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48)
48화 10. 인생 10회 차는 소풍을 간다 (7)
‘빌어먹을.’
최근 루테스는 행복했다.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귀찮은 녀석이 달라붙지 않았고, 어쩐 일인지 메이드장인 베리엘 역시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다.
평화가 이렇게 좋은 것이었던가.
인생 11년 차.
루테스는 평화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그렇기에 평소에 하던 망나니짓도 잠시 휴식했다.
평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만큼 다른 사람들의 평화도 지켜 준 것이다.
‘착하게 살았잖아.’
그런데 왜 세상은 날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일까.
소풍 마지막 날.
다른 학생들은 황성을 구경하며 황실의 위대함을 깨달을 때.
“오랜만이구나, 동생아.”
“황실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만나기 어렵다니.”
“그러게요. 오빠 얼굴을 이렇게 오랫동안 못 보는 건 처음이네요.”
곳곳에서 한마디씩 내뱉는 핏줄들의 모습을 보며 루테스는 생각했다.
‘차라리 르윈 그 녀석이랑 밥 먹는 게 낫지!’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지만, 불편한 식사 자리였다.
분명 대륙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일진대, 아카데미 매점에서 대충 만들어 파는 샌드위치보다도 못한 느낌이다.
“그렇네요.”
황족은 모두 황실 아카데미에 다닌다는 불문율.
그것을 깨고 베르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이 새끼들 보기 싫어서였는데.’
형이고, 누나고, 동생이고.
다들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인간들이었다.
대충 안부를 묻는 저 한마디에도 가시가 잔뜩 있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겠지.
‘왜 하필.’
수많은 여행지 중 황실에 오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모를 정도로 루테스는 멍청하지 않았다.
‘누구지?’
태연한 얼굴로 밥을 먹는 형제 중에 자신을 부른 이가 있다.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다일 수도.’
피해망상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놈들은 그런 놈들이니까.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
식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요리를 포크로 끼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 그러고 보니.”
마치 지금 생각났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었다.
루테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시선이 향했고, 그 주인공과 눈이 마주친 순간 깨달았다.
‘망했다.’
긴 백발에 검붉은 눈동자, 거기에 귀여운 외모까지.
이렇게만 들으면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의 회장, 레피스의 평가와 비슷했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레피스는 토끼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초식 동물.
그러나 자신과 눈을 마주친 이 인간은 정반대였다.
완벽한 육식 동물.
그것이 자신의 핏줄에 흐르는 특징이었다.
‘빌어먹을.’
붉은 눈동자로, 언제나 자신의 적의 목을 물어뜯을 수 있는 괴물.
이 자리에 있는 인간 중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피에 굶주린 괴물이었다.
“오라버니가 최근에 드라이르프 가문의 막내분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싸늘하다.
한 자루의 비수가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기분이다.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 주던 식사 자리가 순간 얼어붙고, 붉은 눈동자들이 모두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루테스는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루테스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르윈을 보며 어쩐지 익숙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레일라랑 비슷했구나.’
자신을 향해 비수를 던진 이를 바라보았다.
레일라 디 바벨리안.
제국의 3황녀이자, 르윈과 같은 나이를 지닌 아이.
올해 황실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본성은 이렇지.’
루테스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각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또래인 르윈 디 드라이르프와 라일라 라인하르트가 당연히 황실 아카데미에 입학할 줄 알았는데.
막상 황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니 둘이 베르샤 아카데미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왜 베르샤 아카데미에 들어갔는지 알아보다가.
‘자연스럽게 르윈과 내가 접촉했다는 걸 알게 된 건가?’
루테스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내가 원한 일도 아닌데.
아니, 오히려 제발 좀 꺼졌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왜 내가 생명의 위기를 겪게 되냐고.’
살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나,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루테스 디 바벨리안.
베르샤 아카데미 소풍 중 변사체로 발견.
내일 제국 신문의 1페이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일까.
‘살아야 된다.’
다행히도 비수가 아직 심장에 꽂히지는 않았다.
“음, 그렇지.”
여기서 부정해 봤자, 의심만 살 뿐이었다.
그렇기에 루테스는 억울하지만 르윈과의 친분을 인정했다.
“그렇구나!”
“그 녀석이 이름 없는 신 동아리에 관심을 보여서.”
“이름 없는 신이요?”
형제들이 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창조의 교단의 열렬한 신도를 연기한다는 것을 루테스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름 없는 신에 반응하리라는 것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게 르윈 녀석이거든.”
거짓이 아니다.
쓸데없을 정도로 동아리 활동을 하여 기존 동아리 인원들이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진실은 재료고, 거짓말은 조미료다.’
거짓말은 약간의 간 조절을 위해 써야지 좋다.
조미료가 재료보다 많이 들어가는 순간, 그 음식은 실패한다는 것을 루테스는 많은 교사들에게 배웠다.
“그래. 우연히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서 만났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루테스는 르윈과의 사이를 딱 잘라 설명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진짜요?”
두 눈을 깜빡이며 순진한 표정으로 묻는 모습이 르윈과 참으로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대처하기 쉬워지는 루테스였다.
“그래. 종교에 관심이 많은지, 이번 소풍도 대성당에 간다고 좋아하더라.”
르윈 디 드라이르프는 종교에 관심이 많다는 정보에 몇몇 이들이 관심을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루테스는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이름 없는 신의 이름부터 지어 주자는 의견을 내었지.”
“신의 이름이 뭐냐고? 무링신이라는 이름이었지, 아마?”
“뜻이 뭐냐고? 무… 수히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신이었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평화의 신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회장은 레피스 원드라고, 훌륭한 선배가 맡고 있지.”
그간 르윈의 행적은 사실대로 말하고, 몇 가지 일들은 거짓을 섞으며 루테스는 자연스럽게 자신은 제삼자에 가깝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 덕분에 회장인 레피스의 평가를 조금 많이 올려 치기는 했지만, 어쩌겠는가.
‘어차피 곧 졸업하면 잊히겠지.’
아카데미의 일은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순간 끝이다.
그것이 귀족 사회의 암묵적인 룰이었기에 루테스는 레피스를 팔아먹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군요!”
질문을 던진 레일라 또한 그런 루테스의 노력을 이해해 준 것일까.
그 한마디를 끝으로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살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간단한 디저트와 함께 식사가 끝났다.
고작 밥 한 끼 먹는 것뿐인데, 등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것을 느끼며 루테스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아카데미로 복귀를 해야 해서. 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 말에 형제들은 적당한 덕담을 해 주며 루테스를 보내 주었다.
“아, 오라버니!”
단 한 명만 제외하고.
“왜 그러니, 레일라.”
“저도 슬슬 아카데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려고 했거든요.”
방긋 웃는 얼굴이 가증스럽다.
“그러니?”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비슷한 미소를 자주 보았기에 루테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러니 같이 가시죠?”
“그러지, 뭐.”
어머니가 같지 않은 남매가 나란히 황실의 복도를 걷는다.
한쪽은 황위 계승권에서 이미 탈락이 확정된 황자.
다른 한쪽은 제법 안전한 지지 기반을 가진 황녀.
그렇기에 둘이 나누는 대화는 일반적인 남매의 대화와 많은 것들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와 친한 르윈 님은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
“네. 어머니 말로는 한때 약혼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했던가?”
“그랬었나?”
루테스는 그 말에 자연스럽게 르윈과 레일라 커플을 떠올려 보았다.
‘잘 어울리기는 하네.’
끼리끼리 논다는 말에 이보다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안 돼서 다행이다.’
그 둘의 자식들을 떠올리는 순간, 둘의 약혼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이 새끼들의 후손이면, 세상이 위험하지.’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르윈이고 어머니가 레일라라니.
아이가 불쌍하고, 세상이 너무나 위험했다.
“그리고 동갑 대귀족은 생각보다 흔치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저는 드라이르프와 라인하르트에 동갑이 있다고 들어서 기대했거든요.”
현 황실과 대등한 친구가 되려면 그 둘 정도는 되어야 했다.
아니면 다른 나라의 왕족이 유학을 온다거나.
“그런데 둘 다 베르샤 아카데미로 갔다고 들으니.”
“아깝게 되었구나.”
그 둘과 친구가 되어 더욱더 지지 기반을 단단히 굳힐 생각이었겠지.
루테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어지는 레일라의 말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베르샤 아카데미로 전학을 갈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에요!”
“뭐?”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루테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레일라의 발언은 바뀌지 않았다.
“한때 약혼이 오갔던 사이! 그리고 레일라와 라일라, 이름이 비슷한 사이! 이건 운명이 아닐까요?”
운명은 무슨, 악몽이겠지.
그것도 아주 지독한 악몽!
“그… 아카데미 편입은 어렵다고 하던데.”
아카데미 편입은 어려운 편이 맞았다.
하지만 그건 더 높은 아카데미에 편입하고자 할 때뿐.
황실 아카데미에서 베르샤 아카데미로 하향 지원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일 것이다.
심지어.
“노력해야죠!”
황족이 노력하면, 그냥 무혈 입성하는 수준!
“그, 그리고 베르샤 아카데미가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니고.”
“그럴 리가요. 천재인 오라버니가 입학한 곳인데, 좋은 곳이 아닐 리가 없잖아요?”
“…….”
천재. 그런 소리를 듣기는 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천재가 맞기도 했고.
‘비교 대상이 평범했다면.’
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레일라와 비교해서는 그저 둔재일 뿐이었다.
아니, 형제 중 자신보다 못난 이는 없었다.
“그걸 알았으니 드라이르프도, 라인하르트도 베르샤 아카데미를 선택한 것이겠죠?”
절대 아니다.
도서관이 좀 수상하고, 문제아들이 좀 많으며, 메이드장이 좀 많이 유능한 것을 제외하면 베르샤 아카데미는 특별하지 않았다.
‘…충분히 특별한가?’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다른 아카데미와 비교해서일 뿐.
황실 아카데미와 비교하면 특별하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황실 아카데미만큼은 아니지.”
“모르는 일이죠! 베르샤 아카데미는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의 진가를 모를 수도 있죠.”
“절대 아니다.”
레일라의 계속되는 베르샤 아카데미 칭찬에도 루테스는 그것을 부정했다.
둘의 공방은 서로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되었고, 덕분에 루테스는 불안한 마음으로 아카데미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진짜 오는 건 아니겠지?”
르윈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레일라까지 베르샤 아카데미로 오면 자신의 평화는 박살 난다.
덤으로 아카데미의 많은 이들이 비명을 지르겠지.
‘제발 그것만은…….’
루테스는 오랜만에 신을 찾으며 간절히 기도했고.
창조의 여신인 라헬이 루테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 것일까.
2학기가 되어, 베르샤 아카데미에 황족이 편입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올해에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