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47.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고… (8)
마대륙이 와장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라헬은 몇 차례나 파행된 협상을 재진행하고 있었다.
“크윽! 그래. 내가 좀 너무했다! 그러니까 딱 이번만 넘어가면, 다시는 안 살릴 테니까!”
“뭐야? 여태까지 자기가 되살린 거 아니라고 했으면서 거짓말이었네?”
“아니, 그 의미가 아니라! 마신이 뒤지면 끝나니까 그런 거지!”
화가 난다. 짜증이 난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라헬은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신의 분노를 숨겼으나, 르윈은 그것을 강제로 끌어내는 것이 목표라는 듯 라헬의 속을 긁고 또 긁어 대었다.
‘참자. 참아야 한다!’
그럴 때마다 라헬은 인내를 삼키며 참아 내었다.
그래도 얘가 해 준 게 얼만데!
‘할 만큼 했잖아. 파업 정도는 신으로서 관대하게 넘어가 줘야지.’
그렇게 참을 이유를 만들어 가며 참는 라헬을 보며, 무링신은 생각했다.
‘이 정도로 참는다고?’
지금 당장 무링교를 세상에서 지워 버릴 힘을 가진 라헬이었다.
애초에 인류에 무링교가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라헬과 창조의 교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것만 중단해도 무링교는 큰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이 새끼가 호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신의 그 사도였던 것인가!
‘이런 호구한테 밀려서 이런 꼴이 되다니!’
하지만 라헬이 못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타격을 입는 것은 바로 무링신 본인이었다.
어찌 되었든 라헬은 지금 최고신의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한 신이었고.
자신은 신성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었으니까.
라헬의 격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패배자인 자기 자신이었다.
저런 것들에게 져서 지상으로 떨어지고, 저런 것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생을 포기한 것이니까!
‘절대 질 수 없다.’
그렇기에 무링신은 더욱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모를 때면 ‘아, 상대가 너무 강했다.’라고 정신 승리라도 할 수 있었지.
라헬의 본모습을 안 지금 패배한다면 억울해서 죽지도 못할 것이다.
“일단 마신, 그러니까 파괴의 신부터 확실하게 없애고.”
“이의 있소!”
그렇기에 무링신은 라헬의 말을 끊으며 그녀의 발언에 태클을 걸었다.
“그렇게 된다면 마대륙의 절반은 확실하게 무링교 쪽에 넘길 테니까.”
아니, 걸려 했다.
“이의 있다니까!”
무링신은 항의했지만, 라헬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 벌레가 날아들어도 이것보다는 더 신경을 쓸 텐데도.
“어차피 그쪽은 우리가 점령하고 있는데, 거길 절반이나 가져간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기요?”
심지어 같은 편인 르윈조차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마족 성격 잘 알잖아. 어차피 거기 다 먹으려고 하면 우리 쪽 도움이 필요할 텐데. 우리가 다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른 교단들에게도 넘기면서 협상을 진행해야 하니까…….”
능숙하게 자신을 무시하며 협상을 진행하는 라헬과 르윈을 보며 무링신은 생각했다.
“저기요? 내 말 안 들려요?”
“그러니까 그건…….”
“일을 더 빠르게 진행하려면…….”
“이 새끼들이?”
힘이 없으면 사람이고 신이고 무시당하는구나.
그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무링신은 구석에 쭈그려 앉아 서글프게 울었다.
***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고, 세상에는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신과 인간에게 개무시당하는 신과 달리, 그 신을 믿는 자는 무시를 당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무링신께서는 그런 세상을 안타깝게 여기사, 본인이 직접 이 세상에 강림하시니. 평화의 본보기는 나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께서 직접 세상에 강림하시다니…….”
“무링…….”
“무링하다…….”
“무링하도다!”
제국을 넘어 대륙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무링교의 경전.
그것을 읽는 레피스의 목소리에 신도들이 눈물을 흘렸다.
‘왜 울지?’
정작 교주 당사자는 그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다 신경 쓸 정도로 레피스는 한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링신께서는 스스로 업을 짊어지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니. 무링신의 공백으로 그로 말미암아 인류와 마족은 평화를 잊고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무링신이시여…….”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개중에는 자신의 죄를 외치며 용서를 비는 이도 있었다.
물론 레피스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데 왜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을까.’
난 이해가 안 되어서 끝까지 반대를 했었는데.
미친 건 르윈 디 드라이르프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상이 미쳤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미쳤던 것인가.
‘미치지 않고서는 못할 일이긴 하지.’
미쳤다고 생각했던 경전을 떠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레피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무링신께서는 사흘 만에 되살아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 생각보다 인류의 죄가 깊다.’ 그리고 다시 화형을 당하시며, 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어흐흐흑!”
“무링……!”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는 신자들을 보며 레피스는 역시 미친 건 세상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다행이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나는 정상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레피스였으나, 그 미친 세상을 자신이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무링신께서는 그 이름을 잃고, 모두에게 잊힌 상태로 우리의 죄에 대해 속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지 삼만 년 만에 부활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무링…….”
“무링하도다…….”
“무우링…….”
“하지만! 아직 죄를 용서받지 못한 불쌍한 존재들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마족입니다.”
명확한 적보다 갈라치기를 하는 데 좋은 것은 없다.
그리고 마족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군이지.’
다른 곳은 몰라도 무링교에게 있어서 마족조차 개종한 종교라는 간판이 있었기에 마족을 버릴 수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건 무링교만의 문제가 아닌 여러 국가들에게도 해당이 된다는 말이었다.
‘눈 뒤집혀서 쳐들어오면 우리만 손해니까.’
인류의 역사를 뒤져 봐도 마족과 협상을 진행하려고 했던 국가는 수없이 많았다.
개중에는 속국으로나마 살아남으려 했던 국가도 있었다.
그게 실패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마족은 말이 안 통하니까.
언어가 다르다는 영역이 아니다.
그건 통역 마법을 사용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인류는 다 죽어야 한다는 과격한 마신의 뜻과, 그것을 광신도적으로 따르는 마족에게 협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인류는 눈물을 머금고 마족과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막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협상을 할 국가는 많다는 소리다.
‘중요한 건 민심.’
그러나 지도자들이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민간에 뿌리 깊게 내려진 창조의 여신의 신앙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신앙 이전에 마족에게 피를 본 역사가 너무 깊었다.
‘중요한 건 면죄부. 어떻게 개종한 마족들을 보호할 수 있는가.’
자칫 잘못하면 바로 이단의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일이나, 레피스는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종교인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창조의 교단을 뒷배로 둔 교단이 아닌가!
‘창조의 여신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겠지!’
그 여신이 르윈에 의해 뒷목을 붙잡고 쓰러지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레피스는 창조의 여신과 창조의 교단을 믿고 근거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부활하신 무링신께서는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사. 마왕군 총군사 데르마치의 앞에 나타나시니. 평화의 신의 고귀한 희생을 깨달은 그는 눈물을 머금으며…….”
구라다.
협상장에서 눈물을 머금은 것은 레피스 말고 없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으나, 레피스는 과거의 고난도 이용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흐르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왕군 총군사가 무릎을 꿇고, 마왕조차 개종을 고민하는 그 장면은…….”
“…아아.”
“무링신이시여!”
“마족을 구원하시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소서…….”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레피스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인류의 대표로 마족과 평화 회담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가!
제국의 황제도, 창조의 교단의 교황도, 수많은 강대국의 왕들이나 이름이 널리 퍼진 강자들도 아니다.
바로 무링교의 교주, 레피스 원드!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목회를 진행하고 있는 당사자가 직접 봤다는데, 누가 거짓이라 하겠는가!
“그 모습에 창조의 여신님께서도 감동하셨는지 먹구름이 갈라지고, 새하얀 빛이 세상을 감쌌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한 빛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무링신이나 마족뿐만이 아니라 창조의 여신까지 이용하는 레피스였다.
처음 창조의 여신을 조미료로 추가할 때는 심장이 두근대고, 나중에 신탁이 떨어져 자신의 죄를 벌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으나.
몇 번을 사용했음에도 창조의 교단의 이단 심문관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베르마샤 선배가 좋다고 했으니까.’
전 창조 동아리의 회장, 지금은 당당한 창조의 교단의 성자 중 한 명인 베르마샤에게 칭찬까지 들었다.
그렇다. 인류를 사랑하시는 창조의 여신님께서는, 자그마한 거짓말을 벌하기보다는 더 큰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확신을 가진 레피스는 거침없이 창조의 여신을 팔았다.
없는 신도 무링신이라고 이름 붙이고, 평화 신이라고 우기는 세상.
존재하는 신을 평화를 위해 파는 것을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우리의 적은 명확합니다. 마신. 이 세상에 같이 창조되었을 마족들을 세뇌하고, 그들에게 파괴만을 주입한 마신과 그를 따르는 배교도들을 쓰러트려야 합니다. 하나 인류가 속죄하였듯 마족들 또한 속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거짓된 미혹에서 깨어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싸우는 동료들을, 마신에게 속은 과거의 죄업으로 죄인으로 몰아세우면 안 됩니다.”
물론 그 숫자가 얼마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족이 미치지 않고서야 마신을 버리고 무링교라는 이상한 종교 집단을 믿겠는가?
하나 그 소수의 마족으로 인해 무링교의 신앙은 더 굳건해질 것이고, 창조의 교단의 지원은 더 빵빵해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렇기에 레피스는 개종할 몇 명의 마족을 위해 그들을 보호할 명분을 만들어 갔다.
그 모습은 완벽한 사이비 교주로서의 모습이었으나, 그 누구도 레피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인류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의 교단의 지지와 레피스 원드가 쌓아 온 업적들은 일반 대중들이 그녀를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레피스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압도적인 힘으로!”
“내 목숨을 무링을 위해!”
“이런 미친 새끼들이!”
그녀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는 이미 무링교가 마대륙을 절반쯤 집어삼켰다는 사실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