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45)
45화 10. 인생 10회 차는 소풍을 간다 (4)
잠깐의 소란이 있고 난 뒤.
결국, 무링교로 강제 개종하게 된 예리엘과 하인스는 기념품인 용사 석상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석상을 돌려받고, 도망치듯 떠나는 예리엘과 하인스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르윈이 입을 연 것은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이었다.
“우리 종교 조각상은 저것보다 훨씬 멋있게 만들어야지.”
“신의 조각상이면 신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작은 다짐이었지만, 바로 옆에서 그것을 들어 버린 데이지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르윈에게 조언했다.
하지만.
“어차피 이름부터 우리가 만들었잖아? 신의 모습도 우리가 만들면 되지.”
“…….”
이러다가 진짜로 사이비 종교로 종교 재판에 끌려가는 것은 아닐까.
아찔한 미래에 데이지의 동공이 거칠게 떨렸지만, 르윈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멋지게 만들려면 일단 남신으로 해야 하나? 포교를 할 때를 생각하면 남신보다 여신이 더 유리한 것 같았는데.”
심지어 신의 성별까지 자기가 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데이지는 식은땀마저 흘리고 있었다.
“천천히 생각하시죠.”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연 데이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일을 조금이나마 뒤로 미루는 것이었다.
“그러게. 중요한 일이니까.”
다행히도 그 선택은 올바른 선택지였던 것 같았다.
‘집사장께 보고를 해야 하나.’
도련님의 이상한 동아리 활동이 사이비 종교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보고가 올라가면 알렉스가 뒷목을 붙잡고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나중에 더 큰일을 듣는 것보다는 좋은 선택이 아닐까.
‘우선 돌아가면 학생회장과 메이드장에게 상담을 해야겠네.’
잘못하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레피스는 덤.
“도련님.”
소풍 이후의 일정을 계획한 데이지는 이번 소풍의 목적을 정했다.
“왜?”
“도련님은 왜 창조의 교단을 싫어하십니까?”
인류는 창조의 교단에 빚이 있다.
인간은 물론 엘프나 드워프 같은 이종족도 그것을 인정한다.
용사가 없었다면 인류는 마족에게 멸망했을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역사에 기록된 바가 그랬고, 엘프를 비롯한 장수족 중에서는 용사 데르덴과 마왕 아펠리오스의 대결을 멀리서나마 지켜본 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너도 싫어하잖아.”
“저는 계기가 있습니다.”
부패한 귀족과 부패한 성직자가 손을 잡고 가문을 멸망시켰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렸고, 아주 사악한 도련님을 모시게 되었다.
“그 정도면 싫어해도 여신도 인정할 겁니다.”
“사악한 도련님이라니. 나 말고 모시는 사람이 또 있었어?”
우리 형들 안 사악한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르윈을 보며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을 말하는 겁니다.”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착한데.”
“조금만 더 착하셨으면 세상이 위험했겠네요.”
“위험하다니. 오히려 구해 주면 구해 줬지.”
데이지에게는 설득력이 없는 발언이었지만, 실제로는 아홉 번이나 세상을 구한 사람의 경험담이었다.
“말 돌리지 마시고요.”
그것을 모르기에 데이지는 르윈의 진심을 그냥 무시했다.
“서럽네.”
그 사실에 입술을 삐죽인 르윈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걸 말할 수도 없고.’
내가 사실 용사다.
역대 용사가 다 나고, 세상을 아홉 번이나 구했다.
그 사실을 알리면 편하겠지만, 그 대가를 알고 있기에 르윈은 남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엘리는 아직까지 멀쩡하니까.’
식물이라서 가능한 일일까.
그렇다면 동물이나 몬스터, 정령이나 마족에게도 가능할 것인가.
머릿속에 수많은 가설과 실험들이 떠올랐지만, 르윈은 빠르게 그것들을 지워 나갔다.
그리고.
“창조의 교단이 싫을 수밖에 없지. 우리 라이벌 종교잖아.”
“…무링교의 라이벌이요?”
“당연하지. 세계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무링교가 창조의 교단을 몰아내고, 세계를 지배할 거니까.”
“누가 들을까 봐 무섭네요.”
대성당을 빠져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데이지는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잖아? 복수해 준다고.”
툭 튀어나온 한마디에 데이지의 몸이 잠깐 움찔했다.
“그랬었나요?”
“잊었어?”
“네.”
거짓말이다. 잊을 리가 없었다.
르윈을 처음 만난 날.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한 모습을 그녀의 기억 속에 남겼었으니까.
‘그 이후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지만.’
그때의 나는 알까.
기대로 두근거리던 그 심장이 불안과 공포로 두근거리게 될 줄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오늘은 무슨 사건이 있을까 걱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을.
“그래? 나는 안 잊었는데.”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 있었다.
“그래도 복수는 해 줄게.”
“네.”
저 말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사람은, 장난으로 한 말조차 지키는 사람이었으니까.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네?”
대성당 관람이 끝난 이후.
간단한 식사와 함께 미리 준비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데이지였다.
몇몇 방에서는 첫 여행에 들뜬 아이들이 밤을 지새웠지만, 데이지의 루틴은 일정했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일어날 수 있었고.
“뭐라고 하셨죠?”
그 덕에 빠르게 고통을 받고 말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벌레가 있으면 새들은 알아서 잡아. 오히려 일찍 일어나서 돌아다니다가 사냥당할 수 있지.’
르윈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아른아른 떠돈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는데, 이런 의미였나?’
그녀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훑어보았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사제복, 거기에 유일한 장식은 가슴 부분에 있는 금색 자수 하나였다.
검 한 자루.
종교에 관심이 없는 자라면, 전쟁과 관련된 교단으로 생각하는 자수였다.
물론 어떤 의미로 맞는 생각이기도 했다.
인류의 가장 큰 전쟁에, 언제나 선두에 선 이를 배출했으니까.
‘창조의 교단이 왜?’
아주 먼 옛날에는 창조의 교단이 다른 문양을 상징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첫 번째 용사가 탄생한 이후부터 한 자루의 검은 창조의 교단을 상징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전쟁의 교단을 비롯한 여러 종교가 검을 상징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다른 교단은 조용히 상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인류를 지키는 하나의 검.
이 대륙에서 그 의미를 모르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르윈 디 드라이르프 형제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 창조의 교단에서 아침 일찍부터 자신의 주인을 찾는다.
‘왜?’
그에 데이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무슨 문제지?’
오히려 생각나는 게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어제 도련님이 말한 걸 누가 신고한 걸까? 아니면 아카데미 동아리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르윈이 뭔가를 저지른 것이라면.
‘방 안에 계신가?’
어젯밤 몰래 탈출해서 뭔가를 저지르고 왔을 수도 있었다.
‘제발.’
그런 일은 아니길 빌며, 데이지는 인상을 작게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모르는 도련님의 형제분이 있으셨던 걸까요?”
바로 선을 긋는 모습이었지만, 눈앞의 사제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진짜 형제는 아니지요. 하지만 라헬 님의 이름 아래 저희는 모두 형제이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만 도련님도 저도, 창조의 교단을 믿는 건 아니어서.”
그러니 형제가 아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데이지를 보며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이 짧았군요. 죄송합니다. 그럼 르윈 디 드라이르프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분을 불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이유에서죠?”
“여신님의 뜻입니다.”
“네?”
여신의 뜻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데이지는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떠올렸지만, 여신의 뜻과 관련된 것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설마, 진짜 종교 재판인가?’
그나마 떠오르는 것은 창조의 여신 라헬이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것 말고 여신이 르윈을 부를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럴 수 있으면!’
자기 교단 관리가 먼저 아닌가.
그렇게 불평을 해 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당신이 창조의 교단 사제복을 입고 있다고 해서 진짜 사제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데이지는 당당했다.
그녀가 모시는 사람이 누구인가?
“고작 말 한마디로 드라이르프 가문의 핏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드라이르프.
제국의 두 기둥 중 하나.
그곳의 후계라면 창조의 교단조차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말 잘하네.”
“어?”
뒤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데이지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도련님?”
“근데 참 안타깝게도.”
그리고 르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데이지는 작게 몸을 떨었다.
‘왜?’
르윈의 숙소는 데이지의 위층에 존재했다.
그렇기에 르윈이 계단을 한 층, 한 층 내려올 때마다 나무 계단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데이지는 그 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 저렇게 화가 나신 거지?’
르윈의 모습은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귀기가 어렸다는 표현이 저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짜증과 분노를 가득 담은 모습으로, 르윈은 사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도련님!”
갑자기 저 사제를 공격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데이지가 르윈의 팔을 잡았지만, 르윈은 그것을 가볍게 풀었다.
“걱정하지 마. 사람한테는 아무 짓도 안 해.”
“사람이 아닌 건요?”
“보고?”
“참으로 안심할 수 있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지?”
그렇지는 무슨.
그렇게 생각한 데이지가 다시 한번 손을 뻗었지만.
“진짜 괜찮다니까. 잠깐 사람 좀 만나고 올게.”
“진짜 사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 담임 선에서 막혔지.”
“그건 그렇지만.”
아카데미 보안상, 이 숙소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학생을 제외하면 담임 교수의 허락을 받은 이들이었다.
데이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억지를 부리고 있었던 것뿐.
“그리고 진짜인 거 같거든.”
“뭐가요?”
“여신의 뜻이라는 것.”
“그걸 도련님이 어떻게 아시는데요?”
여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들은 오직 성자와 성녀뿐이었다.
그런데 르윈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개꿈 꿨거든.”
“…….”
“아주 엿 같은 게 여신의 뜻이 맞는 것 같아.”
사제에게 들리지 않기 위해서일까.
데이지는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르윈의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요?”
“금방 갔다 올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제발 사고만 치지 말아 주세요.”
르윈의 강한 의지를 느낀 탓일까.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부탁했다.
“노력은 해 볼게.”
“제발요.”
데이지를 지나친 르윈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제를 올려다보았다.
“가죠.”
“감사합니다.”
사제의 뒤를 따라 르윈은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의 문 앞.
세상에 찌든 표정으로 연초를 피우던 담임과 잠깐 눈을 마주친 것을 제외하고는 따로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숙소를 나서고. 길을 좀 걷고.
금방 대성당에 도착한 뒤, 기묘할 정도로 조용한 대성당을 돌아다닌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제는 그 말을 남기고는 모습을 감췄고.
“…….”
르윈은 조용히 닫혀 있는 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내가 부르지 말랬지.”
방의 문이 열리자, 성스러운 빛이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금발의 미인을 바라보며.
“망할 년아.”
르윈은 다짜고짜 욕설을 날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