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47.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고… (7)
‘일단 저지르기는 했는데.’
라헬의 말에 열이 받아서 저질러 버리기는 했으나, 상대는 현재 최고신이라고 불리는 신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한 최고신.
인류의 기반을 닦은, 인류 대다수가 믿는 신을 적으로 돌렸다.
그것을 깨닫자 무링신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성이 생기는 지점까지 도달했다고 하나, 라헬과 비교하면 라헬의 말대로 하찮은 수준이다.
아니, 라헬만이 아니라 다른 신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기존의 신들과 비슷한 영역에 도달했더라면, 진작 지상이 아닌 천상에 올라갔을 테니까.
“끄응.”
시바에게 머리를 붙잡힌 채 오늘도 탈탈 털리고 있는 무링신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라헬의 성질머리를 생각하면 당장 이단 심문관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도 이단 심문을 받나?’
그런 꼴을 당할 바에는 이번 신생을 끊는 게 낫다.
심지어 이미 한 번 경험했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냥 죽자.”
원래 삶에 미련은 없었다.
살아서 더러운 꼴을 보느니, 명예롭게 죽을 수 있을 때 죽자.
그렇게 이번 신생의 끝을 고하고자 마음먹은 무링신이었으나.
“안 돼!”
“컥!”
역설적이게도 나약한 육체는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바의 손길에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저지를 당한 무링신은 서럽게 울먹이며 소리쳤다.
“놔!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전에 배웠어. 원래 약하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거래.”
“끄악!”
신의 서러운 외침에도 시바는 마이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대로 무링신을 제압하여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친구에게로 떠넘긴 것이다.
“이, 이건 뭐냐?”
“레이카가 가져다준 친구야. 크면 사람도 제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작아서 못해.”
쩌억 입을 벌리고 있는 식충, 아니 식인 식물을 보며 무링신은 작게 몸을 떨었다.
“아, 아니지?”
“거기서 조용히 있어.”
“아, 안 돼!”
냠.
그대로 식충 식물에 잡아먹히며 무링신은 생각했다.
‘이런 죽음은 싫다!’
내가 그래도 신인데!
라헬도, 인간의 손도 아닌 식물에 잡아먹히는 것은 너무한 신생이지 않은가!
“뭐 해?”
“끄아악! 신 살려!”
그때 때마침 기숙사로 돌아온 르윈을 보며, 무링신은 간절한 삶의 의지가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세상은 썩었고, 인류는 타락했다.
“잘했네.”
시바를 혼내는 것이 아닌 칭찬하는 르윈을 보며, 무링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잘했다고?”
신을, 아니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
“죽으려는 생명체를 살렸는데, 잘한 거지.”
“오히려… 죽을 뻔했는데?”
“안 죽었잖아.”
“…….”
“그리고 얘, 죽이진 않는다는데?”
낑낑.
마치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집어삼키고 잡아먹으려 했던 식물 녀석이, 지금은 무해한 식물이라는 듯 르윈에게 낑낑거리고 있었다.
‘세상은 썩었어.’
그러나 타락한 것은 인류만이 아니었다.
‘믿었던 식물마저!’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게 다 세계수 탓이다.
식물의 최고종인 세계수의 딸이라는 녀석부터 저렇게 폭력적이니, 다른 식물들 또한 썩어 버린 것이다.
망했다.
이 세상은 망했다.
이런 폭력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평화를 논할까!
‘그냥 죽자!’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의지가 꺼져 가는 것을 느끼는 무링신이었으나, 이어지는 르윈의 말에 희망의 불씨가 조금은 되살아났다.
“그리고 라헬은 뭐 안 해.”
“뭐?”
“그 녀석한테 그 정도의 결단력이 있을 리가 없잖아.”
르윈은 믿고 있었다.
라헬의 우유부단함을, 그리고 결단력을 말이다.
“쓸데없는 일은 잘도 밀고 나가면서 중요할 때는 결단을 못 내려서 일을 망친 게 몇 번인데.”
라헬이 과감하게 들이박을 때는 늘 마신과 관련이 있을 때였다.
그때를 제외하면 매번 망설이고 걱정하다 시기를 놓쳤다.
“내가 장담한다. 이번 주 안으로 협상하자고 올걸?”
그러니 괜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르윈의 말에 무링신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이 되어서도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자 고민은 확신이 되어 갔다.
그리고.
[이번 주 일요일, 늘 만나던 곳.>일반인은 볼 수 없는, 라헬의 신성력으로 적혀 있는 편지를 보고는 르윈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라헬은 분노했다.
자신의 사도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자신을 대신하여 신성을 잃고 추락하고,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버린 죽었던 신을 앞세웠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분노했다.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그렇지, 그런 하찮은 존재를 앞세우다니.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것을 앞세우다니.
화가 난다. 지금 당장 신벌을 내려야 한다.
‘할 수 있나?’
그런데 막상 생각하고 나니, 그 뒷감당이 문제였다.
마신이 큰 타격을 입은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무링교에 신자들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대륙의 상황까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 영향력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신이 협상을 진행하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제법 큰 피해를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만약 이단이라고 지정해서 무링교의 교세가 약화되면…….’
그 영향력으로 마신이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용사와 완전하게 척을 진 자신이 마신을 비롯한 마족을 이길 수 있을까.
“…애초에 이단으로 지정한다고 이길 수는 있나?”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나온 질문에 라헬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무링교라는 그 하찮은 신을 믿는 집단이라면 손쉽게 제거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안에 있는 르윈의 존재였다.
과연 마음먹고 날뛰는 용사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그 아펠리오스조차 데려간 괴물을, 전성기를 맞이한 인류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음…….”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용사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생명체였고, 인류 전체를 적으로 돌리면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생각한 결과가 맞았다면.
‘인류는 옛날 옛적에 망했겠지?’
르윈이 지금까지 이루어 낸 기적은 라헬로서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기적이 이번에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괘, 괜찮아. 나도 새로 뽑은 용사들도 있고.’
비록 르윈의 말도 안 되는 협상으로 인하여 뽑은 가짜 용사들이지만, 인류에는 이미 수천의 용사가 보유된 상태였다.
창조의 교단은 다른 교단과 달리 격에 맞는 용사들을 선출하여 뽑았으니, 아무리 르윈이라고 하더라도…….
“…그 용사 중 하나가 그 녀석의 종복이네?”
긍정적인 생각을 하던 라헬의 입이 다물어졌다.
생각해 보니 그 용사 중 가장 유명한 용사가 르윈의 종이었다.
괜히 그들에게 권한을 주었다가, 르윈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설마 이것까지 다 생각해서 자신에게 용사를 뽑으라고 했던 건가!
“하.”
생각하면 할수록 안 좋은 결말만 상상이 되는 것은 자신의 오랜 고질병이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많아진 순간부터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어쩌겠는가.
“그 녀석이 해 준 게 많으니까.”
화를 참는다.
분노는 이성을 좀먹을 뿐인 안 좋은 행동이다.
지금은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자신과 용사가 싸운다면 이득을 보는 것은 마신뿐이다.
그 악독한 신이 지상으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참아야 한다.
‘평화의 신의 신성을 보면 마족의 믿음이 부족한 게 분명해.’
참자. 조금만 더 참자.
인류의 격언 중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용사라고 해도 결국 인간이야.’
윤회를 반복한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인간이다.
오래 살아 봤자 100년.
그 정도만 참으면 자신은 수만 년을 기다려 왔던 유일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참자. 조금만 더 참자.
인내하고 또 인내하면 자신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참고 참은 라헬은 먼저 협상을 하자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리고 협상 당일, 아끼고 아끼는 성녀의 몸에 강림하여 삐뚤어진 사도와 지상에서 신성을 얻고 있는 하찮은 존재를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바로 이단으로 낙인찍고 이단 심문관 보낼 줄 알았는데.”
“졸았냐? 졸았어?”
“…….”
이죽거리는 자신의 사도와 옆에서 한 대 치고 싶은 모습으로 추임새를 넣는 무링신을 보며 생각했다.
‘…참아야… 하나?’
굳이?
이건 종교 전쟁을 선포해도 무죄가 아닐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이단 선언을 고민하는 라헬이었다.
***
“무링신을 믿는 자들은 이단이다. 마족의 적이다!”
라헬이 진지하게 인류에 무링교를 이단 선언할지 고민할 무렵.
라헬과 달리 파괴의 여신은 이미 옛날 옛적에 무링교를 이단으로 선언하고 전쟁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크악! 발텐데르, 네가 어째서!”
거대한 뇌조, 우뢰의 라이텐이 배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울부짖었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 라이텐.”
벼락을 맞아도 상쾌하다고 웃던 라이텐의 온몸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툭 건드리면 지금 당장 쓰러질 것 같은 모습.
비록 사천왕 양성 계획으로 인하여 그 이름값이 떨어졌다고 하나.
지금도 마족의 당당한 사천왕 중 하나인 우뢰의 라이텐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현 마왕 헬리아스와 마왕군의 총군사 데르마치.
그리고 같은 격을 지닌 사천왕들이 아니라면 라이텐을 이렇게 만들기 어려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리고 그중 마왕과 갑자기 튀어나온 마왕군 총군사를 제외한다면.
비슷한 격을 지닌 사천왕끼리는 공멸을 각오해야 했다.
과거에는 사천왕 최강자와 사천왕 최약체라는 표현이 있었을 정도로 사천왕들의 격차가 있었으나, 현 사천왕의 전투력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강해… 졌구나, 발텐데르.”
그렇기에 라이텐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비슷했던 격차가 지금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벌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네놈도… 힘을 숨기고 있던 것이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발텐데르가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마왕의 뒤에 숨어 입으로만 떠든다고 생각했던 총군사 데르마치가 자신들을 비롯한 부족장들을 모두 쓰러트린 게 얼마 전의 일이었으니까.
발텐데르 또한 힘을 숨기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그럴 것 같냐?”
그러나 비웃듯 말하는 발텐데르의 모습에 라이텐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놈 성격으로는 절대 무리지.”
“그렇지?”
그렇다.
눈앞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귀찮다고 몸으로 돌파하는 무식한 놈이 발텐데르였다.
그렇게 처맞으면서 나아가다, 속성이 바뀐 함정에 당해 병상에 드러누운 것이 발텐데르였다.
그런 무식한 새끼가 힘이 있었다고 숨기다니.
차라리 지나가던 마수가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높았다.
“라이텐이여, 진정한 힘을 원하는 동지였던 존재여.”
그렇기에 라이텐은 발텐데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무링의 힘이다.”
“…정말로 파괴의 여신을 배신했다는 말이냐…….”
“아니, 나는 파괴의 신의 말을 따르는 것뿐이다. 강자가 곧 법이다. 그렇다면 무링신이 더 강하면, 파괴의 여신 대신 무링신을 믿는 것이 그분의 의지가 아닐까?”
“궤변이다!”
“하나 넌 졌고, 난 이겼다.”
“…큭!”
발텐데르의 말에 라이텐은 이를 갈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졌고, 발텐데르는 이겼으니까.
“네가 아직도 진정한 힘을 원한다면 무링의 손길을 맞잡아라.”
“…나는, 나는!”
그렇게 고민하던 라이텐은 얼마 후 마족의 종교 전쟁 최전선에 모습을 드러냈고.
“압도적인 힘으로!”
사이오닉 폭풍을 일으키며, 파괴의 여신 진형을 짓밟으며 재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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