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48. 누구세요? (8)
머어엉.
레일라 디 바벨리안이 망가졌다.
현 황위 경쟁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황족 중에서도 차기 황제에 가장 가까운 이 중 하나가 말이다.
‘이게 뭐지?’
늘 총기가 넘치며 자신감에 차 있던 눈동자에 빛이 사라져 있었다.
이 상태를 다른 경쟁자들이 보았다면 당황했을 정도로 사람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하나 그녀보다 더 망가진 사람은 따로 있었다.
“마족을 찢어!”
“…용사님이니까요.”
“가끔 사람도 찢어!”
“이, 인류의 배신자 같은 이들이 있었다고 하니까…….”
“펠세레트의 국왕이 성문이 고장 났다고 안 만나 주니까 성문도 찢었어!”
“…….”
세이아 디 바벨리안이 망가졌다.
제국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제국 건국의 삼인방이라 불리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망가졌다.
레일라가 망가진 이유조차 이 사람이 망가진 여파일 정도로!
그만큼 세이아는 레일라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세이아 님이 저러는 것은 뒤져서도 처음 보는데.”
“나도…….”
“저 세이아 님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눈앞에서 소드마스터가 날 죽이려고 해도 당황하지 말라고 하던 사람이!”
“근데 너 그때 뒤진 거 아니었냐?”
“선조님,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 금술을 만들었던 이가 바로 건국의 삼인방이라고 불리는 이들.
즉, 세이아는 이 금술을 만든 장본인이자 금술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였고.
레일라를 도와주는 대다수의 선조는 그녀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한 이들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며, 죽는 그 순간까지 그녀와 함께 생을 보냈기에 세이아가 망가진 모습에 다들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그건 레일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으… 꺼림칙하다고 느낄 때 거리를 두었어야 했는데. 못해도 정체는 꼭 숨겼어야 했는데!”
레일라를 비롯한 다른 바벨리안의 후예들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준 세이아였으나, 그녀 역시 살면서 누군가의 영향력을 받고 성장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준 장본인이 바로 데르덴이었다.
그녀가 후손들에게 가르친 대부분의 것들이 그에게서 나왔고.
또 그녀가 알려 준 경험들 역시 데르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얻은 것들이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세이아라는 인간에게 용사 데르덴은 인생의 등불과도 같은 존재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옛날 옛적 이야기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 법.
“너희는 그것들을 못 봐서 그래!”
세이아는 용사 데르덴이 아닌, 인간 데르덴의 인생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인류를 구한 영웅으로서 온갖 포장을 당한 용사의 기록이 아닌, 괴물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마왕 아펠리오스와 그를 따르는 마족들을 쓰러트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르덴의 모습을 직접 보았다.
아니, 직접 본 것을 넘어서 경험까지 했다!
“우린 이제 끝났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세이아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중얼거렸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그녀가 데르덴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시기는 그가 과거의 기록을 확인하고 흑화했던 시기와도 맞물려 있어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이 꺾였어.”
“세이아 님…….”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기에 저렇게 반응하는 거지?”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이기는 했는데, 그 정도였나?”
그 모습에 다시 선조들이 모여 소곤거리기 시작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레일라의 선택이었다.
“세이아 님.”
결국 무엇이 되었든 현재를 살아가는 자는 레일라 디 바벨리안이다.
세이아, 다른 선조들도 그녀에게 자신의 지식을 가르치고,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더 좋은 선택을 하도록 조언을 해 주고 있지만, 결국 레일라가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짝!
그렇기에 뺨을 때리며 각오를 다진 레일라는 쪼그려 앉아 중얼거리는 세이아에게 다가갔다.
“선조님, 아무리 용사 데르덴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죽었습니다.”
과거의 망령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과거의 망령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세이아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망가진 세이아를 회복시키고, 다시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
“근데 살아났잖아.”
퀭한 눈으로 대답하는 세이아의 모습에서는 전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그는 르윈이지 데르덴이 아닙니다. 과거의 일을 굳…….”
“그건 네가 안 처맞아 봐서 그래!”
“…맞으셨어요?”
그 당시의 바벨리안이 아무리 지금의 제국과 비교하면 후작가도 못 될 수준이라고 하나, 그래도 왕족은 왕족이다.
아무리 용사이자 한 국가의 후작 가문의 후계자라고 하더라도, 명분상 타국의 왕족을 두들겨 패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같은 생각을 하겠지? 안타깝게도 그분은 모든 인류를 평등하게 패셨단다! 노예든 왕족이든 평등하게 처맞고.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평등하게 두들겨 팼지!”
특히나 수인족은 종족의 특징을 꿰고 두들겨 패는 묘사는 레일라가 살아생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누가 봐도 죽을 듯이 패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멀쩡하게 두 다리로 걷고 있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기나 해? 나 자신이 진정한 공포를 증명하는 느낌이라고!”
“…….”
부활 주문인 줄 알고 외쳤는데, 알고 보니 즉사 주문이었다.
괜히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는지, 이전보다도 더욱 쭈그러든 모습은 이 사람이 과연 그 건국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전설적인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 정도라고?’
레일라는 과거 자신의 행적들을 떠올려 보았다.
“…….”
르윈 디 드라이르프와의 첫 만남부터 가장 최근의 만남까지.
어떻게 보아도 좋은 만남이었다고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떡하지?’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전파가 된다.
하물며 그 대상이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인물이라면 더욱 빠르게 전파가 될 수밖에 없다.
‘나 죽을지도.’
레일라의 눈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껏 잡았던 마음이 세이아에게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하나 레일라는 정신을 차렸다.
드래곤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방법이 있습니다, 선조님.”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황실.
그중에서도 이번 세대는 세이아조차 인정하는 역대 최강의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선조님께서 말씀하셨죠?”
“뭘?”
“바벨리안 건국의 세 영웅이 이번에 모두 모였을 거라고.”
“바벨리안이 아니라 제국 건국인데…….”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데르덴 님에게 또 처맞고 싶으세요?”
위대하신 선조님에게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절대 아니지.”
강렬하게 고개를 젓는 세이아의 모습만 보더라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르윈, 그러니까 데르덴의 현생인 분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창조의 여신 좀 몰아내는 데 도움을 줘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 힘만으로 되겠습니까?”
“그건 무리지.”
아무리 제국이 창조의 교단도 건드리기 어려운 곳이라고 하나, 반대로 제국 역시 창조의 교단을 건드리기에는 어려웠다.
하물며 레일라는 황제에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이지,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조차 아니었다.
언제 실패하여 추락할지 모르고.
실패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그녀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황족의 삶이었고,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레일라가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레일라 또한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것이 가능하단 말이었다.
“그걸 위해서는 사람들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렇지.”
세이아의 눈동자에 생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수많은 역경을 이겨 내고,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바벨리안을 제국으로 성장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비록 정치보다는 눈앞에 칼이 더 앞섰던 혼란의 시대라고 하나, 레일라와 비교하면 인생의 경험 자체가 달랐기에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도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그리운 형제들 좀 볼 수 있겠구나.”
“…….”
“…….”
“…….”
“…….”
그리고 음흉하게 웃는 두 선조와 후예를 보며, 레일라에게 깃든 바벨리안의 후예들은 생각했다.
-콩가루 집안, 바벨리안.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자신들도 그 콩가루 집안에 포함이 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
쓱쓱.
능숙하게 칼질을 해 가며 고기를 썰던 이가 말했다.
“늦네.”
“원래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는 법입니다, 형님.”
“주인공이라. 네 녀석은 포기한 것이냐?”
“그럴 리가요. 그래도 이 자리를 주선한 것은 레일라 녀석이니, 이 자리의 주인공은 그 녀석이 맞지 않습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를 이어 나갔다.
‘나와 저 녀석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 레일라.’
‘레일라의 성격을 생각하면 슬슬 본격적으로 붙자고 선전포고라도 하려고 불렀겠지.’
그러나 조용한 식사 자리와는 달리 두 사람은 수많은 생각을 하며 서로를 관찰할 뿐이었다.
제국의 1황자, 루테온 디 바벨리안.
그리고 제국의 제3황자 루테인 디 바벨리안.
레일라 디 바벨리안과 함께 가장 유력한 황제 후보로 거론되는 두 명의 황족이었기에, 두 눈으로 직접 상대를 바라볼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
“…….”
그렇게 조용한 식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
기나긴 적막을 깨고 레일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늦었구나.”
“기선 제압치고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 아니냐?”
가장 늦게 들어오는 레일라를 보며, 두 황자가 한마디씩을 내뱉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보통이라면 차가운 독설이라든가, 귀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일 터인데.
‘뭐지?’
‘저 녀석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사과할 녀석은 아닌데?’
두 사람의 시선이 순간 서로를 향했다.
그만큼 레일라의 모습이 이질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
고개를 숙인 레일라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보이는 순간, 두 사람은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오싹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무슨?”
“이런 무모한 수를?”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서로 경쟁을 하는 상황이라고 하나, 이렇게 대놓고 칼을 꺼내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다.
패배한 자들이 마지막으로 상대를 물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이며, 성공해 봤자 파멸만 남을 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레일라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가장 유력한 황위 계승 후보가 경쟁자를 이렇게 대놓고 제거할 정도로 멍청하겠는가!
“…라고 생각했겠죠.”
하나 레일라는 그 틈을 노렸다.
제아무리 황궁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진흙탕 같은 곳이라고는 하나, 겉으로는 온갖 점잔을 떠는 곳이었으니까.
이렇게 대놓고 들어오는 공격에 의외로 쉽게 당하는 법이었다.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냐고요? 그럴 것 같은데요, 오라버니.”
여기서 둘을 죽인다면 모를까, 둘은 멀쩡히 이곳에서 나갈 것이다.
그것도 같은 배를 탄 동지로서.
“저는 그저 오랜만에 선조님들을 만나게 해 주려는 것뿐이니까요.”
바벨리안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 주신 분들에게, 후손으로서 오랜만에 가족 상봉을 해 주려는 것뿐이다.
다만.
“캬하! 정말 다 있네?”
“…데르덴 님?”
“당신이 어떻게?”
그곳에 다른 옛사람이 함께 참여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