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46)
46화 10. 인생 10회 차는 소풍을 간다 (5)
처음 만나자마자 욕을 먹었지만,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너무하시네요.”
오히려 웃고만 있는 모습에 르윈의 얼굴만 찌푸려졌다.
“너무한 게 누굴까.”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두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르윈 역시 활짝 웃어 주었다.
“죽어.”
손을 휘젓는 것과 동시에 마력이 암기가 되어 상대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어머, 어머.”
살기조차 없는, 깔끔한 일격이었다.
숙련된 암살자조차 느끼기 어려운 그 일격.
하지만 그것이 여인의 목에 닿는 일은 없었다.
“이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나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라고 투덜거리는 모습이 르윈은 그저 가증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신 잘못 섬긴 죄.”
르윈의 단호한 그 한마디에 여인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가! 라헬 님의 가장 충실한 용사님께서 그런 말을!”
그 말과 동시에 진득한 살기가 담긴 마력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지만.
“소용없다니까요.”
마력은 그녀의 몸에 닿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창조의 교단의 정식 ‘성녀’입니다. 죽지 않는다고요.”
자신을 성녀라 소개한 여인의 뒤편으로 성스러운 후광이 반짝였다.
“…….”
후광.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성자와 성자에게 드물게 일어나는 희귀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의 역사를 모두 뒤져 봐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희귀한 현상.
그 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악은 정화되고, 후광을 등에 업은 자는 모든 공격으로부터 보호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며 신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말한다.
신에게 사랑받고, 신이 보호하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후광을 한 번이라도 입는다면, 그 사람은 창조의 교단에 영원히 이름이 기록되기도 했다.
‘개소리지.’
하지만 르윈은 후광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신이 보호하는 존재? 그건 맞는 말이었다.
후광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후광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으면 마족은 옛날에 다 죽었을 테니까.’
모든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공격만이 아니었다.
이 대륙에 존재하는 다른 종족들도, 다른 대륙에 존재하는 마족이나 마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강의 방패.
후광을 입은 성자나 성녀를 방패로 세우고 자신이 공격한다면, 마왕조차 쉽게 쓰러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후광의 진실을 알고 난 이후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성당 담당은 성자라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
“아니요. 이곳을 담당하는 아이는 제가 사랑하는 그 아이가 맞습니다.”
듣는 것에 따라 성자와 성녀의 로맨스 한 편이 완성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르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남자의 모습으로 만나면 바로 죽이려고 할 것 같아서, 다른 지역의 성녀를 이곳까지 불렀답니다!”
“미친년…….”
활짝 웃는 여자는 성녀가 맞았다.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조차 아니었다.
“역시 사람 새끼가 아니니까, 양심도 없었네. 라헬.”
“그런 걸 하나하나 다 따지면, 신생은 못한다고요?”
후광은 신에게 사랑받는 증거 따위가 아니었다.
신 그 자체가 강림한 증거.
신이 인간의 몸에 강림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리고 신은 쓸모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마왕과의 싸움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왜 내려온 건데? 그거 더럽게 힘들다고 하지 않았던가?”
“맞아요. 아주 잠깐, 천 년의 신앙을 모아 쓰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아주 힘든 일이죠.
그렇게 푸념을 내뱉으면서도 그녀의 입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저를 버리고 이상한 사이비 종교를 만든다는데, 어떻게 내버려 두겠어요?”
“소중하면 그냥 포기하든가.”
“그럴 수야 없죠. 그랬다가는 인류가 망하는데.”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르윈이었다.
“또 와?”
“네. 마왕은 또 만들어질 겁니다.”
아직 신탁은 내려오지 않았다.
신탁이란 마대륙에서 마왕이 탄생했을 때 내려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빌어먹을 신이 이렇게 말한다면.
‘곧 생긴다는 말이겠지.’
물론 짧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마왕이 탄생하고, 마대륙을 완벽하게 정복하고, 대륙을 넘어 인류를 침공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
짧아도 10년, 길면 몇십 년이 걸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태까지 경험했던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
“안 해.”
“…….”
그 모든 것을 이해한 르윈은 짧고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내가 저번에 죽을 때 분명히 말했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어, 그때 사악한 마신의 방해로 인하여 기도가 잘 안 들렸어요!”
르윈의 말에 라헬이 정말 모르는 얼굴로 대답했지만.
“지랄하네. 다 듣고 모르는 척하는 거 누가 몰라?”
그런 거짓말에 속는 호구는 옛날 옛적에 죽은 상황.
한 치의 믿음도 없는 그 모습에 라헬은 입을 삐죽였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아이야, 한마디면 다 들어줬는데.”
“대가리가 깨졌던 시절의 이야기를 아직도 해?”
“조금 더 깨지셔도 괜찮은데.”
처음 라헬이 지상에 내려왔을 때만 하더라도 르윈은 무릎을 꿇고 시선을 감히 들어 올리지 못했다.
신이 이 땅에 내려왔다.
자신과 직접 이야기하기 위해.
그 말의 의미를 너무나도 무겁게 받아들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그때와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눈앞의 여신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은 여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였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였다.
“더 깨질 게 남아 있나?”
“애인이 친구랑 바람피운 건 제 잘못이 아닌데요?”
“…….”
갑작스러운 공격에 르윈은 허를 찔렸지만.
“내가 그것 때문에 용사를 그만두었을까.”
“50퍼센트 정도는?”
“…….”
역시 신은 신이라는 것일까.
마치 르윈의 생각을 읽은 듯한 정확한 판단이었다.
“중요한 건 나머지 반이지.”
“그것도 크게 보면 다 이 세상을 위한 일인데요.”
“크게 안 보면, 개인의 사소한 이득 때문이기도 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제 패배는 곧 인류의 패배, 이 세상의 멸망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라헬의 패배는 곧 마신의 승리.
분명 예전이라면 그 말에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마왕을 뛰어넘어 대마왕이라 불렸던 아펠리오스는 세상의 절반을 넘겨준다고 했는데?”
하지만 이전 생에서 마왕의 자리에 있던 아펠리오스는 세상의 절반을 넘길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마왕의 말을 믿어요? 그는 마신을 믿는 마족이에요. 사악한 마신이 그 약속을 지킬까요?”
“너도 사악한 건 마찬가지인데? 생각해 보면 마신에게 속은 적은 없는데, 너한테는 속은 적이 많거든.”
신이 다 똑같은 년들이라면, 차라리 인류의 평화를 대가로 마신으로 종교 단일화를 이루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의 모습에 라헬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럴 리가요! 제가 아무리 약속을 이루어 주지 못한 게 있다고 하더라도, 마신 취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요!”
마신과 같은 취급에 발끈한 모습이었지만, 르윈은 진심으로 둘의 차이점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종교로 넘어갔잖아. 포기하고 다른 용사 찾아.”
“무쓸모 잉여신교요? 이름부터 망한 종교인데, 거기서 뭘 하려고요.”
“싸움만 일으키는 너희와 달리, 우리 신은 평화의 신이라고.”
“무능력하고 쓸모도 없는 잉여신이니까 평화를 찾는 거겠죠.”
라헬은 신랄하게 무링신을 헐뜯었지만, 르윈은 아무렇지 않았다.
“응. 그게 목표인 종교니까.”
신이 힘을 가지고 있으면 귀찮은 일만 늘어난다.
그 증거가 눈앞에 있었기에, 르윈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신을 깎아내려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쳤어.”
“누구 작품인데.”
진심이 담긴 라헬의 경악에 르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름이 없으니까, 이름이 없는 신이다. 그건 좋아. 하지만 신성을 잃은 신들의 모습을 알고 있잖아? 그냥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고 그것 중 하나가 다시 신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유가 사라진 라헬의 모습에 르윈은 더욱더 만족스러웠다.
라헬이 여유가 없다는 것은 곧 르윈의 의도가 정답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쉽지는 않겠지.”
그렇기에 르윈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일 중에 쉬운 일이 있었어?”
“…….”
르윈의 말에 라헬은 입술을 꾹 깨물며 그를 노려보았다.
“뭐, 왜?”
“바람피운 건 딴 년인데, 왜 화풀이를 저한테 하시는 거죠?”
“너도 책임이 있으니까. 억울하면 걔들이 바람 못 피우게 신탁이라도 내렸어야지.”
“진짜 이렇게 나오시겠다?”
“진짜로 억울한 건 아펠리오스지. 걔는 쳐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화풀이당했는데.”
“…….”
“…….”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유지되었다.
창조의 교단에서도 규모만 놓고 본다면 1위에 손꼽힐 만한 대성당.
그곳에서 창조의 교단이 모시는 신과 용사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제가 이단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종교는 끝나요.”
“해 봐.”
“못할 줄 알아요?”
“그러니까 해 보라고. 무링교가 쓰러지는 순간, 바로 마신교로 넘어가면 그만이니까.”
“그년이 바보인 줄 아세요? 저보다 살짝 아래이긴 해도 최고신의 영역에 있는 신인데. 그동안 자기를 방해한 용사를 잘도 받아들이겠네요.”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마신이 바보인 줄 알아? 그동안 자기를 방해한 용사가 개종한다는데 안 받아들일까?”
전직 용사와 마왕의 컬래버로 인류를 깡그리 밀어 버릴 생각에 들뜨면 들떴지, 거부는 안 할 것이 분명했다.
“인류를 배신할 셈입니까?”
“아홉 번이나 구했는데, 한 번은 배신해도 괜찮지 않을까?”
“진짜로 인류의 적이 되겠다고요?”
“네 적이 되는 거지.”
“그게 그거죠.”
자신의 적이 곧 인류의 적이다.
그 확신에 찬 목소리에 르윈은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르윈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인류의 선봉에 서서 저 가증스러운 여신의 이름으로 인류를 지켰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과거였지만, 안타깝게도 되돌릴 수 없는 과거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인류의 적이라고 하니.”
“…….”
“좀 멋진데?”
인류의 적, 할 수밖에 없지.
“과연 인류는 인류의 적을 막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나름 궁금한 것이기도 했다.
인생 10회 차의 경험을 막을 수 있는 인생 1회 차 용사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나온다면 안심하고 마왕과 싸우게 놔두면 될 텐데.
“하.”
그런 르윈의 반응에 결국 라헬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그 쓸모없는 종교는 내버려 둘게요.”
르윈이 마신교에 투신하는 것보다는 사이비 종교 하나에 묶여 있는 편이 낫다.
그렇게 판단한 라헬은 무링교를 인정하기로 했다.
‘어차피 제대로 된 종교도 안 될 테니까.’
종교라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자신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그래도 용사는 안 해.”
“하게 될걸요?”
라헬은 눈앞의 용사가 얼마나 호구인지 알고 있었다.
진실을 눈치채고 약간의 계기가 생겼기에 용사를 때려치웠지만, 반대로 계기가 존재한다면 언제든지 호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계기를 만드는 것.
‘그때까지는 일단.’
인류에 미련을 버렸으니, 그 미련을 다시 만들면 된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 인력.
다행히도 라헬에게는 부족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번만큼은 용서하기로 하죠.”
“용서를? 누가?”
르윈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말이었지만, 라헬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제가 이대로 물러나리라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전형적인 악당의 대사를 내뱉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뒤에 있던 후광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빨리 꺼져.”
그런 라헬을 향해 르윈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어?”
정신을 차린 성녀는 자신의 앞에서 법규를 하고 있는 소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