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64)
64화 14. 인생 10회 차는 집에 간다 (2)
마차 바퀴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르윈은 중얼거렸다.
“왜 아무 일도 없을까.”
“그게 정상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안전할 리가 없을 텐데.”
“도련님이 생각하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입니까?”
어떤 세상이긴.
인류가 믿는 최고신이라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마족이라는 것들은 쿨 타임이 되면 뛰쳐나와 난리를 치며, 그걸 수습하기 위해 아홉 번이나 고생을 한 인간을 또 부려 먹으려 하는 위험한 세상이었다.
“아주 안 좋은 세상?”
“아쉽게도, 이 세상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세상입니다.”
불우한 가정사를 지닌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까 르윈은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남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데이지 앞에서 ‘근데 너희 집 왜 망했는데?’ 같은 소리를 할 정도로 눈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건 좀 선 넘지.’
조금이 아니라 많이 선 넘는다.
거기에 데이지 역시 그런 지적을 생각했는지, 좋은 세상이 아니라 그리 나쁘지 않은 세상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런가?”
아무리 르윈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산적이 튀어나온다든가.”
“이 길은 백작가에서 관리하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산적이 튀어나오면 이곳 영주가 가만히 있을까요?”
“강도는 나올 수 있잖아.”
“가문에서 보낸 호위들을 쓰러트릴 정도면 강도로 살지는 않을 겁니다.”
“드라이르프 가문을 적대하는 세력이 보낸 암살자는?”
“드라이르프를 적대하는 가문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제국에 드라이르프와 라인하르트를 동시에 적으로 돌릴 가문이 있을까요?”
데이지가 마차 창문을 열자 반대편에 나란히 가고 있는 마차 하나가 르윈의 시선에 닿았다.
“왜 따라와서는.”
“영애님이 들으시면 화냅니다.”
방학에 당연히 가문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던 라일라는 라인하르트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드라이르프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이유 또한 신선했다.
“맞선 정도는 괜찮잖아?”
맞선.
역시 귀족이라는 것일까?
고작 열 살인데, 맞선 준비가 한창이라니.
“가문이 가문이니까요.”
“우리 가문은 안 하던데.”
“해 달라고 한다면 가주님께서 하루에 수십 번도 할 수 있게 해 주실 겁니다.”
“그건 좀…….”
하루에 수십 번의 맞선이라니.
인생 10회 차 주제에 결혼 한 번 못한 르윈에게는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난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어.”
인생 7회 차 시절의 아픔을 아직 잊지 못한 르윈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말이 인생 7회 차 시절이지, 진실을 알게 된 건 지난 회 차였기에 잊기도 어려웠다.
“라일라 영애님도 그러시겠죠.”
“그런가?”
“라인하르트 가주님 또한 마찬가지고요.”
“딸 바보 아저씨…….”
아내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맞선을 막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딸아이와의 이별을 선택한 라인하르트의 가주였다.
아버지의 허락도 받았겠다, 친구들도 있겠다.
라일라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드라이르프 가문행을 선택했을 텐데.
“그런데도 마차를 선택하다니.”
입학 때처럼 짐도 없겠다, 그냥 마탑의 포탈을 사용하면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르윈의 고집으로 이번에도 마차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이 로망을 모르다니.”
“산적이나 도적을 찾는 로망은 몰라도 좋습니다.”
솔직히 르윈 역시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벌어지면 그것대로 문제고.’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륙에서, 제국의 칭호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도적들이 자주 출몰한다?
‘망조지.’
어느 나라나 도적들의 처벌은 사형이었다.
그렇기에 도적들은 쉽게 생겨나지 않는다.
이미 범죄를 저질러 버려서 돌아갈 수 없는 자, 혹은 잃을 게 목숨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이나 도적이 된다.
‘그런 일들은 많지 않지.’
천재지변으로 인한 흉작으로 굶어 죽을 위기라든가, 영주의 가혹한 수탈 같은 일들.
흔히 나라가 망할 징조들이 보이지 않는 한, 도적은 쉽게 보이지 않는 희귀종들이었다.
“뭐, 그래도 여행을 하는데 사건 하나쯤은 일어날 수 있잖아?”
“절대 없습니다!”
데이지의 단호한 말에 르윈도 내심 동의를 했다.
그렇기에.
“응?”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에 르윈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사건은 여행의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에서 발생했다.
인근 자작령에 포함된 작은 마을.
행상인들이 잠시 쉬기 위해 멈추는 곳으로, 나름 숙박 시설이 괜찮다는 이야기에 하룻밤 자기 위해 도착한 곳이었다.
“오늘은 노숙이 아니네!”
그 소식에 라일라는 들뜬 목소리로 마차 문을 박차고 나왔다.
“마차에서 자는 건 이제 질렸어!”
아무리 고급 마차라고 하더라도 마차는 마차일 뿐이다.
이동 수단으로 만들어졌지, 숙박 시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으으, 뻐근해.”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에 데이지가 조용히 라일라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고생하십니다.”
“진짜 누가 보면 내 시종이 아니라 라일라 시종인 줄 알겠다.”
“줄 거야?”
“안 줘.”
호시탐탐 자신의 시종들을 노리는 라일라의 마수에 르윈이 라일라를 노려보는 그때.
“도련님.”
일행의 호위를 담당하는 기사 알폰스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르윈을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그게.”
묵묵한 성격인 그가 먼저 말을 걸 정도면 그가 처리하지 못하는 곤란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르윈은 라일라 등을 내버려 두고 알폰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알폰스의 말을 요약하자면 마을에 수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고, 마을의 병사들이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지만 오히려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곳 영주는 뭐 하는데?”
“영주가 파견한 기사와 병사들도 있었다는데, 마을 병사와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래?”
마을의 병사와 영주의 병사는 그 질이 다르다.
이런 마을의 병사들은 자경단 성격이 강하지만, 영주의 병사들은 유사시 정규군으로 편성되는 이들이었다.
심지어 한 명이라고 하지만 기사도 동행했는데, 사건을 해결하기는커녕 당하기만 하다니.
“수상한 일이네.”
“매우 수상합니다.”
본래라면 알폰스도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었겠으나, 이번 일정의 목적은 르윈과 라일라를 호위하는 일.
가문의 도련님과 라인하르트의 영애를 모시는 중이었다.
지금은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지만 너무나도 간절한 마을 사람들의 부탁에 일행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르윈을 부르게 된 것이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혹시라도 마을 사람들의 부탁에 무리할 수도 있다.
아무리 드라이르프라고 하더라도 이제 고작 열 살.
알폰스로서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걸 거절한다고?’
그렇게 바라던 사건을 만난 르윈으로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사건일까.’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수상한 사건이라니.
무료한 일상 속 자극은 르윈의 흥미를 동하게 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고.”
인생 10회 차로서 조용한 인생을 살고자 했으나, 인생 9회 차를 용사로 살아온 르윈에게는 평범한 일상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찾아온 일상의 소소한 자극(?)을 그냥 넘길 생각은 없었다.
“여깁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알폰스는 마을 이장이 사는 곳으로 르윈을 데려왔고, 그곳의 이장은 르윈을 만나자마자 울면서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선즙필승.
일단 먼저 울면 이긴다!
수염이 하얀 노인이 다짜고짜 울면서 엎드리니 르윈조차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마을 이장인가?’
작은 마을이라고 하지만 그곳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자다.
중앙의 귀족과는 다른 종류지만, 작은 마을에만 존재하는 정치력!
“아직 일을 받겠다고는 안 했는데?”
“네?”
하지만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기에 르윈은 평소와 다른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걸 몇 번을 겪는데.’
‘용사님, 감사합니다!’
아직 일을 수락하지도 않았는데 일단 감사부터 박는다든가.
‘어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리한 부탁이잖아.’
‘용사님이신데?’
‘그런가?’
은근슬쩍 용사라는 타이틀이면 당연한 일이라고 압박을 하거나.
‘용사님이라면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용사님, 만세!’
그래서 일을 다 해결해 주면 ‘용사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입을 싹 닦는다거나.
‘내가 몇 번을 당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당해 줄 생각이었으나, 용사 시절의 호구처럼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그럼.”
“이야기는 들어 봐야지.”
싸늘한 그 한마디에 이장은 떠올릴 수 있었다.
‘드라이르프.’
이제 겨우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지만, 눈앞에 있는 아이의 성은 드라이르프였다.
흐르는 피가 달랐다.
그러니 어설픈 수작으로는 오히려 목만 달아날 수 있다.
“그게…….”
그렇기에 이장은 어설픈 연기를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였다.
“처음에는 마을 외곽의 묘지에서 묘한 인기척이 느껴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묘지? 어떤 묘지인데?”
“매장하는 형태입니다.”
“아직도 그런 곳이 남아 있네.”
신기하다는 듯한 르윈의 말에 이장은 말을 덧붙였다.
“모든 이들을 매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대로 이곳에서 태어난 이들 중 이름을 남긴 이들을 기리는 곳입니다.”
평민들에게 땅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한 평의 땅이라도 더 농사를 짓는 것이 그들에게 이득이 되었고, 농사를 짓기 적합하지 않은 땅이라고 하더라도 가축을 키울 수는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화장하여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흑마법사 이후에 사장된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인생 2회 차 시절, 흑마법사들로 대륙이 흔들린 이후부터는 더욱더 화장이 권장되었다.
“근처에 죽음의 신전이 있나 보네.”
“네, 맞습니다.”
물론 예외인 경우가 존재하긴 했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죽음의 신전이 있는 곳이었다.
“신전에서는?”
이름만 듣는다면 마신을 모시는 신으로 들리겠지만, 창조의 반대는 죽음이었다.
그렇기에 죽음의 신은 창조의 여신을 따르는 하위 신이었고, 죽은 전사들의 영혼을 데려가 신의 군대를 양성한다는 기원을 가진 신이 되었다.
그렇기에 죽음의 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모두 뛰어난 전사이며, 여러 신전의 성기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전투력을 가졌다.
‘이런 영지의 기사보다도 전투력이 좋을 텐데.’
죽음 이후, 신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다.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들의 선에서 해결이 되었을 터.
“그게…….”
그러나 말꼬리를 늘리는 이장의 말에 르윈은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당했어?”
“어제 오셨는데,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결과였습니다.”
죽음의 사제들은 그냥 기사급 전투력에 신성력까지 갖고 있다.
웬만한 저주나 독에는 내성을 가지고 있을 이들마저 쓰러졌다니.
‘심상치 않은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원인에 르윈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그걸까. 그 새끼들을 여기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죽음의 사제들까지 쓰러질 이유가 그것 말고 더 있을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르윈은 이장에게 말했다.
“일단 가 보지.”
“네?”
“묘지로 가서 확인해 보자고.”
“가, 감사합니다!”
일단 가서 확인해 보자.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는다고 한다면.
‘죽여야지.’
용사로서 일할 생각은 없지만, 예외는 있는 법.
오랜만에 일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르윈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