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8)
38화 9. 인생 10회 차는 시험을 본다 (2)
데일드 차일스.
차일스 자작가의 장남으로, 현 베르샤 아카데미의 총학생회장을 맡은 이였다.
고작 자작 가문인 그가 베르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많이도 안 바란다. 데일드 녀석의 반만큼만 일해라.’
교수들 사이에서 대학원생을 갈굴 때 하는 말이었다.
간혹 노예들도 안쓰럽게 바라본다는 대학원생들이 그런 말을 듣는다면 분노할 것이다.
아니, 우리가 얼마나 일하는데,
교수 놈들은 진정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놀랍게도, 대학원생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괜히 교수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아무리 사람 취급을 못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데일드 녀석보다는 사람처럼 살고 있지.’
‘그래. 그 새끼도 사는데, 나라고 못 살 이유가 없잖아?’
학업의 노예, 대학원생들조차 데일드 차일스의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이고 경의를 표한다.
아,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을 할 수 있구나.
저런 새끼랑 비교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지.
근데 쟤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그런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공감을 받은 것은 이것이었다.
데일드가 졸업하는 순간, 우리 아카데미 망하는 거 아니냐?
웃자고 한 이야기였지만,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웃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만큼 데일드 차일스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몇몇 교수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데일드 차일스를 베르샤 아카데미의 영구 학생회장으로 졸업 이후에도 종신직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끔찍했지.’
아카데미 생활은 끝이 있다.
그 사실에 꾹 참고 견디던 데일드였는데, 아카데미 졸업 후에도 종신으로 학생회장에 앉히겠다니.
악몽처럼 떠오르는 이야기에 데일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 제국의 고위직이 먼저 선수를 쳐서 아카데미 졸업 후 자신의 부서로 데려가겠다고 엄포를 놓았기에 그 사악한 계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음.”
아카데미는 물론 제국의 공무원들도 노리고 있는 최대 매물.
이미 미래가 보장된 그였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많았다.
“회장님!”
“네, 라일라 후배님.”
그중 하나가 바로 눈앞의 소녀, 라일라 라인하르트.
늘 어디선가 불쑥불쑥 등장하는 공작가 영애님.
“맡겨 주신 일은 다 끝냈습니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네는 서류를 보며 데일드는 생각했다.
‘완벽해.’
틀린 것이 없다.
비록 단순한 서류 작업이라고 하지만, 이제 막 들어온 신입생이었다.
‘진짜 부사수감인데.’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을 떼고, 단순하게 기초 교육 1학년에 다니는 라일라 후배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라일라는 최고의 인재였다.
‘시키지 않아도 자기 일을 찾으려고 하는 의지, 막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노력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깨기 위해 언제든지 선배들에게 질문하지.’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거기에 조금만 몰라도 모르겠다고 일을 떠넘기는 이들도 한가득했고, 그러면서도 중요한 일은 자존심 때문에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인간들도 넘쳤다.
하지만 라일라는 아니었다.
본인이 먼저 나서서 헌신하기를 원했고, 남에게 자기 일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공작가의 영애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진짜 완벽한 차기 학생회장 후보인데.’
문제는 라일라의 이름 뒤에 라인하르트라는 성이 붙는다는 것.
‘공작가 영애님에게 이런 자리를 주는 게 맞나?’
모든 이에게 평등한 것이 아카데미라고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평생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들 적당한 선을 지키며 권력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리고 라일라는 데일드에게 있어 최고로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었다.
황족인 루테스나 드라이르프 가문의 르윈보다도 더.
‘졸업하면 공무원 생활인데.’
너무나 먼 곳에 있는 황족은 오히려 눈치를 볼 필요가 적다.
주요 요직에 있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데일드는 자신이 말단 중의 말단으로 지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드라이르프 가문 또한 마찬가지.
학술과인 데일드하고 무의 정점인 드라이르프 가문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도 아카데미의 수많은 이들이 드라이르프 가문의 르윈에게 집중했을 때에도, 학술과의 예비 공무원 지망생들은 라인하르트의 라일라에 더 집중했던 것이니까.
‘역시 라인하르트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라일라의 업무 능력은 좋았다.
이제 막 입학한 열 살의 신입생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탐난다.’
평범한 가문이었다면 바로 부사수로 삼고 자신의 모든 기술을 전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이 지옥에 라일라를 끌어들여도 되는 것일까.
‘괜히 나중에 원망을 사 버리는 건 아닐까?’
자신의 미래는 이미 공무원으로 확정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여러 부서에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암투를 벌이고 있다고 할 정도.
이미 공무원이 확정되었다면, 제국의 내부를 지배하는 라인하르트를 절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었다.
‘라일라 영애의 연락 한 번이면 내 인생은 박살 나겠지.’
이 지옥에 나를 끌어들이다니.
죽여 주겠다, 데일드 차일스!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지.’
라일라의 성격상 저렇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저 생각 자체가 데일드 본인이 했던 생각이었으니까.
“회장님?”
서류를 보며 시름에 잠긴 듯한 데일드의 모습에 라일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라일라의 모습에 데일드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집중했다.
“아, 잠시 생각할 것이 있었습니다.”
“혹시 틀렸나요?”
“아니요. 완벽했습니다. 그래서 살짝 고민했는데.”
아카데미에 입학하자마자 노동 동아리를 찾아 들어왔다.
평범한 학생들이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말렸을 텐데.
그 라인하르트의 영애님이 입부를 신청했다는 소식에 학생회는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라일라가 노동 동아리에 들어온 것은 학생회에 들어오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걸 막으면 어떻게 될까.
감히 내 앞길을 막는다니.
죽여 주겠다, 데일드 차일스!
그렇게 생각해도 끝이다.
‘인생…….’
왜 하필 나 때만 사건, 사고가 다 터지는 것일까.
작년에는 황족이 들어오더니.
올해는 공작가가 둘.
그중 하나는 동아리 활동으로 골치를 썩이게 만들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착 달라붙어 부담을 주고 있었다.
덕분에 매일 아침 구매하는 위장약 값이 상상 이상이다.
학생회 경비 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총학생회장으로서 받는 지원비가 부족할지도 모를 정도로!
“다른 업무로 넘어가도 괜찮을까 고민을 해 봤습니다만.”
데일드의 말에 라일라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다른 업무를 배운다는 것은 학생회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곧 시험 기간이라는 것이 떠오르더군요.”
데일드의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아카데미의 첫 시험이다.
그것을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며 얼마나 공부했는가!
“아카데미마다 차이가 있지만, 저희 베르샤 아카데미는 입학시험이 제일 쉬운 편입니다.”
아카데미에 힘들게 들어왔다고 놀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의 수준.
제국의 아카데미 시스템은 계속 성장하는 인재를 원했다.
그렇기에 현재에 안주하고 멈추는 순간, 상위권 성적을 가졌던 이도 갑작스러운 추락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기초 교육 시기의 성적은 매우 쉽게 뒤집히기도 하죠.”
“그, 그런가요?”
까마득한 아카데미 선배의 조언이었다.
‘생각해 보면 르윈도 입학시험 점수가 안 좋았으니까!’
그것으로 인하여 데이지가 한숨을 푹푹 내쉬던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
“그럴 수 있겠네요.”
아카데미 입학 전, 르윈과의 승부에서 매번 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카데미 입학시험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그 말을 올곧게 믿는 라일라의 모습에 데일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일단 최대한 라일라 영애가 학생회와 거리가 멀어지게 만들어 보고.’
시험은 핑계였다.
일단 학생회와 라일라의 사이를 떨어트려 놓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라일라 영애는 아직 어리시니까.’
굳이 빠르게 이 지옥에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
원래 기초 교육 과정에서는 친구들을 사귀고, 즐겁게 아카데미 생활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한 법!
학생회 따위는 천천히, 빨라도 중등 교육부터 들어와도 늦지 않는다.
‘친구, 있으시겠지?’
참으로 무례한 생각이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라일라는 공작가 영애님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잠깐 딴생각하면 라일라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을 정도.
“학생회는 성적도 매우 중요합니다. 총학생회장이 투표로 정해져서 착각을 많이 하는데, 인지도만 좋아서는 학생회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렇죠. 생각해 보세요. 전교 꼴등을 하는 학생회장이라니.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지 않습니다.”
그럴싸한 말이었다.
실제로 데일드 역시 고등 교육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일드가 전교 꼴등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그를 총학생회장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역시 회장이야! 아카데미를 위해 시험공부도 포기하고!’
‘그런 데일드의 뜻을 높이 사서, 졸업 때까지 학생회장을 시켜야겠지.’
‘종신 회장이라니. 베르샤 아카데미에 새로운 역사로 기록되겠구만!’
데일드의 업무량은 이미 많은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대학원생도 경의를 표하는데, 일반 학생들이 어찌 불만을 표하겠는가!
데일드가 사라지면 그 모든 업무들이 자신들에게 온다는 것을 다른 학생들도 잘 알기에, 데일드는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베르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으로 남겨질 예정이었다.
“라일라 후배님이 진정으로 학생회가 되려고 한다면, 지금은 자신이 남들의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데일드였기에 그는 이 지옥으로 공작가의 영애님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네, 회장님!”
그 사실을 모르는 라일라는 데일드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남들의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라.
‘역시, 회장님이야.’
어려운 조건을 모두 이겨 내고, 총학생회장에 오른 기린아.
총학생회장에 관한 내용을 찾으면 찾을수록, 라일라는 그가 존경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조언을 해 주는데,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일단 수석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할게요!”
“그, 그러세요…….”
수석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수석을 목표로 하면 더욱더 학생회와 가까워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라일라를 응원하는 데일드였다.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으니까요. 꼭 학생회장 따위를 할 필요는.”
“네?”
라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자, 데일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 그냥 혼잣말이었습니다.”
데일드의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의 의미는 조금 먼 훗날 알게 되었다.
라일라가 데일드에 이어 종신 학생회장에 추대되기 시작한 그날.
끝없이 밀려들어 오는 서류 디펜스를 체험하게 된 이후, 그녀는 데일드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네!”
이때의 라일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