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54)
54화 11. 인생 10회 차는 탐사를 떠난다 (6)
매드 온즈와 르윈의 거래가 성사된 이후, 그들은 빠르게 다른 이들을 처리했다.
“대충, 유적을 발견하고 휴식을 취했다! 정도로 조작하면 되겠지.”
마법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의 마법이 펼쳐졌다.
사실 마법이라기보다는 권능에 가까운 것이기에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이 드래곤의 쉼터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르윈과 엘리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역시 지상이 최고야.”
전혀 맑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엘리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크~ 이 오염된 마력의 공기!”
두 손을 쭉 뻗으며 엘리는 도시의 공기를 맘껏 즐겼다.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데?”
“상관없어! 이게 고향의 맛이니까!”
“네 고향은 지하잖아?”
“나란 여자, 과거는 이미 잊은 지 오래! 지금부터는 차가운 도시 식물, 엘리로서 살 거야!”
“식물도 성별이 있었나?”
지상에 나오자마자 만담을 하는 르윈과 엘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데이지는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힘들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육체적으로도 지쳤고, 심적으로는 더욱더 지쳤다.
‘내일 등교하지 말까.’
하루 정도는 아카데미를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잘 알면서도, 유혹에 넘어가고 싶다.
그만큼 데이지는 지쳐 있었다.
“수고들 했어!”
“아, 르윈 후배님, 지하에서 있었던 일은 진짜 비밀이다?”
“거기 후배도! 학생회는 졸업하면 끝이지만, 우리 동아리는 회장이 나가도 유지된다고.”
“우리의 탐사는 끝나지 않는다!”
히죽히죽 웃으며, 탐사에서 얻은 고서를 해독할 생각이 가득한 사서들을 보고 르윈은 웃을 뿐이었다.
‘잘못했으면 다 죽었다는 걸 알까.’
까딱 잘못했으면 자신들은 물론, 아카데미가 통째로 멸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나마 아는 드래곤을 만나서 다행이었지, 성격 괴팍한 놈을 만났다면 지금의 상태로는 필패였다.
‘아니, 전성기 시절을 데려와도 드래곤은 좀 힘들지.’
마족을 비롯한 마왕은 그래도 인과를 벗어난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드래곤은 달랐다.
이름 없는 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름조차 잊힌 신.
최초의 세상에 창조의 여신 라헬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존재들이었으나, 믿는 자들을 잃고 쇠퇴해 버린 끝에 이름을 아는 인간조차 없어져 버린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름이 잊히고 신성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기에 신보다도 더 세상사에 간섭할 수 있었다.
‘미련이 없는 놈들이었으면, 진짜 위험했지.’
대부분의 드래곤은 다시 신성을 얻어 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아무리 드래곤이 전지전능하다고 하더라도 신의 힘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의 모습이었으면 모를까.
이미 신이라는 위치에 있었던 이들이 드래곤이라 불리는 지금에 만족할 리 없었고, 다시 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최대한 드래곤으로서의 사건을 만들지 않았다.
‘인간으로 따지면, 전지전능한 인간에서 전지전능한 고릴라로 살아가는 거니까.’
물론, 모든 드래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어차피 바닥으로 떨어진 거,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 제 맘대로 사는 드래곤도 있었다.
그런 드래곤을 만났다면 이번 탐사는 대규모 참사가 되었을 것이다.
“네, 선배님.”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최악의 가정일 뿐이다.
다행히도 지하에 있는 드래곤은 아는 드래곤이었고, 탐사를 진행했던 대부분의 인원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탐사를 끝낼 수 있었다.
도서관 사서들은 고서를 비롯한 몇몇 유물을 발견했고, 엘리는 매일 마석 2개와 최상급 마석을 얻었으며, 르윈 또한 몇 가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도련님, 이제 돌아가죠.”
유일하게 얻은 것이 없는, 아니 피곤만 얻어 가는 데이지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얻을 만한 것은 다 얻었다.
자신이 세운 계획이 이론상 성립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걸로 라헬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가장 이득인 건 도서관 지하 그 자체지.’
매드 온즈는 르윈이 아는 세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말이 잘 통하는 드래곤이었다.
본인이 자유로운 만큼, 남에게도 그 자유를 허락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탐사가 기다려지네.”
“또 가신다고요?”
데이지는 피곤하다는 듯한 얼굴로 르윈을 바라보았다.
한 번으로도 이렇게 피곤한데, 이걸 또 하려고 한다니.
“재미있지 않았어?”
“전혀요.”
고민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단호한 말에 르윈은 고개를 저었다.
“이 재미를 모르다니.”
“알고 싶지 않습니다.”
재미보다는 평화를 원하는 데이지였다.
그런 그녀를 설득하는 것이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럼 앞으로 혼자 갈게.”
“…절대 안 됩니다.”
주인이 가는 곳에 시종이 따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을.
“그럼 어쩔 수 없지.”
“하아…….”
빙그레 웃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땅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힘없는 발걸음으로 아카데미를 걷던 두 사람은 곧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르윈 님, 데이지 님.”
“메이드장님.”
기분 탓일까.
베리엘은 데이지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날씨는 흐리지만 비는 어제 그친 이후 오지 않았고, 데이지의 눈가 역시 메말라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데이지 님을 잠시 데려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저는 괜찮은데, 본인이 그럴 힘이 남아 있을까요?”
엄청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덧붙인 르윈의 말에 베리엘이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괜찮습니다.”
베리엘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데이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도서관 탐사의 정보.’
사람의 기억이란 일을 겪은 직후가 가장 또렷한 법.
지금 떠올리는 정보가 가장 정확한 정보이기에, 베리엘은 도서관 인원들이 밖에 나오자마자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고 데이지는 생각했다.
“두 사람, 친하네?”
“본질은 같은 직업에 임하고 있는 동료니까요.”
데이지의 말에 베리엘 역시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덤으로 르윈 디 드라이르프에 대한 협력 관계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친한 사람이 많으면 좋은 거지.”
나도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르윈을 데이지는 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아니요. 정말 교우 관계가 넓으신 것 같아서요.”
그 관계가, 전부 문제가 있는 이들이라서 문제일 뿐.
“그럼 난 먼저 들어간다?”
“네. 곧 따라가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데이지는 멀어지는 르윈의 등을 바라보았다.
“어땠나요?”
그리고 르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무렵.
데이지의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베리엘은 그녀에게 물었고.
“…….”
데이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망했어요.”
“그게 무슨…….”
“진짜 망했어요.”
딱 한마디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정리하였다.
***
“하하.”
망했어요. 그 말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한 베리엘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진짜 망했네요.”
도서관 지하의 일들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더 문제는 도서관 사서들은 아주 익숙하다는 듯 행동했다는 것이다.
“요번 세대부터 일어난 일은 아니었겠네요.”
좋은 커리어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베리엘이었지만, 그녀의 나이는 어린 편이다.
이제 20대 중반. 메이드 중에서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이는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
그런데도 그녀가 로열 클래스의 메이드장을 맡은 이유는 순수하게 실력 때문이었다.
“골치 아프네요.”
그렇기에 그녀가 베르샤 아카데미에서 메이드를 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제 3년.
그로 인해 그녀는 도서관 지하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다.
“연금술 동아리와의 연합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긴, 지속적으로 던전 탐사를 진행하려면 각종 포션은 필수겠지요.”
체력과 마나 회복은 물론, 온갖 상태 이상에 대한 물약은 필수.
거기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아티팩트도 필요했다.
“그 밖의 물건들은 제1매점에서 구매를 했다라.”
쉽게 보지 못하는 물건은 물론, 고성능 제품을 많이 파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베리엘도 그곳을 자주 이용했고,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과 사교 모임을 만들기도 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네요.”
매점은 모두가 이용하는 곳이다.
나에게 쓸모가 있는 물건이라면 적에게도 쓸모가 있는 물건일 터.
‘윗선에도 보고를 해야겠네요.’
메이드로서 아카데미 학생을 적으로 삼는 일은 없어야 했건만, 베리엘의 머릿속에는 이미 사서들이 적이 된 상황이었다.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제1매점은 아카데미에서도 치외법권에 속하는 지역이에요.”
“네?”
“이상하죠? 하지만 베르샤 아카데미에는 이상한 곳이 많아요.”
그 말에 데이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에 처음 온 날, 명물이라고 본 것이 불타오르고 있는 마법관 건물일 정도였다.
“아카데미 이사장이 이상하게 부지를 확장하고, 투자한 결과죠.”
규모만 따지면 다른 수도의 아카데미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거대하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이상하게 꼬인 일들 또한 많았다.
“망할 이사장.”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 베리엘을 보며 데이지는 조금 놀란 상태였다.
아카데미 학생은 물론 모든 사용인에게도 존중을 표하는 그녀가 유독 이사장에게는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하루 이틀 된 감정은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 익숙한 느낌인데.’
잠시 고민하던 데이지는 곧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도련님을 보던 느낌…….’
아주 복잡한 그 감각을, 베리엘도 표출하고 있었다.
‘모르는 척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릴 때, 베리엘은 한숨을 내쉬고는 무언가를 꺼내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을 텐데, 제가 너무 붙잡았네요.”
그녀가 꺼낸 것은 매우 익숙한 유리병이었다.
효과 빠른, 피로 회복제.
레드불 상단에서 판매하는 주력 상품으로, 먼 상행길에 쌓인 상인들의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자체 회복 포션이 히트 상품이 된 케이스였다.
“감사합니다.”
온몸을 누르는 듯한 피로가 느껴졌기에, 데이지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피로 회복제를 받아 들었다.
“내일 학교도 가야 하시죠?”
“그렇죠.”
“나머지 일은 저와 학생회장이 처리하겠습니다. 데이지 님은 그만 들어가 쉬세요.”
“네.”
거절하기에는 몸이 너무 무겁다.
눈꺼풀이 자꾸만 감기는 게, 정말 한계인 상황.
지금 돕는다고 나서도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쉬자. 쉬는 것도 일이다.
“그럼.”
회로 회복제를 손에 들고 데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아카데미를 가로질러 기숙사에 도착했다.
“…….”
이대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그대로 뻗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감각이 데이지의 몸을 감쌌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의 방 문손잡이를 잡고 그대로 열어 버렸다.
“…….”
“어, 언니 왔어?”
“엄청 피곤해 보이네.”
그곳에는 매우 당황한 듯한 모습의 두 동생이 보였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친동생과 같은 이들.
“…….”
그렇기에 그녀는 두 사람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도련님은?”
“그, 그게…….”
“잠깐, 친구 좀 만나러 간다고.”
친구. 르윈이 그렇게 부를 만한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라일라 영애님?”
“아니…….”
“새 친구라던데…….”
그 말에 데이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침대 근처의 책상으로 향했다.
더 정확하게는, 책상 위에 있는 어항으로.
“…….”
늘 어항에 둥둥 떠다니던 맨드레이크가 안 보인다.
엘리가 없다.
즉, 르윈이 말한 새 친구는 이번 탐사와 연관된 이일 확률이 높다.
“…몰라.”
그것을 깨달은 데이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중얼거렸다.
“오늘은 그냥 쉴래.”
“누나?”
그리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르윈의 침대 위에 쓰러지고.
“어, 어?”
당황하는 두 동생을 내버려 둔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