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5)
35화 8. 인생 10회 차는 동아리 활동을 즐긴다 (2)
“와.”
레피스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인원이 되게 많았구나.’
고작해야 총원이 열다섯.
소규모 동아리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숫자였다.
고작해 봐야 최소 인원에서 다섯이 늘었을 뿐이었으니까.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기사 동아리나 마법 동아리하고는 비교할 가치조차 없으며, 그 아래라고 할 수 있는 승마나 도서관 관련 동아리와 비교해도 우스울 뿐이었다.
하물며 종교 관련으로는 창조 동아리가 존재한다.
이름만 들으면 신의 권능을 사용할 것 같지만, 그저 주말마다 동아리실이라는 이름의 성당을 가는 것뿐인 동아리였지만.
‘우리도 나중에 크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창조 동아리의 건물은 아카데미 최대급 동아리인 기사 동아리와 마법 동아리보다 훨씬 큰 규모를 자랑했고, 그곳은 창조의 교단에서 파견한 사제들이 직접 관리를 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이사장이 창조의 교단에 잘 보이기 위해서 따로 건물을 지어 준 것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
‘그게 될 리가 없지.’
창조의 교단의 다른 이름은 이 세상의 구원자.
인류가 무너질 위기에 빠지면, 창조의 여신 라헬께서 용사를 보내어 인류를 구원해 주셨다.
아주 먼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장 처음은 수천 년 전이지만, 가장 최근의 이야기는 고작해야 몇백 년 전의 이야기.
바벨리안 제국이 제국이라 불리기 이전이라는 점에서 아주 오래되어 보이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 나라의 역사에는 용사의 모습을 직접 보고 적은 기록이 있다는 의미였다.
용사라는 존재는 신화나 전설이 아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했고, 위기의 순간마다 인류를 구원했다.
그리고 그 용사는 오직 창조의 교단에서만 나온다.
그것이 가진 상징성은, 다른 어떠한 교단도 창조의 교단을 넘볼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모은 이유는,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떠올리며 레피스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동아리 부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건 동아리 활동일 뿐이니까.
아무리 제국의 황자와 공작가 도련님이 있다고 하더라도, 용사의 역사가 존재하는 창조의 교단은 이길 수 없으니까!
‘어차피 안 되는 거, 공작가 도련님 말씀을 잘 들어 줘야지!’
차라리 평민이라면 잃을 것이라도 적지, 어중간한 하급 귀족은 공작가의 손짓 한 번으로 집안이 박살 난다.
그렇기에 레피스는 부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며, 르윈의 꼭두각시가 되어 르윈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여러분이 바쁘게 현생을 살고 계셨을 때, 저희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나아간 건 신입인 르윈 혼자였지만 어쩌겠는가?
공작가 도련님이 그렇다고 하면 따르는 게 맞지.
“저희는 이제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가 아닙니다.”
레피스의 말에 동아리 부원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소리일까?
우리 동아리가 이제 망하는 건가.
슬슬 망할 때가 되기는 했지.
다른 동아리를 찾아야 하나.
그래도 황자와 공작가의 핏줄이 있는데 학생회에서 폐부를 시킬까.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레피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어.’
그녀가 다시 눈을 뜬 순간, 당황하고 있지 않은 세 부원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떨떠름한 표정의 루테스 황자.
왠지 모르게 따스한 눈으로 레피스를 바라보는 데이지.
그리고 어서 일을 진행하라는 느낌으로 고개를 까딱하는 르윈의 모습.
“하아.”
자신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쉰 레피스는 곧 마음을 다잡고 동아리실에 있는 모두에게 선언했다.
“우리가 연구하는 신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가 아닌.”
잠깐 말을 끊은 그녀는 말라 버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르윈을 바라보고, 그의 고개가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도 이제 몰라!’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목소리로.
“무링신 연구 동아리로서, 앞으로 더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동아리의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모두에게 알렸다.
***
적막한 침묵이 동아리실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링신 연구 동아리?”
“이름 없는 신이 아니잖아?”
“원래 이름 없는 신들은 이름을 잃은 신들이라고 하긴 했잖아. 그 이름을 찾은 거 아니야?”
“전문가들도 못 찾은 걸 회장이 찾았다고?”
곳곳에서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질문 받습니다.”
그 모습에 레피스는 짧은 한마디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회장님!”
“네.”
“신 이름이 왜 무링이죠?”
가장 먼저 손을 든 부원을 바라보며 레피스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신입 부원인 르윈 디 드라이르프 후배님이 정한 이름입니다.”
불만이라도 있나요?
그렇게 묻는 것처럼 웃는 레피스의 모습에 질문한 부원은 고개를 격하게 저으며 손을 내렸다.
“다음.”
레피스의 말에 부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름을 정한 것이 르윈이다.
그것을 알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저, 저기.”
“그래, 피르야.”
“그, 무링신께서는 무엇을 하는 신이신가요?”
나름 친한 후배라서 그런가.
기세를 조금 낮춘 레피스의 모습에 피르는 조심스럽게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평화의 신이라고 들었어.”
들었어.
그 한마디로 부원 모두의 시선이 잠깐 르윈에게로 향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름도 르윈이 정했고, 신의 역할도 르윈이 정했다.
그것을 알게 된 순간, 모든 학생들의 머릿속을 하나의 사실이 강타했다.
‘이거 사이비 아닌가?’
신의 모든 것을 인간이 정한다는 것은 들어 보지도 못한 만행이었다.
이거 이대로 괜찮은 건가.
지금 당장 동아리실 문을 박차고 이단 심문관이 난입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거 괜찮은 거야?’
‘신고할까?’
‘그냥 동아리 활동인데, 신고는 너무 나간 거 아니야?’
‘잘못하면 드라이르프 가문하고 척을 지는 일이 되는데?’
창조의 여신 라헬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창조의 교단에서 매번 하는 말이었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없다.
그에 비해 르윈 디 드라이르프는 바로 앞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여신님께서는 자비로우시잖아.’
‘우리의 마음도 다 아신다고 하셨으니까.’
‘그렇지. 잘못하더라도 용서를 해 주실 거야.’
멀리 있는 이단 심문관보다는 가까이 있는 고위 귀족이 더 무서운 것은 당연한 일.
동아리 부원들은 하나하나 자기 합리화를 하며, 레피스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데요?”
“저희도 슬슬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할 시기가 됐죠.”
“요즘 학생회에서도 비활동 동아리 폐부시키려고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도 있으니까요.”
곳곳에서 찬성으로 의견이 모이는 것을 보며 레피스는 생각했다.
‘이게 아닌데.’
이게 맞나.
한 명쯤은 이게 무슨 헛소리냐고 들고일어났으면 했는데.
‘권력에 무릎을 꿇다니.’
가장 먼저 무릎을 꿇은 레피스였지만, 레피스는 그 책임을 다른 부원들에게 떠넘겼다.
“그럼, 모두 동의한 거로 알겠습니다. 혹시 불만 있으신 분?”
불만 있잖아. 다 알아.
그러니까 마음 편히 말해.
그런 눈으로 부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레피스였지만, 부원들은 이미 다 내려놓은 표정이었다.
“불만 있으신 분?”
“…….”
“아무도 없나요?”
“…….”
“그, 그럼 이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의문문으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박수와 함성이었다.
“…….”
그 모습에 레피스는 좌절했다.
그녀 또한 부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어도 손뼉을 치고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회장이라는 게 문제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부원들은 잘 몰랐다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레피스는 아니었다.
르윈이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교단에서도 드라이르프 가문과 척을 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매우 높은 확률로 자신을 주범으로 몰아세우겠지.
‘살려 줘.’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레피스는 부원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나 레피스와 눈이 마주친 이들은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이것들이.
‘다 알고 하는 거구나.’
제물이었다.
회장이 불쌍하지만, 우리까지 불쌍해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한 명의 희생으로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면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아, 역시 평화의 신(자칭)을 모시는 동아리의 회장답구나!
그런 생각을 모두 읽은 레피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망했다.’
인생 망했다.
앞으로는 창조의 교단에 들키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해야 했다.
레피스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우리 동아리는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에서 무링신 연구 동아리로 변경되었습니다.”
그 말을 내뱉으며 레피스는 부원들에게 원망 섞인 눈빛을 보냈고, 부원들은 그 시선을 피하며 다시 한번 손뼉을 쳤다.
‘불쌍한 회장님.’
‘감금되면 사식은 넣어 드릴게요.’
하지만 이들은 알지 못했다.
훗날 교주가 될 레피스와 함께, 자신들이 무링교의 부흥을 이끈 열두 명의 선지자라고 불리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무서워하던 창조의 교단의 이단 심문관들과 농담을 할 정도로 친근하게 만나게 된다는 것을!
***
동아리 시스템은 제국이 아카데미 시스템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분야였다.
그렇기에 단순히 부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학생회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그 서류가 학생회 내부에서 통과가 된 다음, 아카데미 측이 이를 수락해야 바뀐다.
고작 이름 하나 바꾸는 데 뭐 이리 귀찮은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레피스에게는 이게 희망이었다.
‘회장님, 제발! 당신은 우리 아카데미의 한 줄기 빛이시잖아요!’
학생회장이라면 이 정신 나간 동아리명 변경을 허락하지 않으리라.
아니, 학생회장이 허락하더라도 아카데미 교수진들은 허락하면 안 된다!
“이게 된다고?”
하지만 레피스가 놀랄 정도로, 부의 이름은 빠르게 통과되었다.
“진짜로?”
일 처리가 느린 것으로 유명한 학생회였다.
물론, 학생회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저 학생회로 넘어가는 일거리가 너무나도 많았을 뿐.
인력은 늘 부족하고, 일거리는 늘 많으며, 떠넘겨지는 일은 그보다 더 많기에 일 처리가 느려 보일 뿐이었다.
“아, 안 돼!”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생회가 일이 많아서 일 처리가 느린 것이라면, 그냥 말 그대로 일을 안 해서 일 처리가 느리기로 유명한 교수들 또한 이번만큼은 일 처리가 빨랐다.
‘이, 이것이 권력의 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레피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황실의 이름과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이름이 함께 붙어 있는 동아리였다.
교수들도 눈치는 있다.
아니, 연구 예산에 민감한 교수들이기에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
그렇기에 이름 변경 신청 하루 만에 동아리의 이름은 변경되었다.
평소라면 대충 알아서 가져가라고 공문을 보낼 서류 또한 학생회 임원이 직접 들고 뛰어올 정도로 신속하게 전달이 되었다.
“망했어.”
그냥 학생회의 서류의 산에 파묻혀서 영원히 꺼내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아니, 적어도 내가 졸업할 때까지만 잃어버렸으면 하고 기도했는데!
‘망할 여신님.’
뭐가 기도하면 뭐든지 이루어 주는 여신님이란 말인가!
그렇게 창조의 여신 라헬을 향해 원망을 보내던 그때.
똑똑.
“누구세요?”
동아리실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있던 레피스의 귓가에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올 사람은 보통 셋.
루테스와 르윈이라면 그냥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테니 남은 것은 데이지뿐이었다.
‘혼자 왔나?’
본직이 르윈의 시녀인 만큼 대부분 르윈과 붙어 다니지만, 아카데미인 만큼 간혹 혼자서 활동하는 일도 있었다.
“데이지니?”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상대방은 데이지가 아니었다.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참으로 익숙하다고 생각하며 레피스는 조심스럽게 동아리실의 문을 열었고.
“안녕?”
온화한 웃음을 짓고 있는 창조 동아리 회장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