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72)
72화 16. 인생 10회 차는 맞선을 본다 (2)
아무리 결혼한 경험이 없고, 연애한 경험도 적으며, 맞선 경험마저도 거의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나는 인생 10회 차니까.
아무리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인생 1회 차.
심지어 또래였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데.’
벌써 세 번째 맞선이었다.
큼지막한 눈망울은 맑았고, 살짝 달아오른 얼굴은 귀여웠으나, 역시나 연애 대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변태도 아니고.’
또래라는 말은 르윈과 같은 열 살 전후라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요절을 했다고 하더라도 인생 경험이 10회 차.
다 합치면 300년에 가까운 인생을 살았다.
아무리 미래가 기대된다고 하더라도 연애 대상으로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 있었는데.’
누나를 본받아 차가운 고위 귀족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맞선 상대를 냉정하게 차 버릴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 날씨가 좋네요.”
“그러네요.”
연애 상대로 절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어떻게든 말을 걸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집, 공작가였지.’
평소에 라일라나 시종들하고만 다녀서 예상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난 곳은 아카데미라는 특수한 환경이기에 더욱더 그랬다.
드라이르프.
황제를 제외하고는 제국 최고의 지위에 있는 가문 중 하나.
아카데미에서 그 신분을 이용하였기에 공작가라는 이름이 얼마나 큰지는 알고 있었지만.
‘아카데미하고 맞선은 다르겠지!’
아카데미에서는 그래도 ‘학생’이라는 신분이 존재한다.
나이보다는 신분이 우선인 귀족 사회와 달리, 아카데미에서는 학년에 따라 선후배가 나뉘었다.
거기에 같은 학년이라고 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똑같은 동급생으로 취급될 뿐이었다.
그저 공식적인 일일 뿐, 르윈이 받는 취급을 생각하면 지켜지지 않는 일들이었지만.
‘명분은 있지.’
같은 학년의 평민이 와서 반말하더라도, 아카데미의 규율을 생각하면 르윈은 그 평민을 탓하면 안 된다.
그리고 애초에 탓할 생각도 없다.
‘그런 재미있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
제정신인 이상,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을 건드리는 일은 아카데미에서도 없었다.
그렇기에 루테스 또한 르윈을 미친놈으로 보고 있던 것이니까.
‘하지만 여긴 아니지.’
아카데미의 사람들이 어색한 모습으로 말을 걸던 것이, 그나마 아카데미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귀족들의 사교 모임이었다면 어중간한 신분으로는 르윈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맞선 자리였다.
‘진짜 쓰레기 같네.’
인생 10회 차라는 것이 역으로 자신을 찔러 오고 있다.
덜덜 떠는 모습으로, 어떻게든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10살짜리를 잔인하게 찰 생각을 하다니.
‘그렇다고 받아 줄 수도 없고.’
인생 10회 차 중 노년은커녕 중년의 삶도 살지 못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총합 3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는데 10살짜리 아이와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되도록 성인, 못해도 아카데미 고등부 정도는 되어야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망했어.’
차라리 아버지가 권유했을 때 연상을 골랐어야 했나.
그랬다면 조금 이상한 소문이 돌 수는 있겠으나,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첫 맞선에서 울먹이며 헤어졌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아이의 결말 역시 비슷할 것이다.
그뿐인가? 자신에게 왔던 초상화의 숫자를 생각하면 아직 멀었다.
‘절반만 진행되어도 수십인데.’
앞으로 10대 초반의 애들 수십 명을 울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가문에서도 질타를 받을 것이다.
‘진짜 쓰레기인데?’
인생 10회 차 최초로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열받네.’
이런 주인의 심정도 모르고, 라일라와 함께 자신을 구경하는 데이지 등을 보니 분노가 점점 쌓여 갔다.
저 모습을 봐라.
최근 제국 수도에서 연극 등을 볼 때 유행하는 먹거리인 팝콘을 씹으며 구경하는 모습을!
‘다과 거리를 준비하고, 아주 제대로 즐기고 있네.’
르윈의 일생은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그것을 헤쳐 나가면 헤쳐 나갈수록 강해졌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르윈은 확신하고 있었다.
‘맞선만 끝나 봐라.’
더욱더 강해진 르윈 디 드라이르프가 되어 저 건방진 시종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한 행동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주인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르윈은 눈앞의 어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귀족 세계.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맞선 자리는 단순한 사교의 장이 아니야.’
서로가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 치열한 심리 싸움이 벌어지는 자리!
눈앞에서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저 아이의 모습도 다 심리전이라 생각하며 르윈은 입을 열었다.
“음.”
생각과 달리, 조심스럽게 입을 연 르윈은 상대가 최대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게 돌려서 말했다.
‘너 별로야.’
라고.
“흑…….”
그러나 상대는 귀족 영애.
르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다.
“아.”
르윈은 울먹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영애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당황하며 뒤쫓아 가는 소녀의 호위 기사의 모습은 덤이었다.
“도련님…….”
오늘도 한 명의 맞선 상대를 울면서 뛰쳐나가게 만든 르윈을 보며, 르윈의 집사인 알렉스가 울상을 지었다.
“차 맛이 좋네.”
“맹물입니다, 도련님…….”
그런 알렉스의 시선을 회피하며 찻잔을 들어 올렸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던 것 같았다.
“아닌 것 같을 때는 빨리 거절하는 게 좋은 거라고 누나가 그랬어.”
변명하듯 내뱉는 말에 알렉스가 한숨을 내쉬며 한 소리를 하려 했지만.
“…….”
자신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르윈의 모습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본인도 쓰레기 같다는 걸 알고는 있구나.’
평소 양심이 존재하나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작게 안도하며 알렉스는 다음 맞선 상대를 준비했다.
아직, 맞선 상대는 많았으니까.
***
“알렉스.”
“네, 도련님.”
“왜 맞선이 끝나지 않아?”
방학의 끝은 이제 눈앞에 보일 정도인데, 맞선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씩 진행되던 맞선이 하루에 두 번으로 늘어나더니, 정신을 차려 보니 오전에만 몇 차례가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련님이 아카데미로 돌아갈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아니, 그럼 그만해야지.”
시간이 안 되면 예약을 취소해야지, 시간이 안 되니 하루에 더 많은 맞선을 진행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누가 이렇게 일을 진행하는데?”
“마님이십니다.”
“…….”
일 더럽게 못하네.
그렇게 말하려던 르윈의 입이 저절로 닫혔다.
안 그래도 요즘 자신이 쓰레기 같다고 느끼고 있는데, 거기에 불 속성 효자 속성까지 추가할 생각은 없었다.
“어머니께서 아들의 연애 사정에 관심이 많으시네.”
“형님분들의 약혼자들도 직접 뽑으셨으니까요.”
형들의 상황은 정략결혼을 가장한 연애질이라는 것을 누나인 르나인에게 들은 르윈이었다.
그러니 어머니의 보는 눈은 인정할 만하겠지.
‘내가 못 받아들일 뿐이지만.’
여태까지 찼던 애들만 생각해도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면 전부 완벽했으니까.
“도련님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르윈뿐만 아니라 알렉스의 판단 역시 같았기에,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르윈의 생각을 확인하려 했다.
“음.”
내 정신 나이.
그렇게 대답은 할 수 없으니 르윈은 최대한 그럴듯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결혼이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하나로 묶이는 거잖아?”
“그렇죠.”
“맞선은 그런 결혼을 하기 위해 두 사람이 만나는 거고.”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는 알렉스의 모습에 르윈은 탁자에 깍지를 끼고 그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즉, 맞선이란 결혼하기 전 서로 모르고 있던 두 사람이 한 가족이 될지, 안 될지를 정하는 중요한 자리야.”
“…….”
열 살의 진지한 말에 기혼인 알렉스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신중하게 정해야지. 마음에 맞지도 않는데 괜히 여지를 줘 봐. 문제만 생기지 않겠어?”
평소와 다른 진지한 모습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철벽 공자…….”
“……?”
그리고 그 한마디에 르윈은 몸을 비틀거리며 쓰러질 뻔했다.
“무슨 공자?”
순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은 르윈은 자신이 들은 것이 헛것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드라이르프 공작가의 막내 도련님은 그 누구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마음의 장벽이 가히 철벽이니, 역시 철혈의 핏줄을 이어받았구나!”
연극의 내레이션과도 같은 알렉스의 말에 르윈은 자신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누가 그래?”
“제국 사교계에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입니다.”
드라이르프 공작가라면 사교계에서도 집중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제 열 살인 아이에게 별명이 붙다니!
르윈으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무섭다.’
훗날 사교계에 데뷔를 했을 때, 수많은 귀족이 ‘와, 철벽 공자다.’, ‘진짜? 저 사람이 그 유명한 철벽 공자야?’ 같은 소리를 내뱉을 것을 생각하며 르윈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소식이 라일라나 데이지 등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자신의 눈앞에서 굴러다니며 ‘철벼어어엌ㅋㅋㅋ’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알렉스.”
“네, 도련님.”
“맞선이 끝날 때까지는 라일라랑 데이지, 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
“맞선 기간, 친한 여자를 접근조차 못하게 하다니. 역시 철벽…….”
“알렉스까지 그러기야?”
알렉스조차 이런 반응이라면 다른 사람의 반응은 더할 것이다.
‘내가 크게 사고 쳐서라도 이 별명은 묻히게 만든다.’
옛 동료 중에 철벽이라는 별명을 가진 동료가 있었으나, 그 별명은 단신으로 수천의 마족을 막아 내고 얻은 명예로운 칭호였다.
그렇기에 그 칭호로 불러도 아무렇지도 않았지.
‘열 살짜리를 마구 걷어차서 얻은 철벽은 좀 아니잖아?’
인생 10회 차가 아니라 1회 차라고 하더라도 수치사할 칭호였다.
아직은 망나니가 아닌 착한 아이로 남고 싶었지만, 세상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었다.
“알렉스.”
“네, 도련님.”
“앞으로 남은 맞선이 몇 개야?”
“대충 스무 번쯤 됩니다.”
알렉스의 말에 르윈은 눈앞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짓을 스무 번이나 더.’
정신적으로 매우 안 좋다.
차이는 사람도 안 좋고, 차는 사람도 안 좋다.
세상은 왜 이런 불합리한 일을 벌이는 걸까.
이게 귀족 사회의 어둠이라는 건가.
“빨리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싶다.”
편안했던 아카데미 생활을 떠올리며, 르윈은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 이 짓도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그렇게 다시 시작된 맞선.
그리고 르윈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괴감만 쌓이네.’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자괴감이 배로 쌓이는 일도 있다는 것을 인생 10회 차에서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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