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88)
88화 19. 인생 10회 차는 대회를 구경한다 (4)
라일라의 하루는 매우 바빴다.
아니, 정확하게는 노동 동아리 학생들의 하루는 매우 바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으아악! 천막이 부족해!”
“이번에 귀빈들이 모이는 A-3 지역에서…….”
노동 동아리.
학생회 임원에 도전하는 자들이 가입하는 동아리로, 간단히 말하면 학생회 2군이라고 할 수 있는 곳.
그렇기에 학생회가 바쁘면 당연히 노동 동아리 역시 바쁠 수밖에 없었다.
라일라 또한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정도로.
“선배님, 이거 다 했는데요.”
그렇게 오늘도 처리한 일거리를 선배에게 보고했다.
“어? 음? 아, 아, 그렇구나!”
물론 선배들이 르윈이나 데이지 등처럼 바로바로 반응은 하지 못했지만.
“아, 이거. 잘했네. 수고했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인기척에 당황한 학생이 라일라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빠르게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 노력했다.
공작가의 영애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가는 그 뒷감당이 무서우니까.
“아, 그럼. 다음은 이거.”
그러나 그건 그거고,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
바로 다음 일거리를 건네주는 선배의 모습에 라일라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선배가 내미는 서류를 받은 라일라는 서류를 확인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며 중얼거렸다.
“음, 경기 구경도 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너무 바쁘다.
물론 라일라가 이곳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또 라일라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챌 사람도 없겠으나.
“어쩔 수 없지.”
이게 다 학생회로서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라일라는 생각했다.
“헤헤.”
그래도 조금 멋있다고 라일라는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모두를 위해 일한다니!
“보이지 않아도,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라일라는 그 사실이 참 좋았다.
인기척이 없는 자신도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르윈의 말이 맞았어.’
처음에는 르윈이 학생회를 추천한 것에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학생회를 경험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을 돕고, 영향력을 선보일 수 있다!
“더 열심히 해야지.”
해야 할 일거리를 품 안에 껴안은 라일라는 종종걸음으로 아카데미를 걸었다.
“고등부 마법전 경기 봤어? 생각보다 수준 높던데.”
“마법전이 화려하긴 하지만, 남자면 검술전이지.”
“검보다는 무투전이 맞지 않나?”
“쯧쯧, 그런 거 구경해서 뭐 하냐. 그냥 요리 동아리에서 여는 요리전에 가서 맛있는 거나 먹으면 되지.”
축제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학생회와 노동 동아리는 즐기지 못하고 있으나, 그들의 희생으로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있는 거니까.
‘선배님들도 그거에 보람을 느끼고 있는 거고.’
그리고 일을 조금 빨리 끝낼 수 있다면 학생회나 노동 동아리의 사람들도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라일라가 의욕을 불태우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뭐 하냐.”
“르윈?”
익숙한 목소리에 라일라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양손에 먹을 것을 가득 든 르윈이 서 있었다.
“엄청 즐기고 있네.”
“축제잖아. 즐겨야지.”
씩 웃은 르윈이 손에 든 닭꼬치 하나를 라일라의 입에 쑤셔 넣었다.
“아우우.”
“맛있지?”
갑작스럽게 입안으로 들어온 닭꼬치에 당황한 라일라였지만, 입안에 느껴지는 고소하면서도 매콤한 닭꼬치의 맛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겨 쳐음 먹어 봐.”
발음이 조금 뭉개졌지만,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공작가의 영애로서 이런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가게에 줄이 없더라.”
대부분이 귀족인 이들에게 길거리 노점에서나 팔 법한 음식들은 미지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신입생들은 축제의 노점을 쉽게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
“축제를 여러 번 경험한 동아리 선배가 사 주는 걸 먹는 게 아니라면 잘 손을 대지 않더라.”
간혹 미지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말 소수였다.
덕분에 손쉽게 먹고 싶은 음식들을 구매한 르윈은 전리품을 자랑하듯 라일라에게 내밀었다.
“먹어 보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 가든가.”
“음.”
입안의 닭꼬치를 우물거리며 라일라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르윈의 손에 들린 먹거리를 바라봤다.
‘확실히 집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들이야.’
얼핏 익숙한 음식도 있으나, 담기는 방식에 따라 새롭게 다가왔다.
종이 상자에 담긴 감자 구이라든가, 막대기에 꽂혀 통째로 구워진 옥수수라든가.
“내가 직접 가서 사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가게 앞에서 주문도 못하고 울상 짓지 말고 그냥 골라.”
“힝.”
라일라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발언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주문이라니.
“그거나 줘.”
슬픈 느낌은 대부분 틀리지 않는 법이다.
라일라는 그것을 깨닫고 있었기에, 우울한 표정으로 르윈의 손에 들린 음식을 가져갔다.
“유일한 고기를 뺏어 가냐.”
두 개밖에 없던 닭꼬치를 빼앗긴 르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안 줬으면 모를까, 하나를 줬는데 남은 하나마저 뺏어 가다니!
“야채보다는 고기가 맛있어.”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다가 살찐다?”
“누가 들으면 감자나 옥수수는 살 안 찌는 줄 알겠네.”
“…….”
비겁한 팩트로 르윈의 입을 다물게 만든 라일라는 닭꼬치를 연신 뜯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예리엘이랑 하인스는 각자 대회 나갔어. 아마 대기 중일걸?”
“데이지는 떨어졌어?”
파닥파닥.
“응. 1차전에서 떨어졌어.”
파닥파닥.
“그럼 데이지는 어딨어?”
파닥파닥.
“여기.”
“응?”
르윈의 말에 라일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곳에는 데이지가 아닌, 아까부터 날개를 파닥거리는 인형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여기.”
“저거?”
“저거.”
그 인형을 가리키는 르윈의 행동에 라일라의 두 눈이 커졌다.
“닭꼬치 가게 마스코트 아니었어?”
“이거 우리 가문 기사단 마스코트인데. 지금 그 발언은 드라이르프에 대한 라인하르트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
자칫 잘못하면 매우 심각해질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라일라는 그런 르윈을 무시하고 빠르게 인형 탈을 쓴 데이지에게로 다가갔다.
“진짜 데이지야?”
그 데이지가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저런 웃긴 인형 탈을 쓰고 있다니!
“진짜지.”
“그런데 왜 말이 없어?”
“부끄럽나 봐.”
자칫 잘못해서 목소리를 눈치채는 사람이 나오면 어떡할까.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최대한 말도 아끼고 있는 데이지였다.
“이건 어디서 났어?”
“여름 방학에 가문 갔었잖아. 그때 부탁해서 나중에 보내 달라고 했지.”
파닥파닥!
왜 이런 일에만 준비성이 철저해서는.
데이지는 억울함을 담아 날갯짓했지만,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이거 좋을지도.”
“학생회 들어가면, 건의해 봐. 아카데미 마스코트 같은 거 만들어서 행사에 풀어놓으면 좋을걸?”
“응. 이 닭도 귀엽지만, 더 귀여운 것도 많으니까!”
“닭 아니라 그리폰이라니까.”
진짜 라인하르트의 선전포고인가.
드라이르프 가문의 핏줄로서 이걸 싸우자는 걸로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응? 왜.”
파닥파닥거리던 데이지가 날개 끝부분으로 르윈을 끌어당겼다.
“너도 뭐 먹고 싶어?”
그 말에 그리폰 인형 탈이 거칠게 흔들렸다.
무언가를 먹으려면 인형 탈을 벗어야 하고, 그러면 그대로 얼굴이 공개되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곧 경기 시작한다는 거 아닐까?”
“경기? 아.”
마지막 한 조각의 닭꼬치까지 입에 집어넣은 라일라의 말에 르윈은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슬슬 시작하긴 하겠네. 너도 구경하러 갈래?”
“그러고는 싶은데, 할 일이 남아서.”
라일라가 닭꼬치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
제법 두꺼운 양이었지만, 학생회장실의 서류 양을 고려한다면 백사장의 모래 수준이었다.
“무슨 일인데?”
“축제 노점 관리표. 하나하나 기록해야 해.”
막노동성이 짙은 업무.
노동 동아리에 부여된 대부분의 업무가 이런 식이었다.
“아쉽네.”
“나도 아까워.”
예리엘과 하인스의 실력을 제대로 본 적은 라일라도 없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궁금했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데이지가 응원을 참 잘하는데.”
“저 모습으로?”
“응.”
“그건 진짜 보고 싶긴 하다.”
파닥파닥.
어서 가라는 듯 날개를 흔드는 데이지의 모습에 라일라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갈게.”
“잘 가라.”
구운 옥수수를 우물거리며 손을 흔드는 르윈을 보며 라일라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다들 즐기는 것 같으니까.’
저 모습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일하는 거다.
축제를 즐기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더욱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베르샤 아카데미 종신 학생회장의 전설은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
“도련님.”
주변의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데이지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르윈에게 말했다.
“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부끄러웠다.
이런 인형 탈을 쓰고 있다니.
거기에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인형 탈은 체력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마력이 다 소모되면, 한 시간도 못 버틸 정도로!
“애들 대회가 끝날 때까지?”
“그 말씀은…….”
“응. 애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데이지가 응원할 시간도 길어진다는 거지.”
“…….”
맞는 말이긴 했다.
르윈이 이 인형 탈을 쓰게 한 이유는 예리엘과 하인스를 응원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니까.
응원과 인형 탈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가문의 마스코트라고 하니, 거부할 수도 없고.’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기사단 중 하나의 상징이 그리폰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이런 우스꽝스러운 인형 탈이 마스코트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가문에 연락한 결과, 놀랍게도 이 인형 탈은 기사단의 마스코트가 맞았다.
‘집사장님이 거짓말을 할 일은 없으니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알렉스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통신 마법이 아니라, 환영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신이 최면 마법에 걸려 헛소리를 진짜라고 믿는 것은 아닐까가 더 의심스러웠다.
“데이지도 애들 믿지?”
“네.”
가불기였다.
이 부끄러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생들이 빨리 탈락해야 했다.
그러나 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좋았다.
동생들이 이겨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빠르게 져도 곤란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애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응원하자고!”
“네.”
그렇게 힘없는 발걸음으로 데이지는 경기장에 도착했고, 주변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을 느끼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두 사람을 응원했다.
“잘한다, 하인스!”
‘힘내렴, 하인스.’
마음속으로.
“오! 저걸 막네?”
‘이길 수 있어, 예리엘.’
아주 간절하게.
오