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49)
49화 11. 인생 10회 차는 탐사를 떠난다 (1)
아카데미의 소풍이 끝났다.
고작 1박 2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테일드 성녀님과 주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테일드 성녀님이라면, 마일드 왕국의 그분 맞으시죠?”
“네. 라일라 영애님 덕분에 이야기가 잘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소중한 추억보다는, 소중한 인맥을 쌓은 사람도 존재했다.
“다행이네요.”
소풍 당시, 창조의 교단이 르윈과 접촉했다는 사실에 가장 놀랐던 총학생회장 데일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베르샤 아카데미 최고의 인맥을 자랑하는 데일드라고 하더라도, 창조의 교단하고의 인연은 없는 편.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고는 베르샤 아카데미의 종교 관련 동아리의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소풍 활동 중 창조의 교단에서 찾아오다니.
데일드의 머릿속에 종교 재판의 시나리오가 수십 편이 떠올랐다 사라졌었다.
“아직이죠.”
하지만 데이지는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하나의 이벤트가 끝나면 또 다른 이벤트가 찾아오고, 그 이벤트가 끝나면 또 다음 이벤트가 찾아오는 법.
안타깝게도, 인생엔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끝날 뿐, 이 세계의 이야기는 계속 진행이 되는 법이었다.
“도서관 쪽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다음 이벤트는 도서관 지하 미궁.
그에 관한 내용을 계속 수집 중인 베리엘이었지만, 늘 그렇듯 성과는 없었다.
“위험하진 않겠죠?”
“아카데미 초창기 결과로는 그렇습니다.”
이전과 같은 내용이었지만,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베리엘은 찾을 수 있었다.
“그게 언제죠?”
“거의 200년 전이죠.”
“…….”
200년 전.
그 한마디에 모두가 침묵했다.
과연 그 시절의 베르샤 아카데미는 어디까지 도서관 지하 미궁을 조사했던 것일까.
그리고 현 도서관 사서들은 어디까지 탐사를 진행했을까.
“데이지 님.”
오랜 시간 지속된 침묵을 깨트린 것은 베리엘이었다.
그녀는 드물게 긴장된 얼굴로, 데이지에게 진심으로 부탁했다.
“네, 메이드장.”
“그곳은 아카데미 교수도, 학생회도, 저희 메이드들도 접근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베리엘조차 도서관 내부를 지나다니는 통로를 이용하는 게 고작.
진짜라고 할 수 있는 장소까지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그곳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도서관 사서들은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었다.
베리엘이 아카데미의 사용인들을 총동원했음에도 그들 내부에 자신들이 정한 계급이 있다는 것, 그리고 공식적인 동아리 회장이 아닌 진짜 동아리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소문을 알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학생회를 통해 첩자를 잠입시킨 적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데일드 역시 마찬가지.
이미 여러 차례 첩자를 보냈지만, 모두 간파당한 상태였다.
“이번이 기회입니다. 르윈 님을 원하는 건 저쪽이니까요.”
르윈을 말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이번 기회를 이용하자.
그렇게 주장하는 두 사람을 보며 데이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평소 두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처지인 그녀였기에 그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할 이유도 없고.’
현재 아카데미에서 르윈이 교류하고 있는 동아리는 크게 세 곳.
르윈이 소속되어 있는 무링신 연구 동아리.
그리고 맨드레이크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 지속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한 연금술 동아리.
그리고 처음부터 관심을 보였던 도서부까지.
‘진짜, 도련님은.’
무링신 연구 동아리에는 아카데미 공식 문제아 루테스가, 연금술 동아리에는 실험마라 불리는 벨레테스 아디아스가 존재한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비공식 문제아라 평가받는 도서관 사서들과 함께 탐사까지 진행하다니.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은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아카데미 1학기도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아니, 이것도 좋게 보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베리엘의 말에 따르면 이미 르윈은 아카데미 비공식 문제아들과도 모두 접촉을 했다고 했으니까.
‘도련님, 제발.’
더 이상은 사고를 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위장약 하나를 입에 털어 넣는 데이지였지만.
탐사 당일, 소문만 무성했던 도서관 탐사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순간.
“아.”
그것이 얼마나 헛된 소망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창문으로 비치는 따뜻한 햇살.
…따위는 전혀 없는 아침.
“탐사하기 딱 좋은 날씨네.”
“이게요……?”
데이지는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햇살은 보이지도 않는, 먹구름만 가득한 날씨.
마치 자신의 앞날을 보는 듯한 느낌에 데이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창문을 닫았다.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데요?”
“괜찮아. 어차피 지하 던전으로 가는 거니까.”
“탐사하기 딱 좋은 날씨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우리가 지하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지상에서 날씨 좋다고 놀고 있으면 열받잖아?”
그러니 지상의 날씨가 좋지 않을수록, 탐사하기 좋은 날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응, 갈 거야.”
이날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자신의 흑역사를 좋다고 구경하는 소풍보다는, 이렇게 미지에 도전하는 탐사가 백 배, 아니 천 배 더 유익했다.
“이걸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아무리 지하의 유적 하나를 발견했다고 하지만, 폐쇄적인 도서관 사서들과의 공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고, 탐사에 대한 열의를 보여 주어야 했다.
그뿐인가?
신분보다도 능력주의인 도서관 사서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했다.
“노력은 내가 다 했지.”
에헴.
오랜만에 어항을 빠져나온 엘리가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내밀었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누가 봐도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듯한 모습에 르윈은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석 하나를 건넸다.
“크, 이 맛이지.”
받은 마석에서 마력을 흡수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엘리의 모습.
“노력이요?”
그 모습을 보며 데이지는 뭔가 불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응? 아, 내가 살던 곳에 한 번 더 간다기에 도움 좀 주었지.”
“지하 던전에 살던 애니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꼬셨거든.”
히죽히죽 웃는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식물의 모습에 데이지는 벌써 머리가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군요.”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였다.
그저 말을 할 수 있는 식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연금술 동아리와 도서부의 연결 고리였다니.
‘애초에 영물급 맨드레이크를 보기 쉬운 게 아니었는데.’
늘 어항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모습만 보았기에 방심하고 말았다.
“준비는 다 했지?”
무해한 생물들도 다시 돌아보자.
그렇게 마음먹은 데이지에게 르윈이 물었고, 데이지는 아카데미 입학 기념으로 선물 받은 막대기 하나를 품에서 꺼내 보였다.
“네.”
얼핏 보기에는 나무젓가락보다 조금 길어 보이는 나무 막대기.
하지만 본질은 세계수 다음으로 명품 취급을 받는 벼락 맞은 나무로 만든 마법 지팡이였다.
“좋은 거네.”
“네. 드라이르프 가문 사용인의 염원이 담겨 있는 지팡이니까요.”
제발, 도련님을 막아 다오.
그런 마음으로 모두가 한 푼, 한 푼 모아 데이지에게 선물한 도구였다.
“그래?”
“네.”
소중하게 지팡이를 쓰다듬는 데이지의 모습을 보며, 르윈은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저거 예전 내 모습 같은데.’
초창기 용사 시절, 교단이나 왕국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무기를 보고는 저런 애잔한 표정을 짓기는 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작 그런 무기 하나로 이길 수 없었기에 여러 나라에서 아티팩트들을 뜯어내긴 했지만.
“그럼 비 오기 전에 나가자.”
“네.”
식량과 식수를 포함한 여러 물건들 또한 챙겨야 했기에, 우비까지 챙기는 것은 사치였다.
그러니 먹구름 속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방을 나선 르윈과 엘리, 데이지는 곧바로 도서관에 도착했고.
‘이게 도서관 동아리 활동?’
평범한 도서관 아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사서들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르윈 씨 오셨네요.”
르윈의 인사에 안경을 쓴 사서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쪽이 같이 내려간다는 시종분?”
“네. 데이지라고 합니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데, 진짜 괜찮으시죠?”
“네.”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
그 한마디만으로도 도서관 지하 던전이 아카데미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데이지는 깨달을 수 있었다.
***
‘생각보다 제대로인데?’
데이지와는 다른 의미로 르윈은 도서관 사서들을 보며 감탄했다.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검의 날을 세우는 사서도 있었고, 벽에 기대어 자신의 키만 한 스태프를 무덤덤하게 쓰다듬는 사서도 있었다.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모습이지만, 르윈에게는 매우 익숙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용병 같네.’
전투에 익숙한 동아리인 기사 동아리나 마법 관련 동아리는 대기나 휴식 시간에도 잘 정돈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도서관 사서들은 개인적인 느낌이 강하면서도 기세가 날카로운 게 기사 동아리나 마법 관련 동아리보다도 더 전투에 능숙한 분위기였다.
‘분위기만으로 알 수는 없지만.’
간혹 분위기는 있고 실속은 없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위험하게 던전에 도전할 리가 없지.’
도서관 사서라고 무조건 탐사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순수하게 책을 좋아하기에 사서가 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누가 칼을 들고 던전을 탐사하라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 온 이들은 자발적으로 던전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밝혀내기 위해서 모인 이들.
비밀리에 활동하기에 명예조차 얻을 수 없었다.
‘이득도 없는데, 자신의 실력을 과장할 필요는 없지.’
“후배님, 왔어?”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르윈에게 인상 좋은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아, 회장님!”
큰 키에 보랏빛 머리카락, 그리고 두꺼운 뿔테 안경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의 이름은 바르타스 그른윈드.
베르샤 아카데미 고등부 3학년이자, 도서부 회장을 맡은 이였다.
“진짜 올 줄은 몰랐는데! 아, 어깨에 있는 분이 말로만 들었던 엘리 양? 그리고 이쪽이 데이지 양.”
“네.”
“아, 안녕하세요.”
데이지는 물론 맨드레이크 엘리에게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
흔히 생각하는 도서관 사서들의 이미지와 달리 사교성이 굉장히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장비랑 식량은 챙겼지? 식량은 우리 쪽에서 줄 수 있기는 한데, 입맛에 안 맞을 수 있거든.”
“챙기기는 했는데, 보기와 달리 아무거나 잘 주워 먹어서 괜찮아요.”
“그래?”
그냥 잘 먹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먹지 않는 것도 잘 요리해 먹는다.
마족들의 대륙, 마대륙의 식재료를 최초로 요리해 먹은 인간이 바로 용사였으니까!
“네, 오히려 얘가 더 입맛이 고급일 것 같은데.”
“도련님.”
자신을 가리키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 또한 사실이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노예 생활이 있었다고 하지만 최고급 노예로서 식사에 부족함은 없었다.
“너 벌레 못 먹잖아.”
“평범한 사람들은 안 먹습니다. 그리고 도련님도 먹은 적이 없지 않으십니까?”
“있는데?”
이번 생은 아니지만.
“언제 또 주워 드신 겁니까?”
“벌레도 먹어?”
그 말을 생략하자 기겁하는 데이지와 엘리의 모습에 르윈은 피식 웃어넘겼다.
“그나저나 언제 출발하죠?”
“애들 다 오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바르타스의 옆을 지나치며 창을 든 사서 하나가 한마디 내뱉었다.
“회장이 제일 늦었는데요?”
“어? 그, 그랬나?”
고개를 돌리니 장비를 정비하던 사서들이 바르타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그 모습에 멋쩍은 미소를 지은 바르타스는 르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네. 가지. 우리 도서관이 자랑하는 지하 미궁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