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79)
79화 17. 인생 10회 차는 아카데미로 돌아간다 (4)
레피스의 말을 들은 르윈은 하나의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개수작이네.’
레피스는 평범하다.
좋게 말하면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나서서 무언가를 할 배짱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의 회장이 되었고, 그렇기에 루테스라는 황족이 들어왔음에도 동아리에 큰일이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등 좀 밀었다고 이렇게 잘할 리가 없지.’
르윈은 레피스를 믿었다.
그녀가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하지 못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방학에 두 달 정도 보지 못한 것으로, 이렇게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럴 그릇이 아니지.’
레피스 원드는 소시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아니, 귀족이니 소귀족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그런 사람이 성직자들 사이에서 어울릴 수 있을 리가 없지.’
성당의 입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성직자의 세계는 어느 곳보다 폐쇄적이다.
겉모습은 웃으며 환영하지만, 조금이라도 깊은 곳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밀어내는 곳이 종교 집단이었다.
그런 곳에서 레피스가 중요 역할을 맡는다니.
‘라헬이겠지?’
범인은 매우 높은 확률로 창조의 여신일 것이라고 르윈은 생각했다.
창조 동아리의 장이 성자 후보 중 한 사람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무슨 개수작일까.’
품 안에 넣고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을 쌓아 두었다가 터트릴 생각일까.
아니면 먼저 손을 내밀어 자신의 편으로 만들 생각일까.
‘뭔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들이지만.’
위험하지만, 동시에 기회다.
창조의 교단은 인간은 물론, 다른 종족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대륙 최고의 교단.
마대륙에 살고 있는 마족들조차 그 이름을 알 정도였다.
그런 교단을 이용한다면, 무링신이라는 이름을 대륙에 알릴 수 있을 터.
‘그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만.’
머릿속에 용사를 부려 먹을 생각만 가득한 여신이다.
그런 여신이 다른 신을 미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재밌네.’
대놓고 움직일 정도로, 여신은 자신이 있었다.
이 세상의 반을 자신의 손아귀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자신이 있을 만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실제로 이 대륙의 절반은 창조의 여신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맞았다.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나머지 반을 얻기 위해 마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창조의 여신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여신이 평화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반을 차지하고 있는 마신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둘이 똑같으니까.’
최고신이라는 것들이 그러고 있으니 이 세계가 멀쩡할 리가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그렇기에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용사로서 평화의 신을 새롭게 옹립할 수밖에 없었다.
무쓸모 잉여신, 줄여서 무링신!
‘신이 뭘 할 필요는 없으니까.’
쓸모가 없는 신이기에 특별히 뭘 할 필요가 없고, 존재 자체가 잉여이기에, 평화롭다.
원래 신이란 그런 존재다.
신앙이 없으면 결국 이름이 없는 존재로 영락하면서, 그 신앙의 바탕이 되는 인간에게 시키는 일은 더럽게 많았다.
자기가 나서서 하는 일이 거의 없으면서 인간을 부려 먹고, 그로 인하여 얻어진 결과를 자기가 한 일인 양 포장하다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신성력 내려 주는 게 전부면서.’
그 신성력 역시 인간이 바치는 신앙을 분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을 왜 믿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의문을 주장한 자들은 모두 이단 심문관의 손에 교단 지하실 풀코스를 체험할 뿐이었다.
‘예로부터 깨어 있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는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일 줄이야.
참으로 안타까운 세상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충 앞으로의 일정을 말한 레피스가 쭈뼛거리며 서 있다.
동아리 회장으로서, 몇 학년이나 위인 선배로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초식 동물 같은 무해함.
그것이 레피스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어떻게 할까?’
이 무해함으로 인하여 창조의 교단은 안심할 것이다.
아주 쉽게 부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문제는 진짜 쉽게 부려 먹을 수 있다는 건데.’
그들의 판단은 정확하다.
특별히 사기를 칠 필요도 없다.
그냥 조금 밀어붙이면 쉽게 넘어올 수 있는 이가 레피스 원드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걸 역이용해서 원하는 바를 이끌어 내는 것이 르윈이 해야 할 일.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당해 줘야지.’
“활약할 기회를 준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겠죠?”
“그, 그런가?”
저쪽이 레피스를 이용하려 한다면 이용당하면 되는 것이다.
당사자인 레피스의 의사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겠으나, 어쩌겠는가.
‘대신 잘해 주면 되겠지.’
동아리의 회장이자, 무링교의 최고 사제로서 탄탄대로를 만들어 주면 레피스도 좋아할 것이다.
“자세한 것들은 회장님한테 맡길게요. 하실 수 있죠?”
“그, 그래.”
보아라. 이 긍정적인 모습을.
레피스 역시 진정한 평화를 위해, 무링신의 뜻을 세상에 퍼트리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내가 잘해 줄게요, 선배.’
***
“또 뭔 짓을 하려고?”
아카데미 기숙사 안.
책상에 앉아 2학기 계획을 세우는 르윈을 보며 엘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다들 나한테 뭔 짓을 할 거냐고 물어보는 걸까.”
르윈은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엘리의 인상은 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찌푸려졌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모르는 법이지.”
“가해자라니. 내가 피해자면 피해자지, 가해자인 적은 거의 없는데?”
용사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이들은 기껏해야 마신과 마족 정도가 아닐까.
‘흑마법사가 있었네.’
그건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흑마법사를 제외하고는 가해자라고 불릴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아직은.
“데이지가 이 말을 들었다면 오열했을걸?”
“아닐걸? 우리는 평소에 불만이 있으면 다 말하거든.”
“말하면 들어주고?”
“말은 들어 주지.”
말만.
그렇게 말하는 르윈을 보며 엘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이 불쌍해.”
“다 걔들을 위해서야. 지금도 걔들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중인데?”
“본인들의 의사는?”
“원래 주인공이 되려면, 거대한 흐름을 타야 하는 법이야.”
“용사처럼?”
“호구처럼.”
라헬이 만든 거대한 흐름에 순응했던 자신처럼 데이지와 예리엘, 하인스 또한 거대한 흐름을 타고 무럭무럭 성장할 예정이었다.
“전설의 첫 시작은, 역시 대규모 행사부터지.”
마침 딱 좋은 행사가 곧 시작할 예정이었다.
“아, 요즘 시끄러운 그거?”
“응, 그거.”
2학기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행사들이 예정되었다.
르윈이 조금 이른 시기에 아카데미로 복귀한 이유가 무엇인가.
“제국 건국제는 한 해의 가장 큰 행사니까.”
2학기 시작의 메인이벤트.
그것을 위해 많은 학생들이 빠르게 아카데미로 복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나 크게 해?”
“이 나라가 건국된 날이니까. 아주 대대적으로 난리를 치지.”
황실에서는 연말이나 신년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건국제였다.
대륙 최고의 국가에서 난리를 치니, 당연히 주변 나라에서도 난리를 칠 수밖에 없을 터.
덕분에 바벨리안 제국의 건국제 기간은 대륙의 축제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중 며칠은 아카데미 관련 행사가 있거든.”
“아카데미는 왜?”
“제국의 장래가 이렇게 밝다! 같은 느낌으로 홍보하는 거지.”
물론, 제국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모두 제국민은 아니었다.
황실 아카데미의 경우에는 다른 국가의 왕족들도 입학했고, 베르샤 아카데미 또한 종종 유학생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대다수가 제국민이니까.”
숫자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한 명의 외국인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 준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제국 학생들이 활약하면 묻힐 수밖에 없었다.
“하긴, 여기 사서들만 나서도 웬만한 애들은 이기겠네.”
자신의 동족과 골렘을 웃으며 때려잡던 사서들을 떠올리며 엘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이들이 많은데, 황실 아카데미라는 곳은 그 이상이라니!
“역시 세상은 무서워.”
“그렇지.”
르윈 역시 공감하는 말이었다.
이 무섭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우승 경력이 필요해.”
“왜?”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쉽게 만들어 주거든.”
고등부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면 황실 기사 선발에서도 가산점을 받을 정도다.
기초부는 잘 쳐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취업에 유리한 것은 분명했다.
“근데 애들은 취업 못하잖아.”
“우리 집에 취업했으니까.”
그것도 종신직이다.
드라이르프 가문이 망하거나, 팔지 않는 이상 다른 곳으로 이직이 불가능했다.
“그럼 필요 없는 거 아니야?”
“그렇다고 필요 없진 않지.”
르윈이 계획한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 세 명의 시종은 조금 더 활약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을 증명하는 건 중요하니까.”
우승하지 못해도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지.”
그 정도는 해 주지 않으면, 숨쉬기 운동을 가르쳐 준 이유가 없다.
그 이상의 지원은 다른 창고들을 턴 이후에 가능하겠지만, 노력만 조금 한다면 우승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르윈은 생각했다.
“훈련을 조금 더 하고, 영약도 좀 먹이면 기간 안에 급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르윈의 시선에 엘리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아니지?”
불쑥 떠오르는 생각에 엘리가 고개를 저었다.
“다리 하나면 될 텐데.”
“캬악!”
자신의 다리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르윈의 모습에 엘리는 하악질을 하며 거리를 벌렸다.
“안 돼, 안 줘!”
“어차피 좀 지나면 자라잖아.”
“안 자라! 회복하려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고!”
“물에 넣고 좀 쉬면 싹이 자라지 않아?”
“내가 감자나 고구마인 줄 알아?”
일단 식물이기에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엘리 정도 되는 영물이라면 몸을 재구성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작은 몸집에 압축된 마력량이 상당했고, 그렇기에 영약 취급을 받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안 돼!”
“쩝.”
아무래도 육수로 만족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르윈이 어항의 물을 갈기 위해 손을 뻗자 아직 의심을 지우지 않은 엘리가 다시 한번 하악질을 하였다.
“캬악!”
“그냥 물갈이야, 물갈이. 해치지 않아요.”
의심의 눈초리로 르윈을 노려보던 엘리는 물갈이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어항으로 들어갔다.
“으, 뜨거워.”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 뜨거운 어항의 물 온도에 엘리의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잡아먹히는 것보단 낫다는 판단하에 그냥 참기로 했다.
“데친 맨드레이크…….”
“캬악!”
작은 농담에도 하악질을 하는 엘리의 모습에 르윈은 엘리의 영약 작전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애들 실력을 올려야지.”
“그래. 원래 어릴 때 영약 같은 걸로 실력을 키우면 안 좋다고 했어!”
그러니 순수 노력으로 실력을 키워라. 잘 사는 맨드레이크들 영약으로 만들 생각 하지 말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