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6)
36화 8. 인생 10회 차는 동아리 활동을 즐긴다 (3)
창조 동아리.
검과 마법을 제외한, 아카데미 최대급 동아리 중 하나이자 창조의 교단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종교 동아리였다.
그리고 그런 동아리의 회장, 베르마샤 라이트는 그저 그런 동아리 회장이 아니었다.
무려, 창조의 교단의 성자 후보 중 하나였다.
“마, 맛은 괜찮나요?”
그렇기에 레피스는 그가 동아리실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네, 맛있습니다. 우리 동아리의 다과도 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의 다과를 이길 수는 없겠네요.”
“가, 감사합니다!”
베르마샤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본래 비활동 동아리였던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의 다과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끔가다 쉬어 가는 부원들이 남겨 둔 과자나 차가 다과의 전부.
그러나 이번 연도부터 거의 매일 찾아오는 르윈으로 인하여 많은 것이 바뀌었다.
르윈이 오고, 그의 손에 루테스가 끌려왔다.
제국의 황족과 공작가의 도련님에게 싸구려 다과를 내놓을 수 없었기에 레피스가 눈물을 머금고 지갑을 열려고 하였지만, 그녀가 구할 수 있는 물건엔 한계가 있는 법.
그것을 알고 있던 데이지가 늘 다과를 준비해 놓았기에, 레피스의 지갑은 지켜진 채 동아리실에 고급 다과가 준비되어 있을 수 있었다.
‘고마워, 데이지 후배님. 내가 더 잘할게!’
그리고 그로 인하여 창조 동아리의 회장님에게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레피스의 안에서 데이지에 대한 호감도가 무럭무럭 상승할 무렵.
“아! 죄송합니다, 레피스 자매님. 오늘부터 이름 없는 신 동아리가 아니었죠?”
“어…….”
갑작스러운 베르마샤의 사과에 레피스의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큰일… 난 건가?’
잊고 있었다.
레피스는 멍한 표정으로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짧게 자른 금발이 빛을 받아 후광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고, 10명 중 10명은 미형이라고 부를 아름다운 외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자함이 가득했다.
잘생긴 인자함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그 두 개를 모두 조합한 모습은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최대 종교의 성자 후보가 될 수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
‘그래, 그랬지.’
그렇다.
이 사람은, 성자 후보다.
그것도 이 대륙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교단의 후보.
비록 제국의 아카데미 시스템을 생각하면 가장 유력한 성자 후보는 황실 아카데미에 있을 테지만,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성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추기경 소리는 들을 엘리트 중의 엘리트 종교인이었다.
‘다 알고 물어보는 거구나.’
그런 종교인에게 옆에 작은 사이비 종교가 생겼어요! 하는 정보가 들어간 것이다.
하긴, 학생회와 교수진들이 이렇게 빠르게 일 처리를 했는데 그사이에 소문이 안 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죽는 건가? 아니, 차라리 빨리 죽여 달라고 해야 하나?’
레피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베르마샤의 등 뒤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언제 저 문이 열리고, 이단 심문관들이 쳐들어올지 몰랐다.
“네! 그랬었죠. 저도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아서 놀랐는데!”
그걸 왜 그쪽에서 알고 있냐는 말은 내뱉지 않았다.
아직이다. 현행범으로 잡혀가기 전까지, 모르는 척을 해야 한다.
레피스는 최대한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러셨군요.”
“네, 네. 동아리 부원들이 만장일치로 동의를 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부원들을 팔아먹었지만, 양심의 가책은 1도 느껴지지 않았다.
‘걔들도 날 팔았는데, 나라고 못 팔 줄 아나.’
원래 우두머리가 죽으면 부하들도 죽는 게 세상 이치다.
부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어쩌겠는가.
‘억울하면 회장 하든가.’
짧은 시간이지만 르윈과 루테스에게 단련된 레피스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표정이 굳었다 풀리기를 반복한 그녀는 어느새 완벽함에 가까운 포커페이스를 습득한 상황이었다.
“그렇군요.”
그 포커페이스에 속은 것일까.
베르마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갑작스럽게 신의 이름을 찾았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소수의 학생이서 그런 발견을 할 수 있었다니.”
정말로 놀랐다는 베르마샤의 말에 레피스는 얼굴을 격하게 흔들었다.
“아니, 그게 신의 이름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새하얀 머리카락을 허공에 휘젓던 그녀는 베르마샤에게 그간의 일을 짧고 빠르게 설명했다.
“이름 없는 신의 이름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먼저 이름 없는 신의 이름을 정했다.”
꿀꺽.
조용히 읊조리는 베르마샤의 모습에 레피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괜히 말했나?’
그동안 같은 표정을 유지하던 베르마샤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무엇을 고민하는 것일까.
르윈이 제시한 이론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다 잡아넣을까 고민을 하는 걸까.’
차기 성자 후보 중 하나한테 ‘우리가 종교 하나 만들었어요!’라고 말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서 거짓말을 했다가는 나중에 들켰을 때 더 큰 오해를 받을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될까.
‘역시 지하 감옥행인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 흔히 청춘이라고 불리는 시기.
그 시기를 온전히 성당 지하 감옥에서 보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베르마샤의 고민이 길어지는 것과 비슷하게 레피스도 모든 것을 포기해 갈 때쯤.
“흠, 그렇다면 무링신 연구 동아리도 베르샤 종교 동아리 연합에 들어와야 하는 걸까요?”
“네?”
베르마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레피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조, 종교 연합이요?”
“네. 대륙에 여러 종교가 존재하는 만큼 베르샤 아카데미 내부에도 여러 종교 동아리가 있습니다.”
“그렇죠?”
레피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베르마샤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개중에는 창조의 교단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큰 교단도 존재합니다.”
빛의 신을 모시는 빛의 교단.
전쟁의 신을 모시는 전쟁의 교단.
그리고 대지와 바다의 신을 모시는 대지의 교단과 바다의 교단.
“하지만 이 넷을 제외하고 다른 교단의 사정은 많이 좋지 않습니다.”
용사라는 상징을 지닌 창조의 교단이 너무나도 막강하기에 그 밑에 있는 하위 신들의 교단은 신도들이 매우 적을 수밖에 없었다.
대지와 바다라는, 인간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담당하는 신, 혹은 마족과의 전투에서 용사와 함께 전투했던 전쟁의 교단 정도가 아니라면 평범한 방법으로 신도들을 모을 수가 없었다.
“라헬 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럽고 추악한 마신을 따르는 신들이 아니라면, 누구나 우리의 형제이자 자매라고.”
신이 신도를 잃고 잊히면 신이 아니게 된다.
이름 없는 신.
신이자 신이 아닌 존재.
이제는 전설로만 내려져 오는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여태까지 그런 신들을 조사하셨으니, 이 아카데미에서 레피스 자매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그, 그렇죠…….”
방긋 웃으며 말하는 베르마샤의 말에 레피스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아무것도 안 했는데.’
솔직히 올해 전까지의 동아리 활동보다 르윈과 만난 이후의 동아리 활동량이 많았다.
레피스가 입학하자마자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에 들어온 것을 생각한다면, 그냥 작년까지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창조의 교단에서는 라헬 님의 뜻에 따라 각 신이 잊히지 않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르마샤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대충 여러 활동들에 각 교단의 인원들을 초대하고 함께 활동한다는 말들이었다.
“제국 건국 기념일이나 아홉 분의 용사님의 탄생일, 그리고 마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일 등은 인류 모두의 축제나 마찬가지니까요.”
“그, 그렇네요.”
베르마샤의 말에 레피스도 떠오르는 장면들이 몇 개 존재했다.
‘대충 창조의 교단의 높으신 분들이 ‘어느 교단의 누구십니다!’라고 말하면 처음 듣는 교단의 사람들이 일어나 인사를 하곤 했었지.’
베르샤 아카데미 행사에서도 간혹 나오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 것인가.
‘설마?’
레피스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베르마샤는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였다.
“아카데미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동아리가 종교 동아리 중에서 가장 큰 활동비와 시설을 가지고 있기에 여러 종교 행사를 할 때 각 교단이 저희 시설로 모이게 되죠.”
“어…….”
레피스는 베르마샤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름 없는 신.
본래 신이었지만, 신이 아니게 된 존재들.
신앙이 없기에 이름을 잃었고, 이름이 없기에 신앙이 없다.
그렇기에 여태까지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는 신이라는 단어가 붙었음에도 종교 동아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름이 존재했고, 그를 믿는 신도들도 생겼다.
물론 신도들 취급받는 동아리 부원들은 세상 억울하겠지만, 겉에서 그 사실을 알 수는 없는 법이었다.
“드, 들어가야 하나요?”
“교칙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나, 베르샤 아카데미의 암묵적인 룰이라고는 할 수 있으니까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베르마샤의 말에 레피스는 생각했다.
‘우리 아카데미가 암묵적인 룰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있었나?’
황실 아카데미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베르샤 아카데미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아직 신의 의지가 존재할 정도로 신앙이 모이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신을 모시는 동아리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종교 동아리 연합에 들어오라는 베르마샤의 권유에 레피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창조 동아리실.
동아리실이라기보다는 성당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리는 그곳에서 베르마샤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저희를 바라보시고, 지켜 주시는 라헬이시여.”
성자 후보 중 하나인 베르마샤이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베르마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믿음과 신앙뿐.
모두가 라헬의 아들이요, 딸인데.
교황이 되었든, 성자가 되었든, 성기사가 되었든, 일반 신도가 되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과 맡겨진 운명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면 되는 것뿐.
“이것으로 되었습니까.”
그리고 오늘, 베르마샤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였다.
성자.
사람들은 그 역할에 여러 의미를 부여했다.
어떤 이는 성자, 혹은 성녀를 교단의 얼굴마담으로 불렀다.
교황은 교단을 지키지만, 성자나 성녀는 외부에서 활동하는 일이 많았기에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용사가 나오면 더욱 활발해졌다.
용사의 동료.
아주 오래전부터 용사를 보조하는 자리에는 성자나 성녀가 있었다.
백성이 생각하는 성자나 성녀의 이미지는 이로 인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많았고, 그렇기에 성자나 성녀는 또 하나의 신앙처럼 백성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
하지만 베르마샤가 생각하는 성자의 뜻은 단 하나였다.
‘여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뜻을 이루어야 하는 존재.’
오직 성자와 성녀만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역할을 교황이 한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교황 대부분이 성자나 성녀 출신이었다.
“라헬이시여.”
베르마샤가 성자 후보가 된 이유도 간단했다.
여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성자 후보가 되었다.
하지만 첫 계시 후, 라헬은 그에게 말을 걸어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성자 후보로서 뒤처졌지만, 베르마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도 다 라헬의 뜻일 테니까.
신이 찾을 때까지, 그저 기다린다.
그런 베르마샤의 의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창조의 여신 라헬, 그녀는 얼마 전 베르마샤에게 하나의 신탁을 내렸다.
-네가 활동하는 곳에 새로운 신을 모시는 곳이 생겼구나.
이단인가!
베르마샤는 놀랐지만, 그 이후에 전해진 신탁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곳을 늘 지켜보아라. 그러나 절대 적대하지 마라.
-세상을 구할 이가, 그곳에 있으니.
-그저 지켜만 보아라.
세상을 구할 이.
여신 라헬이 그렇게 부르는 이는 오직 하나.
“당신의 뜻에 따라, 용사님을 돕겠습니다.”
베르마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 라헬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