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74)
74화 16. 인생 10회 차는 맞선을 본다 (4)
라일라와 시종들이 멀리서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은 르윈도 알고 있었다.
덤으로 아티팩트를 이용하여 사생활을 도청하는 것까지도 이미 눈치를 챈 상태.
그러나 평소에 자신 때문에 고생하기에 모르는 척을 해 주었을 뿐이다.
나름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광대 짓을 해 주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다른 이들의 시야가 가려지는 위치에 도달한 르윈은 그동안 사용했던 가면을 벗었다.
“그냥, 궁금해서.”
르윈이 가면을 벗자 황녀 역시 가면을 벗었다.
“뭐가?”
“우리 잘난 오라버니에게 접근하는 공작가의 아들내미가 어떤 인간인지.”
르윈이 접근한 황족은 단 하나.
아카데미의 선배이자, 동아리의 선배이며, 망나니 선배이기도 한 루테스가 유일했다.
루테스에게 왜 접근했냐.
그렇게 묻는 황녀의 모습에 르윈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전부?”
“우리 쪽에서는 나름 신경이 쓰이는 일인데?”
황실에서는 순위권에서 퇴장한 황자에게 공작가가 붙어 다니는 것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르윈으로서는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신경을 써야 할까?”
“그래서 내가 신경을 쓰러 온 건데?”
“귀찮게?”
“귀찮게.”
서로 귀찮은 일이다.
그러니 서로 모르는 척을 하자.
그렇게 말하는 황녀를 보며 르윈은 생각했다.
‘그건 안 되지.’
루테스는 동아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줘야 한다.
그뿐인가?
그를 본받아 망나니로서 인생을 즐겨야 하기도 했다.
‘저걸 누구한테 배웠는지도 알아내야 하고.’
거기에 황녀가 사용하고 있는 숨쉬기 운동을 누구에게 배웠는지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저걸 다 가르칠 수 있으면, 편했을 텐데.’
말로 설명해서는 숨쉬기 운동을 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몇 번의 인생 동안 소수의 인원을 직접 관리하며 숨쉬기 운동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전수한 게 건방지기는 하지만.’
그걸 남에게 전수할 방법을 만들었다면 용서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용사를 때려치웠어도, 마왕이 나타날 수는 있으니까.’
그걸 강해진 인류가 해결해 준다면 르윈으로서는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조금 더 귀찮아야 할 것 같은데?”
“하.”
빈정거림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황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 오빠님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네.”
“엄청난 분이시지.”
“그렇긴 하지.”
만약 이 대화를 루테스가 들었다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질색을 했겠으나, 아쉽게도 이 자리에 루테스는 없었다.
물론, 루테스 본인에게는 다행인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 그럼…….”
입꼬리를 올리며 도발적인 웃음을 짓던 황녀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지?”
치열한 암투 속에서 살아가는 황실의 인원으로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감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무언가가 있는 감각.
평범한 사람들은 귀신을 떠올리겠으나, 황녀에게는 달랐다.
“암살자?”
귀신보다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암살자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아,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다른 것을 더 많이 경험한 르윈에게는 귀신도, 암살자도 아닌 다른 이름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숨겨 둔 호위라도 있어?”
“친군데?”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유능한 암살자 친구라도 두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협박하는 것이냐.
그런 표정으로 묻는 황녀를 보며 르윈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진짜 친군데.”
르윈은 감각을 끌어올려, 미세하게 무언가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몰래 훔쳐보고 있는 건 알았는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아, 아하하.”
풀숲 사이, 몸을 숨기고 있던 라일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라일라 라인하르트?”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모습에 황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안녕하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이는 황녀의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라인하르트 가문의 금지옥엽.
라인하르트 가주가 너무나 감싸고돌기에 사교계에 소문조차 적은 수수께끼의 인물.
“공작가의 영애가 전문적인 은신 기술을 배웠다고?”
아무리 딸내미가 소중하다고 해도 그런 것까지 가르치다니.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황녀가 놀랐지만, 이어지는 르윈의 말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태생적으로 타고난 기술인데.”
“거짓말!”
늘 암살의 위험에 놓여 있는 황녀의 감각은 매우 뛰어나다.
그런 자신의 감각을 속인 것이 태생적인 능력이라니.
“신의 축복이나 저주라도 받지 않는 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힝.”
“왜 내 친구 기를 죽이고 그래.”
단언하는 황녀의 말에 라일라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게 사실이니까.”
“역시 난 저주받은 거야.”
“은신의 신의 축복이라니까?”
“살아생전 은신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듣지 못했는데.”
“이름 없는 신 중에 하나쯤은 있겠지. 우리 동아리 선배들이 전문가니까 나중에 찾아 달라고 할게.”
그냥 동아리에 이름만 남기던 이들이 전문가로 포장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황실과 드라이르프, 라인하르트 공인!
“설마, 진짜로?”
기만책인가 의심하던 황녀도 두 사람의 대화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기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런 게 태생적인 존재감이라니.
그것만으로 자신의 감각을 속일 수 있다니.
“사람 말을 못 믿네.”
“그런 곳에서 사니까.”
황녀의 한마디에 르윈은 황실이 콩가루 집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선배야.’
태생부터 망나니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다니.
역시 루테스에게는 배울 것이 많으리라 생각하며, 르윈은 주저앉아 있는 라일라를 일으켰다.
“그래서, 왜 여기 있어?”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남의 맞선을?”
“너는 내가 맞선 보면 구경 안 할 자신 있어?”
“없지.”
그런 재미있는 구경을 놓칠 생각은 없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맞선 상대가 어디 있는지 못 찾는 모습을 놓칠 수는 없잖아?”
“그, 그 정도는 아니거든.”
반발하지만,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라일라의 말에 르윈은 작게 웃었다.
“그래서, 어디부터 들었는데?”
“르윈이 루테스 전하께 관심이 있다는 말부터?”
“오해하기 딱 좋은 부분부터 들었네!”
“취향이 그쪽이어서… 여태까지 맞선을 본 영애들이 차인 거구나.”
“절대 아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라일라의 모습에 르윈은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사교계의 별명은 철벽으로 충분했다.
“그럼 이번에는 거절 안 할 거야?”
“그건 할 건데?”
“본인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건 좀 무례하지 않나?”
“신경 쓰여?”
“차도 내가 차야지.”
“그런 거로 하든가.”
누가 차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루테스와 인연이 닿은 이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터.
르윈이 원하는 것은 숨쉬기 운동을 퍼트릴 방법이지, 황녀 자체가 아니었다.
“역시…….”
“아니라니까?”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라일라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르윈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럼, 끝?”
“그래. 오늘은 끝.”
“뒤끝 없이 가지?”
“뒤끝 많은 게 우리 집안 전통인데.”
그것도 몰랐냐는 말투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테스 선배님은 뒤끝 없던데.”
“그런 편이긴 하지.”
뒤끝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두 사람과 연관되고 싶지 않은 루테스였지만, 그 사실을 본인들은 알지 못했다.
물론, 알아도 바뀌는 것은 없었을 테지만.
“그렇게 되었으니.”
황녀는 감정이 없는 눈으로 르윈을 바라보았다.
“내 취향이 아니어서. 미안.”
“미안할 필요 없어. 이번만큼은 마음이 맞으니까.”
너도 내 취향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르윈을 보며 황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든가.”
그렇게 라일라의 등장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맞선은 끝났다.
그리고 르윈 디 드라이르프의 맞선도 끝이 났다.
“어떠셨습니까?”
평소보다도 온화한 표정의 데이지의 질문이었다.
생각보다 맞선 기간을 정상적으로 보낸 르윈 덕분에 마음이 평화로웠던 탓이었다.
“귀찮았지.”
그리고 황녀 때문에 귀찮아질 예정이기도 했다.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인간사라는 것이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편이라고 하지만, 숨쉬기 운동의 공유는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때 만난 황녀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바벨리안의 황족들에게 그것이 전파된 것일까.
‘루테스 선배를 생각하면 전자가 맞는 것 같은데.’
하지만 루테스만 배우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번에 만난 황녀와는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한다.
“정말 귀찮아.”
짧은 만남이었지만, 르윈은 황녀가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공작가라는 직위로도 어쩔 수 없는 황족.
귀찮아.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셨군요.”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데이지에게는 평소의 르윈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제 슬슬 돌아갈 준비나 해야지.”
“벌써요?”
“벌써는 아니지.”
르윈의 말에 데이지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 시기에 많은 이들이 아카데미로 복귀하는 편이었고.
‘2학기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고들 하니까.’
아직 기초 교육 1학년 단계라고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기도 했다.
그에 대비해서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했고, 학생회장이나 메이드장에게 미리 정보를 얻을 필요도 있었다.
“마차로 복귀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겠지요.”
“마차?”
“네. 복귀도 마차로 하실 예정이 아니셨나요?”
“아니었는데?”
“네?”
르윈의 말에 데이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머릿속으로 아카데미 복귀를 준비하던 데이지의 계획이 처음부터 무너지는 소리였다.
마차가 아니라니.
“설마.”
“당연히 포탈로 복귀해야지. 하루면 복귀하잖아?”
당연한 소리를 당연하지 않게 말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일까.
여태까지 그렇게 포탈을 타고 이동하자고 이야기할 때는 재미를 운운하며 마차를 고집해 놓고, 이제 와서 저런 표정이라니.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데이지였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쁠 건 없죠.”
그렇게 원하던 이동 방식이었다.
이번 기회에 포탈을 계속 이용하게 된다면 오히려 이득이었다.
‘한순간의 감정으로 일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
집사장인 알렉스의 말을 머릿속에 새기며, 데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정을 조금 천천히 준비해도 되겠군요.”
“그건 또 아니고.”
“네?”
“조금 빨리 복귀하려고.”
애초에 그러기 위한 포탈 사용이라는 말에 데이지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도련님, 또 무슨 일을 하시려고.”
“아무 일도 없어. 그냥 다음 학기를 준비하려는 모범생의 자세이지.”
“모범생이요?”
“나 성적은 괜찮았잖아?”
“딱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죠.”
“그러니까. 이번에는 공부 좀 열심히 해서 성적 올려야지.”
“…….”
말만 들으면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르윈의 본질을 잘 아는 데이지였다.
“그냥 제대로만 하시면 성적이 올라갈 텐데요.”
“그건 과대평가라니까?”
내 점수는 내 실력일 뿐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
모든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것보다, 모든 시험에서 0점을 맞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르윈은 그것을 넘어, 딱 원하는 점수를 맞고 있으니 다른 의미로 점수가 실력으로 보였다.
“알겠습니다.”
무리한 명령이라면 모를까, 상식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데이지는 집사장인 알렉스에게 르윈의 뜻을 전했고, 그렇게 르윈의 아카데미 복귀 날짜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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