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39)
39화 9. 인생 10회 차는 시험을 본다 (3)
시간이 흐르고, 아카데미가 조용해지는 시기.
베르샤 아카데미의 올해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다.
“음.”
첫 시험은 마법 시험이었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쉽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모든 문제를 맞힐 수 있었다.
‘작년보다 쉬워진 건가?’
아직 그 시험지가 4학년의 시험지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데이지였다.
그렇기에 빠르게 문제를 풀며 데이지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할 수 있어.’
만점.
그 정도는 되어야 그 망할 도련님이 입을 다물 것이기에.
‘그래도 데이지가 우리 반에서 가장 연상인데.’
‘뭐, 귀족이었다고 하지만 노예 시기가 있었으니까.’
‘다른 애들처럼 지속해서 공부하지는 못했으니, 어쩔 수 없나?’
시험공부를 하던 시기.
실수한 문제가 생기면 르윈은 악의가 없다는 느낌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내뱉는 말이라는 것은 안다.
그 덕분에 지금도 이렇게 열심히 시험을 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뭔 상관인가.
‘열받아.’
그 자극에 화를 내는 것 또한 당연하였다.
‘좀 잘났다고, 공부 좀 잘한다고 그런 식으로!’
주변에서 어른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데이지였지만, 결국 그녀 또한 아직 어린 나이였다.
겉으로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을 뿐, 르윈의 긁어 대는 행동으로 인해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 맞혀서. 꼭!’
그 입을 다물게 할 것이다.
펜을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데이지는 더욱더 열심히 문제를 풀어 나갔다.
***
시험 이틀 차.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예리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학은 약한데.’
약하니까 싫고, 싫어하기에 약하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입학시험이 끝인 줄 알았다.
솔직하게, 수학을 비롯한 학술과에서 배울 내용은 넘어가도 상관은 없었다.
‘이게 다 도련님 때문이야.’
하지만 포기하면 앞으로의 아카데미 생활에 큰 문제가 생긴다.
더 정확하게는, 동아리 활동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도련님의 콧대를 눌러 줘야 해.’
데이지답지 않은 강요였다.
늘 의견을 제시하되, 강요한 적은 없었는데.
‘꼭.’
강한 의지가 담긴 그 한마디에 예리엘과 하인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지만 예리엘은 금방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른 과목들 점수가 매우 괜찮았기에 이건 포기해도 상위권을 목표로 할 수 있을 텐데.
“싫다, 싫어.”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예리엘의 손에서 펜이 놓이는 일은 없었다.
***
시험 3일 차.
“이건가?”
하인스는 마지막 문제를 노려보며 두뇌의 한계를 쥐어짜 내고 있었다.
“음.”
그의 머릿속에 온갖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드라이르프 저택에서 알렉스 집사장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시기.
베르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 초빙된 교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시기.
그리고 최근, 벼락치기를 위해 공부했던 시기.
‘너에게 내 비기를 하사하마.’
하루가 멀다고 동아리 활동을 하던 하인스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동아리 활동을 안 하자 몇몇 선배들이 당황하여 하인스를 찾아왔고, 다행히 동아리 내의 괴롭힘이 있어 안 나가는 것이 아닌 시험공부를 해야 하기에 쉬고 있다는 말을 들은 선배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아카데미는 잔혹하지.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운다.’
맞는 말이었다.
시험 점수는 혼자에게 알려 주는 것이 아닌, 광장에 대자보를 붙여 모두에게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서로의 점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자비하지는 않다.’
그게 무슨 말일까.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하인스를 보며, 동아리의 선배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보기가 존재하니까!’
1번부터 5번까지.
총 다섯 개의 답을 제시한 객관식 문제 형태.
확률은 20퍼센트지만, 몰라도 정답을 맞힐 수 있는 구조다.
‘…….’
당연한 말을 하는 동아리 선배를 보며 하인스는 어이가 없었지만, 동아리 선배는 그런 하인스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여전히 근엄한 표정으로 세상의 진리라도 알려 주는 듯.
‘모를 때는 4번으로 찍어라!’
찍을 때는 4번이다.
당시에는 뭐 이런 조언이 다 있나 싶었지만, 막상 막히는 문제가 생기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조언이었다.
‘믿습니다, 선배님!’
하인스는 막히는 문제들을 빠르게 4번으로 찍으며, 시험지를 헤쳐 나갔다.
간혹 3번을 섞으라는 조언 또한 잘 지켜 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음.”
문제의 절반 정도를 찍은 하인스는 다행히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이번에는 안 질 거야.’
문제 하나하나를 빠르게 살펴본 라일라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이번에는 이길 것이다.
르윈은 매우 친한 친구지만, 승부는 승부였으니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라일라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문제를 읽고,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꺼내고, 그것을 적는다.
르윈은 라일라에게 은신의 재능이 있다고 말하였지만, 그녀의 재능은 오직 은신만이 아니었다.
라인하르트.
대대로 바벨리안 제국의 내정을 담당했던 가문의 핏줄은 베르샤 아카데미의 최고 업무량을 자랑하는 학생회장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틀리지 않았나 확인하고, 확실하면 빠르게 다음으로.’
학생회에서 진행하던 서류 작업과 시험은 다르지 않았다.
문제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결과 값을 적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타가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것.
문제를 푸는 과정이 바르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실수로 정답이 틀리면 끝이다.
자신의 실력에 확신이 있으면 있는 만큼 더욱더 실수를 안 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우선 실수를 줄여라.
르윈이 해 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라일라의 펜이 더욱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론 시험 마지막 날.
‘졸려.’
문제를 다 처리한 르윈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생각했다.
‘잘까?’
남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자.’
생각해 보면 집에 있을 때는 편하게 낮잠을 잘 수 있었는데, 아카데미에 온 이후 수면 시간이 좀 많이 줄어들었다.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어이없어할 것이지만, 아카데미에 오고 난 이후 수면 시간이 준 건 사실이었다.
“하암.”
작게 하품을 한 르윈은 조용히 책상에 머리를 박고 눈을 감았다.
매우 이른 시간이었지만, 문제는 다 풀었다.
할 만큼 했으니 잠을 자는 것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이다.
“…….”
오랜만의 낮잠이라서 그런가.
딱딱한 책상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교실 창문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고, 다른 아이들이 펜을 긁적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데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좋네.’
역시 나쁘지 않다.
시험 첫날부터 느낀 감정을 떠올리며 르윈은 잠에 빠져들었다.
***
“하하…….”
이론 시험이 끝나고 얼마 뒤.
광장에 붙어 있는 시험 결과를 보고 데이지는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당했다.’
그것도 아주 보기 좋게.
“도련님.”
“응.”
“점수가 왜 저러시죠?”
“실수했어.”
“그렇군요.”
데이지는 고개를 올려, 가장 상위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
[기초 1년 차>수석-라일라 라인하르트
수석은 라일라였다.
입학식에서 대표를 맡았던 그녀는 첫 중간시험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그 자리를 지켜 내었다.
데이지의 점수 또한 매우 뛰어났다.
입학 당시 상위권이었지만 최상위에 도전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르윈의 도발에 넘어가 모든 것을 불태우며 공부를 한 결과 차석과 아쉬운 차이로 3등에 오를 수 있었다.
[28등-예리엘> [53등-하인스>예리엘과 하인스의 성적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물론 데이지가 보기에 하인스는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지만, 넘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178등-르윈 디 드라이르프>르윈의 점수를 본 데이지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178등.
분명 낮은 점수는 아니었다.
베르샤 아카데미의 한 반의 숫자는 20명 전후.
한 학년당 평균 20개 정도의 반이 존재하기에 178등이면 나쁜 수준은 아니었다.
중간, 그중에서도 약간 위.
르윈이 아카데미에 들어왔던 점수를 생각하면 성적이 오히려 조금 올랐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
“…실수가 많으셨나 보네요.”
“실전에 약한 타입인가 봐.”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인가.
저런 사람과 경쟁하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던 건가.
너무나도 허무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그런 인간이니까.’
문제는 무엇 때문에 자신을 도발했는가다.
‘뭔가 저지른 건가?’
시험 기간, 동아리 활동은 중지되었다.
그로 인하여 황자인 루테스가 해방되었다고 기뻐하던 모습이 데이지의 머릿속에는 각인이 되어 있었다.
‘뭔가 움직임이 있었다면 메이드장께서 이야기를 해 줬을 텐데.’
로열 클래스의 메이드장, 베리엘과의 협력은 굳건했다.
같은 업종에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르윈이 그녀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까는 알 수 없었으나, 데이지는 베리엘과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상태.
메이드들은 시험을 보지 않기에 시험 기간에도 자유로웠고, 그렇기에 르윈이 무언가를 저질렀다면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곧 저지를 예정인가?’
앞으로 남은 것은 실기 시험.
그다지 문제를 일으킬 것이 없는 시험이었지만, 상대가 르윈이라면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그 이후에 뭔가 있나?’
아카데미의 일정을 떠올린 데이지는 곧 인상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많네.’
일단 가장 큰 것으로는 제국 건국 기념일이 한 달 정도 남았다.
물론 고등 교육 과정 정도는 되어야 제국 건국 기념일에 무언가를 하고, 기초 교육 과정은 그저 구경만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그사이 무언가를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제국 건국 기념일을 미끼로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저지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고 또 평범하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게 가장 열받는 일인데.’
이쪽은 온갖 일들을 상정해야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별생각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일을 저지르지 않았냐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냥 우리를 자극해서 공부를 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심심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군요.”
그렇기에 데이지는 실전에 약한 타입이라는 헛소리를 듣고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입가가 부르르 떨리는 것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안쓰러웠으나, 어쩌겠는가.
저런 사람이 자신의 주인인 것을.
“앞으로 조심하시면 되겠죠.”
“응. 노력은 해 볼게.”
르윈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력이라는 단어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르윈이었으니까.
그 순수한 라일라조차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르윈에 대한 주변인들의 평가를 알 수 있었다.
“아직 시험이 남아 있기도 하고.”
과연 이 사람이 실전 시험에서도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 줄 것인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또 실력을 숨기고, 온갖 이유를 붙일 것이 분명했었으나.
“어?”
실전 시험이 끝난 이후, 광장에 붙어 있는 점수표의 순위에.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