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48. 누구세요? (1)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루테스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냐.”
아카데미가 개학한 지 한참이 지났으나, 루테스는 아직도 아카데미의 복귀를 허락받지 못했다.
인류와 마족의 평화 회담이 있고, 그 이후로 불안전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으나.
원래 국경 지대는 어중간한 평화는 전쟁 상태와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 국경 지대에 자신이 파견되었다는 것과, 위에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유급하는 건 아니겠지?”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나, 그렇다고 유급까지 할 생각이 루테스에게는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기는 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녀석들과 동급생이 될 수도 있다는 엄청난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죽고 말지.”
르윈과 레일라를 떠올리며 루테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라리 내년까지 이곳에 있으면 있었지, 그 둘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것은 사절이었다.
“아니지. 레일라도 수업을 받을 처지는 아니니까.”
평범한 사람들은 평화가 찾아왔다고 평범하게 지내고 있을 테지만, 황제의 핏줄이란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족속들이었다.
이미 경쟁에서 밀린 루테스조차도 황제의 핏줄을 물려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굴러야 할 정도였으니까.
‘아닌가?’
생각해 보면 경쟁에서 밀려서 개같이 구르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 형제들의 싸움에 말려드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
“그래. 전쟁만 안 나면 되는 거지.”
처음 전쟁터로 끌려간다고 했을 때는 죽을 맛이었다.
다른 전쟁도 아니고, 마족과의 전쟁이라니.
루테스가 알고 있는 마족이라는 생명체의 정보는 싸움에 미친 종족으로 협상은 물론, 항복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전투광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족과의 역사를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드디어 형제라는 것들이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것과 비교하면, 휴전이라는 형태의 반쪽짜리 평화라고 하더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좋게 생각하자. 좋게.”
실 끊어진 연 신세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제국의 황자다.
장군들은 물론 병사들까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핏줄이라는 것은 아직 성인식도 하지 않은 학생을 전장으로 끌고 올 정도로 귀찮은 것인 만큼, 반대로 황제의 핏줄이라는 것은 그것을 모두 감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것을 주기도 한다.
모든 것이 존재하는 제국 수도와 달리 마족과의 국경 지대에는 별다른 시설조차 없지만, 우습게도 베르샤 아카데미에 있던 시절을 떠올리면 이 국경 지대가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자연도 좋은 거지.”
사람에 너무 치인 건가.
생각해 보면 아카데미에서 레일라와 르윈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아졌다.
간혹 제국의 이름 높은 공무원들이 말년에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지쳐 사람이 거의 없는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어쩌면 이런 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닐까.
루테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법 장비를 사용해서 국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쪽도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으니까.”
별 차이가 없어 보이나, 인류의 땅이 아닌 곳.
마대륙이라고 불리며, 인류가 언제나 예의주시하는 곳을 바라보며 루테스는 불안전하지만 지금의 평화가 계속되기를 원했으나.
안타깝게도 마대륙은 지금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루테스는 알지 못했다.
***
인류는 마족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오래전부터 싸워 온 존재이기도 했고, 전혀 다른 대륙에 있기에 오가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뿐인가?
과거 용사와 대륙 정벌군이 마대륙에 상륙한 이후.
마대륙은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생명체가 살기 무척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이 알려진 이후로 마대륙에 관한 인류의 관심은 더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인류의 신을 믿는 신자들도 존재하지 않으니, 인류의 신들조차 마대륙을 엿볼 수는 없었다.
그나마 창조의 여신과 같은 막대한 신앙을 얻는 대형 신들이 막대한 신성력을 소모하면 약하게나마 구멍을 만들어 낼 수 있으나.
그것을 통해 신자를 만들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니, 그럴 신성력으로 차라리 기적을 내려 신앙을 얻는 것이 이득이었기에 억지로 마대륙을 엿보려는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인류는, 그리고 인류의 신은 알지 못했다.
“물러서지 마라. 등의 상처는 마족의 수치일 뿐이다!”
“내 목숨을 무링을 위해!”
“눈앞의 적을 모두 쓰러트려라. 그리하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신의 힘이 우리와 함께한다!”
마대륙의 절반이 이미 평화의 신, 무링신의 신도들을 자처하는 마족들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을 말이다.
“헬레네 님! 배교도들이 벌써 코앞까지 도달했습니다!”
“뭐? 벌써? 라이텐은? 아무리 발텐데르가 선봉에 나섰다고 하더라도, 라이텐이라면 버틸 수 있는데. 설마 헬리아스나 발텐데르가 전선에 나타난 것이냐?”
마왕군 사천왕, 영원의 얼음 헬레네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왕인 헬리아스나 자신들을 모두 이겼던 발텐데르가 전선에 나섰다면 아무리 라이텐이라고 하더라도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튀어야 하나?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보고를 해 왔던 수하는 덜덜 떨며 대답했다.
“그, 그것이…….”
“뭐야, 그 반응은. 설마 둘 다 튀어나온 것이냐?”
그럼 빨리 짐 싸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헬레네였으나, 이어지는 말에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적의 선봉에 우뢰의 라이텐 님이 계십니다.”
“잔인한 새끼들. 곱게 죽일 것이지. 그 새 대가리 새끼를 치킨으로 만들어 내세우는 거구나!”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해 포로를 앞장세우는 것은 마족의 세계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하물며 그것이 사천왕 정도 된다면 확실히 아군의 기세가 바닥을 처박을 것이다.
그에 헬레네는 귀찮게 되었다고 중얼거렸으나, 이어지는 말은 그녀의 예상을 다시 한번 깨고 말았다.
“헬레네 님,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뭐, 라이텐이 발텐데르랑 손잡고 같이 우리 군으로 쳐들어오기라도 하는 거야?”
“맞습니다.”
“그래. 나도 개소리인 건 알아. 하지만 그게 아니면… 응?”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가던 헬레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발텐데르야 무식한 놈이니, 마왕이나 총군사 놈에게 일곱 번 정도 도전했다가 깨지면 배신할 만했다.
그러나 라이텐은 다르다.
아무리 새 대가리라고 하더라도, 파괴의 여신에 대한 충성도는 사천왕 그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던 존재이지 않은가!
“그냥 새 대가리에 번개 좀 쏜다고 라이텐이 아니야.”
그렇기에 헬레네는 다른 조인족을 보고 라이텐으로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라이텐 님을 몰라보겠습니까!”
“너 저번에 버둠 녀석 잘못 알아봤었잖아.”
“…12명의 쌍둥이가 한곳에 있으면 가족도 못 알아보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헬레네 역시 사천왕 중 하나인 대지의 버둠과 그의 쌍둥이 형제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 누가 누군지 구별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적진의 선봉에 선 인물이 라이텐의 사촌쯤 되는 녀석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끝까지 라이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헬레네를 보며, 부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직접 보시지요.”
그렇게 전장에 도착한 헬레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거 라이텐 아니네.”
“네?”
도대체 어딜 봐서요?
그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적의 선봉에서 벼락을 내뿜고 있는 괴조는 익숙한 마족이었고.
“무링신을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졌도다! 새롭게 태어난 뉴 우뢰의 라이텐 님을 상대할 자 누군가!”
심지어 본인 입으로 우뢰의 라이텐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했다.
“봐 봐. 본인도 뉴 우뢰의 라이텐이라고 하잖아. 라이텐의 성은 뉴가 아니야.”
“…헬레네 님도 얼씨가 아니잖아요.”
갑작스럽게 망가진 상관을 허망하게 쳐다보았으나, 헬레네로서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라이텐일 리가 없잖아!’
못 이긴다!
라이텐을 주장하는, 아니 아무리 보아도 라이텐인 적을 보는 순간 헬레네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저 새 대가리를 이길 수 없었다.
싸워 보지 않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 정도의 격차가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 진짠가?’
마왕군 사천왕은 서로 대등하다.
서로 사용하는 특성이 명확하기에 상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상성이었다.
순수한 실력의 차이가 아닌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상성의 차이.
그렇기에 조금 밀리는 상대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절대 못 이긴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헬레네는 믿을 수가 없었다.
고작 몇 주 사이에 라이텐에게서 이런 압도적인 힘이 느껴진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천왕 정도 되는 실력자가,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놈들 말로는 벽을 뚫는다는 소리를 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깨고 나아갔다고 하더라도, 벽 너머를 나아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뒷모습을 보지 못할 정도로 사천왕의 격차는 크지 않다.
하나 지금의 헬레네는 라이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득한 격차만이 느껴질 뿐이다.
이것이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무링신을 믿고 얻은 힘이라면.
‘개종해야 하나?’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강렬한 미혹에 헬레네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합니까, 헬레네 님.”
“…싸워야지.”
하나 헬레네는 정신을 차리고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순간 X년이 될 뻔했네.’
마족이라는 종족 자체가 파괴의 여신의 신도인 종족이라고 하나.
헬레네의 종족은 그중에서도 특히 유별난 종족이었다.
흔히 말하는 광신도라고 불리는 이들이 다수 포진된 종족.
그것은 헬레네의 부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족의 족장이자, 파괴의 여신을 따르는 종교의 장로!
파괴의 여신을 버린다는 것은 헬레네에게 있어서 부모를 버린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이길 수 있겠습니까?”
걱정스러워하는 부하를 보며 헬레네는 웃을 뿐이었다.
“야, 우리가 언제 이기는 싸움만 했냐?”
이기는 싸움이든 지는 싸움이든, 일단 싸우고 본다.
그것이 마족이 아니더냐.
그렇게 폼을 잡을 준비를 하는 헬레네였으나, 부하의 말은 이번에도 헬레네의 예상과는 벗어난 말이었다.
“네.”
“…….”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부하를 보고 헬레네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헬레네 님만 믿고 따르면 이긴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X나 약해서 미안하게 되었다.”
“그러게요. 이럴 줄 알았으면 라이텐 님이 이직 권유할 때…….”
“이 새끼가?”
“장난입니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살기에 부하는 안색을 바꾸며 대답했다.
“그래야지. 그럼 작전을 말해 봐라.”
“우리가 언제 그런 거 계획하고 싸웠습니까. 늘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그래?”
“네. 발텐데르 님과 라이텐 님을 헬레네 님이 쓰러트리시면, 나머지는 저랑 부하들이…….”
“…저것들을 나 혼자?”
“사천왕들 싸움에 우리가 어떻게 끼어듭니까?”
“…….”
당연한 것 아니냐는 부하의 시선에 헬레네는 고개를 숙였다.
한 놈도 아니고 두 놈 다 자신에게 떠넘기다니.
‘그래.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그렇게 각오를 다진 헬레네는 전장에 서며 소리쳤다.
“저 더러운 배신자들에게 파괴의 힘을 보여 주자!”
그렇게 외치며 헬레네는 당당히 두 명의 사천왕을 상대로 사투를 벌였고.
그렇게 영원의 얼음 헬레네는 죽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 후.
“헤, 헬레네?”
“내 목숨을 무링신을 위해!”
자신을 보며 당황하는 부모에게, 과거를 잊고 새롭게 태어난 뉴 영원의 얼음의 헬레네는 ‘전도’라는 이름의 효도를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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