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5)
5화 2. 인생 10회 차는 인생을 즐길 준비를 한다 (1)
달그락거리는 마차 바퀴 소리.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세상.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에게는 모든 게 신기할 것이지만.
“하암.”
“…….”
아무래도 르윈 디 드라이르프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듯싶었다.
“도련님.”
“왜.”
넓은 마차에 반쯤 드러누운 상태인 그를 보며 알렉스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딱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그러다 떨어지시면 위험합니다.”
공작가가 자랑하는 최고급 마차이지만, 그래 봤자 마차일 뿐이다.
길의 상태나 말들의 움직임에 따라 얼마든지 변수가 생길 수 있었다.
“음.”
르윈 역시 알렉스의 말이 합당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평소와 달리 자세를 고쳐 앉은 르윈은 알렉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 수도 있겠네.”
“맞습니다.”
“거기에 내가 다치면 마부와 알렉스도 큰일 나겠지.”
“맞습니다. 거기에 호위를 겸하고 있는 기사단원들도 한 소리를 듣게 되겠지요.”
“음, 그건 그렇겠지.”
도련님도 설득이 되는구나.
알렉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르윈은 다시 자세를 고치기 시작했다.
“도련님?”
기분 탓일까.
이전보다도 더 편하게 누운 것 같은 르윈의 모습에 알렉스는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위험하면 잘 잡아 주겠지.”
“…….”
눕지 마!
단말마의 비명처럼 튀어나오려는 그 말을 알렉스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 낼 수 있었다.
“믿어도 되지?”
하지만 이어지는 말 한마디에 그 인내심마저 무너질 것 같았다.
“도련님.”
믿고 있다. 신뢰하고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누군가를 모시며 산 알렉스로서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 것일까.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가.
늘 새로운 감정들을 깨닫게 해 주는 르윈의 행동에 알렉스는 감탄마저 나올 정도였다.
“그럼 잘 자.”
“도련님,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세상 밖이라고 해 봤자 다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마차에서 내리면 싫어도 그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데, 그 전까지는 체력을 아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할 말은 아니었다.
뭐라고 할까.
저 나이라면 좀 더 순수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동심 따위는 어디에다가 버리고 온 것인가.
보면 볼수록 더 알기 어려운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다니.
‘말년에 고생길이 열린다는 점쟁이의 말이 사실이었던가.’
과거 들었던 점쟁이의 한마디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알렉스였다.
***
르윈의 여행은 매우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차로 이동하고, 적당히 휴식할 수 있는 장소가 확보되면 거기서 식사를 하거나 취침을 하고, 다시 아침이 되면 출발하여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리고 할 일을 끝내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반복.
“심심하지 않으십니까?”
첫 여행의 꿈을 꾸는 이들은 이 반복되는 패턴을 버티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꿈은 애초에 버리고 온 듯한 르윈은 조금 달라 보였다.
“왜?”
질문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
실제로도 르윈은 이 험난한 세상을 버티기 위해 바쁜 상태였다.
“온종일 마차에서 잠만 주무시는 것 같으셔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만 누워라.
그렇게 돌려 말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르윈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
“나 바쁜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온종일 뒹굴뒹굴하거나 잠만 자는 것 같았지만, 르윈은 매우 바쁜 상태였다.
숨쉬기 운동을 통해 모이는 마력들이 전신으로 퍼질 수 있도록 미세한 마력의 흐름을 조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전 생에 도달했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있었으며.
할 일이 끝났을 때는 대마왕 아펠리오스와의 마지막 혈전을 머릿속으로 복기하고 있었다.
‘운이 참 좋았지.’
아무리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막 나갈 줄이야.
그 탓일까.
당황한 아펠리오스는 제 실력을 100퍼센트 꺼내지 못했고, 그렇기에 동귀어진을 할 수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수백, 수천 번을 복기해도 이기는 그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생의 자신과 아펠리오스에게는 큰 격차가 존재했다.
‘마왕이라는 것들은 시대가 지날수록 강해졌지.’
용사가 시대가 지날수록 강해지듯, 마왕 또한 강해졌다.
아홉 번의 인생을 살았는데도 못 이기는 괴물이 튀어나오다니.
‘마왕도 나처럼 인생 n회 차가 아니라면, 인류는 희망이 없어.’
이제 인생 좀 즐기려 하는데 인류가 망해 버리면 매우 곤란하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일들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준비도 해야 했다.
바쁘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바쁘시다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 보일 뿐이었지만.
“응.”
“…….”
오늘도 참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의 알렉스를 보며, 르윈은 몸을 일으켰다.
“뭐, 오늘은 다른 일도 할 거지만.”
“도련님이요?”
“응, 내가.”
하루하루를 매우 바쁘게 살아가는 르윈이 굳이 기사단의 일정에 따라온 이유가 있었다.
조금 이르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머릿속으로 구상해 왔던 인생 계획.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그 계획에 필요한 조건들이 몇 개 있었으니.
“그러니, 오늘은 잘 좀 부탁할게.”
***
르윈 디 드라이르프의 전속 집사, 알렉스 브룸버그.
그는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의 사람을 모시는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대륙 최고의 나라에서, 최고의 가문을 모시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이 최근 들어 자주 흔들리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가문의 막내 도련님의 전속이 된 이후부터!
“도련님, 평소처럼 그냥 마차에 있으시죠.”
“싫어.”
“제발 부탁드립니다.”
“응, 안 돼.”
알렉스는 눈을 감았다.
캄캄하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야속하게도, 뚫려 있는 두 귀로 르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여행의 목표가 여긴데!”
그 활기찬 목소리에 알렉스는 감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좀비와 같은 눈을 한 채,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수많은 인파가 움직이고, 시끄러울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들이 귓가로 들려온다.
겉모습만 보자면 완벽한 상업 도시인 이곳의 이름이 그의 망막에 들어왔다.
‘벨테시스 노예 시장’.
제국이 인정하는 다섯 개의 노예 시장 중 하나인 벨테시스 노예 시장.
합법적인 노예들을 파는 곳으로 빚을 갚지 못한 자들, 전쟁에서 패배한 자들 등이 모이는 곳이었다.
“…….”
합법. 그래, 합법이다.
불법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다.
이종족 납치, 불법 인신매매를 하는 불법 노예 시장은 아니다.
하지만!
‘일곱 살짜리가 돌아다닐 곳은 절대 아닌데!’
그 이전에 일곱 살이 노예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부터가 의심스러웠다.
“알렉스 집사.”
“부르셨습니까, 가렌 경.”
“도련님과 함께…….”
가도 되는 것인가.
차마 그 말을 끝내지 못하는 기사에게 알렉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신다고 하십니다.”
“허.”
진짜 이래도 되는 것인가.
헛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기사의 모습을 보며 알렉스는 시선을 돌렸다.
“도련님,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안 된다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는 르윈의 모습에 알렉스는 울상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르윈과 알렉스의 관계는 주종 관계.
주인인 르윈이 원한다면 알렉스는 그것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
그저 할 말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제발 이 작은 주인님께서 사고를 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
“방금 드라이르프 공작가가 도착했다고?”
“벌써 그런 시기인가?”
“자, 너희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다! 나를 위해,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해라!”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바로 충성심이었다.
주군을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바칠 수 있는 자들.
하지만 기사가 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충성심이 생기진 않는 법.
그렇기에 많은 가문에서 외부의 인재들을 기사단으로 영입하는 한편, 노예 시장의 어린 노예들을 구매하여 기사로 키우기도 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단순하게 노예이기에 자신을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밑바닥으로 전락한 노예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면 충성할 것으로 생각한 이들도 있었으며.
단순하게 사람을 구하기 쉽고 간편해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도 견딜 수밖에 없기에.
혹은 다른 가문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어서 따라 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용사 데르덴의 일화를 생각해라! 너희가 그 영웅들처럼 될 수 있다!”
바로 세상을 구원한 용사, 데르덴 델 블레이드의 일화가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희도 할 수 있다!”
아주 어린 시절, 노예를 구입하여 친구로 삼은 용사의 이야기는 노예 시장의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그렇게 팔려 나간 노예들은 마족과의 결전에서 큰 공을 세워, 훗날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너희도 될 수 있다!”
그로 인하여 탄생한 가문이 대륙에 널리 퍼져 있다.
그렇기에 노예 상인들은 노예에게 말하는 것이다.
너희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
너희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여 그들의 눈에 들어라.
자신들의 물건 값을 최대한 올리기 위한 말이지만, 노예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다.
“그 드라이르프 가문이다!”
하물며 이번 손님은 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
선택만 받는다면 노예든, 노예 상인이든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손님이었다.
“오늘만을 기다렸지.”
바르란 데그렌타.
벨테시스 노예 시장에서 30년을 일한 베테랑 노예 상인 또한 오늘 같은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제국 검투장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여 검투장에서 풀려나 자유 노예가 된 전 검투 노예.
아버지가 범죄에 연루되어 한순간에 밑바닥까지 떨어진 천재 검사.
한 용병단의 신성 소리를 들었지만, 참가한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노예로 팔린 유망주까지!
대륙을 돌며 평범하지 않은 노예들을 사 온 그는 조용히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의 인원들을 기다렸다.
“느낌이 온다.”
“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을까.
그가 운영하는 상단 앞에 드디어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의 문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지?’
작다. 작아도 너무 작다.
아무리 성장이 느리다고 하더라도, 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년이 가장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며 바르란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장사 안 하나?”
“도련님!”
당돌한 그 한마디에 늙은 집사가 비명을 질렀고, 바르란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애면 어때.’
자고로 장사꾼이란 남자고 여자고, 아이고 노인이고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돈.
그것이 이 냉혹한 세상의 유일한 기준이었으니까.
“아닙니다. 장사합니다. 암요.”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세를 취한 바르란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도련님.’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의 문양을 달고 도련님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의 머릿속에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나열되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르윈 디 드라이르프.”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의 세 번째 별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행히도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바르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더욱더 저자세로 르윈을 바라보았다.
“원하시는 노예가 있으십니까?”
그에 르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 상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의 장단에 맞추어 주기만 하면 될 것이다.
‘드라이르프 가문을 상대로 가격을 후려치는 것은 못하겠지만.’
노예를 두셋 정도 더 파는 것은 가능하리라.
내가 파는 것이 아닌, 상대가 원하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응.”
작은 아이의 고개가 끄덕인다.
아마 기사가 될 노예들을 구하겠다고 하겠지.
바르란은 그렇게 생각하며 준비해 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얼굴이 잘난 사람.”
“네?”
“남자고 여자고 상관없고, 얼굴이 진짜 잘났다 싶은 사람.”
“네에?”
“다 데려와.”
“…….”
눈앞의 아이는, 그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말들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