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49. 인생 10회 차 (6)
대신전에서 황자가 요리하고 황녀가 설거지한다는 소문이 돈 이후, 겁 없이 진상 짓을 부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왜 그런 헛소문이 도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신전에 갔던 귀족들이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일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만 놓고 보면 모든 것이 완벽…….
“하지 않아요!”
“왜?”
“왜? 왜에?”
오랜만에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레피스가 소리쳤다.
“도대체 왜 대신전 주방에서 황족이 일하고 있는데요?”
“자원봉사. 보통 귀족이나 황족도 많이 하잖아?”
“그렇죠. 많이 하죠!”
교단의 행사에 귀족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보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카데미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 주말마다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귀족 가문 중에는 빈민가에 주기적으로 배급을 하거나 아예 보육원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귀족으로서, 한 지역을 통치하는 자로서 소외된 계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은 명성을 위해, 혹은 자신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쇼인 경우가 많기는 했다.
그러니 황족이 자원봉사를 한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황제의 자리를 두고 경쟁이 한창인 지금,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못하겠는가!
“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하잖아요…….”
과거의 레피스였다면 모를까, 이제는 제법 높으신 분들을 자주 만나는 처지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사태를 그럴 수 있지 정도로 넘기지 못했다.
“봉사활동을 하려면 창조의 교단에서 했겠죠. 백보 양보해서 가까운 대신전에서 했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곳에서 하지 누가 주방에서 일해요?”
높으신 분들의 봉사는 정치적인 쇼에 불과했다.
진심으로 백성들을 위해 봉사한다?
그런 귀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백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이라면 저런 식으로 안 한다.
‘그냥 돈이나 많이 보내 주겠지!’
그들은 자신들이 움직이면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귀찮은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황자와 황녀들의 봉사활동은 어색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니, 진짜 양보하고 양보해서!
온갖 사연이 겹치고 겹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스펙으로 고작 빵이나 굽고 야채를 쪼개며 수프를 끓이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분들이라면… 조금 더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레피스는 조심스럽게 르윈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저쪽에서 황족이 얼굴에 밀가루를 묻혀 가며 빵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식당이나 숙소를 운영하는 본래의 이유가 일그러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배고픈 빈민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황족이 만든 음식을 먹으려고 하겠는가.
심지어 그 황족들을 보기 위해서 찾아온 귀족들이 득실거리는 식당 한가운데에서!
“이건 좀 아닌데. 진짜 아닌데.”
가난한 빈민들이나 예배를 참석하러 온 평민들, 혹은 수도에 물건을 팔러 온 행상인들이나 여행 중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귀족들의 사교회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레피스 또한 매일같이 끌려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절대로 내가 매일같이 끌려 나가서가 아니야. 그냥 신도들을 위한 봉사라는 취지가 엉망이 되어서 그런 것뿐이야.’
신도들을 위해서 무링교의 교주인 자신이 나서야 할 때다.
무링신이 보았다면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라고 중얼거렸겠지만, 다행히도 레피스는 르윈과 독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긴 하지.”
레피스의 의견을 들은 르윈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신앙이라는 것은 가진 자들인 귀족들보다 일반 백성들에게 더 와닿는 법.
황족을 끌어들여 진상을 없앤 것은 좋지만, 이용하는 백성 자체를 모두 잃는 것은 그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그래. 본래의 계획대로, 백성들을 위해서!”
방법은 쉽다. 그냥 황족들이 안 오면 귀족들도 안 올 것이요.
그럼 다시 사람들이…….
“황족들을 이용해서 귀족들을 움직이면 되겠지!”
“본래의 계획이 뭔데…….”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로 달리는 르윈을 보며, 레피스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법이다.
국가의 형태도 없던 아주 먼 고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었다.
고대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힘 있는 자를 중심으로 뭉쳤고.
지금은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권력을 쥔 자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쳤다.
용병들에게는 힘이 권력이요.
상인들에게는 돈이 권력이었고.
귀족들에게는 신분이나 정치력이 곧 권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로 무링교의 대신전은 귀족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신분의 정점이요, 하나의 세력의 수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황족들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전하께서 이곳에서 음식이나 만들고 계시는지.”
“조심들 하게나. 어제 테이블을 닦으러 온 시종을 보고 다른 일을 시키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5황녀 전하셨었네. 조금만 늦게 눈치를 챘으면 그대로 죽을 뻔했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시설이 귀족들의 사교회장으로 되었으나, 그것은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 당연히 배가 고픈 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제국의 8황자, 루테라드 디 바벨리온은 굳은 결의를 담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황족 중에서도 어린 편에 속하는 그는, 그 나이대에 맞지 않는 굳은 결의를 담은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온 귀족에게 자신이 만든 크루아상을 내밀었다.
“…….”
귀족은 자신의 앞에 놓인 검은색 덩어리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2명의 선조가 몸에 깃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들 또한 살아생전 고귀한 삶을 살았던 황족이었다.
물론 세이아를 비롯한 제국의 시초를 닦은 이들과, 그들의 혼을 이어받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바벨리안을 유지한 옛 선조들의 경우에는 고귀한 삶보다는 진흙탕을 뒹구는 삶을 살았으나.
모든 황족이 그런 자들의 영혼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금술을 통해 받는 영혼에도 순위가 정해지는 법이다.
괜히 루테온과 루테인, 레일라가 황위 경쟁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점유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영혼에 깃들어 있는 이들은 바벨리안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위인들!
그에 비해 루테라드의 몸에 깃든 이들은 평범한 역사를 살아간 바벨리안의 선조들이었다.
그들에게도 무력적으로, 정치적으로 배울 것이 많지만, 제빵 기술까지 가르쳐 달라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입에 넣자마자 파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 안에 퍼져 나가는 탄 맛을 느끼며, 귀족은 생각했다.
‘이것도 다 루테라드 전하와 가까워지기 위한 일이다.’
황족과 연이 닿는다는 것은 귀족으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중앙 정계에 진출한 인물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들만이 그들의 파벌로 들어갈 수 있는 법.
비록 루테라드가 차기 황제의 자리와 거리가 멀다고 하더라도, 황족은 황족이었다.
제국의 역사에 경쟁에서 밀려난 황족들의 대우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기에, 대세에 합류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쪽에 붙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도 일을 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죠, 전하.”
하지만 그가 실수한 것이 있으니.
연속적으로 입 안에 화학 테러를 당해, 루테라드의 말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것이었다.
“…전하.”
“작지만 제법 괜찮구나.”
“…감사합니다.”
루테라드와의 화학 테러, 아니 봉사활동에 참여한 지 며칠 후.
갑작스럽게 날아온 ‘소외 계층을 위한 무링교 지부 건립’ 계획서에 당황하기를 한 번.
그 설립 기금이 루테라드와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에 다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작 두 달 만에 완공된 시설을 보며 그는 울상을 지었으나.
“…전하, 이건 규모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백작,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
“전하, 대민지원을 위해 공사를 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그것을 관리할 인력이 없지 않습니까.”
“좋은 지적이군, 자작. 구휼성 관리를 몇 붙여 줄 테니 자작이 좀 구해 주게나.”
“네……?”
다른 영지에서도 지어지는 지부의 규모를 보며,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제국 곳곳에 귀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무링교의 지부가 생기기 시작한 지 몇 달.
이제는 무링교의 지부의 숫자가 사제들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을 무렵.
“역시 강적이구나, 창조의 교단.”
르윈은 창조의 교단을 상대로 47번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게 패배야?”
“당연하지. 계획을 단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했는데!”
“…….”
이를 갈며 패배를 곱씹는 르윈을 보며 무링신은 생각했다.
‘매드 온즈 녀석이 저 녀석을 전설의 호구라고 했었는데.’
르윈이 인생 10회 차로서, 용사로서 쌓아 온 업적을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으나.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에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라헬, 이 무서운 녀석.’
무링신은 진심으로 라헬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라헬의 손을 거친 놈들은 생각하는 방식부터가 평범한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대신전을 넘겨받은 것으로, 다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
르윈이 패배한 47번의 계획은 모두 창조의 교단으로부터 무언가를 뜯어내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뜯어내면 더 이상은 주지 않겠지.
아무리 멍청한 호구라고 하더라도, 이건 거절하겠지!
그렇게 크고 작은 것을 요청했으나, 창조의 교단은 모두 들어주었다.
그것이 자신의 교단이 아닌 무링교의 이득이 되는 것임에도, 창조의 교단은 기분 나쁜 기색 한번 없이 웃으며 내어 준 것이다!
“그래. 다음은 그냥 신성국 자체를 내놓으라고…….”
“저기요. 그건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은데요.”
이를 갈며 중얼거리는 르윈을 보며 무링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로 고민하는 신은 나밖에 없을 거다.’
맞는 말이었다.
다만 천상에서는 자신의 신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오열하며 바닥을 두들기는 라헬이 존재했으나.
그 모습은 천상에서도 철저하게 감추어진 사실이었기에 지상의 무링신이 알 수는 없었다.
‘덕분에 슬슬 승천을 시도해도 될 법하기는 한데.’
몇 달 사이, 제국의 황족과 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무링교의 교세는 무섭게 확장되었다.
이제는 바벨리안 제국의 제2종교는 되는 수준.
비록 타국의 신앙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라고 하나, 무링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든든한 지지 세력이 있었다.
바로 마대륙의 마족들.
무링교가 바벨리안의 제2종교가 될 동안 마대륙은 모든 마족의 무링교화를 끝냈다.
‘건전한 육체에 강력한 신의 힘이 깃드는 법이다!’
단순히 힘에 굴복한 것을 넘어, 진심으로 무링신을 따르게 만드는 데르마치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마왕 경력이 몇 번이요, 단순하게 싸움을 하는 마족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고민한 세월이 얼마인가.
심지어 입으로만 떠드는 레피스와 달리 자신에 대한 신앙도 제법 존재했기에, 기회만 된다면 레피스를 대신하여 무링교의 교주 자리를 넘기고 싶은 상황이었다.
“큭… 라헬 녀석, 도대체 무슨 짓을 준비하기에!”
라헬이 이전의 참사를 피하고자 신력을 아끼고 아끼느라 그저 울면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르윈은 이를 갈며, 이것도 줄 수 있겠냐며 48번째 패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슬슬 때가 되었구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무링신은 생각했다.
오랜 핍박과 억압을 견뎌 내고, 다시 천상에 도달할 그날을.
라헬과 파괴의 여신을 지상으로 떨어트리고, 그들을 내려다볼 순간을!
“…이게 아닌데.”
그리고 천상에 도달하는 역사적인 날, 십자가에 묶인 상태로 지상을 내려다보며 무링신은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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