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7)
7화 2. 인생 10회 차는 인생을 즐길 준비를 한다 (3)
노예의 아침은 생각보다 느리게 시작한다.
물론 이건 모든 노예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노예는 매우 이른 시간부터 움직여야 했으니까.
“하암.”
그 소수의 예외 중 한 명.
노예 데이지는 해가 중천에 뜬 이후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시끄럽네.”
밖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아침.
호기심이 동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데려와!”
“최대한 얇은 옷으로 입혀. 최대한 몸매가 드러날 수 있게!”
“그동안 너희가 단련한 근육을 믿어라! 드라이르프 공작가다, 드라이르프! 네놈들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하더라도 드라이르프 공작가 정도는 들어 봤겠지!”
“기사다! 기사가 될 수 있는, 인생 역전의 기회다!”
시끄러운 외침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기사단인가?”
그렇다면 시끄러울 만하다.
심지어 그 기사단이 드라이르프 공작가라면 말 다 했다.
“나하고는 관계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시끄럽겠네.
벨테시스 노예 시장에서 생활한 지 3년.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벨테시스 노예 시장에 팔려 온 소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드라이르프 공작가.”
그 이름을 곱씹으며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그 이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녀 역시 한때 귀족이었다.
정치 싸움에서 패배하고, 지금은 그 이름이 지워졌을 뿐.
“하.”
흑단처럼 고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은 마족의 혈통이라는 증거다.’
지금도 악몽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퍼지고 얼마 후, 그녀의 가문은 적대 귀족과 그들에게 매수된 신전의 신관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매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마족으로 몰아가는 이들이 신을 모시는 신관이라는 사실이.
그런 이들의 말을 철저하게 믿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는 몰락했고, 결국 노예로 팔렸을 뿐이다.
“거기에 팔린다면 복수할 수 있을까?”
늙고 추레한 귀족의 몸종으로 팔리더라도, 그를 유혹해서 가문의 복수를 하고 말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를 악물고 타오르는 독기를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어렸다.
잊을 수 없는 상처는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 있지만 1년, 또 1년이 지날수록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 없겠지.”
노예는 상품이다.
각자의 역할에 맞게 키워지고, 그 역할을 원하는 고객에게 팔린다.
그중 자신의 역할은 장식이었다.
남들에게 자랑할 장식품.
“하.”
오직 외모 하나만으로 역할을 인정받았다.
그렇기에 외모에 해가 되는 행동은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물론 나쁘지는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숙면할 것.
매일 피부에 좋은 과일과 음식을 먹을 것.
체중 관리를 위해 매일 적당량의 운동을 할 것.
노예라고 생각할 수 없는 편안한 일상이었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삶은 가축이나 다름없다.
돼지의 살을 찌워서 더 비싼 값으로 팔려는 것처럼, 자신 또한 외모를 가꿔서 더 비싼 가격으로 팔려고 할 뿐이었다.
“인생, 참 고달프다.”
열한 살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데이지에게는 이미 익숙한 말이었다.
그때였다.
밖이 조금 더 소란스러워진 것은.
가볍지만 빠른 발걸음.
이곳에서 저렇게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리엘, 하인스, 내가 뛰지 말라고 몇 번이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는 고운 아미를 찡그린 채 한 소리를 내뱉었다.
“무슨 일이시죠?”
거칠게 열린 방문 너머에는 그녀가 예상했던 두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인물은 그녀가 예상하지 않았던 이였으니.
바르란.
이 상단의 주인이자, 자신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
그가 저런 말을 내뱉을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너희를 보자는 고객님이 계신다.”
결국, 그날이 오고 말았구나.
언젠가 찾아올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오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노예의 삶이란 그런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여태까지 노예치고는 편안한 삶을 살았던 이유는 오늘을 위해서였으니까.
‘어떤 사람일까.’
그런데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생기는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최고의 선택은 귀족가의 시종으로 팔려 가는 거고, 최악은 변태적인 성향을 지닌 귀족의 장난감이 되는 거겠지.
노예를 파는 곳에서 3년간 살면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녀는 최악의 선택지만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기도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자 헛웃음이 나왔다.
창조의 여신을 모신다는 이들에게, 마족의 피가 흐르는 더러운 변절자라 들은 자신이 기도라니.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하기 싫은 일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자,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르란의 뒷모습.
그리고 그들을 따라가는 자신.
겁먹은 표정의 두 아이.
“괜찮아.”
조금 전까지 자신 또한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는다.
그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두 아이의 손을 붙잡을 뿐.
“걱정하지 마.”
손안에 느껴지는 온기에 정신을 차린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바르란의 뒷걸음만을 따라가던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가 있잖아.”
예리엘, 그리고 하인스.
자신처럼 귀족은 아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장식품으로서 소중하게 키워지던 아이들이었다.
“괜찮을 거야.”
손이 떨려 온다.
이 떨림의 주인은 이 아이들일까, 나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손님이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그 말만을 하고는 바르란은 닫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린애?’
기사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몇, 늙은 집사가 하나, 그런 이들 한가운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합격.”
호수처럼 맑은 푸른 눈이 곱게 휘며 만족스러운 듯이 웃음을 짓는다.
“도련님?”
그에 당황한 듯한 집사와 단체로 마른세수를 하는 기사들의 모습까지.
“어…….”
전혀 상황 파악을 할 수 없는 광경에 데이지는 작은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저 정도면 자신이 있을 만하지.’
잘났다.
르윈이 봐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아이들이었다.
“좋아.”
좋다. 매우 좋다.
특히 어리둥절한 두 아이 사이에 있는 검은 머리의 아이.
단순하게 외모만 잘난 것이 아니라 기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저런 건 타고나는 거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분위기.
르윈은 그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자체를 말하는 것이기에.
그런 의미로, 눈앞의 아이는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어둡고, 무겁고, 칙칙하고!’
나 특별한 사연이 있어요.
그런 느낌을 온몸으로 내뿜다니!
그런 사람들을 르윈은 제법 많이 보았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르윈의 경험상 그런 이들은 크게 두 종류의 인생을 살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죽거나.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 세계에 이름을 떨치거나.
“합격.”
자신을 만난 순간부터 저 아이의 인생은 한 가지의 선택지만을 가지게 되었다고 르윈은 자신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쪽 분야는 전문이지.’
인생 9회 차를 용사로 살아온 나보다 기구한 운명은 없을 테니까.
이 세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마족들 다 때려잡고, 같은 인류를 배신하는 배신자들 다 처리하고.
목숨을 바쳐 마왕이니 대마왕이니 하는 놈들과 동귀어진해 온 인생이 아홉 번이었다.
이런 종류의 선배로서, 대부분의 사연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능력이 된다고 르윈은 자부할 수 있었다.
‘아, 슬프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르윈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자 우울함이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모두 지나간 일.
앞으로는 빛나지 않는, 평범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얼마면 돼?”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툭 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도련님, 제발…….”
“허어, 허어…….”
“가주님…….”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오지만, 르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빼지 말고, 뒤통수 후려칠 생각도 하지 말고.”
르윈의 말에 바르란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들의 가치는 아직 낮다.
아무리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들이라고 할지라도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일 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오르는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
‘하물며 그 가치가 외모라면 말 다 했지.’
노예의 재능 중 외모는 가장 하위에 속하는 재능이다.
경국지색,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의 외모가 아닌 이상이라면.
‘저 아이는 가능하지.’
하지만 데이지라면 미래에 경국지색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외모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바르란은 막대한 금액을 주고, 데이지를 팔지 않으려고 하던 귀족들을 설득한 끝에 얻어 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럼.”
하지만 상대는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이었다.
그런 곳을 상대로 미래의 기대치라는 이유로 값을 후려칠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그는 적당하다 싶은 가격을 불렀고,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
“도련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셨습니다.”
“사 줘.”
“도련님…….”
“사 줘!”
그 당당한 목소리에 알렉스는 주머니를 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빨리 끝내자.’
괜한 소문이 나기 전에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리저리 르윈에게 휘둘리던 알렉스는 생각을 고쳤다.
이해할 수 없지만, 생각이 많은 도련님이었다.
눈앞의 아이들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사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걸 이용한다.’
눈앞의 세 아이를 잘 가르쳐 르윈에 대한 억제력으로 삼는다.
‘내가 막을 수 없다면, 남이 막게 만들면 될 뿐!’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다 좋게 되는 것이리라.
“…….”
“…….”
“…….”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데이지를 비롯한 세 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이미 그들의 운명은 결정이 된 이후였다.
***
달그락거리는 마차의 소음.
그것을 들으며 마차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데이지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마주친 푸른 눈동자에 바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팔렸다.
그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그것도.
‘드라이르프 공작가에 팔렸다고?’
드라이르프 공작가에 팔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데이지였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늘 복수를 생각했지만, 막상 드라이르프 공작가에 팔렸다고 생각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올려 최대한 영향력을 얻으려고 한 그녀였지만, 상대가 드라이르프 공작 가문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현 대륙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영향력만 따진다면 그곳의 왕족들보다도 강해.’
그곳, 자신이 노예가 되기 전까지 섬기던 나라이자 지금은 복수의 대상이 된 나라.
그 나라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가능할까?’
욕망이 가득한 귀족에게 애첩으로 팔려 나갔다 하더라도 이렇게 암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힘없는 귀족의 시종으로 팔려 갔더라도 지금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저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게?’
정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복수.
반쯤 포기했다고 생각한 것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오자 포기하기 싫어졌다.
그렇기에 저 사람의 입에서.
“원하는 게 있어? 있으면 다 들어줄 테니까.”
라는 말이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
순간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은 데이지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말해 봐.”
다 알고 있다는 듯,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한 그 목소리에 데이지는 자신의 입이 열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