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50. 신약 (4)
“크윽!”
“더러운 이단 놈이!”
“시끄럽고.”
“컥!”
바닥에 축 늘어진 반시체를 보며 르윈은 고민했다.
‘귀찮은데 그냥 다 죽일까.’
창조의 교단에서 무링교를 이단으로 선언했으나, 생각보다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르윈의 계산 영역이기는 했다.
충분히 해외로 세력을 확장하려 노력할 수 있었음에도, 제국 내부에서만 성장을 시킨 이유가 무엇이던가?
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일어났을 경우, 최대한 피해가 없이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이단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고 있는 제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테니까.
창조의 교단 신앙이 아무리 대륙 깊숙이 퍼져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천상에 존재한다는 신보다는 눈앞의 현실이 더 중요한 법.
그 현실을 부수면서도 여신의 말을 따를 광신도는 그리 많지 않다.
다르게 말하자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반응이 약해서 애매한데.”
그런데도 날뛰는 소수의 광신도가 존재한다는 말이었고, 그중 대표적인 집단이 이단 심문관들이었고.
매일같이 제국의 수도로 숨어드는 그들을 르윈이 때려잡고 있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르윈도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기는 했다.
여신의 명이라면, 위에서 시키지 않아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 이단 심문관이었고.
그들과 함께 불나방처럼 불길 속으로 달려들었던 시절이 르윈에게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르윈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미친 것들이 이렇게 미지근한 대응을 하다니.
“라헬이 발작했을 텐데.”
“더러운 입으로 여신님을……. 컥!”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작은 중얼거림에도 발작하는 이단 심문관을 걷어찬 르윈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이름만 불렀다고 발작하는 것을 보면 옛날보다 성격이 좋아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라헬이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신탁을 내리지 않았다면 말이 된다.
하나 아무리 라헬의 머릿속이 꽃밭이라고 하더라도 무링신이 승천하고, 제국이 국교를 바꾸었으며, 자신이 이단까지 선언했음에도 좋게 끝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 정도로 멍청이는 아닐 텐데.”
맞다.
어차피 숙적인 파괴의 여신도 망했겠다, 라헬은 진심으로 르윈과 한판 싸우려고 마음먹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간 모아 온 신력을 다 써 버려서 지상에 신탁을 내리지 못할 뿐.
지금 이 순간에도 교황을 비롯한 성자와 성녀에게 자신의 텔레파시가 닿기를 바라며 간절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으나.
‘여신이시여, 우리에게 답을 주소서.’
‘그날 저는 보았습니다. 평화의 신께서 하늘에 올라가는 것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무슨 일을 더 저지르기 전에 그냥 들이박기를 원하는 라헬과 달리, 신도들은 여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 더욱더 그녀의 목소리를 갈구하고만 있었다.
-그냥 좀 싸워라!
라헬은 천상에서 그렇게 소리쳤으나, 이 모든 것이 본인의 업보였다.
그간 세상을 다스리면서 자신의 수족들을 수동적으로 바꾼 장본인이 라헬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소극적으로 움직이면 나야 편하지.”
고작해야 요인 암살이라니.
레피스가 들었다면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발작을 했을 말이지만, 다행히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르윈과 제국의 황족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기에.
“그럼 먼저 우리가 쳐야지.”
일단 수비적이었던 르윈이 먼저 공세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
역사와 종교는 늘 불편한 관계였다.
아니, 원래 종교라는 것은 대부분의 것들과 불편한 관계였다.
인류 역사의 흔적을 찾는 역사계는 경전에 적혀 있는 내용과 다른 내용이 발견되면 종교계의 반발에 눈물을 머금고 수정을 해야 했고.
마법으로 진리를 찾는다는 목적을 가진 마법사들은 새로운 마법 이론을 만들 때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 주장하며 반발하는 종교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도 현자의 돌을 만들겠다는 연금술 학문이나, 사람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계는 종교계와 붙어 개박살이 난 전적도 있었고.
원래부터 인식이 안 좋았던 흑마법계는 분파 하나가 마신이랑 손을 잡고 세상을 위기로 빠트리니, 옳다구나 하고 창조의 교단에서 용사를 앞세워 멸망시키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수많은 지식인들은 종교계, 대표적으로는 창조의 교단을 보며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기회만 있어 봐라. 내가 나중에 제대로 한 방 먹인다.
그렇게 각오를 가진 지식인들은 눈앞에 서 있는 한 명의 종교인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지금 창조의 여신은 가짜입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원했던 것은 아닌데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충격적인 말을 내뱉은 이는 최근 가장 유명한 종교인 중 하나이자, 그 창조의 교단에서 마신을 따르는 무리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전쟁을 선언한 교단의 수장이었다.
그러한 인물이 제국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였다는 소식에 수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종교계와는 거리가 먼 지식인들의 학회에 종교인이 나와서 무슨 말을 할까.
제국의 국교 변경 선언 이후, 불참을 선언한 몇몇 교수들을 제외하고는 대륙의 모든 이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과연 창조의 교단으로부터 이단 선언을 받은 교주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창조의 교단과 화해를 예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몇몇 교수들은 창조에 교단의 행패에 규탄을 말하리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모두 비웃듯, 레피스 원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신, 라헬은 창조의 여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신입니다.”
한판 뜨자.
레피스의 말을 정리하면 그냥 창조의 교단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저희는 그 증거로 고대에 남아 있는 유적의 석판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뭐?”
그러나 이어지는 레피스의 행보는 그들의 상식을 다시 한번 뒤집는 것이었다.
그간 종교인들이 지식인들에게 반박의 증거로 삼았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바로 그들이 쓴 경전이요, 신의 말이라는 신탁이었다.
우리 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잖아.
신탁이 아니라고 하잖아.
신의 목소리에 반박하는 건가?
이 새끼, 너 이단.
그렇게 역사적 사료와 학문적 증거들을 내세우던 이들은 이단으로 이단 심문관들에게 끌려갔고.
지하 고문실에서 며칠 지내고 나오면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물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지하실에서 나오지 못했으니, 창조의 교단의 승률은 100퍼센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수만 년 전에 인류가 남긴 석판으로, 고대 왕국이라 일컬어지는 플레네타레 왕국의 상형문자와…….”
하지만 레피스는 무링교의 경전도, 무링신의 신탁도 내세우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학자들도 군침을 흘릴 만한 고대 유물들을 가져와 그 안의 기록들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 용사이신 파테인 님이 직접 남긴 일기로…….”
심지어 창조의 교단에도 남아 있지 않은 옛 용사의 일기나 기록물들까지 제출하니,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인가? 진짜 유물인가?”
“가짜겠지. 저런 유물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최근 과거 용사와 관련된 가짜 유적들이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가짜 유적에서 나온 가짜 유물일 확률이 높지.”
“자네 그 소리 못 들었는가? 가짜 유적 중 상당수가 진짜라고 하던데.”
“나도 들었다네. 창조의 여신에 대한 안 좋은 기록들이 남아 있어, 창조의 교단에서 폐쇄하고 가짜 유적이라고 둘러댔다던데.”
“창조의 교단이라면 그럴 수 있지. 예전에도 다른 교단을 국교로 삼았던 고대 왕국의 기록을 마족과 엮어서 다 지우게 만들지 않았나.”
“그렇다 하더라도 저 내용들은 너무 과격한데…….”
“그러니까 창조의 교단에서 지우려고 했을 수도 있지.”
“창조의 교단이라면 그럴 만하지.”
하나둘 나오는 증거물들은 진실일 경우 충격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었으나.
그것을 가짜라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창조의 교단이라면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았다.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은 용사를 앞세운 창조의 교단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식인을 자칭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창조의 교단을 비롯한 여러 교단에 탄압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교단의 필살기, ‘너 이단’이 존재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이곳에 있는 이들은 인류에 흔치 않은, 창조의 교단에 적대적인 이들이었다.
“그렇게 탄생의 여신은 창조의 여신의 탈을 쓰고 인류를 농락했습니다. 풍요와 다산의 여신 등을 억압하고, 진실을 왜곡했습니다.”
창조의 여신은 본래 다른 신이다.
레피스의 주장은 그렇게 끝이 났고, 제출한 모든 증거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참석한 학자 중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여도 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떳떳하다.
거짓이 있다면 밝혀 봐라.
그간 학자들이 수많은 교단에 원했던 것을, 당연한 일이라는 듯 해 주는 레피스와 무링교의 행보에 많은 지식인들이 호감을 보냈으나.
“…….”
“…….”
“…….”
“…….”
문제는 호감과는 별개로 무링교를 지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무링교가 제국에서 잘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창조의 교단과 싸움은 안 되지.’
‘창조의 교단 출신의 용사님들 기록에 여신을 규탄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니. 조금 이상하긴 하잖아?’
‘교묘하게 만들어진 가짜일 경우, 연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목이 날아가겠지.’
‘모든 게 진짜라 하더라도,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까.’
이곳에 있는 이들은 크든 작든 창조의 교단에 덴 적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렇기에 창조의 교단을 적대했을 경우의 리스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뿐인가?
“아리타 왕국의 아이베그 자작이라 하오. 귀하가 말한 내용 중, 제가 모시는 아렐리드 가문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는데…….”
그녀가 제시한 증거 중에는 역사적으로 따져 볼 만한 가치를 지닌 고대의 유물도 있었으나,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을 포함하는 것들도 있었다.
물론 그 최근이 최소 천 년 전의 일이기는 했으나, 놀랍게도 그 세월을 버티며 아직 살아 있는 곳이 몇 존재한다.
아직도 대륙에서 제법 목소리를 내는 아리타 왕국이 그 대표적인 예였고, 그중 아렐리드 가문은 과거 용사와 함께했던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당연히 그와 관련된 기록물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학자들보다도 신빙성을 가진 곳!
그런 곳에서 반발을 했음에도 레피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할 수 없었다.
‘이미 강을 건넌 뒤야.’
창조의 교단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자신을 노리는 수많은 이단 심문관의 존재를 두 눈으로 목격한 이후, 레피스는 창조의 교단의 몰락만이 자신의 살길임을 깨달았다.
어째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을까.
과거에는 이런 생각에 머리를 쥐어뜯었겠으나, 이미 갈 데까지 가 버린 레피스는 그냥 창조의 교단을 제쳐 버리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건 역사적으로 따져 볼 일이군요.”
“아렐리드 가문의 확실한 주장이 있음에도?”
“그렇습니다. 의외로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귀하의 말은 아렐리드 가문이 함께했던 용사님을 잘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책임이라…….”
레피스의 표정이 바뀌었다.
한참 아랫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혹은 우매한 자를 보는 듯한 시선.
인생 10회 차가 감탄하고, 이제는 완벽하게 천상으로 올라간 신조차 감탄한 타고난 사기꾼의 기질에 좌중이 압도되는 순간.
“아렐리드 가문의 서고, 1283번째 책장을 잘 살펴보시면 마법적 장치가 하나 되어 있을 겁니다.”
“그게 무슨……?”
“저희가 찾은 용사님의 기록에 나온 것입니다. 그것을 이용하면 비밀 공간이 나올 텐데, 그러면…….”
세계를 경악하게 한 제국의 학회가 끝난 후.
아이베그 자작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아렐리드 후작가로 복귀했고.
가주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한 뒤, 가주를 포함한 몇몇 가신들과 함께 레피스가 말한 비밀 공간을 찾았다.
그리고.
“…진짜 있었다니!”
“이럴 수가!”
아렐리드 가문조차 모르는 비밀 공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경악.
그곳에서 나온 선조들의 옛 유물에 다시 한번 경악했다.
그리고.
“…….”
“…….”
“…….”
아렐리드 가문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위대한 영웅들의 불륜 일… 아니, 비밀 일기에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