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9)
29화 7.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를 즐긴다 (2)
“앞으로 백 번 더.”
“네!”
선배의 말을 듣고 하인스는 자세를 다시 잡았다.
검을 위에서 아래로 계속 휘두르는 것이 전부지만 그것은 검의 기초였고, 기초만큼 근본이 되는 것은 또 없었다.
그렇기에 하인스는 동아리 선배가 시키는 대로 계속 검을 휘둘렀다.
그 횟수가 다른 이들보다 많은, 괴롭힘에 가까운 것임은 하인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동아리 활동 기준으로 많을 뿐, 드라이르프 공작가에서 했던 훈련과 비교하면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하인스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문제는 도련님이었지.’
드라이르프 공작가에서 받은 훈련은 힘들긴 했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한계까지 힘을 쏟고 기분 좋게 나무에 기대어 뻗어 있을 때.
‘힘드냐?’
실실 웃는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있었다.
‘안 힘들지?’
늘 생각하지만,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얼굴에 열 대 정도는 때려 주고 싶은 주둥이가 있는 그 인간은.
‘안 힘들다고?’
상하좌우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 거칠게 좌우로 흔들리는 얼굴을 보며 승낙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물론, 상하로 흔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럼 더 하자.’
너무 약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사람을 쥐어짜던 주인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적어도 괴롭히는 선배들은 마른걸레도 쥐어짜면 물이 나올 수 있다며 사람을 걸레 짜듯 쥐어짜는 인간들은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면.’
부족한 수련을 선배들이 보충해 주는 정도로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물론 예리엘도 조용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인스!”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도, 도련님?”
순식간에 자세가 무너졌다.
기분 좋게 흘리던 땀이 아닌,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안식처나 마찬가지인 이곳에 왜 저 인간이 온 것일까.
‘누, 누나?’
그 이유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르윈의 옆,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과 눈이 마주친 데이지의 모습이 있었으니까.
‘이, 이렇게 나오기야?’
하인스의 시선에 데이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데이지의 시선에 하인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너, 너무했나?’
아카데미 입학 이후, 예리엘과 하인스는 제법 들떠 있었다.
과거에는 아카데미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옛 동화 속에서나 보았던 기사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 있었고, 그 사실을 데이지도 잘 알고 있었기에 예리엘과 하인스의 편의를 어느 정도 봐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어야 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한 달.
그동안 예리엘과 하인스는 기사 동아리를 비롯한 아카데미 생활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르윈에 대한 일들은 데이지가 모두 관리해야 했다.
‘동생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누나로서, 언니로서 동생들을 도와줘야겠지?’
데이지의 눈이 곱게 휘며 초승달을 그려 내었다.
그 미소에 주변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데이지에게 집중될 정도였으나.
‘망했다.’
어째서인가.
하인스는 그 웃음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데이지를 오랫동안 보았기 때문에 익숙한 것이 아닌, 그녀가 모시는 주인의 웃음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예리엘!’
혼자만으로는 무리다.
일단 공범인 예리엘과 힘을 합쳐야 무엇이든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하인스가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목덜미를 붙잡힌 채 대롱대롱 들려 있는 예리엘의 모습이었다.
‘언제?’
분명 반대편에 있었는데.
데이지에게 잠깐 시선이 팔렸을 뿐인데, 어느새 예리엘은 붙잡혀 있었다.
“데이지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힉!”
붙잡힌 예리엘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더 작은 르윈에게 목덜미를 붙잡혔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괴롭힘을 받고 있다고?”
“아뇨, 아뇨, 아뇨! 언니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해요.”
예리엘의 붉은 머리가 거칠게 휘날리고 있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반응에 데이지로 향했던 시선이 르윈과 예리엘이 있는 방향으로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그 유명한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시종과 그녀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몇몇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여기에?’
‘르윈 디 드라이르프는 검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나?’
‘요즘 마법진 연구 동아리나 연금술 동아리에 관심을 주고 있다고 했는데.’
이번 년도에 입학한 두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르윈 디 드라이르프와 라일라 라인하르트였다.
제국의 두 공작가의 동시 입학은 그만큼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시점.
그 둘에 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선, 입학부터 학생회에 관심을 주고 있다고 전해진 라일라 라인하르트.
그녀에 대한 정보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생각했다.
역시 라인하르트구나.
이렇게 완벽하게 정보를 숨기다니!
멀쩡하게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며 학생회의 보조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라일라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를 눈치챈 이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와는 정반대로, 르윈 디 드라이르프에 대한 소문은 무척 무성했다.
우선 작년에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이제는 아카데미의 비공식 명물 취급을 받는 루테스 디 바벨리안과 같이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거나, 더 나아가서 그와 같은 동아리인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소문을 듣지 못한 이는 아카데미 내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도서관 사서들 사이에서 르윈이 비밀을 밝혀냈다는 소문이 돈다거나, 아카데미 메이드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전해지는 블랙리스트에 속했다는 소문이 돈다거나, 그 밖에도 학생회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동아리의 음지에 해당하는 곳들을 하나하나 점령해 가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다.
정보 백지에 가까운 라일라 라인하르트와는 정반대인 상황.
하루에 몇 개씩 나오는 소문들이 쌓이고 쌓여, 오히려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것이 바로 르윈 디 드라이르프에 대한 정보였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의 몇몇 학생들은 르윈에 대한 정보를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했다.
르윈과 가장 가깝기에 누구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들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인물인 예리엘과 하인스에게서.
하지만 두 사람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주인을 지키려고 하는 둘의 모습에 그냥 물러나 주었지만, 어떤 이들은 별것 아닌 일마저 입을 다무는 두 사람에게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의 재능이 자신들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을 깨닫고 질투하게 된 것은 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예리엘과 하인스가 입을 다문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아카데미에서 만난 인연을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
옛 신화 속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열지 말아야 할 지옥의 상자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인류는 신들의 말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상자를 열고 말았고, 결국 그 대가로 사악한 마족과 하나의 하늘을 두고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비록 교단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그저 아주 먼 신화의 이야기였지만, 예리엘과 하인스는 르윈을 그 상자처럼 생각했고, 그 상자의 존재 자체를 알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럼 다행이고.”
전혀 다행인 것 같지 않은데요.
그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한 예리엘은 울상을 지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까운데, 오랜만에 대련이나 하자.”
여전히 웃는 얼굴로 예리엘을 대롱대롱 들고 간 르윈은 물건 던지듯 그녀를 하인스에게 던져 주었다.
“대, 대련이요?”
“응, 자주 하던 거.”
“굳이 그럴 필요가…….”
차라리 정자세로 검을 천 번 휘두르는 게 낫지.
아니, 만 번 휘둘러도 이득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지만.
“있어.”
르윈의 말은 단호했고, 그 손에 들린 검은 더욱더 단호했다.
***
“검이란 무엇일까?”
세 시종이 드라이르프 가문에서 검을 배우기 시작할 시점.
르윈은 시종들에게 질문했다.
검이란 무엇인가.
검사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가장 귀찮은 질문.
어떤 병사는 검은 그저 검일 뿐이라고 이야기했고, 또 어떤 용병은 생존을 위한 도구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떤 기사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 검이라 했고, 어떤 소드마스터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인은 달랐다.
“검은 그냥 검이지.”
어떤 병사가 했던 말과 같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달랐다.
“무언가를 지키는 게 검이다? 그럼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뭘 들고 요리하는데?”
“아니, 그건.”
르윈의 말에 반론하려던 하인스였지만, 딱히 반론할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암살자의 암기는? 단검은 검이야, 검이 아니야?”
“아니지 않나요?”
“그래? 그럼 단검에 찔리면 안 죽어? 베이면 피 안 나?”
“아니, 그렇게 따지면…….”
“따질 필요도 없지. 애초에 이름부터 단‘검’이잖아?”
“…….”
“…….”
르윈의 말에 예리엘과 하인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검이란 무엇인가요?”
잠깐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이는 데이지였다.
그 질문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검은 그냥 검이지. 평범한 병사가 전설의 성검을 들었다고 마왕과 싸울 수 있을까? 황실 주방장이 사용하는 칼을 들었다고 소드마스터가 요리를 잘할까?”
둘 다 아니었다.
같은 수준이라면 더 좋은 무기를 든 쪽이 이길 수 있지만, 그 수준이 아득히 차이가 난다면 무기의 질은 차이를 줄 수 없다.
후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전설에서나 나오는 에고 소드가 아닌 이상, 검을 들었다고 해서 그 검을 사용하는 지식을 얻을 수는 없다.
아니,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단 하루 만에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검은 도구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지.”
여기까지는 참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사람은 거기서 꼭 한마디를 추가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결국 그 의미는 이겨야 부여된다는 게 중요하지.”
그러니 검을 쓰는 사람은 상대보다 강해야 한다.
“그게 맞아요?”
그 결론에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을 르윈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 또한 알고 있었다.
“맞아 보면 알아.”
“……?”
르윈은 그렇게 말하며 얇고 가지런한 나뭇가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건 검이야.”
동네 아이들이 놀이에서나 검이라고 사용할 법한 나뭇가지였다.
하지만 용사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는 기사의 검보다 강한 것도 사실이었다.
“너희 무기도 검이고.”
데이지와 예리엘, 하인스의 손에는 기사단에서 빌려 준 목검이 있었다.
공작가의 기사단이 연습용으로 사용할 만큼 특별한 나무로 만들어진 목검은 평범한 검.
평범한 상황이라면 목검이 이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당연하지 않았고, 데이지는 미련 없이 검을 포기하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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