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47.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고… (3)
채취한 신의 눈물을 연구한 결과, 그냥 눈물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에 아인헤르츠가 ‘정말로 쓸모가 없는 신이구나!’라는 감탄사를 내뱉고.
그에 또다시 무링신이 눈물을 흘리며 그냥 죽자고 마음먹는 순간이었다.
“그냥 죽겠다고?”
인간의 신화와 달리 천상에는 악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악마와 비견될 정도로 성질이 나쁜 신들이 존재했을 뿐.
“억울하지도 않아?”
그러나 무링신은 확신할 수 있었다.
천상에 존재하는, 신성이 더러운 신들조차도 이 녀석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다 들었어. 평화의 신인데 평화인 시대가 없어서 망했다며.”
그러했다.
빌어먹을 마족들은 태생부터 쌈박질을 하느냐 평화를 몰랐고.
빌어먹을 인류는 입으로는 평화를 부르면서도 평화가 찾아올 만하면 바로 전쟁을 시작했다.
그나마 몇몇 종족들은 평화롭게 살아가기도 했으나, 그런 종족이 있으면 인간 놈들이 내버려 두지 않으니.
인류와 마족의 역사에 평화라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평화의 신은 위태위태했는데.
“여신 둘의 싸움에 마지막 희망마저 빼앗겼다며?”
그랬다.
그 망할 것들이 최고신이 된 이후 대륙 간의 전쟁이 기본이 되었고, 입으로라도 평화를 외치던 사람들이 멸종하고 말았다.
그리고 신성을 잃고 추락했고.
비루한 목숨을 끊었다가 부활해서 이 치욕을 당하고 있었다.
“잘 생각해 봐. 최고신의 자리를 빼앗는 거야.”
최고신의 자리? 솔직히 말해서 신이었던 시절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절에도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도 있었으나, 애초에 평화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최고신 같은 자리를 원하지 않았다.
평화란 무난한 것이니까.
최고 같은 다툼이 있을 만한 자리는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라헬과 마신을 너처럼 만드는 거야.”
그러나 그 이후의 말들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널 이 꼴로 만든 녀석들을 똑같이 만드는 거지.”
평화의 신으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으나, 거절하기에는 너무 달콤한 유혹이었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녀석들을 지금의 나처럼 만든다.
이보다 더 좋은 복수가 어디 있을까.
심지어 그 녀석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한다면.
그렇게 해서 늘 내려다보던 그 녀석들을 올려다보게 만들 수만 있다면!
‘아, 안 돼. 이건 악마의 유혹이야.’
나는 신이다.
평화의 신이다.
무링신이다!
‘…응?’
그렇게 각오를 다지려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자신은 평화의 신이었으나, 동시에 무링신으로 불리는 신이었다.
한때 평화를 사랑한 고결한 신격을 지닌 신이었으나, 그때의 자신은 엄밀히 말하면 아주 먼 고대에 죽은 존재였다.
-무링신께서 말씀하시길,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입으로만 말하는 평화는 침략자의 손에 끝이 나는 법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칭 교주를 지칭하는, 그러면서 믿음은 바닥인 교주가 말했다.
평화는 힘에서 오는 것이라고.
-마족이 언제부터 약자의 말을 들었다고 하는 것이냐! 강자가 곧 법이다. 그것이 마족의 법이다! 우리가 파괴의 여신을 따른 것은 파괴의 여신께서 가장 강하시기에 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의 신이 가장 강력한 신이 된다면, 우리가 평화의 신을 따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예전과 똑같은 마족들이었으나, 과거와 다른 것은 자신을 믿는 마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새끼, 마족 주제에 무링교 교주라는 녀석보다 신앙심이 더 높았다.
그뿐인가?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어서 개종하거라, 허접한 불꽃 발텐데르여! 무링신을 영접하고, 진정한 힘에 눈을 뜨지 않는 한 네놈은 허접한 불꽃으로 남을 뿐이다!
마족 최강이라 불리는 사천왕을 쥐 잡듯이 때려잡고 있다.
아니, 때려잡는 것을 넘어 반쯤 죽였다 살려 주는 것을 반복하며 굴복시키고 있었다.
-위대한 파괴의 신을 욕보이다니!
-천벌을 받을 것이다, 데르마치여!
물론 마족에게 뿌리 깊게 내려온 파괴의 신에 대한 신앙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파괴의 여신 또한 위기감을 느꼈는지 지속적으로 신탁을 내려 마족의 제사장들을 움직였으니까.
-파괴의 신을 따른다는 녀석들이 파괴의 신의 가르침을 모르다니.
-커억!
-이 무슨 행패를?
-신탁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신탁을 실현하려면 강해져라, 애송이들아!
신탁을 받은 제사장들이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파괴의 신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답게 인간의 성직자와 달리 어느 정도 무력을 보유한 제사장들이지만, 그렇다고 사천왕을 쥐어 패는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오늘부터 이곳을 무링교 마족 지부로 임명한다.
파괴의 신의 이름이 지워지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다.
그 모습에 짜릿함을 느끼며 무링신은 생각했다.
‘평화란 무엇일까.’
사실 죽은 자신이 어리석었던 게 아니었을까.
왜 평화를 무력 없이 말로만 이루려고 했던 것일까.
‘아, 그렇구나.’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말뿐인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지난 생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말뿐인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평화의 신은 죽었다.
그리고 부활한 지금, 신자들은 힘을 위한 진정한 평화를 원하고 있었다.
신이란 무엇인가.
바로 신자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존재였다.
신자의 믿음이 곧 자신의 근본이다.
신자들이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그것을 이루어 주어야 하는 것이 신이 된 자로서 행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포기하고 이대로 죽을 거야?”
르윈의 말에 무링신은 고개를 저었다.
믿는 자들이 없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열성적으로 자신을 믿는 자들을 외면하고 죽을 수는 없었다.
***
신이 지상에 강림했으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신성이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의 존재였기에 그런 것도 있고.
“이게 신이라고?”
“겁나 약해!”
“커헉!”
식물 모녀에게 까일 정도로 너무나도 나약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르윈은 그 하찮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을 위해 신명부터 무쓸모 잉여신을 줄여 무링신으로 하지 않았던가!
‘신은 쓸모가 있으면 안 돼.’
과거 라헬은 나약했던 시절에는 그래도 신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최고신 자리를 굳건하게 굳힌 이후에는 점점 쓰레기가 되어 가는 모습을 르윈은 직접 목격하였다.
물론 라헬은 한결같았고, 그 시절의 자신이 멍청해서 그렇게 보인 것뿐일 수도 있으나.
어찌 되었든 신을 믿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얻은 르윈이었다.
‘그걸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신을 믿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이 내리는 기적을 원해서.
다른 하나는 무언가에게 기대고 싶은 인간의 본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로 첫 번째 조건을 무링신은 채울 수 없다.
무쓸모 잉여신이 기적을 써 봤자 뭐가 되겠는가?
그러니 무링신은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인간이 편하게 기댈 수 있게, 그 어떤 신보다 편안한 신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은 버린다.’
태생부터가 무쓸모 잉여신이다.
‘권위는 버린다.’
필요하다면 이 녀석을 십자가에 묶어 화형식을 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런 신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나랑 마왕이 다 알아서 한다!’
원래 창조의 여신도, 파괴의 여신도 그다지 한 게 없다.
운 좋게 시기를 잘 타서 최고신으로 추앙을 받았고.
운 좋게 두 신이 서로를 비난하여 절대적인 적을 만들어 신앙을 벌었다.
그리고 운 좋게 그 신앙을 모아 부여한 사도들이 기적의 무승부를 펼치며 신앙이 굳건해졌을 뿐이다.
말도 안 되지만 그냥 다 우연이었다.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연의 신이 존재한다면 그 둘의 윗줄에 두어야 할 정도로 우연과 우연이 겹쳐진 결과일 뿐이었다.
그러니 무링신도 그 길을 따라가면 될 뿐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신과 데르마치가 다 알아서 신앙을 벌어다 줄 것이다.
‘그 전에.’
르윈은 시바의 잼잼 펀치를 진심으로 가드하는 무링신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 신이니까.
하나 정도는 직접 정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교리 같은 건 다 만들어 두었지만, 하나 안 만든 게 있는데.”
“억! 뭔데?”
허접한 가드를 뚫고 옆구리에 작렬하는 시바의 펀치에 고통을 호소하는 무링이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무링교를 대표하는 한마디.”
각 종교는 종교를 대표하는 하나의 구절이 존재한다.
신이 자신을 믿는 신자들에게 내리는, 자신을 대표하는 한마디.
대표적인 것으로는 창조의 여신의 ‘천지 만물에 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나니.’와 파괴의 여신의 ‘모든 것을 파괴할 뿐.’이 존재했다.
“…그딴 걸 만들라고?”
“종교 전통이니까.”
하나같이 신생의 흑역사와 같은 대사들을 떠올리며 무링신은 굳이 그런 것을 만들어야 하나 싶었으나.
“과거에 쓰던 거 쓰든가.”
“…원래 새 술은 새 주머니에 받아야 하는 법이랬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하는 모습이, 이전 생의 평화의 신은 꽤나 부끄러운 말을 남긴 듯했다.
“…….”
굳이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었다.
심지어 이미 사라진 인생, 아니 신생이지 않은가!
인생 10회 차, 남들에게 알리기 쪽팔린 인생을 제법 살았던 르윈은 이번만큼은 무링신을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받은 무링신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구절을 남길 수 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컥!”
“개 약해!”
“…….”
“…….”
시바의 사이드 훅을 맞고 침몰하는 무링신을 바라보며, 르윈과 엘리는 입을 다물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평화의 신을 대표할 만한 구절로 어울리는지는 둘째 치고, 묘목한테 처맞고 쓰러지는 신에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
“…….”
신의 일과는 간단하다.
대부분 천상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보내는 것이 전부다.
그것이 신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였으니까.
“…개새끼.”
그저 내려다보는 것이지만, 신들에게는 희로애락이 모두 존재하는 행위였다.
신자가 줄어들면 자신의 생명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고.
신자가 늘어나면 자신의 힘이 늘어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신들은 기쁘든 슬프든 화가 나든 지상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그런 의미에서 최고신인 라헬과 파괴의 여신은 늘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신자들이 자동 양산이 되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있겠는가!
“끄아아악! 죽여 버릴 거야. 그냥 죽여 버릴 거야!”
그러나 그것도 과거의 일이다.
친파괴의 여신 측 신들은 이미 파괴의 신의 주변에 다가가지 않은 지 천 년이 더 된 상태였다.
파괴의 신이 자랑했던 사도가 마신의 제단을 탈탈 턴 이후부터 그녀의 히스테리는 정점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파괴의 여신은 알지 못했다.
1층 아래에는 지하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도 지하 1층, 2층, 3층… 계속 파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예상했겠는가!
파괴의 신의 사도가 갑자기 개종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신도들을 다 뺏어 갈 줄!
“…근데 내가 뭘 할 수 있지?”
신이 지상에 행할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쉬우면서도 강력하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신탁인데.
신탁을 내려 받고 데르마치를 막으러 간 이들은 다 처맞고 개종당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 죽어…….”
물론 강제로 개종당했다고 하더라도, 신앙을 빼앗기지는 않는다.
몸은 굴복했어도 정신은 굴복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마족이라는 것들은 힘에 굴복하면 정신도 점점 굴복하는 놈들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파괴의 여신 자신이 그렇게 가르쳤다.
“…….”
위기다. 진짜 위험하다!
르윈이 라헬을 향해 준비한 칼날에 재수 없게 먼저 당하게 된 파괴의 여신은 신생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