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47)
47화 10. 인생 10회 차는 소풍을 간다 (6)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
바람은 선선하고, 햇볕은 적당히 따스했다.
소풍이라는 단어와 이보다 어울리는 날씨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을 즐기는 학생들 속.
“…….”
“…….”
“…….”
“…….”
네 명의 학생만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슨 사고일까.”
한참을 유지되던 침묵을 깨트린 것은 라일라였다.
아침에 일어나,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즐거운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던 그녀였지만, ‘아침 일찍 르윈이 사제에게 끌려 나갔다.’라는 데이지의 말에 즐거운 하루는 물 건너갔다는 것을 깨달은 라일라였다.
“대성당에 도착할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기는 했었는데.”
“그냥 대성당에 간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긴 했지?”
“원래부터 창조의 교단을 안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는데.”
라일라의 한마디에 예리엘과 하인스, 데이지가 각각 한마디씩 꺼냈다.
그들 또한 단순히 소풍을 즐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옛날 옛적에 깨닫고 있었다.
“뭘 저질러야 아침부터 창조의 교단에서 사람이 찾아올까?”
“큰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성기사단이 찾아와 끌고 간 건 아니니까요.”
“아니, 오히려 큰일이기에 한 명만 데리러 왔을 수도 있지.”
“하인스의 말이 맞아. 성기사단이 찾아온다는 것은 드라이르프랑 싸우겠다는 의미니까.”
과연 무엇 때문일까.
르윈이 무언가를 저질렀다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모습으로 네 사람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교단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고, 당사자인 르윈이라면 어제 아무도 모르게 신전에 사고를 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임 교수님은요?”
“아카데미 복귀 전까지는 돌아온다는 말은 들었다는데…….”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이었다.
“아카데미 내부의 일이었으면 어떻게든 손을 써 보는데.”
메이드장인 베리엘이나 학생회장인 데일드의 도움이 생각보다도 더 컸다는 것을 깨달은 데이지였다.
‘왠지 모르게 교단과 마찰이 계속 있을 것 같은데.’
창조의 교단 내부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한 데이지는 매우 진지하게 예리엘과 하인스를 바라보았다.
“얘들아, 앞으로 종교 활동도 좀 열심히 해 볼래?”
“누나마저 종교 권유야?”
“언니마저 사이비에 빠졌어?”
불경하다는 이유로 용사 석상을 빼앗겼던 악몽이 떠오른 것일까.
예리엘과 하인스는 자신도 모르게 데이지와의 거리를 벌렸다.
“무링교 말고 창조의 교단.”
“거기?”
“누나는 창조의 교단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맞다. 창조의 교단에 대한 악감정은 아직도 데이지의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부패한 사제들에 대한 악감정일 뿐, 창조의 교단의 모든 사제들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약간의 편견이 있을 뿐.’
그러니 사랑하는 동생들이 창조의 교단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나쁘게 볼 이유는 없었다.
“첩자가 필요해.”
아무리 드라이르프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종교와 관련된 힘은 없었다.
드라이르프의 병력 중 대다수가 창조의 교단을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군대와 종교는 확실하게 그 역할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첩자가 되라고?”
“그것 때문에 성당에 가야 해?”
두 동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였지만, 데이지는 진지했다.
“내 감이지만, 앞으로 창조의 교단과 많이 부딪칠 것 같거든.”
“…….”
“…….”
참으로 불길한 말이었다.
인류 최대 종교와 앞으로 부딪칠 예정이라니.
“언니, 평소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수상하다는 동생들의 목소리에 데이지는 억울한 감정을 토해 냈다.
“뭘 아무것도 안 해?”
“다 도련님이 한 일이지, 나는…….”
“다 내 탓이다?”
“도련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르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데이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만 하면 내 탓이래.”
르윈이 돌아왔음에도 데이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르윈.”
여태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라일라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궁금증을 참지 못한 모양이었다.
“왜?”
“뒤에 있는 분은 누구야?”
“아, 이거?”
“이, 이거라니요!”
뒤에 있던 여인이 발끈해서 외쳤지만, 르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짐 덩어리.”
“사람을 짐 취급이라니. 아무리 드라이르프 공작가라고 하더라도 무례한 일입니다.”
익숙한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라일라와 데이지는 저 사람이 어디 소속인지는 알 것 같았다.
“르윈…….”
“도련님?”
설마 거긴 아니겠지.
아니어야 한다.
그런 간절함을 담아 르윈을 바라보았지만.
“창조의 교단의 성녀래.”
르윈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그녀들이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
“이것이 용사 데르덴 님께서 쓰셨다는 무기 중 하나입니다.”
용사 데르덴의 별명은 웨폰 마스터.
이 세상의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천재였기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그러한 설명이 성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도련님.”
그러한 설명을 들으며, 데이지는 르윈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응.”
“왜 창조의 교단의 성녀님께서 저희의 여행 가이드를 하는 거죠?”
“몰?루”
아마 모르겠다는 뜻이겠지.
데이지는 자신의 이마에 핏대가 생기는 느낌을 받으며 이를 갈았다.
“도련님이 모르시면, 누가 알까요.”
불쑥불쑥 튀어나오려는 욕설에 이를 악다물며 데이지는 최대한 미소를 유지한 채 물었지만.
“아니, 진짜 모른다고.”
르윈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억울할 뿐이었다.
“신의 뜻이라는데, 알 게 뭐야.”
이래서 종교에 빠진 놈들은 안 된다고 투덜거리는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아예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
레피스가 들었다면 르윈의 멱살을 붙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발언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세요, 도련님. 무슨 죄를 저지르면 신의 뜻이 도련님 감시입니까?”
“아니, 신의 뜻이라고만 말했는데 왜 자연스럽게 감시라고 해석하는데?”
“도련님이라면 가능한 일일 것 같으니까요.”
그냥 찍었다는 말이지만, 놀랍게도 라헬의 의도를 정확하게 맞힌 데이지였다.
“그리고 내가 죄를 짓기는 무슨.”
여신에게 협박을 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을 아홉 번이나 구했는데, 아직도 부려 먹겠다니.
‘그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지.’
용사 시절 만났던 악당들 중 사연 많은 녀석들도 자신만큼 사연이 있지는 않았다.
악당이 되어 세계 멸망에 앞장서도 될 개연성인데, 참아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양심이 없어서 그런가?’
하지만 라헬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기에 르윈은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르윈, 저 언니는 언제까지 따라다녀?”
“아카데미 가기 전까지?”
“음.”
아카데미 복귀까지는 앞으로 몇 시간이 남지 않은 상태.
남은 시간을 모두 성녀와 함께 돌아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라일라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우리끼리 못 돌아다니면.”
“라일라?”
하지만 금세 찌푸려졌던 인상이 풀리고, 음흉한 웃음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다른 걸 즐기면 되지!”
***
“여, 여기에 온 건 비밀이에요.”
“네, 테일드 언니!”
“어, 언니라니.”
언니라고 불린 적이 많이 없는지, 성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여신님께서 말씀했다면서요.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그러니까 잘 지켜봐 달라고.”
그런 성녀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라일라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언니죠.”
“그, 그렇죠?”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르윈은 데이지에게 말했다.
“저거 누구냐. 라일라 맞아? 가짜 아니야?”
“놀랍게도 맞습니다.”
라일라가 성녀인 테일드를 구워삶는 데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리고 그 결과, 라일라의 말 몇 마디에 넘어간 테일드는 창조의 교단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대성당의 최고층에 르윈들을 데려간 것이다.
“잘 만들긴 했네.”
“경치는 좋네.”
“성당의 꼭대기니까요.”
사방이 유리로 된 방은 제국 시내의 모습이 환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창조의 교단의 성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이긴 하지.’
르윈에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성당의 가장 꼭대기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열댓 명.
관리도 성자나 성녀, 고위 사제들이 직접 할 정도였다.
‘높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성당의 꼭대기, 가장 높은 곳.
그렇기에 신과 가장 가까이에서 기도할 수 있다고 창조의 교단은 의미를 부여했지만.
‘신과 인간의 차이를 생각하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지.’
신이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하늘에 있다고 쳐도 대성당의 꼭대기와 지상의 거리에 차이를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인간이 만들어 낸 의미에, 라헬이 서비스 차원에서 적당히 대답을 해 주는 것일 뿐.
“그냥 전망대로 개방하고 입장료 받으면 달달할 텐데.”
“그건 안 돼요.”
“나도 알고 있어.”
황성 내부의 건물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높이가 제한되어 있고, 오직 창조의 교단의 성당만이 신의 이름을 빌려 허가를 받았을 뿐.
그것을 관광 목적으로 개방한다고 하면 황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여길 소수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거지.”
다른 건물들의 높이가 다 일정하기에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다.
이렇게 좋은 곳을 창조의 교단만 독점하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애들 봐봐. 저렇게 좋아하잖아.”
유리창에 달라붙어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예리엘과 하인스의 모습에 데이지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바보가 높은 곳을 좋아한다던데.”
“바보 소리 들을 애들은 아닙니다, 도련님.”
“아니야. 원래 바보랑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들 하잖아? 검에 미쳐서 다른 걸 포기했을 수도 있어.”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말없이 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데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라일라가 데이지의 등을 콕콕 눌렀다.
“네, 아가씨.”
“언니가 궁금한 게 있다고 하는데!”
“성녀님께서요?”
“뭔데?”
“남자한테는 비밀! 여자들끼리 대화니까 저리 가서 구경이나 해!”
귀찮은 하루살이를 치우는 듯한 손짓으로 자신을 밀어내는 라일라의 모습에 르윈은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불쌍한 녀석.’
저렇게 친화력이 좋았는데.
사람들이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것 또한 다 라헬의 업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르윈이 자리를 떠나는 것과 동시에 데이지가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가씨?”
“아까 데이지가 말했었잖아.”
“제가요?”
아까 무슨 말을 했었던가.
데이지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작게 한숨을 쉰 라일라는 데이지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첩자가 필요해.”
“……?”
데이지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기울어졌다.
그런 말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저 말을 꺼내는 것일까.
“그래서, 구했어. 첩자.”
“네……?”
데이지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 10초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첩자를 구했다.
창조의 교단 내부를 알려 줄 첩자를.
“어?”
데이지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지금 이곳에 있는 창조의 교단 사람은 단 하나였다.
교단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인.
“성녀님이요?”
“응!”
밝게 웃는 라일라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떠올릴 수 있었다.
‘무력의 드라이르프.’
그 이름과 항상 나란히 서 있는 또 하나의 이름을.
‘내정의 라인하르트!’
검을 든 드라이르프를 이길 수 있는 곳은 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 라인하르트의 정치는 드라이르프의 검도 버거울 것이다.
“잘했지?”
그제야 데이지는 알 수 있었다.
라일라의 이름 뒤에 라인하르트라는 성이 붙어 있는 것을.
그리고 다행히도, 그녀가 자신을 친구로 생각해 준다는 것을.
“네, 감사합니다.”
그렇기에 데이지는 친구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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