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51. 엑스트라 (3)
높이 날수록 추락하는 속도가 더 빠른 법이고, 그럴수록 추락했을 때 타격이 더 큰 법이었다.
창조의 교단이 그러했다.
라헬은 좋은 의미로 빠르게 최고신의 자리에 올랐고, 그 자리를 가장 오랫동안 지켰으나.
그 과정에서 행한 일들은 자신의 규격을 넘은 것이 많았고, 그렇기에 많은 신으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른 신들이 적대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라헬이 최고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적대한 신들이 이미 다 망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리라.
그렇기에 라헬이 흔들리는 순간 많은 신이 라헬을 적으로 돌렸고.
과거의 역사처럼 라헬이 버텨 내리라 생각했던 신들 또한 라헬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가볍게 라헬을 버리고 반라헬 세력에 붙었다.
“라헬은 좀 그렇지.”
“자신의 신명마저 사기를 쳐서 최고신이 되었으니까.”
“자기가 파괴의 신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걸, 자신의 신도들에게까지 떠넘겼지.”
“맞아. 그것들 때문에 지상이 본 피해가 얼마야?”
“저번 대전쟁 때문에 우리 교단은 진짜 망할 뻔했다니까?”
그간 쌓여 왔던 불만이 폭발했다.
당연한 일이다.
본래 신이란 하나의 개념을 담당하는 이들이었고, 그렇기에 그 격에 높고 낮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고신이라는 칭호는 그런 무료한 신계에 흥미를 주기 위한 것에 불과했었다.
하나 그 최고신의 자리를 라헬과 파괴의 여신이 독점한 이후, 최고신이라는 칭호는 단순한 명예가 아니게 되었다.
압도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다른 신들보다 지상에 더 개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개입함으로써 더욱더 신앙을 독점할 수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용사와 마왕의 시스템은 신들에게 더 큰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부활의 권능은 신들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이기에, 영혼의 윤회라는 방법으로 비틀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신들로서는 참으로 할 말이 많은 상황이었으나, 그것을 지적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를 갈면서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윤회를 거듭한 용사의 영혼이 라헬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라는 말을 내뱉지 않는 신들이 없을 정도다.
“멍청했지.”
“용사를 너무 부려 먹었어. 적당히 부려 먹었어야지.”
“하지만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잖아?”
“그렇긴 하지. 웬만한 신들보다 신앙을 받고 있었고. 새로운 영혼으로 대체하는 순간 마왕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했겠지.”
“그 마왕이 파괴의 여신을 떨어트릴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마대륙의 기형적인 시스템을 생각하면 오히려 인대륙보다 쉽지.”
“그건 파괴 놈이 잘못한 거지. 약육강식을 강조해서, 자기가 잡아먹힌 꼴이잖아?”
덕분에 기회를 잡은 신들은 그간의 한을 풀듯 날뛰었다.
덕분에 죽어 나가는 것은 지상에서 간절히 라헬을 향해 기도를 올리던 창조의 교단이었다.
인류의 국가 중 가장 강력한 제국을 중심으로 여러 이종족이 붙고.
거기에 지원 사격을 날리듯 여러 교단의 신들이 창조의 여신을 비난하는 신탁을 내렸다.
그뿐인가?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라헬이 창조의 여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물론, 창조의 교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사의 기록물 또한 라헬을 비난하고 있었다.
이 정도가 되었음에도 안 망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라헬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물론 그건 신력을 모조리 다 써 버렸기 때문이었으나, 창조의 교단이 그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한, 창조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라헬이 고작 인간의 신앙이 부족하여 신탁도 내리지 못한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덕분에 라헬 신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국에서조차 이탈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연쇄적으로 믿음이 떨어져 신앙의 수급이 떨어진 라헬의 입은 더더욱 봉쇄당하였고.
침묵하는 여신에게 실망한 창조의 교단의 신도들은 더욱더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했다.
신실한 신도조차 이러할진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라헬의 평가가 어떤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진짜 망했는데?”
“이건 끝났네.”
그렇게 몇 달이 더 지난 이후.
신들 사이에서 사실상 창조의 교단이 망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윤회를 거듭하였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신을 떨어트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인류사에 다시없을 업적.
그것에 성공한 르윈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 하면.
“지금부터 베르샤 아카데미의 졸업식을 진행하겠습니다.”
10년의 아카데미 생활을 끝내고 있었다.
***
“선배님…….”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라일라를 보며, 르윈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게 그 존재감이 없어서 구석에서 훌쩍이던 라일라가 맞나?
그 라일라가 수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졸업하다니!
“그래, 그래.”
자신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학생회 후배를 보며, 라일라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대학원 들어가서, 계속 학생회장 해 주시면 안 돼요?”
“맞아요. 솔직히 선배님 없으면 아카데미 업무 터질 것 같은데…….”
“너희는 라일라라는 이름 뒤에 붙은 가문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구나. 라인하르트의 이름으로 가문을 박살 내 줄까?”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 저는 평민이라서 박살 날 가문이 없습니다.”
“그래. 내정의 라인하르트의 힘을 보여 줄게. 넌 졸업해서 공무원 되는 순간 가장 빡센 곳으로 보낸다.”
“…죄송합니다!”
…이게 그 착하던 라일라 라인하르트가 맞나? 아무리 대학원생이 되어 학생회장이 되라는 저주를 퍼부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날 선 모습을 보이다니.
‘다른 의미로 가슴이 웅장해지네.’
성장했구나…….
너무나 크게 성장한 라일라의 모습에 르윈은 다른 의미로 눈물을 훔쳤다.
“선배, 졸업하시는군요.”
“이제 드라이르프 가문에서 기사로 일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무링교의 용사로 일하는 건가요?”
“아, 선배, 남은 단추는 제가…….”
시선을 돌리자 이미 재킷과 넥타이는 물론 와이셔츠의 모든 단추까지 뜯기고 있는 하인스의 모습이 보였다.
당황하면서도 이게 아카데미의 전통이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 보고.
진짜로 단추를 받아 가는 학생들에 한 번 당황.
그러나 자신처럼 너덜너덜해지고 있는 사람은 없어서 다시 한번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선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같은 교단의 용사니까 앞으로도 볼 수…….”
“그, 그래, 빌. 나 없다고 훈련을 멈추면 안 되고… 아니, 잠깐만. 겉옷까지 가져가는 거야? 이 날씨에 거의 상의 탈의인데?”
빌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는 사이, 자신의 겉옷을 탈취하는 후배들에 하인스는 넝마를 넘어 거지꼴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저게 학생 시절에 소드마스터를 달성하고, 대륙에 이름을 떨친 이가 맞는가.
라고 묻는다면, 마찬가지로 소드마스터를 달성한 예리엘 역시 비슷한 꼴이었다.
그나마 하인스처럼 다 뜯긴 것은 아니고, 재킷의 단추와 넥타이 정도만 뜯겼으나.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남자들의 눈물에 그녀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데도 아직 연애를 못하다니.”
“하려면 도련님부터 하셔야죠.”
“나이로 따지면 데이지 네가 우선 아니야?”
“…여기서 나이가 왜 나와요?”
데이지가 인상을 한껏 찌푸리는 것을 보며, 르윈은 한숨을 쉬었다.
“인식 마법 풀고 나가지.”
창조의 교단에 마지막 비수를 날린 데이지는 그 즉시 용사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배신자 취급은 덤이다.
덕분에 혼란스러운 아카데미에서도 취급이 애매해졌으나, 그녀는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련님이나 그러시죠.”
어차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용사였고, 그 목적을 이룬 이후에는 인생의 짐일 뿐이었다.
여생을 드라이르프 가문의 종자로서 살아야 할 그녀에게 용사라는 이름은 불필요한 허울이었다.
“귀찮은데.”
“저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인생 10회 차가 되어 가면서 달성한 용사 탈출을, 고작 인생 1회 차 만에 달성한 데이지를 보며 르윈은 감탄했다.
탈출하지 못한 예리엘과 하인스가 앞으로 열심히 굴려질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인사는 하는 게 좋지 않아?”
“베리엘 님을 비롯한 인사를 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모두 해 두었습니다.”
“나는 선배한테 인사도 못했는데.”
“루테스 전하는… 이제 후배가 아닙니까?”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지!”
결국 아카데미로 복귀를 못하고 그대로 유급 처리된 루테스를 떠올리며 르윈은 아쉬워했으나.
당사자인 루테스는 차라리 유급이 낫다고 안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르윈은 알지 못했다.
“앞으로 졸업하면 바빠지겠군요.”
“아카데미를 졸업했는데,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뭘 하셨다고요.”
“진짜 많이 했는데.”
무려 인류 최대 종교였던 창조의 교단을 무너뜨렸다.
예상보다 빠르기는 했으나, 그 과정을 만들기 위해 밤잠을 포기해 가며 열심히 삽질해 유적을 만들고.
과거의 필체를 떠올리며 팔이 빠지라고 유산을 만들었다.
아마 이 아카데미에서 자신과 비슷한 분량의 일을 한 사람은 라일라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사실 쉰다는 것도 겉모습만의 이야기지, 앞으로 할 일이 많았다.
남아 있는 창조의 교단의 뿌리를 뽑는 일도 해야 했고.
라헬이 파괴의 여신과 손잡고 지상으로 떨어져 머리채 잡고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매드 온즈와 만들고 있는 경기장도 완성해야 했으며.
제법 반발이 심한 수인족을 아이리를 내세워 진정시켜야 했으며.
아직도 많은 곳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는 베아트리체를 중심으로 한 흑탑의 재건도 있고.
그 밖에도 호시탐탐 무링교의 자리를 노리는 다른 신들과의 암투도 남아 있었다.
하나같이 자업자득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일들이었으나,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것이 자신을 계속 되살린 라헬 때문인데!
“바쁘시긴 하겠죠.”
그런 르윈의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평소라면 한 소리를 했을 데이지가 르윈을 인정해 주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
그에 르윈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이 녀석, 무언가를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인자한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볼 리가 없었으니까!
“무, 무슨 속셈이야.”
당황하는 르윈을 보며, 데이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가문에서 연락이 왔을 뿐입니다.”
“무슨 연락인데?”
“그냥 가주님의 안부 연락입니다. 도련님이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공부는 열심히 했냐. 인간관계는 괜찮냐. 혹시 연애 같은 것을 몰래 하고 있지는 않았냐 하는 시시콜콜한 연락이었죠.”
“…….”
“제가 도련님에게 누가 되는 보고를 했겠습니까? 사실에 기반하여 적당히 말을 넘겼습니다.”
“그, 그래?”
“하지만 연애에 관련해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으니까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니…….”
말끝을 흐리고 있으나, 데이지의 입가에 담긴 것은 웃음이었다.
그에 르윈은 그녀의 뒷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설마.”
“네. 그 설마입니다.”
“…….”
데이지의 시선이 조금 먼 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고백 러쉬를 받는 예리엘과 한겨울에 반나체가 되어 덜덜 떨고 있는 하인스가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없다면 약혼을 마저 진행하겠다고…….”
“형들도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어린 시절, 맞선의 악몽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르윈이었다.
그 짓을 또 해야 한다니.
‘그때처럼 애들 우는 꼴은 안 보겠다마는.’
인생 10회 차나 되어 먹어서, 애들과 맞선을 본 기억은 르윈에게 있어서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덕분에 맞선, 약혼이라는 단어에 식은땀이 줄줄 나올 정도!
라헬을 상대로도 느끼지 못한 압박감을 느끼며, 르윈은 어떻게든 도망쳐 보려 하였으나.
“참, 연말에 장남인 라테일 님께서 결혼할 예정이라는 건 아시죠?”
“…….”
하나하나 줄어드는 도주로에, 그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