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71)
71화 16. 인생 10회 차는 맞선을 본다 (1)
사건의 시작은 평소와 같은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맞선이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한 단어에 르윈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제가 지금 들은 게 맞나요.
그렇게 주장하는 모습이었다.
“슬슬, 할 때가 되었지.”
하지만 아버지인 라이하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옆에 있는 어머니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라. 네가 싫다면, 거절하면 그만이니.”
“네 누나도 전부 거절했단다.”
그 숫자가 벌써 서른이 넘는다는 말에 르윈은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동생에게는 늘 따뜻한 누나였는데, 사실은 남자들을 울리고 다니는 차가운 도시 영애님이었을 줄이야!
‘나도 똑같겠지만.’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기억이 아직 아른거린다.
그 나쁜 년을 잊고 보란 듯이 연애질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직 좀 그렇지.’
마음에 남은 상처가 아직 쓰라렸다.
인생 10회 차.
하지만 연애 경험은 얼마 없었기에 이런 상처는 쉽게 치료되지 않았다.
“응?”
그렇게 남은 방학 동안 누나를 본받아 차가운 도시 귀족이 되리라 마음먹은 르윈이었지만.
‘잠깐만.’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나만 거절한 거면, 형들은요?”
르윈의 형제는 누나인 르나인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문을 이어받을 장남 라테일과 차남인 라그일도 존재했다.
누나가 맞선을 봤고, 자신이 맞선을 볼 예정이라면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장남과 차남도 맞선을 봤을 터!
“형들은 다 약혼자가 있다.”
“몰랐니?”
부모님의 말에 르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몰랐다.
그렇기에 조금 충격이었다.
매번 자신에게 애정을 갈구하던 형들이, 사실은 애인이 존재했다니!
‘배신자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에 이미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애인이 존재했었다.
집에서는 자신에게 애정을 갈구했으나, 밖에서는 애인과 애정을 나누었겠지!
‘역시 누나가 최고야.’
앞으로 형이 좋냐, 누나가 좋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누나다.
절대 자신의 솔로 기간이 인생 회 차 단위라서 그런 건 아니다.
매번 입으로 사랑을 내뱉었던 형들이, 형수님을 소개해 주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다.
‘아마도.’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는 르윈의 모습에 드라이르프 부부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르윈이도 마음을 다잡은 것 같으니, 슬슬 준비하죠.”
“아카데미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질 수도 있지만요.”
우리처럼요.
작게 속삭이며 웃는 어머니의 모습에 살짝 얼굴을 붉히는 아버지를 보며 르윈은 생각했다.
‘이러니 동생이 생기지.’
앞으로 동생 둘 정도는 더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르윈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뭐…….”
방학 기간, 맞선 한두 번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었다.
***
“아, 그 아이가 마음에 드는구나.”
미치셨어요?
르윈은 툭 튀어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참아 내며, 손에 들린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
응애.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다.
그만큼 초상화의 아이는 어렸다.
어려도 너무 어렸다.
“너와 딱 7살 차이구나.”
르윈 디 드라이르프.
현재 나이 열 살.
즉, 초상화의 아이는 이제 3세이거나 17세라는 의미였다.
“아버지?”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번 경우는 전자였다.
17세도 할 말이 많지만, 3세는 인간적으로 좀 아니었다.
심지어 인생 1회 차에게도 아닌 걸 인생 10회 차에게 권유하고 있었다.
“흠.”
아주 많은 말을 함축한 르윈의 부름에 제국의 기둥 중 하나라 불리는 철혈의 공작, 라이하르 디 드라이르프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르페우스 백작가. 신진 가문 중 성장세가 제법 좋은 가문이지. 백작 부부의 외모가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하지.”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뱉을 말은 아니었다.
‘제국 호사가들은 다 장님인가?’
아니면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나, 철혈이라는 표현이 바뀌었던가.
“…….”
거칠게 떨리는 시선으로 르윈은 조용히 초상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를 꺼내 들고는.
“아버지…….”
이제는 손까지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오! 역시 우리 아들, 보는 눈이 있구나. 그 아이는 알페이르 자작가의 차녀로 현재 사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녀 중 한 명이다.”
보는 눈이 있다는 말에 르윈은 할 말을 잃었다.
“…….”
르윈은 초상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말처럼 초상화에 그려진 여인은 미녀가 맞았다.
“나랑 너무 다른데.”
미녀가 맞았다. 그것도 아주 성숙한 미녀.
“나이가 열셋 정도 차이가 나니 어쩔 수는 없지.”
아버지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스물셋이라면 좀 많이 다를 수 있지.
“연상을 좋아할 수 있기에 폭 넓게 준비했다.”
아들의 취향이 연상일 수도 있으니 준비했다는 아버지의 말에 르윈은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누가 이 인간을 철혈(鐵血)이래?’
제국의 호사가들은 드라이르프 가문의 정보 조작에 당한 게 분명했다.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간이, 자기 아들의 취향을 존중한다며 세 살과 스물세 살을 맞선 상대로 준비해 온다?
기본 상식이 인류와 정반대인 마족들조차 개소리라고 무시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이 아이는 어떠냐. 이 아이의 경우 너보다 다섯 살이 많지만, 이쪽에서 상당히 유명한 아이란다.”
“…뭐가요?”
이쪽이 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던 르윈은 조금 돌려 말했다.
“어머니는 물론, 자매들까지 미인인 것으로 유명하지.”
하지만 라이하르는 그런 르윈의 생각을 모르는지, 직설적으로 유명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렇구나…….”
한마디로 유전자가 기대된다는 말에 르윈은 입을 다물었다.
‘근엄하게 주접을 떨 수 있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 둘을 완벽하게 조합시킨 아버지의 모습에 르윈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아버지.”
“마음에 드는 아이를 드디어 선택한 것이냐?”
아버지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상처가 남았다고 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안고 갈 생각은 아니다.
이번 생의 버킷 리스트에 결혼이라는 단어는 분명하게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아니었다.
“…….”
르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선 한두 번 정도는 괜찮겠지.
야생보다 더 거친 귀족의 세계에서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한 내 잘못이다.
그렇게 생각한 르윈은 입술을 꾹 다물고 초상화들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이건 좀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탁. 탁. 탁.
초상화가 그려진 두꺼운 종이들이 넘어가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적막한 침묵 속, 르윈은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과 하단에 적힌 정보들을 열심히 확인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건 진짜 아닌데?’
정말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또 제외한다.
그래도 초상화가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진심이잖아!’
너의 취향을 몰라서 전부 준비를 해 봤단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아버지의 진심이 초상화에 가득 담겨 있었다.
‘미쳤어.’
알 수 없는 공포마저 느끼며 르윈은 최대한 자신의 또래를 골라내었다.
“이, 이 정도요?”
고르고 골랐지만 아직 수북이 쌓여 있는 초상화들을 보며 르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흠.”
그런 르윈의 표정을 보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나쁘지 않구나.”
“…….”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라이하르의 모습에 르윈은 생각했다.
‘사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드라이르프 가문에 태어났을 때, 르윈은 그래도 여신에게 마지막 양심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드라이르프 가문은 인생을 즐기기에 최고의 조건을 가진 곳이었고, 거기에 가족들 또한 르윈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었던 것이다.
‘망할 여신이 멀쩡한 집안에 날 살려 놓았을 리가 없지.’
애정이 너무 무겁다.
그동안 평범한 집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곤란하게 할 줄이야.
“그, 그런가요?”
입꼬리를 부르르 떠는 르윈을 향해 라이하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하며 초상화를 챙겼다.
“나머지는 이 아비가 다 알아서 하겠다.”
하지 마세요.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았기에 르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히히.”
평소라면 르윈이 뒹굴고 있을 침대 위.
라일라는 그곳에서 배를 붙잡고 굴러다니고 있었다.
“잘됐다. 나한테 맞선 본다고 그렇게 놀렸으면서!”
이게 다 업보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놀리는 라일라의 모습에 르윈은 차가운 눈으로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쟤 쫓아내.”
“안 됩니다.”
“주인의 명령인데!”
“영애님은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손님으로 체류 중이십니다.”
공작가의 주인은 가주.
그렇기에 아무리 르윈의 명령이라도 불가능하다는 말에 르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누구 시종인지.”
“필요 없으면 나 달라니까?”
르윈이 애용하는 베개를 품속에 껴안으며 라일라가 눈을 빛냈다.
“어림도 없지.”
“이번에 새로운 사람 데려왔다며? 한 명쯤은 괜찮잖아!”
“신입 줄까?”
“됐어. 어제도 방에서 마주쳤는데, 한참 쳐다보다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놀라더라.”
나 상처받았어.
그렇게 투덜거리는 라일라를 보며 르윈은 헛웃음을 지었다.
‘흑마법사가 귀신 보고 놀랄 리가.’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이들 중 하나가 흑마법사였다.
심지어 베아트리체는 뼈에 영혼이 담긴 오빠랑 함께 지내지 않는가?
‘아니, 그래서 더 놀랐나?’
그런 것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라일라가 더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익숙해지면 다를 수도.”
“악!”
라일라의 옆에 앉은 르윈이 그녀의 품에서 베개를 빼앗으며 말했다.
강제로 베개를 뺏긴 라일라가 눈을 부릅떴으나, 더 놀렸다가는 진짜 쫓겨날 수도 있기에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그래서, 맞선은 언제 봐?”
“왜, 구경하게?”
“당연하지! 그날은 예리엘이랑 하인스도 훈련 쉬라고 했다고.”
멀리서 다과를 즐기며 구경할 것이라는 말에 르윈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뭐냐, 그 말투는. 너도 구경하게?”
“당연하죠. 저희가 모실 안주인님이 정해질 수도 있는데 그걸 구경, 아니 지켜보는 게 당연하죠.”
대놓고 구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다가 아차 싶었는지 빠르게 말을 바꾸는 데이지였다.
그에 르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았지만, 데이지는 무시할 뿐이었다.
“하늘 같은 주인님을 구경거리로 삼는 시종들이 있다니.”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혼란하게 되어 버린 걸까.
그렇게 한탄하는 르윈을 보며 데이지는 고개를 저었다.
“다 자업자득입니다.”
평소에 자신들의 말을 반만 들어줬어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이지의 모습에 르윈은 깨달은 것이 있는 듯했다.
“그동안 쌓은 업보를 지금 받아들이는 거니까.”
“네, 그러니까 앞으로는…….”
말 좀 들어 달라.
그렇게 말하려던 데이지는 이어지는 르윈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업보 청산 다 했으니까, 앞으로 더 해도 되는 거지?”
“…….”
“대단하다.”
당당하게 업보 청산을 외치는 르윈의 모습에 라일라가 입을 벌린 채 손뼉을 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