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78)
78화 17.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로 돌아간다 (3)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회장, 레피스 원드는 이제는 익숙한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자매님.”
“오늘도 좋은 날씨입니다.”
교복이 아닌 순백의 수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레피스의 인사에 답해 주었다.
“네, 좋은 날씨네요.”
주변의 인사를 받으며 레피스 원드는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종교와는 연이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많은 종교인과 매일같이 안부를 물어보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걸 원한 적은 없는데.’
소귀족답게 소소한 아카데미 생활을 지내는 것이 레피스의 목적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지냈다.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고, 시험 기간에만 가끔 신께 기도하는 게 전부.
그런 인생을 살아왔는데, 고작 반년 만에 종교 동아리의 회장으로 아카데미 종교 활동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 동아리, 그런 데 아닌데!’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
이름만 들으면 신을 찾는 동아리 같지만, 그냥 이름만 그럴듯한 신앙 동아리였다.
하지만 본질은 달랐다.
어차피 이름이 없는 신.
사실상 없는 존재들이기에 명분으로 사용하자고 해서 만든 동아리일 뿐이라고 선배들에게 들었다.
레피스 원드가 회장이 된 이유도 동아리에서 가장 선배여서일 뿐.
신앙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존재하기도 어려웠다.
‘무쓸모 잉여신이 뭐냐고!’
자그마한 신앙도 생기지 않는 이름이었다.
다른 종교 동아리에서 무링신이라는 이름의 뜻을 물을 때마다 얼버무린 게 몇 번이었던가?
멋들어진 이름은 원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남들이 들었을 때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이름이면 충분했다.
‘나중에 오면 이름만 바꿔 달라고 해 보자.’
동아리 회장이 가장 말단 부원에게 부탁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이 아카데미에서 드라이르프 가문 도련님의 말을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
그리고 정말 아쉽게도 레피스 원드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서럽다.’
이렇게 열심히 인생을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이었는데.
‘어째서 거친 파도 위에 올라타 버린 걸까.’
잔잔히 흐르던 시냇물이, 갑작스럽게 태풍이 몰아치는 파도로 바뀌고 말았다.
“아, 레피스 님.”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아, 안녕하세요.”
시야에 들어온 이는 붉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였다.
주근깨가 인상적인 그녀는 레피스 본인과 동갑인 동시에 성화 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이름이 헬레나였었지?’
레피스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성화 동아리는 불의 신을 모시는 동아리로, 창조 동아리에 비교하면 작을 뿐 그 외의 동아리 중에서는 나름 커다란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도 엄청 강했지.’
당연한 일이었다.
불이란 인간의 역사가 기록되는 순간부터 늘 함께했던 것.
마법을 비롯한 온갖 학문에서도 늘 몇 대 원소에 꼽히는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 불을 담당하는 신은 제법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고, 그만큼 믿는 신도들 또한 많았다.
‘이번 축제에서 중요 역할을 맡은 곳 중 하나이기도 하고.’
자신과 동갑에 평범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소녀였지만, 불의 교단에서 제법 인정을 받은 존재였다.
덕분에 불의 교단을 대표하는 성물, 성화의 불씨를 이번 축제에 가지고 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불씨 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 줄 몰랐는데.’
그냥 신전에 타오르는 불꽃.
그 불꽃을 통째로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작은 불씨를 받아 오는 것이 전부였다.
아마 평소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면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을 했을 터.
그러나 수많은 종교인과 만나게 된 이후,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최초의 불꽃.’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설에 따르면 불의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준 인류 최초의 불꽃이 불의 교단의 성화라고 한다.
즉, 그 불씨는 이 세상의 첫 번째 불꽃의 불씨.
‘그래 봤자 불씨라는 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은 맞았다.
아니, 뭐든 무쓸모 잉여신보다는 대단했다!
‘이런 사람들하고 내가 같은 취급을 받는 게 맞을까?’
한 교단의 성자나 성녀, 혹은 그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이들.
그런 사람들과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무쓸모 잉여신을 믿는 동아리장이 함께해도 되는 걸까.
우리 신은 성물은커녕 존재한다는 증거 자체가 없는데.
“이번 축제에 각 종교 동아리가 힘을 모아 예배를 진행하기로 한 소식은 들었나요?”
“네. 창조의 교단에서 추기경까지 오신다고 하셨죠?”
“네. 덕분에 저희 교단에서도 이번에 주교 중 한 분이 오셔서.”
웃으며 내뱉는 말들이 무겁다.
한 종교의 추기경이나 주교라면, 레피스와 같은 작은 귀족보다 훨씬 위의 사람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위 귀족보다도 더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을 아카데미 행사에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있는 동갑내기 소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랑 내가 동급 취급을 받고 있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내로라하는 종교 동아리 회장과 이름뿐인 동아리의 회장이 동급 취급을 받는다니.
물론, 아카데미 학칙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모든 동아리는 평등한 취급을 받기에 동아리장도 평등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게 말이 되냐고.’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면, 신분제 사회는 왜 있겠는가?
귀족인 그녀이기에 이 세계가 신분 사회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신분제를 내려놓는다고 하더라도 무인은 힘의 논리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고, 정치가는 국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패가 늘어나며, 마법사는 지식에 따라, 귀족은 권력에 따라 순서가 정해진다.
아카데미 동아리 역시 마찬가지.
부원의 수에 따라, 실적에 따라 동아리에 주어지는 활동비부터가 달라지며 그 위상에 따라 아카데미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무링신 연구 동아리는 부원 수가 적고, 실적도 없으며, 외부에 영향력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취급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나요?”
“아!”
웃으며 이야기에 끼는 이 인간 때문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베르마샤 님.”
베르마샤 라이트.
아카데미 종교 동아리 최대 파벌이자, 현 대륙 최고의 교단인 창조의 교단의 성자 후보 중 하나.
이 베르샤 아카데미에서는 황족인 루테스조차도 함부로 대하기 힘든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이번 축제 예배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레피스 자매님도 예배에 참석하시니, 미리 이야기하는 게 좋긴 하겠네요.”
“네. 그래서 이번에…….”
묘하게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
레피스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한테 반한 건 아닐 테고.’
레피스 원드는 자존감이 높지 않은 편이었다.
아니, 애초에 자기 객관화가 잘되는 편이기도 했다.
‘나한테 관심이 있다기보다, 우리 동아리에 관심이 있고.’
싸늘했다.
가끔 악몽을 꿀 때면, 웃으며 무링신 연구 동아리를 이단 선포하는 베르마샤 라이트의 모습이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귀찮은 짓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조의 교단의 힘이라면 이름 없는 신에게 이름을 부여한다는 이상한 동아리 정도는 쉽게 짓밟을 수 있을 테니까.
‘도대체 뭐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베르마샤 라이트의 행동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종교 동아리들도 무링신 연구 동아리라는 수상한 동아리를 챙기는 것이고.
‘역시 황족과 공작가가 들어와서 그런 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제국의 핵심 권력가가 포함되었기에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작년에는 안 그랬잖아.’
올해 드라이르프 공작가라는 거대한 가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작년에는 그보다 더 강한 바벨리안 황실이 들어오기도 했다.
신경을 쓰려면 작년부터 써야 맞는 게 아닐까.
‘그랬다면 도망쳤을 텐데.’
억울했다.
작년에도 이렇게 우리 동아리에 신경을 써 주었다면 자신이 이 모양, 이 꼴이 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이름을 바꾸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한 레피스 원드였지만, 눈앞의 종교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 특별 예배 성화 의식에서는.”
“네. 그건 저희 교단에서 준비를 완벽하게 하겠습니다.”
누가 종교인들 아니랄까 봐, 예배에 대해서는 진심이었다.
문제는 그 진심이 종교 동아리의 장을 맡은 레피스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그럼 이번 예배에서 무링신 연구 동아리가 그것을 맡아 준다면.”
“딱 맞는 역할이네요!”
아니, 그런 역할 맡기지 마!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레피스였지만.
“그, 그럴까요?”
태생부터가 소귀족인 그녀는 힘 있는 자들의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
“하아.”
오늘도 종교인으로서 한 발 성장해 버린 레피스 원드는 한숨을 내쉬며 복도를 걸었다.
성장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떠먹여 주고 있다.
그것도 자신과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종교인 경험치를!
“내가 어쩌다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복도를 걷는데, 주변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곧 개학인가.”
학기 중과 비교하면 조용하던 아카데미에 눈에 띄게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개학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고 하더라도, 변수를 없애기 위해 조금 일찍 아카데미로 복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돌아오는 건가?”
방학 숙제랍시고 동아리에 폭탄을 던져 주고 간 망할 부원이자, 평화로웠던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를 무링신 연구 동아리로 개명시킨 장본인.
“하아.”
벌써부터 그 빨간 머리의 도련님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기분이었다.
“응……?”
최근 종교적으로 너무 시달려서 환상이라도 보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레피스는 아직도 붉은 머리의 소년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르, 르윈 후배님?”
“님?”
“르윈 후배?”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님 자에 인상을 팍 찡그리는 것을 보고 레피스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다!’
환상이 아니라, 르윈 디 드라이르프 본인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벌써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버, 벌써 왔네?”
“도착은 3일 전에 했죠. 동아리실도 갔다 왔는데, 못 들으셨어요?”
“응, 전혀.”
이 새끼들.
나는 높으신 분들 만나면서 일하고 있었는데, 부원이라는 것들은 이런 긴급 사태를 보고도 하지 않는다니.
‘가만 안 둬.’
이번 아카데미 종교 행사에 파견할 부원들의 목록을 머릿속으로 작성하며, 레피스 원드는 웃는 표정으로 르윈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자연스럽네.’
이제는 자연스럽게 포커페이스를 할 수 있게 된 자신의 모습이 안쓰러웠으나, 어차피 귀족으로서 사교 활동을 하려면 배우는 것이 좋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며, 레피스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르윈에게 말해 주었다.
“저번에 말한 것처럼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제국 건국제를 비롯한 아카데미 행사에서 다른 종교 동아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중에서 몇몇 역할을 맡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부장이 부원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이에게 말할 일은 아니었으나.
‘우리 동아리의 실세는 쟤니까.’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권력자는 르윈이 1위요, 루테스가 2위, 동아리 회장인 레피스 원드는 3위에 불과했다.
까마득한 후배지만, 어쩌겠는가.
‘난 남작가고, 저긴 황실이랑 공작가인데.’
원래라면 루테스가 1위여야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루테스는 르윈을 어려워했다.
황족이 어려워하다니.
알아서 기어야지.
그렇게 르윈의 입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자, 르윈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열심히 하셨나 보네요.”
그 미소가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기에.
‘불길해.’
불길함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