼…….’
저런 개소리들이 하나하나 자신의 신앙으로 쌓이고 있었다.
‘버, 버틸 수가 없어!’
온전한 신에게도 신자들의 신앙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원래 신에게 성별이 존재하지 않으나, 신자들의 믿음만으로 남성형 신이 여신으로 바뀌는 경우도 존재할 정도였다.
심지어 평화의 신은 이미 죽은 신이었다.
스스로 존재 자체를 지우고, 이 세상에서 사라졌던 신이 새로운 신앙을 얻어 다시 탄생하는 상황.
즉 이전 생의 기억은 존재하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평화의 신과 지금의 평화의 신은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진정한 평화는…….
-나를 개종시키려면 싸워라. 그러나 패배하면 너희는 무링교의 신자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무링신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를 위해서라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받더라도…….
‘으아아아아!’
신앙이 점점 자신을 오염시킨다.
이전이라면 헛소리라고 비웃을 말들이 점점 ‘그럴 수도. 그럴 만한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다. 저런 건 평화가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그런 게 아니다!
아닌가? 맞나. 어차피 창조의 여신이라고 사기 치는 것과 인류 뿌셔. 창조를 주장하는 사기꾼 뿌셔를 소리치는 파괴의 여신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라면 조금 과격한 수를 써도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니 그렇네.’
죽기 전까지 두 여신을 저주하던 자신이 아닌가?
그 둘을 엿 먹일 수만 있다면 진정한 평화 따위가 뭔 상관인가.
쩌적.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났을까.
평화의 신은 칠흑 같은 어둠이 갈라지고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걸어가며 당당히 선언했다.
“내가 곧 무링이다.”
평화의 신이 아닌 무링신이다.
과거는 죽고, 다시 태어난 평화의 신은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나왔고.
“침입자닷!”
“컥!”
식물에게 얻어맞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