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75)
75화 16. 인생 10회 차는 맞선을 본다 (5)
맞선 이벤트를 무사히 끝내고, 그 보상을 요구하듯 르윈은 아무것도 안 하고 휴식을 취했다.
“도련님, 숙제는 하셔야죠.”
데이지 또한 그것을 인정하였기에 르윈이 쉬는 것을 방치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
이제 곧 방학이 끝나고,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했다.
“데이지.”
“네, 도련님.”
“방학은 쉬라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왜 방학에 숙제를 내 주는 걸까.”
숙제하기 싫다는 말을 빙빙 돌려 말하는 르윈이었다.
데이지 또한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냥 하시죠.”
“귀찮은데.”
의욕이 전혀 없어 보이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싫은 숙제를, 동아리 사람들에게는 도련님이 내셨잖아요.”
“음.”
남한테 숙제를 냈으니, 너도 알아서 해라.
그렇게 주장하는 데이지의 말에 르윈은 할 말을 잃었다.
“하면 되잖아.”
하기 싫은 티를 내면서도 책상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르윈을 보며 데이지는 한숨을 쉬었다.
여러 가지 변수도 많았지만, 그래도 큰 사건 없이 방학 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
‘후배가 생긴 건 정말 예상외였지만.’
아직도 수상한 점이 많은 베아트리체이지만, 생각보다 열심히 배우려는 모습에 데이지 역시 열정적으로 일을 가르쳤다.
덕분에 베아트리체 역시 드라이르프 저택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혼자서도 일을 잘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까.’
이제 안심하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된다.
“아, 안 돼요!”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역시 세상일은 만만치 않았다.
“베아트리체 양?”
“호, 혼자서라니요! 다들 절 버리고 가는 건가요?”
애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에 데이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가 아닙니다. 저택에는 많은 사용인이 있고.”
“하, 하지만 도련님도 없고, 데이지도 없고…….”
처음 만났을 때 시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각했던 모습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고작해 봐야 한 달이 조금 지난 시간.
시체에서 기아 수준으로 바뀐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아직도 연민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하니, 데이지로서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으나.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입니다.”
마음이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아카데미에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저, 저도 갈 수 없을까요?”
“기본적으로 아카데미에는 시종을 데려갈 수 없습니다. 저희도 공식적으로 학생으로 입학을 했기에 따라갈 수 있으니까요.”
“그, 그럼 저도.”
“합격한다면 들어갈 수 있죠.”
시험에 합격한다면.
그 말에 베아트리체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사로서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오히려 흑마법을 배우기 위해,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한 자신이 베르샤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수준을 잘 알고 있었다.
드라이르프라는 이름에서야 베르샤 아카데미가 상대적으로 안 좋은 아카데미일 뿐, 대륙 전체로 본다면 베르샤 아카데미는 명문 중의 명문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공부 좀 한다고 아무나 다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입학 기간이 아니라서, 최소 내년 초에 올 수 있습니다.”
“흑.”
어차피 내년 초까지는 혼자다.
그 말에 베아트리체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럼, 저는 또 혼자.”
“혼자가 아니라니까요.”
가문의 사람들을 믿으라는 말에도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평생을 도망 다니는 삶을 살았고, 그 옆에 남아 있는 것은 백골이 된 오빠뿐이었다.
그나마도 지금은 방구석 가방 안에서 외로운 삶을 보내고 있으니, 베아트리체에게 있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르윈과 데이지뿐.
“알렉스 집사장님은요.”
“어, 어색해요.”
그나마 일적으로 자주 마주친 알렉스조차 어색한 베아트리체에게 르윈과 데이지의 아카데미 복귀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소식이었다.
이 저택에 혼자 남는다니.
잘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언제 비밀을 들킬지 모르는 삶이라니!
“제, 제가 더 잘할게요!”
“네. 다른 사람과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겁니다.”
“그, 그게 아닌데!”
데이지의 말에 울먹이는 베아트리체였지만, 데이지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음 방학에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흑.”
하지만 데이지의 위로는 베아트리체에게 닿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트라우마를 건드린 꼴이 되었다.
“다들, 다들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가렴.’
‘우리도 곧 뒤따라갈 테니.’
자식들을 도망치게 하려고 자신을 희생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였고.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오빠 또한 그러한 말을 남기고 스스로 흑마법을 사용하여 백골이 되어 돌아왔다.
“다시, 안 돌아왔는데!”
베아트리체의 눈에 고인 물기가 결국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비쩍 마른 몸에 어울리지 않는, 넘쳐 나는 눈물샘에 데이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가 죽으러 가냐?”
“악!”
“도련님!”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애처로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르윈은 가차 없이 베아트리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지금 우는 사람한테!”
“아니, 얘가 나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잖아.”
“그, 그런 적 없는데요.”
억울했다.
그저 서러운 옛 기억이 떠올랐을 뿐인데, 죽으라고 고사를 지낸다니.
“원래 싸움 직전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이나 친구 사진 꺼내면서 ‘이 싸움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같은 말을 꺼내는 애들이 제일 나쁜 새끼들이라고.”
그 말을 하면 늘 큰 사건이 터진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한 르윈의 결론.
‘라헬 쌍년.’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라헬의 저주가 분명하다.
르윈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런 억지가.”
“억지? 억지라고? 이건 용사가 쓴 경전에도 나오는 말이다?”
사실이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그것을 본받아 전시 중 비슷한 말을 하는 자들은 군법으로 다스린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기도 했다.
“그냥 아카데미에 갔다 오는 게 전부라니까.”
“지, 진짜죠?”
“그래.”
“그럼 방학이 시작되면 늘 돌아오는 거죠?”
“…….”
“도련님?”
“도련님?”
갑자기 시선을 피하는 르윈의 모습에 베아트리체는 물론 데이지까지 두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죠?”
“방학에 복귀하실 거죠?”
“응, 올해 겨울은.”
“그, 그다음은요?”
“설마 올해를 제외하고는 가문으로 복귀를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시죠?”
두 사람의 살벌한 시선에 르윈은 계속 눈을 피했다.
“아, 그러고 보니 숙제해야지.”
“도련님!”
못다 한 숙제를 하겠다고 도망치는 르윈을 데이지는 다급한 얼굴로 뒤따라갔다.
“나, 또 혼자야?”
그리고 홀로 남은 베아트리체는 드라이르프 저택에 홀로 남는다는 사실에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르윈아.”
“네, 어머니.”
드라이르프가의 저녁 식사 시간.
가문의 안주인인 에르젠은 슬픈 눈으로 르윈을 바라보았다.
“내년부터는 방학에 안 돌아오겠다던데, 진짜니?”
“…….”
일렀구나.
데이지가 이렇게 비겁한 방법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한 르윈은 한 방 먹은 표정으로 먼 곳에 서 있는 데이지를 노려보았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었는데,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그럴 수도 있다니?”
“아카데미 수업을 따라가려면, 조금 바쁘잖아요. 그 밖의 다른 활동도 있고요.”
“흐음.”
르윈의 대답에 에르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방학 기간, 아카데미에 남는 학생은 상당히 많은 편.
먼 거리 탓이기도 했지만, 성적이나 기타 활동을 위해 남는 학생들의 숫자 또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성적은 중요한 게 아니란다.”
에르젠의 말은 진심이었다.
애초에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황실 아카데미가 아닌 베르샤 아카데미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력은 해야죠.”
“그렇지.”
하지만 아들이 저렇게 말하는데, 노력도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 부모였다.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은 할게요.”
“전혀 마음에 닿지 않는 말이구나.”
“…….”
아들의 말에 에르젠은 슬픈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나도, 그이도 아카데미 때는 그랬으니까.”
실제로 지금 이 자리에 르윈을 제외한 자식들이 없기도 했다.
다들 학생회 임원으로서 아카데미에서 쥐어짜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2학기부터 많은 일정이 잡혀 있지. 몇몇 행사는 그냥 1학기로 돌리면 되는데.”
“다 비슷한 시기에 하니까요.”
“그러니까. 사람이 좀 안 오면 어떠니. 그냥 학생들 편하게 좀 하지.”
여전히 이사장들은 고지식하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르젠의 말에 르윈은 긍정을 해 주었다.
“그래도 올해는 온다는 걸 보니, 동생은 보고 싶구나?”
“당연하죠!”
갓난아이 시절의 귀여움은 포기하기 힘들다.
나중에 가면 형이나 오빠한테 반항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망나니가 될 수 있으나.
‘아기 때는 귀여우니까.’
그때 추억을 쌓아 놔야 나중에 추억 보정으로 망나니 동생이 되어도 귀엽게 봐줄 수 있다.
물론, 드라이르프 가문의 첫 번째 망나니는 자신이 될 테지만.
“라테일이나 라그일도, 내년 겨울에는 온다고 했단다.”
“아버지는요?”
공작가이자 제국 군부를 담당하는 라이하르 공작이다.
연말부터 연초까지 아주 바쁜 일정이 가득할 것이 안 봐도 뻔했지만.
“바쁘다고 집에 안 들어오면, 내 손에 죽지.”
“아…….”
바쁜 건 이해하지만, 외박은 안 된다.
그 의지가 강하게 와닿았기에 르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맞선 거절한 건 역시 잘한 일이야.’
결혼은 조금, 아니 조금 길게 생각해 볼 문제였다.
전생의 동료 중 결혼을 했던 친구조차 말하지 않았던가.
‘너는 결혼하지 마라.’
‘누구 놀리냐고? 진심이다.’
‘결혼한 새끼가 그런 말을 하니까 안 믿긴다고? 결혼했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잘나가는 용사님으로 그냥 살아라. 하고 싶으면 최대한 밀어라. 너는 70대 할아버지가 되어도 젊은 애들한테 인기 있을걸?’
‘그래. 내가 얼마나 후회를 했는데!’
‘어, 어? 당신이 왜 여기에…….’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열변을 토하다가, 아내에게 뒤를 잡혀 그대로 끌려갔던 모습이 르윈의 기억 한편에 남아 있었다.
‘동료의 말은 믿어야지.’
그 말을 믿었다가 가슴속 깊숙한 곳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지만, 그런 배신자와 달리 끝까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싸웠던 친구의 말이었다.
그런 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의 말을 믿을까.
“내년에도 노력은 해 볼게요.”
“참으로 마음에 닿지 않는 말이구나.”
변명하듯 말하는 르윈의 말에 에르젠은 피식 웃으며 대답을 해 주었다.
“그래, 아카데미 생활은 그때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집에 좀 안 들어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일부러 들으라는 듯 적당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에르젠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웃음으로 르윈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러다가 아카데미에서 운명의 상대도 만날 수 있으니까.”
“…….”
“엄마는 손주를 빨리 보고 싶단다.”
동생이 들어 있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인자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르윈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맞선 포기했다고, 이렇게 압박을 할 줄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