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0)
30화 7.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를 즐긴다 (3)
“응?”
과거의 추억, 아니 악몽이 갑자기 왜 떠오르는 걸까.
예리엘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이마를 붙잡았다.
“아.”
그리고 곧 자신이 이렇게 된 원인을 떠올렸다.
‘그때 분명.’
목검과 목검이 부딪쳤는데, 한쪽의 검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깔끔하게 잘렸다.
‘마력도 없었는데.’
르윈이 가르친 숨쉬기 운동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훈련법.
하지만 그 내용물은 이름처럼 웃긴 것이 아니었다.
이후 드라이르프 공작가에서 배운 호흡법만큼 효과적으로 마력을 쌓는 것은 아니었지만, 몸이 마력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을 효과적으로 늘려 주었다.
정말 단순한 효과이지만, 검을 배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
마력을 효과적으로 쌓을 수 있는 호흡법은 오래된 전통을 가진 명가나 마탑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강자가 되고, 또 누군가는 그저 그런 강자로 끝나고 만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그런 강자가 되는 것조차 배부른 일이겠지만, 똑같은 호흡법을 배웠음에도 점점 더 벌어지는 격차를 직접 느낀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재능의 차이.
같은 호흡법으로 같은 양의 마력을 몸으로 가져와도, 그 몸이 받아들이는 마력의 양은 모두 같지 않다.
누군가는 10의 마력을 호흡하고, 9를 다시 내뱉었고.
누군가는 10의 마력을 호흡하고, 5를 다시 내뱉었으며.
누군가는 10의 마력을 호흡하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몸에 담았다.
검을 배울 때 처음으로 두각을 보이는 이들은 검의 재능을 가진 이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력에 재능을 보이는 이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검술은 반복 훈련으로 재능의 한계를 따라갈 수 있지만, 마력을 느끼고 몸에 담는 것은 반복 훈련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쉬기 운동은 태생적 재능을 노력으로 극복하게 해 준다.
그것을 깨달은 이후 예리엘은 숨쉬기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였고, 그러자 신기루 같던 르윈의 인기척이 조금씩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루가 멀다고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르윈을 찾아다니는 사람으로서는 없으면 안 되는 기술.
그렇기에 예리엘은 물론 데이지와 하인스까지도 숨쉬기 운동을 필사적으로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능한가?’
이제는 능숙하게 라일라를 찾을 정도로 올라온 감지 능력이 르윈의 검에 마력이 담겨 있지 않다고 알려 주었다.
마력 없이 목검으로 그렇게 깔끔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 것인가.
“도련님! 깨어났는데요?”
그렇게 어지러운 정신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중이었지만, 하인스는 그것을 기다려 주기 어려웠던 것 같았다.
“야, 너!”
이제 막 깨어난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냐.
그런 식으로 말하려던 예리엘의 입이 조용히 닫혔다.
“왜 그러냐?”
“왜 그러겠냐!”
하인스는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이마를 비롯하여 전신에서 땀이 흘러나온 듯싶었고, 땀에 푹 젖어 있는 옷가지는 폭풍이라도 겪은 사람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그가 들고 있는 검.
그 검은 분명 자신이 들고 있는 검과 손잡이 부분은 같았다.
하지만 검날 부분은 아니었다.
단검이라고도 부르기 힘들 정도로 짧아진 상태였다.
“아.”
역시 내가 본 그것은 꿈이 아니었구나.
짧아졌지만, 진검보다도 더 날카로워 보이는 목검이었던 물건에 시선을 주던 예리엘은 곧 그 원인과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네?”
“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첫 일격에 윗부분이 잘려 나간 목검이 르윈의 목을 베었다.
자각이 없는, 본능에 따른 움직임.
“나쁘지 않은데?”
자칫 잘못하면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다.
본래라면 날이 없는 목검이라 큰 위험은 없어야 했지만, 르윈의 일격으로 상단부가 잘려 나갔기에 예리엘의 검 끝은 매우 날카로운 상태였다.
시종이 주인의 목에 크나큰 상처를 냈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앗!”
아니, 다행이 아니었다.
적어도 예리엘에게는 그랬다.
“검이…….”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검 끝을 바라보았다.
짧아졌다.
르윈의 목을 베려던 검은 그대로 르윈의 검에 막혔다.
이전의 감각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듯,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
착각이 아니라는 듯 딱 이전만큼 잘려 나간 검 끝.
거칠게 떨리는 눈동자로 그것을 지켜보던 예리엘은 살짝 시선을 돌려 하인스의 검을 바라보았다.
‘일곱 번?’
예리엘과 하인스가 사용하는 목검은 기사 동아리의 비품으로 똑같은 검이었다.
그렇기에 예리엘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일곱 번의 공격을 받으면 끝나는 건가?’
검사의 생명이라는 검을 그대로 끝장내다니.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으로 저 도련님이 만족한다면 괜찮은 것이 아닐까.
“이제 일어났으니까, 하인스랑 같이 열심히 하라고!”
그러나 르윈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은 예리엘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이야기였다.
“네?”
같이 열심히 하라고? 저걸로?
하인스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거칠게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이걸로(저걸로) 싸우라고요?’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예리엘과 하인스를 바라보며 르윈은 작게 웃음을 지어 주었다.
***
‘내가 너무 심했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데이지는 잠시 고민했다.
“살려 주세요!”
“검을 들어야지!”
“이게 무슨 검인데요!”
이제 목검은 단검을 넘어, 손잡이 부분만 남아 있었다.
“손잡이가 있잖아?”
“손잡이로 뭘 하라고요!”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해야지. 마력으로 검을 만들든, 신께 기도해서 기적을 받든.”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세상 억울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예리엘과 하인스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내가 당한 게 더 심했으니까.”
그간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데이지는 양심의 가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악!”
목검과 사람이 부딪치고, 당연히 사람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목검이지만, 똑같은 목검을 무참하게 베어 버렸던 검.
그러나 예리엘과 하인스에게는 전혀 상처를 남기고 있지 않았다.
‘뛰어난 검사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베어 버릴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저것인가.
그렇다면 검사들은 다 변태다.
사람을 베지 않고, 고통만을 주는 방법을 깨달음이라고 하다니.
‘그만두길 잘했어.’
검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행일 줄은 몰랐다고 데이지는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자신 또한 저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하하하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검을 휘두르는 르윈의 모습에 동아리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어떤 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보였고, 어떤 이는 예리엘과 하인스를 일방적으로 두드려 패는 르윈의 실력에 경악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소문만 무성했던 드라이르프의 막내 도련님의 모습을 흥미가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하나는 알겠지.’
공작가의 도련님은 남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잘못 건드리면 매우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다 알겠지?’
원래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막는 것이 데이지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지켜본 결과, 르윈이 아카데미 생활을 조용히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데이지는 판단했고, 이 역시 알렉스를 비롯한 드라이르프 저택의 사람들이 짜 둔 플랜에 있는 상황이었기에 데이지는 과감하게 플랜B로 넘어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전쟁에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지.’
‘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그냥 싸워야 하는 법이다.’
아카데미 입학 전, 알렉스는 말했다.
르윈과의 아카데미 생활은 하루하루가 전쟁일 것이다.
그 상황에서 드라이르프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니.
‘도련님이 관심받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반대로 관심을 받게 만들어라.’
‘그래도 되냐고? 당연하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련님의 행동을 걸고 가까이하려고 할까?’
아닐 것이다.
정상이라면, 저렇게 사람을 두드려 패는 사람 옆으로 가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곳이 기사 동아리라서, 무식하게 몸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겠지.’
데이지가 아는 기사도에는 상대를 철저하게 농락하며 고통을 주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데이지는 소중한 동생들이 맞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이 모든 것은 드라이르프 가문을 위한 일.
드라이르프 가문의 시종으로서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절대 동생들이 맞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쌓여 있던 앙금이 풀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응, 절대로.”
그렇게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지는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
그리고 제법 긴 시간이 흐른 후.
“…….”
“…….”
처참한 몰골의 예리엘과 하인스는 시체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후.”
그리고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르윈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소매로 닦아 내었다.
“상쾌하다.”
정말로 상쾌하다는 그 모습에 예리엘과 하인스는 순간적으로 울컥했지만, 이미 탈진 상태에 빠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왜 그렇게 봐?”
뜨거운 시선에 르윈의 시선이 돌아갔지만, 그게 전부였다.
르윈도 두 사람이 한계까지 쥐어짜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잘했어야지. 그, 음, 뭐였더라?”
내가 왜 얘들을 때렸었지.
잠시 그 이유에 대해 떠올리던 르윈은 별일 아니라는 말투로 예리엘과 하인스의 속을 박박 긁어내었다.
“생각 안 나는 것 보니까 별일 아니었나 보네.”
“…….”
“…….”
그 별일 아닌 일에 죽도록 얻어맞은 자신들은 뭐냐.
그런 시선으로 강렬하게 노려봤지만, 역시나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르윈 님?”
주변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기사 동아리 인원들이 하나둘 르윈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르윈 님이라니요. 편하게 부르세요, 선배님.”
자신보다 머리 몇 개는 더 큰 선배에게 르윈은 방긋 웃으며 대답을 해 주었다.
“아, 그래.”
처음 말을 걸었던 이가 어색하게 반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저거 봐.”
“얘들 상처 하나 없는데?”
“아까 얼굴에 스치지 않았느냐? 목검이라도 부어오르긴 할 텐데.”
“그러게. 그 속도였으면 목검이라고 하더라도 피나야 정상인데.”
그렇게 르윈에게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예리엘과 하인스를 좋게 보던 몇몇 선배들은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고 당황했다.
분명 아카데미 실습 시험 날 마물 오크처럼 처맞았는데.
두 사람의 상태는 생각보다 너무 멀쩡했다.
‘이 정도면, 숙련된 고문법인데?’
‘나도 저 정도는 아닌데.’
평소 훈련에서 티 나지 않게 후배를 괴롭히던 선배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예리엘과 하인스에게 향했다.
저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존재가, 아주 오랫동안 실습하여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불쌍한 놈들.’
그리고 그 실습 대상이 누구였을까.
르윈이 들어오자마자 덜덜 떨기 시작한 예리엘과 하인스를 떠올린 선배들은 두 사람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동정심으로 인하여 예리엘과 하인스에 대한 호감도가 선배들 사이에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역시 드라이르프가의 검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기사 동아리에 들어오기 위해서 온 건가요?”
하지만 가장 많은 이목을 집중시킨 건 역시 르윈의 입부 여부였다.
군권의 드라이르프.
황실 기사단과도 비견되는 제국 최강의 기사단을 지닌 가문.
그런 혈통을 가지고 그 혈통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 준 르윈이 기사 동아리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요? 저는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서요.”
고민 하나 없는, 매우 깔끔한 거절.
그것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이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
‘그게 뭐지?’
‘어디서 들어 봤는데.’
‘멍청아, 루테스 전하가 작년에 들어가신 동아리잖아.’
‘르윈 디 드라이르프도 그곳에 들어갔다고 해서 한동안 난리였지.’
‘거기 비활동 동아리 아니야?’
기사 동아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학기 초, 잠깐 뜨겁게 타올랐다가 빠르게 식었던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
그 이름이 다시 한번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