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59)
59화 13. 인생 10회 차는 시험을 본다 (1)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고, 결국 시험 기간은 찾아오고 말았다.
“얘들아.”
데이지의 결의 어린 목소리에 예리엘과 하인스는 시선을 피했다.
“…….”
“…….”
“모든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아도 돼. 한 과목이라도 보충 수업을 듣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니까.”
목표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
고작 반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데이지는 드라이르프 가문의 저택이 그리웠다.
“알겠지?”
“응.”
“노력은 해 볼게.”
강력한 의지를 담은 데이지의 말에 예리엘과 하인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공부 좀 못할 수 있지, 건강하게만 자라면 되는 거 아니야?”
“도련님이 가장 어리신데요.”
“난 공부 잘하고 건강하기도 하잖아.”
“…….”
둘 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본인의 입으로 저런 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렇죠. 그럼 이번 시험은 지난번처럼 답이 밀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겠죠?”
지난 시험에 대한 일을 잊지 않았다는 데이지의 말에 르윈은 시선을 피했다.
“도련님?”
“노력은 해 볼게.”
“…이번에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이후의 일은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으득.
이를 갈며 노려보는 데이지의 모습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보충 수업을 할 생각은 없으니까.’
보충 수업이면 가문에서 활동하는 것보다도 움직임에 제한이 생긴다.
거기에 따분한 수업을 방학 때도 들어야 한다니, 이득이라고는 전혀 없는 일.
“알겠다니까.”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기대받는 건 싫은데.”
아홉 번의 인생을 대중의 기대 속에서 살아온 르윈이었다.
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 안에 자신의 행복은 없었다.
“그럼 기대는 안 할 테니까, 결과로 증명해 주세요.”
르윈이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하자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쉬며 요구 조건을 정정해 주었다.
“너희도.”
“걱정하지 마. 에리엘도, 하인스도 내가 가르쳐 줬으니까!”
각오를 다지는 듯한 데이지의 모습에 라일라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감사합니다, 영애님.”
비록 친구를 만들기 위한 스터디 모임이었다고 하지만, 라일라는 마음을 다해 모임에 참여한 학생들을 가르쳤다.
몇몇 이들은 공작가의 영애님이 부담스러워 도망치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라일라와의 접점을 기회로 여기고 꾸준하게 참석하였다.
“생각보다 잘 가르치기는 했지.”
그리고 그 결과는 르윈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효과가 있었다.
공작가의 영애님이 가르치는데, 대충 하다간 밉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짜로 라일라가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있던 것일까.
라일라가 가르친 인원들은 눈에 띌 만한 성과를 얻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리엘 빼고는.”
하지만 그런 라일라조차 예리엘의 포션 제조 실력을 고칠 수는 없었다.
“…….”
“…….”
르윈의 한마디에 라일라와 예리엘의 입이 다물어졌다.
라일라의 평범한 실력으로는 연금술의 새 분야를 열고 있는 예리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두 사람 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니, 미안.”
“포기하지 마!”
“난 가망이 없어.”
울먹이는 예리엘을 껴안으며 데이지는 그녀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얼핏 보면 훈훈한 모습이지만.
“그런데 왜 시선은 피해?”
르윈은 그 속에서 시선을 피하는 데이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착각입니다.”
“그런가?”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가 작게 이를 갈았다.
‘진짜 불안하나 보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데이지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몰렸다는 증거이기에, 르윈은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보충 수업 받는 사람이 있으면 안 돌아갈 거지만.’
혼자만 남겨 두고 다 가문으로 떠난다니, 그건 너무하지 않은가.
“강력한 악의가 느껴지는데, 기분 탓일까요?”
“기분 탓이겠지.”
감도 좋네.
날이 가면 갈수록 발전하는 데이지의 감각에 르윈은 짧게 혀를 찼다.
***
“시험 시작합니다.”
감독 교수의 말과 함께 곳곳에서 펜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시험은 중요한가.’
굳이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을 머릿속에 때려 박고,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넓고 넓은 이 세상에 배울 것이 얼마나 많은데.
실제로 경험해야 아는 것들이 세상에 널렸는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카데미 안에서 책으로만 배우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한 일인가!
라고 묻는다면, 르윈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중요한 일이지.’
대부분의 수업을 싫어하는 르윈이지만, 수업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긍정한다.
그저 인생 10회 차를 경험하며 다 배운 것이기에 싫을 뿐.
‘아카데미의 역사가 얼마인데.’
역사와 전통이 짧은 베르샤 아카데미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시스템은 천 년은 가볍게 넘는 시스템이다.
교육으로 인류를 발전시키고, 미래를 대비한다.
‘마왕을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카데미의 시발점이니까.’
르윈의 1회 차 시절 이전에도 마족은 존재했고, 인류와 마족은 대립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서로의 영역을 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몇몇 지역에서 소규모 전투가 일어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마왕이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생겨난 이후 마족은 대대적으로 침공을 시도했고, 그로 인하여 위기를 느낀 인류는 마족과의 국경 지대에 대한 수비를 보강하고 동시에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내가 없었으면 망할 뻔했으니까.’
용사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경험한 마왕은 인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렇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제2의 용사를 찾길 원했고, 많은 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아카데미 시스템을 만들었다.
‘내가 평민인 탓도 있었겠지만.’
인생 1회 차 시절, 르윈은 평민 고아였다.
빛의 교단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키워진 어린 소년이 창조의 여신의 선택을 받아 인류를 수호하는 용사가 되었다!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용사 이야기 중 하나이자, 인생 9회 차 시절의 데르덴과 더불어 최강의 용사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사실, 실력으로만 따지면 가장 약했던 시기였는데.’
그 당시에는 마왕 역시 최약체였기에, 둘이 목숨을 건 일기토를 벌였고 결국 동귀어진했다.
그러나 현재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데르덴의 등장 이전까지는 홀로 마왕을 쓰러트린 유일한 용사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로 인하여 아카데미 시스템은 신분이 아닌 재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노력을 해야 하고.’
천재적인 마법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법을 배우지 못하면 재능을 썩힐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기초 교육 기간에는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가르쳤고, 중등 교육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하여 심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문제는 좋은 의도와 달리, 공부하려는 애들이 없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벽에 막히고, 그 벽을 넘고, 다시 배우고.
그것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는 변태는 거의 없었고,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이 시험이라는 제도라고 르윈은 생각했다.
‘그래야 벼락치기라도 하니까.’
학습한 결과물을 증명한다는 것은 그날까지 배워야 하는 것을 완벽하게 습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놓고 등수를 매겨 사람들 앞에 공개한다.
이것이 너의 위치다. 너의 점수는 이거다!
비록 평민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이 귀족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귀족 사회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열심히 하는 거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실력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그뿐인가?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성공하고,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은 이름 없이 사라진다.
가문을 이어야 하는 후계자들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시험이 곧 미래.
‘잘 만들었어.’
시험이라는 평가 덕분에 학생들은 눈물을 머금고 노력을 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최소한의 필수 교육을 배우게 되고, 그중에서 원석을 뽑아내야 제국은 인재를 키워 낼 수 있다.
“시험 종료입니다. 모두 펜을 내려놓으세요.”
물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한숨과 탄성.
1등이 존재하면, 꼴등도 존재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
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에서는 그만큼 피해자도 존재하게 된다.
“망한 것 같아.”
“응?”
하지만 피해자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라일라의 중얼거림에 르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밀려 쓰기라도 했어?”
“아니. 28번 문제 있잖아. 그거 답을 잘못 쓴 거 같아.”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라일라의 모습에 반쯤 영혼이 나가 있던 하인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혹시 한 문제 틀렸다고 망한 것 같다고 한 건…….”
“맞는데?”
정말 큰일이지 않느냐는 라일라의 표정을 본 하인스는 그대로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난 죽어야겠네.”
“나도.”
쿵! 소리와 함께 예리엘 역시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두 사람 모두 성적이 낮은 것은 아니나,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라일라가 한 문제 가지고 망했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니 충격이 올 수밖에 없었다.
“르윈은 어때?”
“나? 적당히 잘 봤지.”
“정말인가요?”
당신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 확신을 가진 듯한 데이지의 모습에 르윈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중간은 갈걸?”
“…….”
이번에도 지난 시험과 비슷할 거라는 르윈의 장담에 데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요. 그래도 보충 수업을 받을 점수는 아닐 테니.”
이전이라면 화를 낼 부분이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데이지였다.
“나보다는 애들 걱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오후부터는 실습 시험이잖아.”
“그렇지. 오늘은 연금술인가?”
오후 시험을 떠올린 라일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예리엘에게로 향했다.
“진짜 죽을까.”
“그럴 필요는 없지.”
“맞아. 그냥 이 세상의 연금술이 너를 따라가지 못할 뿐이니까.”
“도련님, 그거 전혀 위로가 안 되는데요?”
“나도 위로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구나.”
화낼 힘도 없다는 듯 흐느적거리는 예리엘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라일라는 자신의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예리엘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잖아. 지금부터 노력하면 돼!”
‘빠르게 배우는 연금술’이라는 책을 펴고 예상 실험을 설명하는 라일라의 모습에 예리엘은 감동했다.
“라일라 영애님…….”
남의 시종에게 이렇게 잘해 주다니.
이 모습을 보고 악덕 주인이 조금은 배웠으면 싶어 예리엘은 르윈을 바라보았지만.
“라일라, 이 세상에는 불가능한 일이 존재한단다.”
시선이 마주친 주인은 차가운 현실을 말할 뿐이었다.
“아니!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있을 리가 없어!”
“그랬다면, 너도 친구가 많았겠지.”
“흑!”
“영애님!”
불의의 일격을 맞고 쓰러진 라일라를 예리엘이 다급히 붙잡았다.
“괜찮아요. 저희 친구잖아요. 이번에 스터디 모임을 하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잖아요!”
“미안해. 이 세상엔 안 되는 게 있는 모양이야.”
“영애님!”
눈물을 흘리며 쓰러지는 라일라를 붙잡고 예리엘은 오열했다.
“하지만 예리엘은 할 수 있어. 나는 불가능하지만…….”
“영애님도 가능해요!”
“아주 잘들 논다.”
팝콘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극이었지만, 아쉽게도 다음 시험 교수가 들어왔기에 빠르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