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86)
86화 19. 인생 10회 차는 대회를 구경한다 (2)
“기초부 9경기, 아웨인 가워드 대 하인스,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의 말에 하인스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긴장되는데.’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았을 때, 하인스는 제법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저 수준이라면 르윈의 말처럼 우승도 노려 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경기장 위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바뀌고 말았다.
‘다들 이랬던 건가?’
숨이 턱턱 막힌다.
신을 모시듯, 호흡을 숭상해라.
처음 숨쉬기 운동이라는 호흡법을 가르칠 때 르윈이 한 말이었다.
기사든, 마법사든 상관없다.
대기의 마력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면 모두 호흡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게 배웠고, 그것을 늘 실천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런 거구나.’
실전에 약한 타입, 혹은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는 말이 존재했다.
하인스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전에 약한 타입이라는 말은 결국 약하다는 말이고,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는 말은 결국 강하다는 말인데.
그냥 실력이 부족한 이들을 위로해 주고, 강한 자에게 자만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한 말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니었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오니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기장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에 한 번 위축된다.
그냥 흥미를 느끼는 시선으로 구경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건국제라는 축제를 즐기는 이들로, 그냥 구경거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숫자가 많아지니 그것만으로 압박이 되었다.
숫자는 그것만으로 무기가 된다.
언젠가 르윈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하인스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장난 아니네.’
살의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근접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질 수 없다. 이기고 말겠다.
굳은 표정에서 전해지는 상대방의 각오에 한 번 더 위축이 된다.
‘저쪽도 저쪽대로 사연이 있겠지.’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냥 승부에 최선인 사람일 수도 있고, 단순하게 싸움을 즐기는 자일 수도 있다.
가문의 부흥을 위해 꼭 승리를 해야 한다거나, 대회에서 우승하고 연인에게 고백하겠다는 각오를 하는 걸 수도 있다.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르윈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굳이 알 필요가 있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처럼 잘난 집안 도련님에게는 축제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 먹는 것이 대단한 추억이 될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아닐 수 있지. 그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니까.’
평범한 사람에게는 배부른 사치로 느껴질 수 있는 추억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하루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한테는 축제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 먹는 것이 대단한 추억이 될 수 있지.’
똑같은 경험이다.
같은 거리, 같은 가격, 같은 음식.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길거리에서 서민 음식을 먹는 외도 비슷한 추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
‘제삼자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러니 남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자신을 이해받으려고 생각하지 마.’
‘네 인생을 살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열 살짜리가 저런 말을 할까.
하인스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또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라고 하셨으니까.’
일단 급한 건 자신의 인생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여기서 지면 얼마나 조리돌림을 당하게 될까.
아마 내년 건국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르윈은 계속 이번 일을 꺼내며 갈굴 것이다.
‘분명하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눈앞의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에 집중하자.
하인스는 자신을 다독이며 눈앞의 상대와 시선을 마주쳤다.
‘저쪽도 똑같아.’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목도에 따라 시선이 향하는 수가 차이 날 수는 있으나, 결국 한 무대에 있으니 시선이 향하는 것은 같았다.
‘실력, 맞네.’
실전에 강한 것은 실력이 맞다.
육체적 강함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강함 역시 중요한 것이니까.
‘진정하자.’
하인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신력이라면 자신 있다.
자신이 누구인가.
르윈 디 드라이르프의 시종으로 몇 년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르윈의 기행으로 단련된 정신력이 고작 이 정도로 꺾이면 안 된다.
‘그럼 별거 아니라는 느낌이 되어 버리잖아.’
그간의 고생이 부정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건 안 된다.
너무 억울했다.
“그럼 지금부터.”
귓가에 들려오는 심판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인스는 천천히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의 선언과 함께 주변에서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위의 두 사람에 대한 환호.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는 그 순간을 즐기는 이들의 목소리.
“흡.”
그것이 들어오는 순간, 하인스의 검이 검집에서 튀어나와 섬전과 같은 속도로 상대를 향해 뻗어 갔다.
‘빠르게 끝낸다!’
기사 동아리의 선배들은 말했다.
‘결국, 대회는 체력 싸움이다.’
‘쉬는 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짧은 기간에 몇 번을 싸워야 하는 거니까.’
‘실력 차이가 크다면 일격에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기초 교육 과정의 실력은 거기서 거기니까.’
‘1학년과 4학년의 차이는 크지만, 같은 학년의 실력은 몇몇 괴물들을 제외하면 비슷하긴 하지.’
‘그래서 장기전이 자주 나오기도 하거든.’
기초 교육이라면 10~13세.
이 나이에는 마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완벽하게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베르샤 아카데미를 넘어 건국제 본 대회에서도 우승 후보로 꼽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그 실력이 안 된다.
그리고 다행히 상대들도 대부분 그러한 실력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장기전이 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빨리 끝내야 했다.
‘최대한 체력을 아낄 수 있게.’
발도술.
가문의 몇몇 기사에게 배운 일격 필살의 검.
중요한 경기에서 사용할 중요한 필살기로 숨겨 두어도 되었으나.
‘그런 경기에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사용한다.
필살의 기술은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잘 먹히는 법.
“어?”
그런 하인스의 예상대로 상대는 당황했다.
대회 첫 경기부터 필살의 기술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으니까!
“졌습니다.”
덕분에 허무하게 목을 내어 준 상대는 패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승자, 하인스!”
“수고하셨습니다.”
심판의 말과 함께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경기가 빠르게 끝났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사람도 소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그냥 경기가 끝나기만 해도 환호를 해 주었으니까.
“잘했어.”
하지만 하인스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직접 축하를 해 주었다.
“도련님?”
예상과 다른 점은 데이지나 예리엘, 라일라가 아닌 르윈이 가장 먼저 축하를 해 주었다는 것이지만.
“첫판부터 발도술이라니. 체력 분배를 위한 건가?”
“네, 네. 그렇습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하인스를 바라보며 르윈은 뿌듯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야. 괜히 아낀다고 숨겨 두다가 쓰지도 못하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그렇죠.”
“이 대회에 너보다 약한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쉬운 말이었지만, 분명한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하인스 또한 필살의 기술을 바로 사용한 것이니까.
“그래도 난 널 믿고 있었어.”
“도련님…….”
르윈의 말에 하인스는 감격했다.
평소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과 달리, 자신을 믿고 있었다니.
“이게 그 증거고.”
그리고 그런 하인스에게 더욱 믿음을 주기 위해서인지 르윈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증거를 꺼내 하인스에게 보여 주었다.
“그게요?”
그것은 노란 종이였다.
뭔가 여러 개가 적혀 있기는 한데,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단 하나.
“배당금?”
자신의 이름과 아웨인 가워드라는 이름은 그다음이었다.
“응. 승자 예측을 하는 건데, 이긴 쪽에 건 배당금을 주는 거지.”
한마디로 도박이라는 소리였다.
“도련님?”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던 감정이 차갑게 식었다.
감격이 분노로 바뀌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대가 그리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보다는 높았거든.”
한마디로 하인스 본인이 역배였다는 소리였다.
“2.2배! 10골드를 걸었으니, 22골드를 얻은 거야!”
무려 12골드의 차이!
10골드라는 거금을 걸었기에 얻은 성과를 르윈은 자신 있게 하인스에게 공개했다.
“…….”
“애들 안 오는 거 보니, 예리엘 경기가 있는 곳에 먼저 갔나 보다. 예리엘의 상대는 작년 16강 진출자여서 배당률이 9배던데.”
9배는 못 참지.
그렇게 말하며 자신 있게 10골드를 건 다른 종이를 꺼내는 르윈을 바라보며 하인스는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련님, 만약에 져서 날렸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셨습니까?”
“응? 그때는 너희가 날린 만큼 책임을 져야지.”
“…….”
멋대로 자신들의 시합에 돈을 건 것으로도 모자라, 지면 자신들의 책임이라니.
‘이게, 내 주인?’
아무리 주종 관계라고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르윈의 뒤를 따라 예리엘의 경기장으로 향하며, 하인스는 승리의 기쁨이 아닌 인생의 현타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졌습니다.”
“승자, 예리엘!”
장장 10분이 넘어가는 혈전 끝에 예리엘의 승리가 선언되었다.
작년 아카데미 16강 진출자가 신입생에게 1차전에서 탈락하는 대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후.”
투구를 벗자 땀에 젖은 붉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중장으로 가는 게 맞았어.”
나이와 무기의 틀을 나눌 뿐, 장비는 대부분 출전하는 선수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기동성을 살리는 이들은 최소한의 보호구만 착용했고, 방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온몸에 철갑을 두르기도 했다.
예리엘의 선택은 후자.
진짜 중장 보병처럼 두꺼운 갑옷으로 완전 무장을 한 것은 아니지만, 투구와 갑옷을 입고 방어를 최대한 올리는 스타일을 선택한 것이다.
“하인스하고는 아예 정반대의 선택이었네.”
“아, 도련님.”
왠지 모르게 싱글벙글한 르윈을 보며 예리엘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하인스는 속공으로 갔군요.”
“선배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인스의 말을 예리엘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같은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장기전이 많이 나온다면, 아예 장기전 준비를 하는 게 맞으니까.”
장기전이 나오지 않게 빠르게 끝내자는 하인스와는 정반대의 의견이었다.
어차피 나올 장기전, 그냥 처음부터 준비를 해 버리자.
“여성부 같은 경우에는 세검이나 레이피어로 빠르게 찌르는 타입이 많기도 하고.”
여성이 태생적으로 남성보다 힘이 약하기에 하는 선택이고, 그렇기에 여성부의 경기는 빠르고 화려하여 남성부보다 인기가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런 걸로는 이런 걸 뚫기 어렵잖아?”
속도를 중시하는 이들은 최대한 자신의 몸을 가볍게 하는 편.
그렇기에 예리엘의 중무장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무식하게 힘으로 해결했구나.”
“죽을래?”
하인스의 빈정거리는 말에 예리엘이 이를 갈았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면, 무식한 방법이기는 했다.
“뭐, 이기면 됐지.”
그러나 르윈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예리엘과 하인스.
두 명의 배당금만으로 이미 10배가 넘는 수익을 손에 넣었으니까!
“언니는요?”
땀을 다 닦은 예리엘은 갑옷을 벗으며 두리번거렸다.
일정에 따르면 가장 처음 시합을 했어야 할 데이지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안 끝났나?”
“마법전은 오래 걸리나.”
하인스의 말에 예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르윈은 자신의 손에 들린 마지막 종이를 바라보았다.
“지고 울고 있을지도.”
유일하게 역배가 아닌 정배에 돈을 건 종이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