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7)
37화 9. 인생 10회 차는 시험을 본다 (1)
아카데미의 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입학식과 졸업식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이들이 들어오는 시기와 모든 것을 끝마친 자들이 사회로 나가는 시기.
아카데미를 배움의 장으로 보았을 때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1년에 한 번씩 있는 아카데미 주최 여행이나 대회 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오직 아카데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추억들.
그것이 아카데미의 꽃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꽃은 시험이지.”
1년에 네 번, 필기와 실기를 모두 평가하는 시기!
그것이야말로 아카데미의 꽃이다!
“맞는 말인데, 도련님의 입에서 나오니까 이상한데요?”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을 보며 예리엘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무슨 일을 벌이시려는 건 아니죠?”
예리엘의 말에 하인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데이지는 의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르윈을 바라보았다.
“이름난 음모론자들도 너희만큼은 의심 안 하겠다.”
뭐만 하면 사건 사고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데이지의 의심병에 르윈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하지만 그런 르윈의 모습에도 데이지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다.
“엊그제 레피스 회장이 찾아와서 묻더군요.”
“뭐라고?”
“도련님이 새로운 활동 방안을 생각해 왔다고요.”
“그랬나?”
전혀 생각나는 게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피하고 있는 르윈이었다.
“네. 레피스 회장께서 창조의 교단과 마찰이 심하게 일어날 거라고 울면서 이야기하시더군요.”
고작 아카데미 동아리가 창조의 교단과 마찰을 일으킨다.
동아리장인 레피스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공작가.
레피스로서는 울면서 데이지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의견 제시였는데?”
“그럼 안 하는 거로 알겠습니다.”
데이지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급진적으로 일을 진행하려고 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하겠지만.’
창조의 교단은 좀 망해야 한다.
그래야 여신이란 것도 정신을 좀 차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주제를 원래대로 돌리려는 르윈이었지만, 아직 데이지의 턴은 끝나지 않은 듯싶었다.
“거기에 로열 클래스 메이드장인 베리엘 님도 도련님 때문에 바쁘신 듯 보이던데요.”
“…그래?”
“네. 최근 도련님과 연관된 것으로 추측되는 도서관 사서들과 연금술 동아리분들이 사건 사고를 저지르고 있어서 매우 바쁘다고 하더군요.”
“추측이잖아?”
“아직 증거가 없으니까요.”
“그럼 나는 좀 억울한데.”
증거가 없으니 억울하다.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을 데이지는 매우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나중에 증거가 발견되면 이야기하겠습니다.”
“…….”
“그리고 또.”
“또 있어?”
“네, 아주 많습니다.”
르윈이 무언가 일을 저질러도 그것을 직접 지적할 간 큰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학생도, 교수도, 아카데미를 관리하는 여러 공무원도 드라이르프의 이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루테스와 라일라 정도만이 르윈에게 직접 불평을 할 수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데이지를 통해 한 다리 건너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데이지에게 들어오는 르윈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많았다.
르윈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았다.
“그리고 또.”
“…….”
쉴 새 없이 나오는 제보들에 르윈의 입이 조용히 다물어졌다.
“여기까지인데. 뭔가 할 말이 있으십니까?”
데이지의 말에 르윈은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억울한 게 엄청 많은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중요한 거요?”
“응.”
고개를 끄덕이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시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넘어가지는 않으리라.
르윈을 위해서라도.
드라이르프 가문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별다른 건 아니고, 아까 했던 말이긴 한데.”
“아까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예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무슨 말을 했더라.
아카데미의 꽃이 뭔가에 관한 이야기였지.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데이지는 물론 예리엘과 하인스의 허를 찌르는 답변이 돌아왔다.
“응. 아까 아카데미의 꽃은 시험이라고 말했었잖아.”
“네.”
“그렇게 말했었죠?”
“그런데 그게 왜…….”
“너희, 공부는 했냐?”
툭 하고 던진 질문에 세 사람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
“…….”
“…….”
“왜 말이 없어?”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순간 욱하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누구 때문인데!’
데이지는 억울했다.
공부했냐.
그 질문에 긍정을 표할 수가 없었다.
‘매번 사고를 치지 않을까 감시하고, 도망치면 찾으러 다니고, 모르는 사람에게 잡혀 신세 한탄을 듣고!’
그러면서 가문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데이지의 일.
갑자기 주워 온 맨드레이크를 관리하는 것도 데이지의 일.
거기에 이름 없는 신, 이제는 무링신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신에 관한 자료를 찾는 것도 데이지의 일이었다.
그러나.
“…….”
그런데도 데이지는 그 일에 관하여 불만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지는 느낌이잖아.’
데이지가 일하는 만큼, 르윈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르윈이 친 사고에 대한 정보가 모이기에 데이지는 알 수 있었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도련님은, 자신보다도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저런 말을 꺼냈다는 것은.
‘자신은 점수 잘 나올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
가슴속이 뜨거워졌다.
이 뜨거움이 의욕이나 사랑 같은, 청춘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뜨거움이라면 좋았으련만.
‘왜, 왜? 왜!’
안타깝게도 데이지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감정은 분노였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뜨거운 시선을 느낀 건가.
르윈이 데이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데이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저… 도련님이 저희의 시험을 걱정해 주셔서.”
“고맙다고?”
“…네, 그렇습니다.”
으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르윈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너희도 그렇지?”
“네…….”
“그렇죠, 뭐.”
예리엘과 하인스 역시 할 말이 없었다.
데이지는 르윈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시간이 없었지만, 두 사람은 순수하게 남는 시간에도 동아리에서 검을 휘둘렀다.
“실기 시험도 존재하지만, 이론 점수가 더 높잖아?”
검술과, 마법과, 학술과로 나뉘는 중등 교육부터는 실기 점수가 더 높지만, 모든 것을 짧게 배우는 기초 교육 시기는 이론이 더 점수가 높았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자제로서, 가문의 위신은 지켜야 하니까.”
그 말에 세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르윈을 바라보았지만, 르윈은 당당했다.
“점수가 낮으면, 좀 그렇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왜 이렇게 열이 받을까.
매우 신기한 기분을 느끼는 그들을 향해 르윈은 웃으며 준비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담임선생님에게 부탁해서 받은 작년 시험지야.”
르윈은 그 시험지를 건네주면서 또 다른 시험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미리 풀어 봤는데, 쉽던데? 틀릴 만한 문제가 없어.”
시험지에는 붉은 잉크로 동그라미가 쳐진 것이 가득했다.
‘/’ 같은 모양은 없었다.
즉, 틀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
“…….”
“…….”
도발이었다.
너무나도 뻔한 도발이었다.
그것을 세 사람은 말없이 지켜만 보았다.
“시종한테 주인보다 잘하라고 시킬 수는 없지만, 수준은 맞춰 줘야지.”
수준을 맞춰야 한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자제가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울리지만, 르윈의 입에서 나오니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자, 그럼 풀어 봐.”
르윈이 건넨 시험지를 받아 든 데이지는 조금 뚱한 표정으로 시험지를 노려보았다.
‘이게 뭐라고.’
시험지를 받는 순간, 긴장되었다.
분명 아카데미에 좋은 성적을 받고 들어왔지만,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후에는 공부를 손에서 놓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괜찮아.’
수업 진도를 따라가고, 과제도 꼬박꼬박 해 가기는 했다.
따로 공부를 안 했을 뿐, 이 정도 문제는 가볍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
그렇게 데이지의 손이 움직이고, 하나하나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리고.
“나쁘지 않네.”
데이지의 답안지를 확인한 르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지만.
“죄송합니다.”
“아니야. 스무 개 중 네 개 정도는 틀릴 수도 있지.”
오답률 20퍼센트.
데이지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점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네가 죄송하면 쟤들은 어떻게 하라고.”
“…….”
“…….”
그 말에 데이지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예리엘과 하인스가 있었다.
“틀린 문제가 여섯 개, 열 개라. 열 개는 좀 위험한 수준인데.”
르윈의 중얼거림에 하인스의 몸이 움찔거렸다.
평소 수업 시간에도 기사 동아리에서 배운 자세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시간이 더 많은 하인스였다.
“뭐, 작년 문제라서 아직 진도가 안 나간 부분이 있었으니까. 중간시험 전까지 어떻게든 노력하면 점수가 오르기는 할 텐데.”
그렇게 말하는 르윈과 시선이 마주치자, 세 사람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 안 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아카데미는 제국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그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재능의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제국은, 벽에 가로막힌 이들이 벽을 뛰어넘을 때까지 친절하게 기다려 주지 않는다.
괜히 한 학기에 두 번, 1년에 네 번의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기초 교육은 그래도 많이 자비로운 편이지만, 중등 교육부터는 일정 수준 미달은 퇴학 사유인 거 알지?”
“네…….”
데이지가 드물게 기가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르윈과 함께 지내기 위해 같은 반에 있지만, 세 사람은 르윈보다 연상이었다.
‘한두 살 차이도 아닌데.’
예리엘과 하인스가 세 살, 데이지는 그보다 한 살 더 많았다.
본래라면 중등 교육을 받았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비록 과거 노예로서 팔렸고, 르윈의 손에 거두어진 이후에도 시종으로서의 업무를 더 우선시 배웠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아이들에게 지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부끄러웠다.
조금 전까지 르윈을 향하던 분노가 이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수업 진도를 따라가고, 과제를 꼬박꼬박 했다?
제국 수도권 아카데미 중에서도 최약체라고 할 수 있는 베르샤 아카데미에서도 이 정도였다.
만약 르윈이 평범하게 황실 아카데미에 들어가겠다고 했다면, 과연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계획대로 됐네.’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데이지의 모습을 보며 르윈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압도적인 건데.’
사실 데이지의 시험지는 예리엘과 하인스의 시험지와는 조금 달랐다.
작년 1학기, 중간시험 시험지가 맞기는 맞았으나.
‘4학년 거니까.’
그녀가 푼 문제들은 기초 교육 4학년 과정.
기초 교육 과정이 아무리 쉽다고 하더라도, 3년 뒤의 진도를 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데이지의 시선을 돌리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으니까.
드물게 의지를 불태우며 예리엘과 하인스까지 알아서 끌어들이는 데이지의 모습에 르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솔직히 하인스의 점수는 조금 문제가 있기는 했고.
“열심히 해 봐.”
“네.”
그 사실을 모른 채 데이지는 열의를 불태웠고, 르윈은 마음 놓고 준비해 둔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